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 장미원에서(20/05/21, The Sound Of Silence / Ivana Spagna)
이름없는풀뿌리2020. 5. 27. 10:39
요즈음 – 중랑천 장미원에서 –
황사도 없는 올해 좋아야 할 터인데
날뛰는 힘쎈 놈들에 억장이 무너져도
역병아 물렀거라는 장미향의 메아리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05/21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중랑천 장미원에서
(1)
장미의 계절
젊음과 화려의 상징
온화한 날씨에 황사도, 미세먼지도 없는
중화동 중랑천변 장미공원
장미의 터널에 섰다.
(2)
승리한 권세 집단
어쩌면 그리 뻔뻔하고
부정의를 정의로 둔갑시키려는
땅에 떨어진 도덕.
억장이 무너진다.
(2)
이 곳 만큼은
가득한 장미향에
물렀거라 코로나이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도
이곳에 서면 자연 치유될 듯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05/21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만물상] 한명숙이 뭐길래
조선일보 임민혁 논설위원 입력 2020.05.22. 03:18
여권이 일제히 한명숙 9억원 수수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건설업자의 수표가 한명숙 동생 전세금으로 쓰인 사실이 확인됐다. 그 밖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무죄라고 한다. 여권 사람들도 무리하고
억지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도 한명숙이란 이름만 나오면 '무조건 무죄'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인 2011년 초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한빠(한명숙 열렬 지지자)'라고 칭했다.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한 질문에
"차세대 리더십과 민주주의의 방향은 통합이고 거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한명숙만 한 분이 없다"고 했다. 당시까지 정치에 별 뜻이 없던 문 대통령 머릿속에
'한명숙 대통령'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후엔 거꾸로 한명숙 등이 문재인을 설득해 대선으로 내보내게 된다.
한명숙이 진보 진영에서 갖는 위상은 간단치 않다.
정통 운동권이자 시민 단체 그룹 대모이며, 친노 핵심에 민주당 적자다.
한명숙은 남편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가 결혼 6개월 만에 통혁당 간첩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13년간 옥바라지를 했다. '운동권 새댁'이 '맹렬 투사'로 변신한 계기라고 한다.
한명숙은 여성 운동을 이끌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총리까지 올랐지만 이후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2년간 복역했다.
진보 진영에선 사회운동→DJ정부 장관→정점(頂點)→검찰 수사라는
이력이 노무현을 닮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때 한명숙은 "잔인한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를 빼앗았다"고 추도사를 낭독했다.
민주당 측은 이 추도사 때문에 '정치 보복'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명백한 물적 증거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마치 '한명숙은 돈을 받았어도 무죄'라고 하는 듯하다. 2017년 한명숙 출소 때는
이해찬·문희상·우원식·홍영표·유은혜·전해철·김경수 등 현 정부 핵심 실세들이
총출동해 "한명숙은 용감했다"고 했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과 여당은 모두 한 전 총리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한명숙은 폐족된 친노를 되살리고 정권 탈환과 '친문 세상' 발판을 만든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다들 그 혜택을 누리며 떵떵거리는데 정작 한명숙은 만기를 채우고
사면·복권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미안함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유죄를 무죄로 바꾸자고 한다면 앞으로 선거에 누가 이길 때마다
유죄가 무죄 되고 무죄가 유죄 될 것이다.
[윤평중 칼럼] 한국 시민사회는 죽었는가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20.05.22 03:20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가 일파만파다. 윤미향 전(前) 정의연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을 둘러싼 추문은 한국 시민운동의 변질(變質)을
온몸으로 증언한다.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꾼에서 이권단체로 전락한 시민단체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 시민운동은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인권 감수성을 높였다. 거액의 성금 횡령 및 배임 의혹
당사자인 윤미향 당선인조차 위안부 문제를 국제인권운동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시민운동과 현실정치의 상호 침투는 필연적으로 시민단체의 권력화를 낳는다.
시민운동이 운동가의 출셋길로 악용된다. 이는 보수·진보 진영에서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진보 정권에서 두드러진다. 힘 관계에서 약세(弱勢)였던 한국 진보는 시민운동과의
전략적 연대를 정권 장악의 지름길로 삼았다. 운동가들 자신도 권력에 투신해 관직과
이권을 얻는 행위를 현실 참여로 미화한다.
한국 시민운동의 권력 지향성은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에서 정점에 이른다.
정권과 어용 시민단체들은 이해관계를 공유한 한 몸이다.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친(親)정부기구로 변신하고
비영리단체(Non Profit Organization)가 이권단체로 타락한다.
