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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대군2(24/05/25, 의안대군묘소, Sad Lisa / Chyi Yu)

이름없는풀뿌리 2024. 5. 27. 10:46
요즈음 – 의안대군2 – 아늑한 터에 안긴 애기능 기대어 보니 육백년 忍耐해온 잊었던 恨 들려와 人心이 禽獸인 것은 예나 이제나 그렇다 배달9221/개천5922/단기4357/서기2024/05/2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위 時調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 벽수골에 소재한 애기능이라고 일컫는 묘소에서 태조 이성계의 8번째 막내로 태어나 태조의 사랑과 신덕왕후 강씨의 노력으로 조선 최초의 세자로 봉되었 으나 제1차 왕자의난으로 이복형 태조의 5번째 아들 정안대군 이방원에 의해 사사된 의안대군을 생각 하며 읊은 시조로 의안대군은 세조에 의해 역시 사사된 단종과 같은 나이인 17세에 절명하였으나 단 종은 충절과 의리의 상징으로 문학과 예술에 작품으로 승화되어 많이 알려져 있으나 의안대군 방석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있지 않아 애석함이 더하여 앞으로 그에 관한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덧붙임) 의안대군 묘소에서 (1) 친구 절친 문사장 내외와 은고개 맛집에서 점심후 근처의 벽수골 의안대군묘소를 참배하자 제안하니 모두들 찬성, 은고갯길을 오르자니 2년전 한봉에서 내려와 묘소를 찾아 헤매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2) 좁은 세상 그런데 묘소 아래 과원을 가꾸는 친구의 매제를 지나던 길에 마주치다. 세상의 인연이란 참 좁다는 생각. 한양서 출퇴근하며 가꾼다는 정갈한 과원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동년배인 우리들의 남은 삶에 대해 생각하다. (3) 왕세자 11세에 조선 최초의 왕세자가 되어 17세란 나이로 형에게 사사당한 어린 왕자. 잘 자란 잔디가 덮고 있는 그의 능에 기대어 좋은 조망의 앞 산줄기, 그 위를 흐르는 구름을 보니 626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그 때 심심산골이었던 이 벽수골 안식처에서 멀리 한양의 정릉에 누워계신 어머니 신덕왕후 강씨를 그리워하는 왕자의 마음이 깊이 아려왔다. (4) 금수 여말선초 석학 정몽주를 척살하고, 개국공신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을 척살하고, 이복형제 왕세자 소도군을 척살하고 세종의 왕권강화를 위해 사돈 민씨집안을 몰살시킨 600년 전의 태종 이방원과 작금 전과자들이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대 야권을 형성하는 대한민국 상황을 보건데 인심이 금수인건 예나 이제나 똑같은 거다. 그러고보니 고대부터 현대까지 금수의 득세는 비일비재했다. 미국도 부도덕한 트럼프가 차기 유력 대권후보자라니... 러시아는 전쟁광 푸틴이 30년 장기집권하고 지나는 일대일로의 중화사상(화이사상)에 경도된 시진핑이 연임하고 연일 대만을 포위하며 목하 3차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이고... 인심이 금수인건 예나 이제는 동급이로다. 배달9221/개천5922/단기4357/서기2024/05/2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벽수골에서 오르는 묘소 초입 2) 실록을 보면 사사후부터 이곳에 안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오르는 길도 오래된 석계 4) 친구와 참배를 하다 5) 앞이 심씨부인, 뒤가 의안대군 6) 의안대군이 계신 곳(심씨부인은 여승이 되어 70세까지 살다 세종대에 사망) 7) 산제단에서 바라보는 부드럽게 흐르는 앞 약수산 산줄기 8) 여말 선초의 묘제 양식과 호석의 복제, 표정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 의안대군(宜安大君, 李芳碩, 昭悼君) 개요 왕세자(최초) 재위 : 1392년 8월 20일 ~ 1398년 8월 26일 (음력) 부친 : 태조, 모친 : 신덕왕후 강씨, 배우자 : 폐세자빈 유씨, 현빈 심씨, 자녀 : 1남 (조졸) 의안대군(宜安大君)은 태조 이성계의 여덟째 아들이자 막내아들이며 조선의 첫 왕세자이다. 이름은 방석(芳碩)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시호는 소도(昭悼)이고, 별칭은 폐세자 이방석(廢世子 李芳碩)이고, 소도군(昭悼君)이라는 시호 작위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태조의 왕비(제2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다. 조선 최초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하여 폐위되고 향년 17세로 암살되었다. 초기 생애​ 고려의 장군인 이성계(뒷날의 조선 태조)와 그의 경처이자 훗날의 왕비(제2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며 무안대군의 동생이다. 고려 말에는 경처와 향처 두 부인이 있었고 모두 정실 부인이었다. 1392년 7월 아버지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초대 군주가 되었다. 세자 책봉 태조 1년(1392) 9월 7일(음력 8월 20일)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는 형 무안대군 방번과 이복 형들을 제치고 선택되었다. 후일 태종 이방원 등은 정도전 등이 그를 세자로 선택했다고 적극 주장하였지만, 아직까지 정도전이 이방석을 세자로 선택했다는 근거는 없다. 짧은 세자 기간 중 부인 현빈 류씨(賢嬪 柳氏)와 내시 이만(李萬)의 간통 사건이 있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류씨와 이만은 처벌받고, 세자는 현빈 심씨(賢嬪 沈氏)를 새 부인으로 맞게 되었다. 태조 5년(1396) 9월 15일(음력 8월 13일)에 세자 어머니 현비 강씨(顯妃 康氏·신덕왕후)가 사망하였다. 제1차 왕자의 난​ 태조 7년(1398) 10월 6일(음력 8월 26일), 정안대군 이방원(靖安君 李芳遠)의 주도로 제1차 왕자의 난이 벌어지게 된다. 세자는 광화문 앞에 주둔하고 있던 정안군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친히 군사를 이끌었으나, "광화문으로부터 남산에 이르기까지 정예 기병이 꽉 찼다"는 봉원량(奉元良)의 보고에 군사 대응을 포기하고 만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 박위 등 정안대군의 시점에서 부정적인 세력이 제거되고 난 뒤, 정안대군 세력은 세자를 방석에서 영안대군 이방과(永安君 李芳果·후일의 정종)로 교체했다. 유배되기로 한 폐세자 방석은 잠시 후 영추문을 통해 경복궁에서 나왔고, 이거이(李居易) 등 정안군 세력은 도평의사사와 합의하여 자객을 보내 방석을 죽였다. 사후 사후 시신은 경기도 광주에 안장되고 오원공(五原公)에 추봉되었다. 태종 6년(1406) 9월 14일(음력 8월 3일), 태종은 방석에게 소도군(昭悼君·또는 소도공), 방번에게 공순군(恭順君·또는 공순공)의 시호를 추시했다. 숙종 6년(1680) 8월 21일(음력 7월 27일), 숙종은 신원정치의 일환으로 방석을 의안대군(宜安大君)으로, 방번을 무안대군(撫安大君)으로 추증하였다. 묘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 산152 '의안대군방석묘역' 내에 위치해 있다. 1998년 4월 13일에 경기도기념물 제16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Sad Lisa / Chyi 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