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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노이시내 관광한 5박7일 베트남, 라오스여행 셋째 날

이름없는풀뿌리 2017. 8. 29. 07:18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숙소(HARONG PALACE HOTEL)에서 뷔페식조식→하노이로 출발→파인애플시식→노니판매소→아리랑식당(중식)→호안 키엠 호수의 옥산사→전동차탑승(재래시장구경)→라텍스전시장→센 레스토랑→숙소(RIVERSIDE HANOI HOTEL)

 

하롱베이 바다는 늘 평화로웠다. 수많은 섬들 사이에 서로 잘났다며 으스대거나, 몸집이 크다며 비교하거나, 끼리끼리 편 가르며 뭉치는 일 없이 어제도, 오늘도 조용했다. 한편 그 속에서 새벽 일찍 선착장으로 모여드는 여객선들은 또 어떤 몸싸움으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불안감을 조성할지....... 볼품없는 바나나를 들고, 어린 딸을 일부러 꼬집어 울리는 젊은 여인은 오늘도 하롱베이 바다에 멋진 추억을 쌓으려는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동정으로 먹고 살겠지?

화창한 날씨, 상쾌한 아침부터 수영장에는 벌써 신나게 물놀이 즐기는 남자어린이가 있었다.미음, 김치, 쌀국수, 빵, 요구르트, 과일 등으로 하롱베이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아침마다 드리는 제부의 기도로 우리가 현재 무사히 여행을 즐기고 있는 줄 알겠습니다. 호호호"

먼저 내려온 세무사님이 빠른 걸음걸이로 로비를 돌며 운동하고 계셨다.

전용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는 우리나라 동해에서 서울로 향하듯 첫날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오시던 길을 뒤돌아 갈 겁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년 12월 19일~1954년 8월 1일)이후 분단국이었던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1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전쟁이 벌어졌는데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이죠. 끝을 알 수 없는, 명분 없는 전쟁으로 베트남전쟁, 월남전으로도 불립니다. 반공십자군성전이라는 미국의 명분아래 베트남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민족해방전쟁이기도 합니다.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내전으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미국동맹국들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하고, 이에 맞서 중국과 북한도 비공식적으로 각각 전투원을 파견하여 북베트남을 지원함으로써 국제전이 되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은 32만 여명을 파병하여 5천 여 명이 전사하고, 31만 여명이 생존 귀환하였는데 결국 공산주의월맹(베트남민주공화국+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승리로 막을 내렸죠. 당시 민주진영인 월남(남베트남)의 패망은 군사력과 국력이 뒤떨어진 이유가 아니라 정치 전쟁, 피 안 흘리는 전쟁, 통일전선전쟁에서 월남내부가 붕괴되어 나라전체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월남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전투기600여대, 헬리콥터900여대 등으로 당시 공군력이 세계4위였으며 70만 병력의 월등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거든요. 베트콩은 전쟁에서 화상입고, 우는 베트남어린 아이들 사진을 수없이 공개하여 미국언론 내에 퍼뜨리면서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전체적으로 고지사수해 줄 육군병력이 부족했고, 베트콩의 치밀한 게릴라작전을 당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이 1930년에 창당한 베트남공산당원과 민족해방전선의 웬후토가 양성해서 침투시킨 5만 여명의 비밀조직원 때문에 미국연합군은 곤혹을 당했죠. 전체인구의 0.5%를 차지한 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 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에 침투하여 반미, 반전데모를 주동하는 선동전략을 펼쳤던 것입니다. 여야구분 없는 정쟁으로 심각한 사회적 혼란 상태에서 당시월남 내 공산월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정치, 언론, 학계, 종교계에 뿌리 깊게 확대되었으며 그로 인해반정부, 반전시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식민지를 경험했던 베트남인들에게 민족화합으로 자주적 통일을 이루자는 주장은 마치 경전처럼 마음속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지요. 두옹 반 민 월남대통령은 1975년 4월 30일 상오10시 30분에 단1분간의 짤막한 연설에서 유혈방지를 위해 베트콩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월남정부의 무조건항복은 미국의 패전을 의미한 겁니다. 가해국인 미국으로선 사상처음 패배한 전쟁인데다가 양민학살을 저지른데 대한 국제사회의 사죄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 됐죠. 베트남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청룡, 맹호, 백마 등 전투부대소속군인32만 명을 파병했던 한국은 미군보다 많아 베트남전쟁을 확실히 수행했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국론분열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이루기전에 평화정착을 앞당길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가 냉철히 뒤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재미가 없나요? 아니면 식곤증 때문인가요? 대개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많은 분들이 끄덕끄덕 거리며 기도하세요. 앞으로 한 시간가량 더 가면 판매장에 들러 화장실이용이 가능하시니까 푹 주무시기 바랍니다.”

