<중원의 용산시대라 불리는 삼황오제중 황제헌원이 동이족이라는 증거> 찌찔이를 위한 백과사전 ~
중국의 시조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東夷족이다. 역사서 『사기』(史記)를 보면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삼황오제란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이 삼황(三皇)이며,여왜보천(女娲補天),전욱고양(颛頊高陽), 제곡고신(帝喾高辛), 제요도당(帝堯陶唐)<요임금>,제순유우(帝舜有虞)<순임금>을 말한다. 중국의 사학자 사마천이 쓴 『사기』를 보면 소호는 황제헌원의 아들이며 전욱은 황제의 차자인 창의의 아들로 황제의 손자이다. 제곡은 소호의 손자로 황제의 증손이라 하였고 제요는 제곡이 제후 진봉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로 황제의 고손이라 하였다. 따라서 삼황오제는 모두 한 가족이었으며 동시에 이들은 모두 동이족이었다.<사마천(BC2C중엽)漢나라 무제 때 역사가이 쓴 역사서이다.>
이상하게도 사마천의 사기의 흉노열전에는 중원의 夏나라(BC2033~BC1562년)시조라는 匈奴族이라는 구절이 있다.(헷갈리게?)하,은,주 건국세력이 동이족이랬다가,흉노족이랬다하면 당근 헷갈리~ 과연 匈奴族은 누가 이렇게 불렀을까? 그들 스스로 (오랑캐 노예족이라고 불렀을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흉노열전>에서는 그 조상이 하후씨(夏后氏)<황제 헌원의 손자>의 후손인 순유(淳維)라고 하였다.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때에는 귀방(鬼方)·곤이(昆夷) 등으로, 주나라 말기에는 험윤, 춘추시대에는 융(戎)·적(狄)이라 하였으며 전국시대에 비로소 흉노 또는 호(胡)라 하였다.<===황제 헌원이 東夷族이란것은 누구나 다알고 있다.그럼 당연히 개허접 장케애들이 동이족을 나중에 흉노족이라고 부른것이다!! 3세기초 춘추전국시대를 제패한(동이족으로 부터 독립한) 최초의 장께인 秦나라의 진시왕에 와서 동이를 흉노라고 비하시킬 수 있었던것이다.(사실은 개허접 노예인 장께들이 간신이 독립하여 주인을 보고 오랑캐 노예라고 부른것이다!!!)
흉노를 욕 하는 쉐이들은 절라 무식한 넘이라는것을 알아라! 동이=흉노 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韓민족의 역사는 (여기 찌찔이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환국(환인)==>배달국(환웅)(홍산문명)기원전5000년<지금으로부터 7000년전>==>고조선(단군왕조)기원전2333년 시작<지금으로부터4400년정도><==우리가 입버릇 하는말 우리의 역사는 반만년이다~(고조선만 생각 하면서 떠들어 되는 소리) 말은 배달민족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이제부턴 정확히 7000년으로 하자!!<우선은 배달민족 역사까지만 잡고 환국의 역사는 조금 더 밝혀지면 이야기 합시다~>
홍산유적(배달국)
요동지방(만주지역)
홍산유적의 대표적인 묘장묘의 특징인(석관묘)<적석총(돌무지무덤)>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무덤
홍산문화 여신상 홍산옥기 장식도 옥기류 사진
홍옥 옥기류 장식품(신라의 금관에 달린 옥기류와 똑같음)
천마총 금관 황금대총 금관
옥으로 만든 매미? 모양 옥으로 만든 칼
옥으로 만든 곰모양의 그림
여기에서 중원의 용산시대라고 불리우는 삼황오제<태호복희,염제신농,황제헌원>
(BC3000~2033년)이 삼황이며,오제는 여왜보천,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요임금>,제순유우<순임금> 사마천의 사기에는 東夷族이 세운 국가이다~라고 적혀 있다. 즉 배달국(홍산문명)의 제후국의 왕들이 동이족 출신이라는거다.
