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오래된 등산 복.. 오래 된 등산화 ..
꽃찾아 떠나는 길은 가시덤불을 헤치는 일이나 계곡 깊은 곳..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라
보풀이 생겨 여러번 손을가게 한 것들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자그만 분홍 배낭..
고요히 하던 일을 멈추고 길 떠날 채비를 하고
8시로 바꿔 맞춰둔 알람이 울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현관앞으로 차렷시킨 건 모두 넷
새로 산 등산화와 등산복, 등산화를 신기 위해 얻어 신다가 공짜로 받은 분홍 양말
24리터의 작은 내 분홍 배낭, 물 한통, 렌즈 하나 담을 보조가방을 하나 더 챙겼고
연양갱 두 개와 사탕 다섯알, 얼린 물 두통과 얼린 얼음 커피 두통을 가방에 모두 꾸렸다.
길을 나서는 일이 얼마만인가 싶다.
집결지 성내역 1번 출구라는데 집결지가 바뀌어진 이유가 있을 법한데
왜 바뀌어졌을까 ? 생각은 혼자만 수선스럽다.
새로 단장된 성내역은 낯설다.
늘 만나던 장소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길을 건너 그곳으로 가야되겠다 맘 먹으며 자동차를 세울 공간을 찾았다.
넓은 장소에 벤치가 보이고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서너번 기행에서 만나뵈었던 초로의 화사,
주변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또 다른 화사들
같은 목적지를 향한 사람들이라 인사의 반가움 정도도 달라진다.
자동차에 올라 가벼운 인사를 하고 출발한 광덕산
경기도의 끝 어디쯤 강원도의 산맥을 잇고 있을거라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잠...
그것도 오전 잠..
내겐 없어선 안될 소중한 잠시간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오전의 나를 완벽히 보호한다.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는 썽깔머리 하며,
토막잠 한잠 자고 일어나 아이들을 보내는 일을 수년간 해 오며
습관이 되어 버린 나의 오전잠을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 스탑..........하고있으니까..
꾸벅 꾸벅 졸았을 것이다.
고개를 떨구고 제 몸을 이기지 못한 채 옆으로 기울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를 갈았을지도 모르고 코를 골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목적지에도착했고 이정표를 보니 강원도다.
한숨자고 일어나니 서울 땅이 아니라 강원도 땅에 내가 서 있구나.
그 좋은 갓길 풍경들을 모두 놓치고
길 떠난 즐거움도 잊은 채 지난날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었구나.
자조 섞인 표정으로 한참 서 있었다.
[개미취]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도중 오랜만이라 숨이 찬다.
산을 가기 위해서 양재천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연습을 했었어도 모처럼 행로는 부담이 된다
비록 고생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 것이고 가빠오는 호흡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 주는 가뿐해야 함으로 몸을 아껴 본다.
[양지꽃]
드디어 광덕산 골짜기를 들어선다
숲 냄새가 좋다.
벌레소리도 좋다.
익숙한 산길 주변으로 피어 있는 여름 꽃등이 환히 반겨주고 있다.
양지꽃이나 짚신나물, 달맞이꽃 마타리, 고추나물은 모두 노란색의 꽃
보랏빛이 감도는 등골나물이나
흰색과 분홍색의 물봉선.
저만치 키 작은 꽃이 입을 쏘옥 내밀고 있는 듯 피어 있다.
며느리밥풀인가보다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새며느리 밥풀이다" 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뿔싸..
나 살아가는 일이 바쁜 나머지 소홀히 하고 지낸 것들이 많이 있구나.
여러 사이트를 통해 며느리 밥풀의 종류를 공부를 했고
야생에 가면 구별도 해야겠다며 특징까지도 모두 공부를 했었는데
초보로 다시 리턴..
[세잎쥐손이풀]
자동차의 옆자리에 앉았던 화사 한 분도
모두 잊고 살게 될까 싶어 일년에 두어차례 기행에 참여한다는 이유를 공감한다.
겸허해지는 순간이다.
삶의 곳곳 우리는 숱한 오만과 편견속에서 초심을 잊고 살게 된다.
일을 할 때의 강한 반동작용으로 필요한 오만과 편견은
삶의 본질을 훼손하기도 하고 반한 행각이기도 하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참된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물 또한소중히 해야 할 것이고
과정을 지나는 일도 판단의 고삐를 느슨히 해서는안된다.
숲을 들어서면 담뿍 안겨지는 냄새를 안아 보는 일은 물론이고
숲에 드리운 평화의 빛에 감사를 해야 한다.
또한 나무가 아닌 풀들도 보아야 하고
앞만 보고 가는 나를 휙 지나가는 나비며 곤충들도 보아야 한다.
모두 세상에서의 섬세한 눈길보다도 훨씬 더 예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영아자]
키가 큰 마타리가 더운 햇살에 노란 빛을 맘껏 뿜어내고 있었다.
긴 꽃대라 접사를 하려면 꽃대궁이를 당겨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데
내가 당긴 꽃대가 앓아야 할 외부의 힘을 생각 하면서 참아야 했다.
길을 걸어가다 보면 수 많은 개체들을 디디고 가야 한다.
흔하다는 이유로, 꽃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가 외면한 듯 소홀히 하는 풀들이 많다.
모처럼 떠난 길에서 만난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햇살 한줌
오르막길을 오르며 담아야 하는 금강초롱꽃이나 세잎쥐손이풀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씨방을 도톰하니 맺은 동자꽃..꽃과의 작별마저도 아름답다.
지금을 잘사는 기술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 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로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일러 참으로 일야현자一夜賢者라 한다.