물이 많은 나라, 베트남 내에서도 물이 많은 도시, 하롱베이를 떠나며 ‘내 생애 다시 이곳을 찾아올 일이 없겠지?’ 섭섭하면서 뭔가 아쉬웠다. 전에는 흙먼지 날리며 한창 공사 중이었던 곳이 지금은 강물도 깨끗하게, 새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도 말끔해졌다. 남극의 정취를 더하는 야자수가 가로수로 늘어져있고, 강위의 쪽배와 도로가의 벤치는 우리에게 여유와 평화를 선물했다. 저 멀리 하롱베이의 섬들도 끝까지 배웅하려는 듯 어깨동무하며 ‘안녕히 가세요!’ 작별인사 해주었다.

“섬들이 끝나는 곳에 톨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도로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차량들이 사용하던 도로였는데 새 도로가 생기면서 지금은 구도로가 되었네요. 파인애플을 드실 수 있는 상점으로 모시겠으니 급하신 분은 화장실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에서는 아직 경범죄라는 죄목이 없어 아무데서나 소변을 봐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6개월짜리의 크기가 작은 파인애플들이 진열되어있는 허름한 가게 앞에 내렸다. 파인애플겉껍질을 기술적으로 벗겨 먹기 좋게 반씩 잘라놓는 여자가 부지런히 두 손을 놀리고 있었다.

“베트남의 굵은 소금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어요.”

소금을 약간 찍어 맛보았지만 좀 이상했다. 나무에 달려있는 파란 과일 파파야, 빨대가 꽂혀있는 코코넛 등의 열대과일, 주택1층 내부, 그네, 쓴 녹차 마시는 모습들을 찍는데 계선이가 불렀다.

“언니, 여기고추 좀 봐. 모두 위로 서있어.”

“어머머머머, 정말 위로 서있네? 하하하”

“베트남에서는 땡초라 부르는 고추인데 청양고추보다 더 매워요. 태국에서는 프릭 키누(쥐똥고추)라 부르고, 하늘을 향해 자란다고 하여 ‘하늘바라기고추’라 하죠. 초록, 노랑, 빨강색으로 익어 샐러드색감 내는데 이용해요. 베트남에서는 날씨가 더워 쓰디쓴 녹차를 즐겨 마십니다. 한국에서 참외 나올 때 이곳에서는 망고스틴이 나와요."

신기한 고추모양을 폰에 담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우리는 계속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립니다. 베트남주택은 기둥을 먼저 세우고, 그 사이를 벽돌로 막습니다. 앞면만 페인트칠하고, 붙여 짓기 때문에 옆면은 거의 칠하지 않아요. 사파에서 3km 떨어진 깟깟마을에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해발3,500m인 판시판이라는 산이 있어요. 몽족이 살고 있는데 트래킹코스로 참 좋지요. 그곳에서도 감, 복숭아, 자두가 나오지만 추워서 당도는 별로에요.”

도로가에서 우리의 5, 60년대처럼 타작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버스가 빨리 달리는 바람에 사진기에 담지 못했다. 장례를 치루는 집도 지나갔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1964년 이후, 한국군인과 베트남여성 사이에 태어난 2세들인 튀기 즉 라이따이한이 많이 태어났죠. 파리협정에 따라 한국군철수와 남베트남정부붕괴로 그들은 적군의 아이로 차별받으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단어 라이는 경멸의 뜻을 포함한 잡종, 따이한은 대한이라는 뜻으로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대요. 베트남과 대한민국과 경제교류재개 후 생긴 혼혈아를 신 라이따이한이라 부르죠.”

갑자기 검은 구름이 낮게 깔려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

“열대아시아서부터 폴리네시아에 걸쳐 자생하고 있는 노니는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과실은 음료로, 식품제조, 가공에서 주원료로 이용됩니다. 이름은 하와이어에서 유래되었는데 크기가 다양하고, 달걀모양의 잎은 길이30cm, 너비15cm정도 됩니다. 열매는 감자처럼 생겼고, 표면이 울퉁불퉁하면서 패인 자국이 있습니다. 열매가 익기시작하면 썩은 치즈냄새가 나는데 잎, 줄기, 꽃, 열매, 씨 등이 민간요법에 사용되며, 남태평양에서는 치료제로 사용됩니다. 열매에는 안트라퀴논, 세로토닌 등 성분이 있어서 소화 작용을 돕고, 통증을 줄여주며,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지요. 프로제로닌 성분함유량이 가장 높은 열매로 항생제효과가 뛰어나 각종염증과 통증완화에 탁월하여 평소 관절이 안 좋아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좋습니다. 또 미네랄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되어 체내의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름개선을 돕고, 피부노화를 예방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며 묵은 각질제거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어 여드름과 같은 트러블을 예방하여 피부질환완화에 도움 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화시켜주고, 신체의 모든 세포들의 기능을 활성화시켜주어 잦은 질병들과 합병증으로부터 예방합니다. 특히 간 기능 활성화, 무기력증해소, 만성피로회복, 체내혈당수치조절, 당뇨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전깃줄 복잡한 시내, 농부들과 소들이 바쁘게 일하는 농촌, 연꽃과 옥수수대량산지, 아베쎄 휴게소, 논밭한가운데 봉안되어있는 납골당 등을 지나니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노니판매장이 나타났다.

