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206

<한하운> 파랑새 / 보리피리

파랑새 - 한하운 / (1955) -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보리 피리 - 한하운 / (1955) -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 한하운(韓何雲, 1919-1975) 출신지 : 함경남도 함주 저서(작품) : 전라도길, 한하운시초, 보리피리, 나의 슬픈 반생기, 황톳길 대표관직(경력) : 대한한센연맹위원회장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신. 종규(鍾奎)의 아들이다. 1..

<김용호> 주막에서 / 눈오는밤에 / 낙동강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첩 25폭檀園風俗圖帖二十五幅중 『주막』, 국립중앙박물관 주막에서 - 김용호 / (1956) -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눈 오는 밤에 - 김용호 / 시집 『시원 산책』, 1964) -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

<설정식> 종 / 해바라기3

에밀레종의 이동(일제시대) 종(鐘) - 설정식 / 창간호(1946. 7.) - 만(萬) 생령(生靈) 신음을 어드메 간직하였기 너는 항상 돌아앉아 밤을 지키고 새우느냐. 무거히 드리운 침묵이여 네 존엄을 뉘 깨트리드뇨 어느 권력이 네 등을 두드려 목메인 오열(嗚咽)을 자아내드뇨. 권력이어든 차라리 살을 앗으라 영어(囹圄)에 물러진 살이어든 아 권력이어든 아깝지도 않을 살을 저미라. 자유는 그림자보다는 크드뇨.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유실물(遺失物)이드뇨. 한아름 공허(空虛)여 아 우리는 무엇을 어루만지느뇨. 그러나 무거히 드리운 인종(忍從)이여 동혈(洞穴)보다 깊은 네 의지 속에 민족의 감내(堪耐)를 살게 하라 그리고 모든 요란한 법을 거부하라. 내 간 뒤에도 민족은 있으리니 스스로 울리는 자유를 기다리라...

<이형기> 낙화 / 폭포

낙화 - 이형기 / (1963)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폭포 - 이형기 / (1963) -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

<박용래> 저녁눈 / 월훈 / 점묘 / 연시

저녁 눈 - 박용래 / (1966) -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월훈(月暈) - 박용래 / (1976) -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 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 지, 꽁깍지처럼 후미진 외딴 집, 외딴 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 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

<정한모> 가을에 / 어머니 / 갈대 / 나비의여행

가을에 - 정한모 / (1959) -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

<유치환> 울릉도 / 생명의서 / 바위 / 깃발 / 뜨거운노래 / 일월

울릉도 - 유치환 / (1948) -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國土)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東海) 쪽빛 바람에 항시(恒時)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風浪)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朝國)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懇切)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생명의 서(書) - 유치환 / (1938) - 나의 지식이..

<박두진> 도봉 / 꽃 / 향현 / 해 / 묘지송 / 청산도 / 어서너는오너라

도봉(道峰) - 박두진 / (1946) -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꽃 - 박두진 / 시집 (1962)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

<박목월> 나그네/윤사월/청노루/산이 날/한탄조/가정/이별가/하관/산도화

​나그네 -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芝薰에게 / 朴木月 / (1946)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朴木月) / (1946) -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청노루 - 박목월(朴木月) / (1946. 6.) -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 청노루 맑은 눈에 ​ 도는 구름 ​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朴木月) - 산이 날 에..

<조지훈> 승무 / 낙화 / 완화삼 / 봉황수 / 석문 / 고풍의상

장우성, , 1937, 비단에 채색, 198×16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승무(僧舞) - 조지훈 / (1939)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