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斗緖自畵像. 국보(1987.12.26 지정).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38.5㎝, 가로 20.5㎝. 윤영선 소장.
몸은 완전히 생략하고 얼굴만 확대하여 표현한 특이한 형식의 자화상으로 그 유례가 없다. 예리한 관
찰력을 바탕으로 정기 어린 눈,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 잘 다듬은 수염 등을 정확하고 섬세한 필치
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윤두서가 인물화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해주며, 동시에 동양
의 초상화가 추구한 전신의 기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추조람경(秋朝覽鏡)
가을아침 거울을 보고
- 설직(薛稷) -
객심경락목(客心驚落木)
나그네 마음 떨어지는 나뭇잎에 놀라
야좌청추풍(夜坐聽秋風)
밤에 홀로 앉아 가을 바람소리 듣다가
조일간용발(朝日看容髮)
아침에 일어나 얼굴 구레나룻을 보니
생애재경중(生涯在鏡中)
나의 한생애가 거울 속에 있었다
薛稷(설직,649(당 정관 33) ~ 713(선천 2)
중국 당대의 서예가. 자는 사통(嗣通) 포주 분음(산시성)의 사람. 태자 소보가 되었기 때문에 설소보
라 칭한다. 공부, 예부의 양상서가 되었으나 태평공구의 계교에 연좌되어 만연현의 옥에서 옥사하다.
서예는 우세남, 저수량을 본받아 서풍이 저수량과 유사하여 “저를 사서 설을 얻어도 그 절개는 잃지
않는다”라는 칭찬을 받음. 『승선태자비』에 비유, 『신행선사비』등이 있다. 초당대의 4대가의 한사람
18세기 유리로 된 거울이 수입되기 전까지 청동거울은 옛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귀중한 존재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 ⓒ문화재청
고려국조(高麗國造)라는 글자가 새겨진 고려동경 ⓒ국립중앙박물관
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유물. 오른쪽 아래 동그란 것이 청동거울이다.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