LG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베트남북부노니판매소는 아리랑휴게소를 겸하는데 사우도 대학자매결연 어 학당으로 사회봉사교육과 한국어를 널리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한다. 4각2층 지붕의 정자가 있고, 예쁜 꽃과 싱그러운 나무들로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는 화단이 마음에 쏙 들었다. 여직원이 나와 버스기사에게 뭔가 전달, 건물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 뒤따랐다. 벽에 부착되어있는 노니에 관한 광고판을 찍고, 일행들이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 노니가루시음 후, TV광고시청하며 사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먼저 왔을 때 구입한 노니도 아직 냉장고에 있는데. 처음 며칠은 규칙적으로 잘 먹었는데 맛이 이상해서 먹다 말았어요.”

“요즘은 복용하기 쉽게 정으로 만든 게 나왔어요.”

서비스로 몇 통을 더 준다고 유혹했지만 또 실패할까 두려워 구입하지 않았다.

넓은 화장실을 들러 판매장으로 갔다. 차로 끓여 마실 수 있는 노니열매 등 노니관련 상품들 외에 가방, 머플러, 깨, 버섯, 주걱, 베트남전통 떡 과자 등 노니와 관련 없는 상품들이 더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부와 세무사님은 노니가루를 구입했고, 남편은 공동경비로 깨 묻은 베트남전통과자를 구입하여 똑같이 나눠주었다.

‘실물이야? 인조야?’ 정체불명의 돌산을 끼고, 우측으로 도니 중식 할 아리랑식당이 나타났다. 배꼽시계도 12시 40분을 가리키며 시장기가 돌았다.

“야채가 떠있는 국물에 숙주나물, 국수를 우선 넣으세요.”

마치 베트남쌀국수처럼 생긴 국물에 구운 돼지고기를 넣었다가 꺼내어 상추에 싸서 먹는 노니보쌈인데 돼지고기를 삶을 때 노니가루 3스푼을 넣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지만 먹을 만했다. 김치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MBC방송프로에 방영되었다는 광고지가 붙어있었다.

“소주는 7불, 주류반입하면 벌금이 3불이래요.”

 

 

 

 

 

 

 

1시쯤, 전용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노니판매장에서 주었다는 내려먹는 커피 한 봉지씩 나눠주었다.

‘강가공사장색깔이 웬 회색? 그리고 웬 소들?’ 겹치는 의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주택가와 붙어있는 납골당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을과 되도록 멀리하는 납골당을 베트남에서는 가까이 접하고 있네?’ 곧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들판이 나타났다. ‘오, 논밭에도 납골당이?’ 자주 뜨이는 것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들이 달리는 모습도 이상하지 않았다.

“수역 중 절반이 중국에 있는 메콩 강은 세계에서 12번째로 길며 10번째로 유수 량이 많습니다. 길이는 약4,180km이고, 유역면적은 795,000km²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칭하이 성에서 발원하여 윈난 성과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데 계절에 따른 유량의 변화가 심하고, 급류와 폭포가 많아 항해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이족이 이름을 지었는데 원래이름은 메남 콩 강으로 줄여서 메콩 강이 되었답니다. 토착 언어로 콩 강이란 모든 강의 어머니 즉 젖줄과 같은 강을 뜻합니다. 베트남 메콩 강 유역 맹그로브 숲 조성사업은 영국프리미어오일회사의 후원으로 2단계에 걸쳐 이뤄졌는데 이 사업을 시행한 성 적십자사 Huong 회장은 홍수와 폭풍 피해를 방지해서 지역주민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 생활환경을 크게 개선시켰습니다. 하노이도 하류침수라 지하철을 못 뚫고, 지상철을 설치했습니다.”

하노이가 12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았을 때, 역주행 오는 오토바이에 놀랐다.

“논밭에 웬 오리 떼들이 많아요?”

“베트남에서는 집이 아닌 들에서 사육합니다.”

시내가 가까워졌는지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많이 보였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직진할 버스는 주춤거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자전거나 오토바이들은 거침없이 좌회전을 하거나 직진했다.

