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사
- 서 벌(서봉섭) -
1
彼岸의 꽃밭일레
일렁이는 꿈의 靑紅
오오랜 念願들이
어여삐 저자 이룬
여기가
바로<룸비니>
우린 모두 菩薩(보살)들.
2
어쩔거나 합장한
너와나의 이 속엣 恨
저 달이 지고 말면
무슨煩惱(번뇌) 다시일까
드뇌어
말 없으렷다
불 밝힌 먼 그리움.
* 룸비니(Lumbinī) :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으로 중인도 카필라바스투의 성 동쪽에 있던 꽃동산. 지금
의 인도와 국경을 이루는 네팔 남부 타라이 지방에 해당한다.
* 번뇌(煩惱) : ①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워함. 또는 그런 괴로움. ②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
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 드뇌어 :되뇌어
메밀밭에 메밀 꽃 피어
- 서 벌(서봉섭) -
흰나비 수 만 마리
한데얼려 수련수련
무슨 뜻을 펴는 건지
하얀 소리 수런수런
햇빛
달빛 별빛들
내려 섞어 수련수련.
續 思母曲
- 서 벌(서봉섭) -
고성 장터 생어물로 청춘 다 판 울 엄매야,
毒酒로 쳐져 앉은 아버지 패망 때문에
母斑은 늘 몇 천원어치 눈물 피땀이던가.
눈만 뜨면 못산다고 벼락치던 우뢰소리.
사는 길 지름길이 그다지도 천리던가.
무서운 그 울부짖음 뉘 산 메아리 됐노.
시방도 고성 장터 이 다 빠진 울 엄매는
다닥다닥 생선 몇 손 千金으로 담아 이고
다 못 헬 밀물결 안개 가명오명 울먹이리.
* 모반(母斑) : 자연적으로 살갗에 나타난 얼룩무늬나 반점. 사마귀, 점, 주근깨 따위를 이른다.
* 가명오명 : 오명가명,‘오면가면’의 옛말.
* 작품해설/남진원 : 경남 고성 낫질에서 태어나셨고 어려운 살림에 학교를 못 다니고 절에 가서 한
학을 스님께 배우셨다고 했다. 그러니 순전히 독학을 한 셈이었다. 그러니 돈 없고 빽 없이 올라온
서울살이가 얼마나 형극의 길이었겠는가. 어머니는 고성의 난장에서 고기를 파셨다고 하셨는데 참으
로 힘든 날이었다고 하셨다. 그 모습을 시조로 절절하게 나타내셨다. 아버지는 술 중독이 되어 누워
계시고 어머니가 고기 장수로 나선 것이었다. 이런 가난 덕분인지, 속사모곡이란 명시조가 탄생하였
다. 어머니의 속살이 썩어들어가는 아픔이 노래 되어 풀어져나온다.
<강태공>, 1940~1950년대, 늦은 오후 낚시에 열중인 강태공들의 모습이다. 전경의 대나무로 만든 낚
시대를 드리우고 밀짚모자를 착용한 낚시꾼의 모습과 상단의 물에 반영된 강태공 모습은 챔질을 위한
긴장된 순간을 보여준다. 평온한 듯 보이는 장면에 긴장의 순간을 담은 것이다.
낚시 心書
- 서 벌(서봉섭) / 1965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시조부분 수석상 수상作 -
냇가에 나와 앉아 낚시를 드린 날은
하늘도 하나 푸른 못으로나 고여내려
임 생각 올올의 줄은 千의 낚시 되는가
느닷없이 찌가 떨어 잡아 채는 잠깐 사이
비늘빛만 눈을 가려 아득한 천지간을...
임이여, 그렇게 들면 내 마음은 대바구니
저승도 내 먼저 가 설레는 물무늬로
이제나 저제나 하고 이리 앉아 기다리리
法悅의 꽃수레 몰아 목넘어 올 그때꺼정
*法悅(법열) : ①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 ②설법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
에 일어나는 기쁨.
* 작품해설/남진원 : 1940년대와 1950년대는 가장 혹독한 시기였을 것이다. 정권의 무능과 부정부패,
가난에 굶주림은 비단 서벌 선생의 가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대 90%의 국민들은
가난으로 질곡의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어찌 이 작품이 서벌 선생의 가족만을 위한 작품이겠는가.