조국 사태로 정권이 궁지에 몰리자 진보시민단체가 총출동해 살아 있는 권력을 엄호하는
행태가 정의연 사건에서 반복된다. 정권과 시민운동이 일체화할 때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植民化)'가 시작된다. 한국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참여연대 활동가 다수가 문 정권 권력 핵심부에 진출하고 참여연대의 정책 제안들이
정부 정책으로 실행되는 게 단적인 증거다. 참여연대는 5월 19일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인권침해'와 '검찰정치'로 규정했다. 여론과는 충돌해도 문 정권의 인식과는
완전히 일치한다. 정치권력과 시민운동의 합체(合體)는 시민사회에 치명적이고 나
라에도 극히 해롭다.
세계사적으로 현대(modernity)는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는 제3의 독립 영역인 시민사회와
동행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좋은 나라는 국가·시장·시민사회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정체(政體)다.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엔 시민사회가 없고
국가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한다. 두 나라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없는 건 시민사회 부재의
필연적 결과다. 철학자 헤겔의 통찰처럼 '시민사회 없이 현대세계도 없다.'
결국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자기부정(否定)이자
중세로의 퇴행을 뜻한다. 거대한 역사의 후퇴다.
시민사회의 문명사적 의미에 대한 이런 역사철학적 이해가 있어야 정의연 사태의 함의를
정확히 판독할 수 있다. 윤미향 사건은 시민운동의 자기 해체를 가리키는 중대 징후다.
조국 전 장관과 판박이인 윤미향 당선인을 결사 옹위하는 문 정권과 시민단체들의
통일전선은 한국 시민운동의 총체적 부패를 증명한다. 행정·입법·사법을 독점한
최고 권력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성군(聖君)으로 기리는 용비어천가는
한국 사회가 신(新)중세로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강한 국가'를 견제하는 '강한 시민사회'는 한국 특유의 위대한 성취였다. 강
한 국가가 압축 근대화의 성공으로 중산층을 낳고 중산층이 이끈 강한 시민사회가
민주화를 선도했다.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선(善)순환이다.
한국이 코로나19를 선방(善防)한 것도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의 협력과 견제의
산물이라는 문명사적 서사(敍事)로 승화된다. 문재인 정권이 시민사회를 식민화하는 현실은
이런 대한민국의 기적을 위협한다. 현대 한국의 경이로운 성공을 추동한
독립적 시민사회의 토대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연 사태에서 문 정권은 친여 언론과 시민단체를 총동원해
탈진실(Post-truth)을 양산하는 진지전(陣地戰)에 나섰다. 대대적인 여론 조작으로
공론장을 교란하는 게 조국 사태와 똑같다. 하지만 민심의 공분(公憤)은 정권과
어용 시민단체들의 공동 전선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강대한 국가가 민심의 역린을
건드릴 때 국가라는 배를 뒤집어버리는 게 한국인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행동으로 역사의 물길을 바꾼다.
윤미향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생사(生死)의 물음을 던진다. 한국 시민사회는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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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und Of Silence / Ivana Spa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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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
여보게..어둠이여, 나의 옛 친구여 자네와 다시 얘기하러 왔다네
왜냐하면 어떤 환영이 살며시 다가와 내가 잠든 사이에 씨를 뿌리고 갔거든..
내 머리 속에 심어진 그 환영은 침묵의 소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어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Narrow streets of cobblestone
"Neath the halo of a street lamp I turned my collar to the cold and damp
When my eyes were stabbed by the flash of a neon light
That split the night And touched the sound of silence
뒤척이며 꾼 꿈 속에서 난 홀로 걸었어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따라..
가로등 불빛의 후광 아래서 난 추위와 습기를 막으려 옷깃을 세웠지
네온 등의 불빛 때문에 찌르듯이 눈부셨어
그 불빛은 밤의 침묵의 소리를 깨뜨려 버리고 어루만져 주었지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Ten thousand people, maybe more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People writing songs that voices never share
And no one dare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적나라한 불빛 속에서 나는 만명...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
사람들은 무의미하게 그냥 떠들어 대고 있고,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듣지 않고
그저 건성으로 듣고 있고, 인간의 노래 아닌 노래라고 만들고 있어.
그리고 아무도 감히 그 침묵의 소리를 깨뜨리지 못했어
"Fools" said I, " You do not knowsilence like a cancer grows.
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Take my arms that I might reach you"
But my words like silent raindrops felland echoed in the wells of silence
내가 말했지. " 바보들...당신들은 침묵이 마치암처럼 퍼지는 것을 몰라...
교훈이 될지도 모르는 내 말을 들어봐 너희들에게 다가 갈지도 모르는 내 팔을 잡아봐
하지만 내 말은 소리 없이 내리는 빗방울처럼침묵의 샘 안에 떨어져 메아리 쳤어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to the neon god they made
And the sign flashed out its warning In the words that it was forming
And the sign said, "The words of the prophets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and tenement halls" And whispered in the sounds of silence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네온 신에게 절하고 기도했어
그리고 그 네온이 만들어 내는 문구에 경고의 메시지가 빛났지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지 "예언자의 말씀은 지하철 벽에 그리고
빈민가의 벽에 적혀있다" 그리고 침묵의 소리에 속삭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