“저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전신이 짜릿짜릿 몸서리쳐졌다.

“베트남에서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들이 우선이거든요.”

베트남가이드가 내려서 구입한 마스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하노이에 도착하여 전동차탑승 시에 이용하시라고 미리 나눠드리는 겁니다. 개인당 팁 2달러씩 미리 받겠습니다. 베트남은 30세 이하인구가 60%에 육박할 정도로 젊고, 활동적인 나라인데 결혼적령인구도 매해100만 명이며 전국연간 50만 건의 결혼식이 거행됩니다. 법적혼인연령은 여성18세, 남성은 20세이며 2013년의 평균혼인연령은 여성21.7세, 남성23세로 나타났습니다. 혼인 시기는 점점 늦어지는데 시골보다 도시에서 늦춰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시의 바쁜 생활로 일자리, 수입 등 여러 문제들이 결혼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죠. 공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나 공무원들은 사기업이나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결혼시기가 늦은 편인데 공공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결혼 및 가족과 관련해 국가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수준이 낮거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빨리 결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베트남결혼 시기는 음력영향을 많이 받는데 결혼날짜가 남은 생애의 행복과 조화, 부를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음력에 따라 21세, 23세, 26세, 28세의 여성은 결혼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있고, 7월은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여겨 하지 않습니다. 날씨가 서늘한 가을과 봄(9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에 하며 약혼식과 결혼식, 두 가지 주요의례를 거칩니다. 약혼식은 신랑, 신부 두 집안의 공식적인 만남인데 보통 결혼식 몇 주 전이나 한 달 전에 신랑가족과 친척들은 여러 개의 쟁반에 선물을 담아 신부 집으로 가져갑니다. 선물로 구장나무 잎, 빈랑나무열매, 와인, 차, 케이크와 찹쌀밥, 구운 돼지고기 등이고, 접시숫자는 신랑가족의 조건에 따라 5, 7, 9접시 등 홀수여야 합니다. 쟁반은 붉은 천으로 감싸 젊은 남성이 운반합니다. 전통결혼식에서 붉은색은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행운을 의미합니다. 선물운반하고, 받는 사람에도 풍습이 존재하는데 신부의 가족이 고른 선물을 받을 젊은 여성은 신랑의 가족이 고른 젊은 남성의 숫자와 일치해야 합니다.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남녀는 나이가 어리며 미혼이어야 합니다. 베트남고유결혼문화가 남아있는 현대결혼식에서도 절차는 간소화되었지만 비용은 더 늘어났습니다. 유행에 따른 아름답고, 멋진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요즘은 청첩도 이메일이나 페이스 북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저 멀리 72층의 경남빌딩과 65층의 롯데빌딩이 보이시죠?”

버스는 홍강을 건너고 있었다.

복잡한 하노이시내로 접어들면서 예뻐 보이라고 정성 들였을 귀여운 그림의 도로변벽화는 방치상태로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호안 키엠 호수가 그려내는 자연절경은 보고 또 봐도 정겨웠다. 녹색의 싱그러운 향연이었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회장의 숙원사업인 경남 랜드 마크 72타워가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최고높이가 350m로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연면적은 60만9,673㎡로 우리나라 여의도 63빌딩의 3.5배입니다. 72층 타워동과 아파트50층 2개동(총922가구)으로 구성되었는데 총사업비1조2000억 원을 투입해 지난201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현재 아파트는 100%분양 완료했죠. 베트남 하노이 시 천도1000년을 기념해 만든 상징적 건물로 역사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으며 임차인들도 한국인과 베트남상류층을 비롯해 시스코와 스탠다드 차타드(SC) 등 다국적기업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롯데센터 하노이는 롯데건설이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에 진 지하 5층, 지상 65층 규모의 초대형 건축물로 하노이에서 두 번째 높습니다. 전체면적이 여의도 63빌딩의 약 1.5배인 25만㎡이며 백화점과 호텔, 사무용시설, 전망대, 마트 등이 대거 입점했습니다. 베트남전통의상인 아오자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롯데센터 하노이는 허리춤에서 갈라져 내려온 치맛자락을 닮은 우아한 곡선미와 외관의 고급스러운 푸른색으로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죠. 특히 베트남처음으로 건물에 경관조명을 설치해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도록 계획한 것이 특징입니다. 현지인들에게도 롯데센터 하노이는 뜨거운 관심의 대상으로 상량식 때는 응웬 티 도안 국가부주석이 참석해 직접 축사도 했답니다. 저 오토바이주인이 헬멧을 안 썼으니까 교통공안한테 걸렸죠? 거리가 복잡하니 잘 따라오세요!”

