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강남에서...
깨달음 얻으려고 산 속에 들어간다는데
빌딩 속 바삐가는 젊은이들 바라보니
진정코 그들이야말로 내가 찾던 求道者
배달9216/개천5917/단기4352/서기2019/10/30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강남에서...
(1)
10/14 - 10/25 “건설CM교육”
젊음의 심장부 강남으로 출퇴근.
모처럼의 피교육이어서 걱정이었는데
많이도 변화하는 건설지식의 세례에 졸음도 달아나는 듯.
바닥난 지식의 샘에 모처럼 신선한 물이 고이다.
(2)
감수성 예민하던 고교시절.
이과를 선택했으면서도 문과의 삶을 살았다.
고전과 철학책을 많이 읽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석가모니는 29세에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고 히말라야의 심산에 들어가 전무후무한 수도를 하였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다시 속세에 나와 거리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대각(무등정등각) 하였다고 하고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도 도시를 떠나 윌든 숲으로 들어갔지만
그의 수필을 보면 정작 자연의 모든 섭생을 경제로 계량하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修道하려고 俗世를 떠나는 과정을 거친다.
불교에도 재가수행을 행했던
유마거사(維摩居士)와 승만부인(勝鬘夫人)이 있었듯이
진정한 수도는 사람들 속에서 깨달아야하지 않을까?
그러한 求道가 인간사 이치를 깨달으려는 것이라면
俗世를 떠나서 얻는 깨달음이란 공허에 다름 아닐까?
사람들이 엉키어 사는 마을에서, 시장에서, 도회에서
사색하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덜 영글었지만 까까머리를 했던 고교시절,
일락산을 오르내리며 그러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3)
인파가 붐비는 강남을 2주간 출퇴근하다 보니
젊은 날 그러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고교시절 난 참! 조숙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주히 오가는 젊은이가 대부분인 人波.
그들이 求道者처럼 보였다.
빌딩 숲이 密林처럼 보였고, 절벽 위의 동굴처럼 보였다.
거기에 불공정과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원망하며,
求道에 목마른 젊은이들이 분주히 오고 가고 있었다.
배달9216/개천5917/단기4352/서기2019/10/24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 사문유관(四門遊觀)
석가가 태자로 있을 때 가비라성의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동문 밖에서는 노인을, 남문 밖에서는 병든 사람을,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북문 밖에서는 승려를 만나,
인생의 네 가지 괴로움인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심한 일
* 유마거사(維摩居士, 維摩詰)
불전에 보이는 재가신자(在家信者, 居士),
산스크리트어의 비말라키르티(Vimalakirti, 정명[浄名])의 음역어(音譯語),
유마힐(維摩詰)의 약칭. 북인도 바이샤리의 부호였으나,
대승 불교의 묘리인 공 반야(空∙般若)에 통해, 그 방장(方丈)을 찾는 자는
불제자까지도 가책 받고, 지혜 제일의 사리불(舍利弗)조차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한다.
「유마경」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대립구도를
십대제자와 유마거사와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경전이다.
재가신도인 유마힐이 편협한 소승적 견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제자들을 각성시켜
속히 대승적 의식에 눈뜨게 하고자 방편으로 꾀병을 앓아 불제자들에게 문병을 오게 한 뒤,
소승적인 의식을 비판하고 대승적인 보살도를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도를 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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