本國인 배달국(홍산문명)은 지금의 요동(만주)지역에 있다.요서(산둥반도)지역에서 성립된 나라가 요,순,하,은,주나라이다.<==전부 東夷族 배달국의 제후국인 삼황 중 황제헌원이 배달국14대 치우천황(BC2707-BC2598)에게 반기를 들었던것이다.(동족상잔의 비극)
흥미있는것은 일반적인 중원역사의 시작을 夏나라(BC2033~BC1562년)로 잡고 시작한다. 배달국에서 고조선(기원전2333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와 일치하다.
치우천황은 최초로 철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고,동북아시아에서는 백전백승의 군신,또는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우고 추앙한다.<물론 개허접 장께들도 신앙처럼 받들어 모신다> 또한 뿔달린 투구를 착용해서 귀면와,부적,도깨비 등등에서도 많이 나타난다.<==얌전한 韓민족의 이미지와는 완죤히 틀린 이미지다.(흉노의 이미지(평상시는 군자처럼 문화 생활 영위하면서 지내다가 불의(義가 아닌것)을 감지 하면 용맹무쌍 하게 말타고 활 땡기며 적진을 휘젓고 다니며 개박살 내는것이 오버랩 된다는거다.) 개허접 짱께가 쓴 史記에선 제후국인 황제헌원에게 잡혀 죽었다고 구라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임이 확실 할것이다.아니면 미쳤다고 치우천황을 떠~받들고 동상(중국 화현현)에 세워진 치우천황 동상(머리에 뿔달리고 큼직한 도끼들고 당당하게 서 있슴)까지 세워 모시고 숭배 하겠나~ 패전한 장수에게) 한마디로 날조,왜곡의 최첨단을 달린것이다~
<<중요한것은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은 같은 배달민족의 일원이였다는거다.(동족상잔의 비극이였던것이다)>>
夏나라(BC2033~BC1562년)<동이족=흉노족>(장케가 쓴 사마천의 史記에서 흉노열전에서 기록) 夏나라 유적도 발굴 되었으나 사진이 없슴(이해바람)
은(殷=商)나라(BC1562~BC1066년)갑골문자(한자의 기원) 갑골문자를 만들은 이유는? 노예민족인 머리나쁜 장께들을 부려먹을려니(시킬것(가르켜줄것?)은 엄청 많은데 말이 안 통함)그러니 그림문자로 지시사항을 전달 해 의사소통을 해야 되니 만들어 준거임!! <동이족>
은나라 유적지(지금의 요서지방<산둥반도>)
은나라 청동기 은나라 갑골문자
소뼈에 새겨진 갑골문자
은나라 유적에서 나온 마차(마차를 사용한 정도로 문명이 발달 되었고,역시 북방기마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슴)
周나라(BC1066~BC256년)
西周(수도 鎬京<호경> 기원전1066년~기원전770년)동이족이 굳건하게 중앙아시아와 중원의 패자로 군림
진시왕 병마용갱의 사진(진시왕도 韓민족이라는 사서도 있지만 개허접 漢족으로
해 줘도 상관 없을것 같음)<통일왕조 역사도 15년정도고 여러가지(한민족에게
위해만 되는 일만 하다가 결국은 쫄다구 인 개허접 漢족 출신인 항우를 거쳐 유방
에게 나라를 빼앗긴 넘이기 때문에~>
진시왕의 병마용갱에서 나온 흙으로 빚은 8000여개 병사들과 말들이 전부 동쪽을 향하고 있다.이건 진시왕의 적이 동쪽에 포진 하고 있다는것이다.(병사들의 평균신장이 175센티이고 말의 크기는 2미터로 실제와 같이 정교하게 흙으로 구워 만들었다)<말의 안장도 있는걸로 봐선 기원전8세기 후반인 춘추전국시대부터 말 위에서 양손으로 전투를 할수 있었다는것을 예측 할수있다.진시왕이 중원패권 잡고 잽싸게 만리장성을 축조(안맞아 죽을려고?) 하기 시작한 이유는 뻔한것이다.