 

 

 

호안 키엠 호수부근에서 내려 길을 건넜다. 아직 퇴근전이라서 덜 복잡하다지만 늘 평온해 보이는 호수에 비해 호수가도로는 하노이시내의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경적소리가 끊이질 않아 항상 시끄럽고, 혼잡했다.

명의 침략을 물리친 레 타이 투 왕이 잃어버린 검을 찾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호수에 있었는데 거대한 황금거북이가 수면으로 올라와 왕에게 검을 건네주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되돌려 준 칼의 호수'로 유명합니다. 베트남독립의 옛 전설이 있는, 복록을 기원하는 옥산사는 그 호수북쪽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섬에 있는 사당입니다. 진대에 세워져 18세기에 재건되었는데 원나라대군이 베트남을 침입했을 때, 모조리 대패시킨 베트남의 영웅 쩐홍다오(진흥도)와 세 성인이 모셔져 있습니다. 옥산사로 들어가려면 삼관문을 거치는데 문 양쪽에 저명한 유학자, 응우엔바주가 쓴 두 개의 글자인 행복을 의미하는 복과 풍요를 의미하는 록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기전 사원입구에는 유학자를 기리려고 만든 9m높이의 탑2개가 있으며 옥산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885년에 세워진 훅이라는 뜻의 붉은 목재, 무지개다리를 건넙니다. 이 다리가 하노이구시가의 상징입니다. 사원 안 왼편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다음 문 양쪽에는 좌청룡우백호가 부조되어 있습니다. 내부에는 호안 키엠 호수에서 잡았다는 수백 년 된 거북이박제가 있고, 거북을 기리는 비도 세워져있습니다. 1968년에 호수에서 잡은 거북인데 생포될 당시몸무게는 250kg이고, 나이는 400~500세였다고 합니다. 발견된 당시 ‘환검 전설의 거북이가 아닌가?’ 화제를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30분 정도 시간을 드릴 테니 구경하시고,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구경하며 남편을 세워놓고, 남편에게 사진기를 맡기면서 사진 찍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현지인들에게는 휴식처라는 호수가 우리에게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호수 한 바퀴를 걸어서 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나만의 욕심일까? 옥산사를 돌아보며 아름다운 배경으로 멋질 호수를 주마간산으로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중국과 전통베트남적인 도자기골동품 등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지만 전용버스대신 전동차가 대기하는 곳으로 황급히 뛰어가느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4대의 전동차에 6명씩 나눠 타고, 하노이구시내의 재래시장구경을 시작했다.

“우리 기자님께 제일 좋은 앞자리를 양보하기로 의견을 일치했습니다. 마음 편히 앉으시지요!”

제부의 특별한 배려로 여기사 옆 좌석에 앉았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았으니 열심히 책임을 완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몸을 뒤로 돌려 일행들 사진부터 폰으로 찍었다. 전동차시동이 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부지런히 동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폰이나 사진기를 너무 많이 밖으로 내밀면 낚아챌 염려가 있으니까 절대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가이드 말을 유념하여 조심했다.

“마스크를 써야겠어요!”

좁은 2차선도로가 얼기설기 복잡한 재래시장으로 들어서면서 각종소음으로 귀마개까지 하고 싶을 정도였다. 2006년에 돌아보았을 때보다 시장상품이 다양하면서 발달해졌거나 인구가 늘어 많은 오토바이로 매우 복잡해졌다는 점 이외에는 특별히 달라진 모습이 없는 것 같았다.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상점이라든가 진열대, 깨끗한 거리 등이 보이지 않는, 옛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외국인들 단체를 태운 전동차와 한, 두 명 탄 자전거형태의 씨클로들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시장 안의 거리를 도는데 전봇대에는 여러 가지 전기 및 통신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베트남전통의상차림의 아낙네가 대나무장대에 꿰어진 물건을 어깨에 메고, 힘겹게 나르고 있었다.

“베트남여인들의 생활력이 매우 강해서 밖에서 일했다고, 집에서 쉬지 않아요. 저는 집에 들어가면 잠도 실컷 자면서 휴식을 푹 취하죠. 집안일 절대 안 도와줘요. 임신했다고 하여 괜히 도와주었다간 습관 되거든요.”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의 요즘남자들 그렇게 살았다간 여자들이 산다, 못산다, 난리쳐요. 맞벌이하느라 애기 봐주는 장모랑 한집에 사는 사위는 얼마나 피곤한 줄 아세요? 장모텃세가 보통 센 게 아니거든요.”

“언젠가부터 한국관광객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베트남여자들 세계에도 한국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순종적이에요. 허허허”

하롱베이 관광 때 선실에서 가이드와 어느 일행과 주고받은 대화가 떠올랐다.

“여기가 하노이최대 동쑤언 시장이라고 했지? 확실히 외국인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거리네.”