고요한 분 성자라고 한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 말고 오지 않는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 때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는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중부경전>에 실린 글의 일부
[영아자]
가파른 길에선 풀더미는 안전 지지대이다.
한걸음 한걸은 옮길 때마다 미끌어져 내리는 일을 도와주는 절친한 친구와도 같다.
밑대궁을 바짝 움켜 잡고 내디딘 걸음은
끄떡없음..
자연의 아름다움을 취하기 위하여 떠난 길에서
아름다움만이 아닌 공생, 상생의 의미는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아낌..소중함 ..배려..보호
쉬이 지나쳐 버릴 수 있는것들을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기쁨에
그들이 있어 안전한 행보였음을 안도하는 귀갓길의 흐뭇함
[금강초롱]
돌아 와 며칠은 풀잎에 긁힌 자욱들로 기분이 좋은 통증이 느껴진다.
편린에 길들여진 나머지 소홀히 묻고 살아가는 것들을 일깨운 소중한 여정으로 하여
다시 시작되는 시간들은 훤한 웃음을 웃게 하여 줄 것이다.
지루했던 삶은 잠시 정지한다.
[잔대]
모두가 잠든 세상 고요하다.
한숨 자고 난 내 마음을 찾아든 정적
이 정적이 나를 살리는 힘이다.
이 시간만이 나를 위해 온전히 쓰는 시간이다.
하루의 부대낌을 삭이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못 다 본 책을 펴고 고요에 앉아보지만 마음은 흔들거린다.
차 한잔의 고요가 더 그리운건
나이들어가는 증거일까 ?
나는 나로부터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주변으로부터 출발함을 느껴지는건 왜일까 ?
만물이 가고 만물이 오는 것은 이치
영원을 두고 돌아가는 내 존재의 수레바퀴
오직 지금 여기 이 마음과 저만치 서성이는 저 마음이 계속 싸우면서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게 삶이다.
주변으로부터 느끼는 출발의 강한 메세지가
와 닿을 수 밖에 없는 건 절망이아니라 희망일 것이라 위로 해 본다.
[까치수영]
[구상난풀]
1.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 가지 않을 수도 없을 때
마음이여, 몸은 늙은 풍차, 휘이 돌려 보시지
몸은 녹슬은 기계, 즐거움에 괴로움 섞어
잠을 만드는 기계
몸은 벌집, 고통이 들쑤신 벌집
몸은 눈도 코도 없지만 몸을 쏘아보는 엽총과
몸을 냄새 맡는 누리의 미친개들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 가지 않을 수도 없을 때
마음이여, 몸은 낡은 신발, 뒤집어 신고 날아 보시지
----당대의 몸 값은 신발 값과 같으니
당대의 몸이 헤고 닳아, 참으로 연한 뱃가죽 보이누나
2.
한 마리 말을 옭아매는 마차의 끈은, 끊어지지 않는
마차의 사랑 마차의 꿈 사랑한다 가엾은 내.....
미끼에 걸린 물고기를 끌어 올리는, 가늘은 낚싯줄은
물고기의 사랑, 사랑은 입으로 말하여지고 사랑은 입을 꿰뚫고
그래, 개를 걷어차는 구둣발은, 구두를 닮은
소가죽의 사랑 픽, 쓰러지며 소가 남긴 사랑
죽은 나무는 자라지 않지만 죽은 나무의 괴로움은 자라고
지금 밀물은 바로 그 썰물이었으며 애인은
애인을 닮은 수렁이었고 애인을 닮은 무딘 칼이었고
애인을 닮은 불안이었고
그래, 온 몸으로 번지는 매독의 사랑
문드러지면서 입술이, 허벅지가 표현하는 아기자기한 사랑
어머니, 저의 밥은 따뜻한 죽음이요 저의 잠은 비좁은 수의요
어머니 저는 낙타요 바늘이요 성자요 성자의 밥그릇이요
어머니, 저는
견디어라 얘야, 네 꼬리가 생길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마라, 아픈 것들의 아픔으로 네가 갈 때까지
네 혓바닥은 괴로움의 혓바닥이요 네 손바닥은 병든
나무의 나뭇잎이요
3 .
어느날 엄마, 내가 아주 배고프고 다리 아파 목마른 논에
벼포기로 섰다면 엄마, 그 소식 멀리서 전해 듣고 맨발로
뛰어오셔 얘야 가자 아버지랑 형이랑 너 기다리느라
잠 한숨 못 잔단다 집에 가자 내가 잘못했어 엄마, 그러시겠어요?
그러실 테지만 난 못 돌아가요 뿌리가 끊어지면 물을
못 먹어요 엄마,제 이삭이나 넉넉히 훑어 가시지요
어느날 엄마, 내 살 길이 아주 가파르고 군데군데 끊어지기도 한다면
엄마, 얘야 내 등에 업혀라 밥 많이 먹고 건강해야지 너만 보면
마음 아프구나 하시며 내 살 길처럼 타박타박 걸어가시겠어요?
엄마 걸어가시겠어요? 발굽이 부러지면
등으로 기어 날 안고 가시겠지만 엄마, 난 못 가요
내 사지는 못박혀 고름 흘려요
엄마, 어느날 저녁 구름을 밀어내며 얘야
여기 예루살렘이야 통곡으로 벽을 만든 나의 안방이야
요단, 잔잔하단다 요단, 지금 건너라, 빨리 하시면
내가 건너가겠어요? 어느게 나룻배인가요? 아니예요
그건 쓰러진 누이예요 엄마, 누이가 아파요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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