대제국 고조선이 두려워(죄졌지! 감히 고조선의 제후국을 허락도 없이 멸문 시켰으니!!) 한마디로 최초의 漢족 나라인 秦나라 진시왕이 지넘 왕릉,아방궁축조와 분서갱유<기원전212년>(아마 당시 東周(동이족)의 학자를 죽이고,역사서를 전부 불질렀다)<==이유는 개허접이였던 漢족의 역사적인 진실을 감추기 위해 그러나 15년 만에 역시 개허접漢족 출신인 쫄다구 항우에게 나라 빼앗기고 만다.항우는 역시 개허접 漢족인 유방에게 기원전 3세기초부터 秦나라는 반란군 항우와 유방이 치고받고 해서 결국은 유방이 승리 해 漢(기원전 202년)을 세웠다.(이시기부터 동이가 흉노라고 불리기 시작 한것이다.)
우선은 북방기마민족이 땅만 파고 농사 짓는 민족보다 문명이 우수했다는건 당연한것을 오해 하면 안되겠다.고정된 좁은 장소에서 머문 농경민족이 어떻게 눈부시게 기동하며 세상 이곳,저곳의 여러 문화권과 교류하며 문명을 쌓아가는 기마민족을 따라 올수있겠는가!! 환국,배달,고조선은 모두 북방기마민족의 전통성을 그대로 간직한 세계최초의 대제국과 문명권을 이룩한 韓민족인것이다.!! 요즘으로 보면 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광주가는것보다 휭~~하고 자동차 타고 간다는 뜻인뎅~~
漢고조 유방이라는 애는 즉위 하자마자 주제도 모르고 넘을수 없는 벽인 동이족(흉노)의 본토을 넘 보다 포로가 되어 다시 60년간 장께들 조상이 하던 노예 생활을 영위 해 나간다. 그러나 漢무제 때 고조선(동이=흉노)제국이 남흉노(선비족),북흉노족으로 분열(기원전1세기 전후) 되어 제2의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독립 하게 된것이다.이당시 만주와 한반도에선 지금 韓민족의 기원인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개허접 장께넘들 한마디로 땡잡은거였다.(漢무제 때 역사가 사마천이 이때를 기회로 漢족 중심의 史記를 기록 한것이다.(대제국 배달국,고조선을 匈:오랑캐란 뜻 奴:종이란 뜻 흉노라고 적반하장식으로 사기를 친것이다)장께넘들 꼴리는데로 동이족이니,흉노족,선비족,북융이니 막 신나게 적은것이다.<고조선이 다스린 영토는 워낙 넓었으니 더욱 신났을것이다!><==수천년간 노예민족이였던 장께족이 햇볕을 본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말 할수있는것이다. 韓민족의 내전으로 독립 했으니 허접한漢족의 최성기로 볼수있는 시기이다.그러나 400년후엔 다시 5호16국 남(漢족)북(선비족)조시대를 지나 다시 남흉노였던 선비족이 장께들을 노예로 수나라를 건설한다==>당으로 이어나간다
북방기마민족인 韓민족이 불쌍한 장께들에게 전수 해준 좋은예는~ 북조 (소위 말하자면 양쯔강 이북)북조의 군주는 선비족(鮮卑族) 출신의 탁발씨(拓跋氏)로서, 군주권강화를 위하여 지배종족인 선비를 모든 군사담당자로 구성하였으며, 호적을 정비하여 인보제(隣保制)와 삼장제(三長制)에 의해서 체제를 지탱하였다. 또한 균전법(均田法)이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며, 부병제(府兵制)도 채용하였다. 이 북조의 군주권 강화를 위하여 실시된 정치기구가 뒤에 수 당(唐) 두 제국의 정치기구로서 완비되었다.<==이말은 북방기마민족이 정치,경제제도를 불쌍한 漢족에게 가르쳐 줬다는것이다.왜냐면 부려먹기 좋으므로~
신라가 배달국의 적통국가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홍산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입니다.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石棺墓-돌널무덤)가 대능하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을 장례치르는 의식이야말로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상에서 홍산문화와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므로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 그래서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동이족이 세운 하나라, 은나라이전까지는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고 있고, 주대(周代)에 들어와서야 나무로 곽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 홍산문화(배달국)과 고조선의 묘장법이 적석총<돌무지무덤,석관묘,토광묘,목관묘>입니다.