현지인들이나 외국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고, 웃어주었다. 그들도 미소로 답해주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람, 전동차, 씨클러, 자전거들이 서로 뒤엉켜 정신없는 거리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어머머머머, 깜짝이야!”

우리전동차 바로 앞으로 자동차 한 대가 가로질러 지나갔다. 맞은편에서 오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핸들을 돌려 좌회전하고, 사거리우측에 있던 자전거가 우리전동차 바로 앞을 지나 왼쪽으로 달려갔다. 신호등이 없는 시장 안은 들쑥날쑥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좌우회전, 직진을 눈치껏 하는 무법자세계였다. 옆에 앉은 내 간이 커졌다, 작아졌다, 조마조마한데 ‘부딪치지만 않으면 돼!’ 베트남아가씨기사는 아무 동요도 없이 느긋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미끄러지듯 능숙하게 핸들을 조절하는 폼이 오랜 경력이 쌓인 것 같았다. 무질서 속에서도 서로간의 어떤 규칙이 있는 듯 곡예사처럼 요리조리 잘도 빠지며 달렸다. 다양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음식점 앞에서 맛있게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얼마나 돌았는가? 호안 키엠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HSBC, KFC 등 낯익은 간판과 벤츠, 아우디, BMW 등의 외제차도 많이 보였다. 호안 키엠 호수를 배경으로 웨딩 촬영하는 모습에 ‘좋을 때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리셔서 버스 탑승하세요!”

시계는 3시 반, 아직 퇴근시간 전인데도 오토바이숫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라텍스전시장으로 가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 중에 라텍스사용기간이 있다는 거, 아세요? 천연라텍스는 제품의 질에 따라 7~10년 정도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좋은 천연라텍스매트리스일 경우 잘 사용하시면 최대 약20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답니다.”

라텍스의 장점, 구매 시 유의할 점 등의 설명을 듣다가 ‘하노이롯데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언뜻 보기에도 최고급호텔일 것 같았다. 경남빌딩도 가르쳐주었는데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

빨간 신호등 옆에 바뀔 시간이 표시되는 한적한 대로를 잠시 달려 라텍스전시장 앞에서 내렸다.

갖가지라텍스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의 침대에 여러 두께의 라텍스가 깔려있었다.

“저 방으로 들어가세요!”

세무사님이 대표로 침대에 누워 지점장으로부터 라텍스사용의 좋은 점에 대해 설명 들었다.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허리 밑에 있는 라이터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의아했다. 세무사님께 보낼 생각에 폰으로 찍었다.

“라텍스의 원료인 고무나무가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당연히 제품도 열대국가에서 나오는 제품이 최고입니다. 자, 직접 누워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라텍스두께가 좋을수록 편안합니다.”

언젠가 매스컴을 통해 들은 기억으로는 라텍스를 처음 개발한 곳은 유럽. 라텍스매트리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한 나라는 이태리. 이태리를 기점으로 유럽전역에 전파됐고, 이태리 산을 최고로 쳐준다. 왜냐면 동남아산라텍스는 열악한 설비와 기술력으로 품질이 유럽산에 비해 낮으며 높은 습도에 건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세척과 탈수시설도 완벽하지 못해 고무냄새가 심하다고. 단 국내에서 동남아산이 인기 끄는 이유는 원료공급이 용이하다는 것.

아무튼 우리는 구입할 의사가 없어 냉정히 마음먹고 전시장을 나왔다. 고무나무그림벽지를 배경삼아 사진흔적만 남기고, 버스에 올라탔다.

 

무법천지거리로 다시 나왔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자동차와 오토바이경주가 장관을 이뤘다. 우리나라 같으면 자동차경적소리가 더 잦을 텐데 오토바이천국인 베트남에서는 쥐죽은 듯, 오토바이소리가 끊이지 않으면서 우리의 버스처럼 머리만 내밀면 우선이다. 그래도 사고가 나면 거의 자가용운전자가 벌금을 낸다고. 그래서인지 오토바이족들이 비싼 외제차와 접촉사고가 나든 말든 무서운 줄 모르고, 겁도 없이 속도를 내거나 비집고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운전자도 되도록 피하는데....... 먼저 왔을 때 보지 못했던 오토바이전용겉옷이 새로웠다. 비닐로 만들어진 우리의 비옷처럼 전신을 가릴 수 있는 면 옷이다.

허름한 거리에 곧 쓰러질 것 같은 누추한 상점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보니 하노이외곽지역인 것 같았다. 벽돌공장, 소규모과일가게, 먼지 속 오토바이수리, 철물점들이 보였다.