그 시대의 적나라한 반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가혹할이 만치 어려운 생활은 서울살이에서도 지속되
었던 가 보다 사람을 만나면 일자리의 주선이 아니라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의 명함 만이 주머니에 꽉
찼으니 말이다. 이런 서벌 선생에게도 비단결 같은 사랑이 있었으니 그 시조의 결에 묻어나는 가락을
음미해 보시라.
戀歌
- 서 벌(서봉섭) -
아내여, 우리 방은 한알의 복숭아ㅅ 속
그 안의 너와 나는 희디흰 두알 씨앗
銀漢의 푸른 구비로 떠밀려 내려간다
* 작품해설/남진원 : 내가 서벌 선생을 뵈었을 때 제일 먼저 선생의 시조 작품을 말한 것이 바로 이
[연가] 였다. 내가 이 작품을 [현대시학]에서 본 것 같다. 선생께서도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시조였
다고 하니 매우 좋아하시는 모습이셨다. 나는 아버님이 좋은 직장을 가도록 교육대학에 까지 가게 하
여 안정된 교직에서 지내도록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가서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
을 하다시피 하고 안정된 교직을 박차고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들개처럼 거친 황야에서 살아왔다.
지금도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내 아내에게만 큰 죄를 지은 것만 빼고는 .....
내 친구들은 모두 62세 정년 퇴직을 하고 조용히 살지만 내 삶은 70이 된 이제부터 아닌가. 사회 활
동도 누구보다 활발하고 문단 생활도 꾸준히 하여 창작의 작업도 내년 2024년이면 반 백년, 50년이나
되었으니 원로 작가가 아닌가. 그러니, 가난은 내가 어려운 삶을 살게 했지만 나를 지혜로운 길로 안
내해 주는 거대한 문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가난하지만 감히 단언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부
자라고 .......
말이 헛나가고 두서 없었지만, 두서 없으면 어떠랴. 내 일생에 있어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두 분 문
사를 들라고 하면 서슴없이 서벌 선생과 류제하 선생은 드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서벌 선생은
지금 고향의 고성에 <서벌 문학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돌아가셨지만 많은 위안도 될 것 같아, 나
역시 기쁘기 한량 없다.
*『서벌 시조 연구』머리말 / 고요아침 2015년 12월 30일 / 원은희
만 평 적막을 흩뿌리며
서벌은 1939년 경남 고성출신의 시조시인으로 가난의 한을 주제로 승화시켜 미학적 세계를 구축한 시
조시인이다. 평생 가난이라는 남루한 옷을 입고 생의 허무, 적막을 벗 삼아 시조경영의 삶을 살았던
그는 소박한 농부 시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관심을 시조의 주제로 확대시키며 현대적 참신성으로
시조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양식인 시조가 일제 강점기
의 잘못된 근.현대화 과정에서 쇠퇴하여 현대시 장르로 꽃피지 못함을 인식한 그는 자신만의 어법을
창안하여 개성과 독창성있는 시조창작으로 시조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는 평론, 시조론을 통해 이
론 정립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사설시조, 동시조 보급에 앞장서야할 시조인의 사명을 모범적으로 실
천한 시조부흥의 선구자였다.
또한 60년대 마산을 주축으로 한 <율>동인 창립과 활동에 적극 참여한 그는 지역문학 기류에도 큰 영
향을 미쳤으며, 70년대 출향하며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며 현대화의 물결이 넘치는 서울에서 만
평 적막을 흩뿌리며 정신적 혼란과 궁핍에 따른 소외의 한을 오로지 시조창작으로 극복하였다.
어느 민족이건 그 민족 나름의 시가, 즉 민족시가 있다. 중국의 오언, 칠언이라는 한시와 일본늬 하
이쿠, 서양의 소네트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가락인 시조가 바로 그것이다. 700여년의 세월
동안 우리 정서와 호흡에 맞는 심층구조인 시조는 3장 6구라는 형식적 특성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민
족의 리듬이면서 민족의 내재율이다. 하지만 외래 수용이라는 단계를 밟으면서 시조를, 소멸하는 구
시대의 장르로 경시하는 반면, 자유시는 각광받는 장르로 선호하여 시인 수가 우리 문단의 우위를 점
한지가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다듬어진 우리말의 틀이자 우리 뜻의 틀인 시조가 문단의 주변부로 밀
려났다. 이러한 근대화의 오류가 굳어진 상황에서 서벌은 시대의 요구를 수렴하여 시조이론의 체계화
와 시적 세계를 확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다하였다.