신라지역에서 발견된(울산 대곡수몰지역)
"1999년부터 이곳을 조사해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1년 사이 나무덧널무덤(목곽묘), 돌덧널무덤(석곽묘), 석실무덤, 청동기시대 집터 등 유적 300여 곳을 확인하고, 갑옷의 일종인 찰갑, 둥근고리 큰칼(환두대도), 철도끼, 금동 귀고리 등의 금속 유물, 토기 등도 다량으로 거두었다고 17일 발표했다."<== 신라지역 묘장법을 보면 기원전1세기경부터~기원후 3세기말까지는<적석총,석관묘(돌널무덤),토광묘,옹관묘(독무덤),목관묘>로 나오고 기원후4세기부터는 신라의 대표적인 고분양식인 적석목관(곽)묘(돌무지덧널무덤)로 나타남니다.적석총(돌무지무덤)과 목관(곽)묘가 발전해서==>적석목관묘(수혈식적석목곽분)로 발전되었음을 알수있습니다.
재미 있는것은 4세기 아랍과 유럽을 정복한 훈족의 무덤도 적석목곽분이라는 겁니다.<중요" 적석목곽분은 한반도 지역에선 4,5세기 신라 지역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묘장 양식임">
고구려 묘장양식도 초기엔 적석총,석관묘,목곽묘,옹관묘 등==>3~4세기인 중기엔 횡혈식 석실고분(석실묘)<장군총>(중국 남조 宋나라에서 유행했던 양식의 영향을 받음)5~7세기말기엔 횡혈식 토총고분 (예: 강서고분-사신도.도교영향, 쌍영총-기사도.팔각쌍주.두팔천장, 무용총, 각저총-서역영향)
백제 묘장양식은 초기(漢성시대) 적석총,석관묘,옹관묘,목곽묘 등==>중기- 횡혈식 석실고분, 전축분(중국 남조 宋의영향, 무녕왕릉)==>사비시대 - 보다 세련된 횡혈식 석실 고분(능산리고분)
배달국의 묘장양식을 보더라도 신라는 배달국의 전통적인 묘장양식을 남방족인 허접한 장께족에게 가르쳐 줘서 발전 시킨 5호16국과 위진 남북조시대에서 남조인 宋나라의 묘장법을 모방하지 않았다.반면에 고구려,백제는 개허접 장께나라인 宋나라의 묘장법(횡혈식석실고분)을 따라갔다. 누가 더 정통성이 있는가? 생각 해 보자!!
노예국이였던 漢무제가 주인님이시던(고조선)의 韓민족을 지금 경상도,전라도처럼 사이가 나빠졌을 때를 호기로 살살 이간질 시켜 쌈 부쳐 놓은겁니다.漢무제넘이 배달족이 남북으로 갈려 싸우고 있을당시 사마천이라는 넘이 나중에 부친 남흉노(선비족鮮(고울선)卑(낮을비)족은 남흉노와 연합 해 북흉노(고조선)을 멸망 시켰기 때문에 선비족이라고 그런대로 예쁘게 부쳤지 않았나 생각 해 볼수있습니다.사마천 이넘이 흉노니,부여니,선비니,예맥이니,등등 신나게 배달족의 이름을 갈라 놓았던겁니다.
漢무제는 죽을때까지 흉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었던것을 여러곳에서 발견 할수있습니다.결국은 선비족에게 다시 노예신분으로 들어가지만...
韓민족의 불행은 동족끼리 서로 물고,뜯고 싸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워낙 우수한 민족이라서 이런 큰결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랬으니 광활한 대륙에서 이 좁은 한반도까지 와서도 제버릇 남안준다고 아직까지 욱~하면 버릇 나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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