다시 번화가로 들어서려나? 오토바이족들에 둘러싸인 자동차들이 많이 보였다. 헬멧도 쓰지 않은 세모자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더니 도로경계선인 화단을 급회전하여 바로 우리의 전용버스와 나란히 달려 간이 콩알만 해졌다. 더 놀란 것은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무도 태연한 자세로 미안하다는 표시도 없이 눈도 깜짝거리지 않는다는 것.

“경적 울린 버스기사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네.”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가 멋쩍었다.

어두워 침침한 상점 앞 목욕탕의자 위에 놓여있는 화환들이 시선을 끌었다. 생전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듯한 상점과 예쁘고, 곱고, 화려한 상품들과 너무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슬레이트지붕, 오래된 간판, 낡은 천막, 녹슨 문짝들과 많은 생화들이 하늘과 땅 차이로 지옥과 천당을 표하는 것 같았다.

입에 호르라기를 물고, 교통 지도하는 경찰들이 눈에 띄었다. 철판볶음, 민물장어, 노래방의 한글간판들이 반가웠다.

모든 옵션사항을 거부하신 8분은 여기서 내리시구요, 나머지 분들은 베트남가이드를 따라 이 버스로 계속가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의 식사가 끝난 후 숙소까지 모셔다드리고, 제가 센 레스토랑으로 갈 겁니다. 센 레스토랑은 베트남에서 딱 1군데만 있는 뷔페식당으로 150여 가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대형음식점입니다. 먼저 가셔서 식사하고 계세요, 아셨죠? 베트남가이드가 잘 안내해줄 거예요.”

미소식당 앞에는 한국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장사꾼들이 손수 만든 그네, 목걸이, 팔찌 등을 내밀고 있었다.

곧 출발한 버스창밖으로 유달리 높은 세 동의 고층빌딩이 보였다. ‘혹시 저 세 개중의 하나가 성완종 회장의 경남빌딩?’ 예감이 들어 무조건 셔터를 눌렀다. 가까이 가자 유리벽에 쓰여 있는 고궁이라는 한글이 보이면서 경남 랜드 마크가 보였다. ‘저렇게 훌륭하고 멋진 고급빌딩을 지어놓고....... 인생무상!’ 마음이 무거우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국의 샤브샤브칼국수식당도 들어와 있네. 현대자동차가 꽤 많이 들어와 베트남거리를 누비고 있구나!’ 기분을 밝게 돌렸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만 원통한 거야!’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았다.

‘납골묘가 무수히 많은 걸 보니 공동묘지인가? 공동묘지 가까이 웬 에버랜드 같은 넓은 놀이공원? 가이드가 있다면 질문할 텐데 한국말 모르는 인솔자만 있으니!’ 추측으로 아쉬움이 가득할 때, 해는 점점 기울면서 어둠을 몰고 오려 하고 있었다.

 

 

 

 

 

 

 

 

 

갖가지 화려한 등과 연꽃으로 꾸민 정원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베트남가이드가 센 레스토랑으로 인솔하기에 바짝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출입구에서 예약확인 후 한 장씩 받은 노란 입장권으로 체크, 문을 통과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일본, 베트남, 샐러드, 피자 등 국가와 종류별로 여러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차려져있었다. 음식메뉴가 150여 가지라는데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더운 음식에서 나오는 열기와 갖가지 냄새 등이 혼합되어 ‘혹시 덥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둥근 테이블과 의자들로 세트된 넓은 공간에 빵빵한 에어컨시설이 가동되어 시원했다.