서벌은 한국시조사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연구가 미미하다는 점에서 그의 문학셰계를 검토하고 문학
적 성과를 조명하는 일은 한국시조사적으로도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책의 1부는 서론으로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사 검토, 연구 방법과 대상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
하였다.
2부에서는 서벌의 생애를 통해 삶 속에 녹아있는 내력과 시적 편력을 알아보며 그의 문학적 행복을
따라가 보았다. 가난으로 점철된 궁핍한 고향에서의 현실을 건너기 위한 돌파구를 시조에서 찾기에
이른 그는 마산을 중심으로 한 <율>동인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경남시조의 부흥과 동인지시대를 꽃피
웠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출향하기에 이른 그는 서울살이와 시조경영에의 매진으로 수작들을
뽑아 올렸으나 만 평 적막을 흩뿌리며 소외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3부에서는 서벌 시조의 주제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고향에서의 향토적 서정과 가난의 한을 시조라는
분출구로 뽑아 올린 그는 역사현실과 개인사가 점철된 현실의 멍에를 치열한 시 정신으로 승화시켜
현실 극복의지를 보여주었다. 출향후, 서울체험을 바탕으로 소시민의 빈곤의식과 애환을 시조에 담았
다. 인간의 순수한 정신이 물화되고 황폐화된 도시에서 시인이 겪는 실존적 몸부림을 창작으로 승화
시킨 그는 시조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모순된 당대의 사회현실을 폭로, 고발하
거나 도시 빈곤층의 저항의식을 시조의 격에 맞도록 승화시키는가 하면 종교적 깨달음과 선적 지향으
로 자신을 초극하고자 하였다. 법륜의 바퀴를 돌리듯 그는 끝없이 시조의 결을 다듬는 수행자가 되
어, 시심을 종교적 깨달음의 세계로 승화시켜, 참선적 초월의 경지를 지향하기에 이른 것이다.
4부에서는 형식 미학적 측면에서 고찰해 보았다. 그는 시조의 현대화와 대중성을 위해 행 가름의 파
괴, 다양한 형태 시도로 관습화된 틀을 깨고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자 하였으며, 방어 활용과 시어 혁
신으로 시조에 생기를 불어넣고 현대시조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개작 추구를 통해 현대적
감각을 살리고 참신한 비유와 언어감각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시조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을 사
설시조에서 찾고자 했던 그는 사설의 산문성을 되찾아 자유시에 견줄만한 시로서의 시조를 보여주었
다.
5부에서는 동시조의 율격구조와 의미구조에 관한 연구이다. 어른의 뿌리가 어린이에서부터 시작되어
야함을 깨닫고 천진한 동심의 세계를 펼쳐 보인 서벌의 동시조 34편을 텍스트로 율격구조와 의미구조
에 대해 분석하였다. 전형적 시조형식과는 달리 다양한 시행과 분행 등의 현대적 표기형식을 지향한
그의 동시조의 의미구조에 나타난 주제의식은 자아성찰과 역사의식, 부재의식과 동심적 상상력, 현실
인식과 극복의지로 압축된다. 현대인의 자유분망한 표현 욕구를 표출하기 위해 사설시조의 부흥과 동
시조의 활성화를 도모하며 시조의 거듭나기를 위한 그의 이력은 시조문학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소시민으로 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시정신으로 사회적 통념에 집중했던 기존 시단과 맞선 그의 활약
은 시조 부흥과 시조 대중화로 이어져 현대시조의 면모와 위상을 드높였다. 주제의 차원에서 혁신을
이룬 작품인 「서울.1」은 정형시와 자유시의 경계를 초월한 면작으로 현대시의 전범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실존주의적 경향을 띤 현대시조 작품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이 계획된 것은 학위논문이 발표된 이후, 그의 좋은 작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가 빚어놓은 작품들을
통해 겨레시의 드넓고 큰 면면을 읽어내며 사장되어 있던 작품과 업적을 세상에 들내는 일이 연구자
의 책무이기에 출판에 앞서 미처 연구하지 못했던 5부를 보완하여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오기
까지 영혼의 결로 말을 걸어오던 그의 시조들에게서 위안과 힘을 얻었다. 또한 시조인의 사명과 책무
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 서벌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015년 겨울
설파雪坡 원은희元銀姬
알아요 / 양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