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마할
타지 마할은 샤 자한(Shah Janhan)이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의 아이를 나으려다
1629년 세상을 떠난 부인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무덤이다.
뭄타즈마할에 대한 샤자한의 사랑은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타지마할 만큼이나불가사의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에도 네 번씩 색깔을 바꾼다는
타지마할의 자태는 고요한 달빛에 비칠 때면보라 빛을 띤
상아색으로 바뀌고, 그 고운 모습은 마치 샤자한과
뭄타즈마할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지금부터 360여년전 인도 무굴제국 의 한 여인이 열 네번째 아이를 낳다 죽었다. 그녀의 이름은 뭄타즈 마할,온 갖 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일국의 황비였다. 그녀에게는 신들도 질투할 정도 로 자신을 사랑한 남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 이다.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타지 마할은 이 샤 자한이 죽은 아 내를 추모해 만든 영묘(靈廟)이다. 타지 마할은 북인도의 고도(古都) 아그라 에 있다.무굴제국 3대 황제 아크바르 대제 때의 수도였던 아그라는 인도 고 대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아그라바나(천국의 정원)’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 정작 타지 마할이 없다면 아그라는 오늘날 그 명성의 태반은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아그라로 가기 위해 델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델리에서 아그라까지 는 약 200여㎞.버스는 마투라식 불상으로 유명한 마투라를 거쳐 갔다.차선도 없는 시골길을 5시간쯤 달렸을까.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하얀 돔이 사막의 신기루인양 눈앞에 다가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신화의 현장, 그것은 ‘백색의 진주’였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 안으로 발을 떼어 놓았다. 완벽한 좌우 대칭 구조가 고도의 미학적 질서를 이루고 있는 대리석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정적인 균제미(均齊美)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가지런히 해주는 듯 했다. 타지 마할 묘역은 전형적인 무굴양식의 정원으로 꾸며졌다. 중앙으로 길게 뻗은 분수의 물에 어린 타지 마할의 그림자가 아지랭이처럼 피어올랐다. 분수를 지나 샤 자한과 황비의 유해가 묻힌 타지 마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관람객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조금 어둑했지만 레이스 모양의 격자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오는 부드러운 빛이 신비한 기운을 더해줬다. 회중전등을 든 안내원들이 꽃무늬가 새겨진 대리석 벽을 비추며 분주하게 오갔다. 본당 한 가운데에는 투조(透彫) 대리석 간막이로 둘러싸인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빈 분묘가 놓여 있었다. 델리에서 보았던 후마윤 황제의 묘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도굴을 막기 위해 만든 가짜 관이었다. 진짜 관을 보기 위해서는 본당 대리석 마루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정원과 같은 높이의 6평 남짓 한 지하 납골당에는 1층의 모조관과 똑같은 모양의 석관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1층의 호화로운 전시용 관과는 달리 그것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어 초라함마저 안겨 줬다.
샤 자한은 철저한 회교도였다. 그의 치세 때는 가혹할 만큼 이교도를 배척 했다.건물도 물론 이슬람풍 일색이었다. 그러나 타지 마할은 좀 다르다. 타지 마할에는 이슬람과 힌두 두 문화가 절묘하게 혼합돼 있다. 아라베스크나 갈매 기형 무늬, 그리고 창과 문 테두리의 뾰족한 아치는 이슬람색을 짙게 풍긴다. 그런가하면 벽면에는 힌두교의 만신상(萬神像)이 가득 조각돼 있다. 타지 마 할은 그 기단부(基壇部)의 크기가 사방 95m,본체는 사방 57m·높이가 67m에 이른다. 또 네 귀퉁이의 탑, 즉 미나르도 높이가 43m나 된다.남성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웅장한 규모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타지 마할은 어느 건축물보다도 여성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후미진 앨코브(alcove)의 벽에 상감기법으로 아로새겨진 갖은 형상의 꽃문양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또 하 나 인상적인 점은 타지 마할의 대리석이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아침과 한낮, 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그 느낌이 다르다. 누가 타지 마할은 낮에는 찬란하게 빛나고, 황혼에는 따사롭게 작열하고, 달빛 아래서는 영묘한 기운이 감돈다고 했던가. 천변만화(千變萬化 )하는 타지 마할의 모습은 표정이 풍부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지 마할은 1631년부터 짓기 시작,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됐다. 이 대역사에는 2만 명의 기술자와 노동자가 인도는 물론 아시아와 멀리 유럽으로부터 동원됐다. 인도의 라자스탄에서 채취한 대리석을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1천 여 마리의 코끼리가 사역돼야 했다. 또 중국의 비취, 버마의 루비, 다마스커스의 진주, 터키산 옥 등이 건물 장식을 위해 운반됐다. 이 타지 마할을 완성하는 데 4천만 루피의 돈이 들었다고 하니, 한 여인을 향한 사나이의 집념 앞에 고 개를 숙여야할지 탄식을 토해야할지 어리둥절했다. 게다가 샤 자한은 타지 마 할이 완성된 뒤 다시는 그와 같은 걸작품이 나오지 못하도록 공사를 맡은 장인들의 손가락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타지 마할은 이렇게 온 국력을 기울여 완성됐다.그러나 타지 마할을 다 짓 고도 샤 자한의 고분지통(叩盆之痛)은 가실 줄 몰랐다. 건축광이었던 그는 이 내 타지 마할이 마주 보이는 야무나강 건너편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검은 대리석을 사용해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건조한 다음 두 무덤 사이를 구름다리로 연결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뜻은 자신의 아들 에 의해 좌절됐다. 샤 자한은 만년에 황위계승 싸움에 휘말려 아들 아우랑제 브에 의해 아그라 성에 유폐됐다. 샤 자한 자신이 부왕(父王)을 밀어내고 등극했던 바로 그 인과(因果)의 고리가 아들을 통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것 이다. 샤 자한은 만년을 아그라성의 8각망루에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눈물 로 보냈다. 그리고 8년 뒤 일흔 네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타지 마할은 언제 보아도 보석처럼 영롱했다. 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생령(生靈)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태어난 것임을 어쩌랴. 애욕, 권력, 죽음, 연민, 분노, 허무 등의 낱말이 기자의 머리속을 맴돌았다. 공연한 상념을 떨쳐버리 지 못한 채 인근 아그라 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멀리 타지 마할의 둥근 지붕 위로 까마귀 떼가 까옥대며 날아올랐다. 그 뒤편으론 성스러운 야무나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타지마할의 하늘은 여전히 코발트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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