자리를 잡고, 자유롭게 음식을 갖다 먹었다. 평상시 먹을 수 없는 특별음식들만 고르려고 해도 ‘입맛에 맞지 않아 괜한 쓰레기양만 늘리면 아까워 어쩌나!’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안 먹어본 사람이 괜한 욕심을 냈다가는 오히려 안 먹은 것만 못하지.’ 집에서 쉽게 해먹을 수 없는 메뉴로 값이 비싸고, 입에 맞는 음식들로만 조금씩 담았다. 즉석에서 숯에 구워주는 육해공들이 다 모였는데 왕새우만을 집중공격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재료를 골라주면 볶아주는 볶음밥도 있었는데 ‘하루 세끼 밥이 주식인데 여기까지 와서도?’ 피했다. 남편은 연잎에 밥을 싼 연잎차밥을 맛있게 먹었다. 큰 생선을 쪄서 내놓았는데 소스가 맛있어 두 번이나 갖다 먹었다. 삶아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골뱅이, 조개도 있었지만 해산물과 거리가 먼 내가 지켜보니 베트남인들이 많이 갖고 갔다. ‘혹시 초고추장만 있었어도.’ 아쉬웠다. 쌀국수도 다섯 가지로 메인이 소고기, 버섯, 해물이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다. 난 매콤한 소스의 소고기쌀국수를 먹었다. 국물이 뜨끈뜨끈하여 매우 좋았다. 맛본 남편도 구미가 당기는지 갖고 왔다. 오징어, 한치, 순대, 방게튀김, 토마토소스스파게티, 크림스파게티 외에 우족탕 등의 보양식메뉴, 중식 등 많았다. 싱싱한 블루콜리를 많이 먹었다. 베트남의 차가운 국? 언뜻 보기에 음료 비슷한데 내 입맛엔 안 맞았다. 그런데 옆 테이블의 현지인들은 기본음식인지 여러 번 많이씩 갖다 먹었다. ‘저러니까 외국인들보다 더 비싸게 받지!’ 이해가 갔다. 센 레스토랑은 과일천국 같았다. 바나나, 파인애플, 수박, 망고 등 열대, 온대과일들이 모두 모였다. 맛있는 파인애플만 먹었다. 야채, 과자, 빵 종류도 많았지만 배가 부르니 그림의 떡들이었다. 먹는 양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메뉴가 많아도 소용이 없다. 더구나 나이를 먹으니 조금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부르고, 소화능력저하로 젊었을 때처럼 맘껏 먹을 수도 없다. 일행으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두 여자대학생이 음식을 잔뜩 갖고 오기만 하고, 거의 남겨 세무사님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우선 요기를 채운 후 사진기에 음식들을 담기위해 돌아다녔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도 많았지만 처음 본 음식도 가끔 눈에 띄었다. 어느 곳에서는 사진촬영을 금한다며 두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베트남문화체험패키지상품을 거부한 일행들의 식사 후 숙소까지 안내한 한국인가이드가 헐레벌떡 왔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택시로 급히 달려왔단다.

“외국인들은 1인 30달러지만 내국인들은 더 비싸게 받아요. 베트남사람들의 음식욕심으로 남기는 음식이 많기 때문이죠. 어미어마하게 넓지만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들과 국내손님들이 많아서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가 어렵지요.”

‘세계인을 상대로 뷔페식당을 차려 성공한 센 레스토랑사장은 도대체 누구, 어떤 사람일까?’ 그의 인생관을 알고 싶다. 런닝 맨 베트남 편 촬영 장소였던 하노이 센 레스토랑! 실내지만 넓게 탁 트인 공간이라 정말 괜찮았다.

 

 

 

아이들의 놀이터, 기념품판매상점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감미롭거나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공연장이 나타났다. 공연장 앞에는 갖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고, 많은 관객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틈에 끼어 기념사진 몇 컷을 남겼다. 즉석에서 얼굴을 그려주는 장사, 풍선을 여러 가지로 접어 파는 장사 등 어린이손님들의 관심을 모으려는 장난감장사꾼들도 있었다. 하얀 등, 붉은 연꽃, 실물처럼 만들어 사진 찍기 좋게 설치한 조형물들이 특이했다. 소화시킬 겸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8시에 식사 끝, 30분 휴식.

깜깜한 밤이라 창밖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더운 나라에서 며칠째 사진과 동영상을 찍느라 피곤해진 눈의 안구건조증이 심해져 통증이 왔다. 잠시라도 쉬기 위해 눈을 감았다.

20여 분 이동 후 ‘다 왔다’는 가이드 말에 눈을 떴다. RIVERSIDE HANOI HOTEL 간판이 보였다.

“신택수, 이계옥님은 1103호입니다. 모닝콜은 5시 반에 해드리고요, 식당은 2층으로 6시부터 식사 가능합니다.”

1103호 문을 열었다. 베이지 톤으로 꾸민 실내가 무척 넓어 마음에 들었다. 거실의 텔레비전에서는 한국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어? 주방 겸 거실에 침대가 있는데 방이 또 있으면서 침대가 각각 있어 둘이네요? 여기는 부부용이 아니라 가족용 같아요.”

남편이 짐을 내려 정리하는 사이에 사진을 찍었다.

샤워 후 창밖을 내다보니 우뚝 선 경남, 롯데빌딩이 보였다.

망고를 3등분하여 세무사님과 동생에게 주었다. 깨끗이 씻어 이빨로 껍질을 벗겨 두 개 먹었다. 워낙 배가 불러 맛있는 줄 몰랐다.

“이 망고를 한국으로 양껏 사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방에 있는 침대에 누우니 피곤이 몰려왔다. 하노이로 오기 위한 장시간의 버스탑승, 급히 서둔 옥산사구경과 전동차탑승 시의 사진, 동영상촬영 등의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쉬움도 잠시, 남편의 샤워소리가 자장가로 들렸다.

 

 

 

 

 

 

 

출처 : 해피인이계옥
글쓴이 : 이계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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