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단군릉의 유골 연대 측정

단군릉의 유골 연대 측정

북한 고고학계, 연대측정 결과 5000년 넘었다 발표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측정한 결과 놓고 시비분분

북한은 1993년 10월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대박산 동남쪽 경사면 기슭에 있는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단군릉(『동국여지승람』에 속설로 단군릉이라고 칭했음)에서 단군과 부인의 뼈를 발견하여 출생 연대를 측정했더니 무려 5000년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단군이 상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며 단군조선의 무대를 아예 요동 지역에서 평양 지역으로 옮겼다. 이들에 의하면 단군릉은 석조로 된 고구려 양식의 무덤으로 현실은 동서로 273센티미터, 남북으로 276센티미터이며 바닥에서 1단까지의 천장 높이는 160센티미터이었다. 무덤 칸의 바닥에는 3개의 관대가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었다. 단군의 무덤이 고구려 무덤 양식으로 되어 있는 것은 고구려 때 무덤을 개축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에서는 시조인 동명왕을 단군의 아들로 여겼기 때문에 단군릉을 고구려 식으로 개축했다는 것이다. 단군릉 발굴상태(좌측)과 복원된 단군릉(우측). 무덤은 일제시대에 도굴되어 특별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부장품으로 금동관 앞면의 세움장식과 돌림대 조각이 각각 1개, 금동뼈의 패쪽이 1개, 토기조각과 관못 6개가 수습되었다. 또한 남녀 두 사람분의 86개에 달하는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넓적다리뼈, 손뼈, 갈비뼈 외에 팔다리뼈와 골반뼈도 나왔다. 그 중 42개가 단군의 뼈이고 12개는 여자의 뼈이며 나머지 32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북한학자들은 말했다. 유골을 검사한 북한 과학자들은 단군(여기에서 의미하는 ‘단군’은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단군 족의 한 사람을 뜻한다)에 대한 신상명세서의 일부분을 채울 수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측정한 결과 그의 출생 연대가 5011±267년(1993년 기준)이라는 점이다. 단군의 키를 다리뼈로 추정하면 171.3센티미터이고 팔뼈로 추정하면 173.2센티미터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키이다. 사망할 때의 나이는 70세 가량이었다고 한다. 또 단군은 허리가 곧바른 체형의 소유자였으며 같이 묻힌 부인은 젊은 여성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단군과 그의 부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자 남한의 일부 학자들은 단군의 유골이 5천여 년이나 되었는데도 너무 깨끗한 것은 물론 연대측정 방법에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곧바로 의문을 제시했다. 유골이 너무나 깨끗하다는 원천적인 의문에 북한측은 다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유골을 부식시키지 않는 토양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석화된 뼈는 부패나 외력에 대해서는 매우 강하지만 화학적 작용에는 민감하여 예상외로 견딤성이 약하다. 이 말은 약산이나 약알칼리성에도 쉽게 삭아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군이 매장된 토양은 화학적으로 산성이 아니라 뼈가 부식되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는 전형적인 중성 토양이라는 것이 북한 학자들의 주장이다. 둘째는 단군의 유골이 석회암 지대에 매장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단군릉은 우묵하게 침식된 석회암 사이를 깊이 파고 암반 위에 묘실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유골이 석회암 속에 있는 가용성 광물질이 많이 용해되어 있는 지하수나 물기의 침습을 계속 받을 수 있어 화석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단군릉에서 발견된 남녀의 뼈. ‘사람뼈의 화석’이란 뼛속에 있는 유기질이 광물질로 교체되고 뼛속에 생긴 공간에 광물질이 채워져 돌처럼 굳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석회암 지대에 침수된 지하수는 석회암 속의 가용성 물질을 용해시키기도 하고 결정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석회암이 녹아 형성된 광물질이 많은 지하수나 물기가 계속 유골에 작용하면 뼈세포 속에서 광물질이 석출되어 그곳에 채워지고 또 삭아 없어지는 빈자리에도 광물질이 들어가게 된다. 또 분자 수준에서 유골과 광물질 사이의 자리바꿈도 진행된다. 이 경우 유골은 돌과 같이 굳어지면서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며 부패작용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외력에 대해서도 저항력이 강해진다. 세계적으로 몇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화석이 석회암 지대의 자연 동굴이나 석회암 바위 그늘 밑에서 발굴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한반도의 고인류로 분리되는 역포 사람, 승리산 사람, 용곡 사람 등으로 불리는 인류화석들도 모두 석회암 동굴의 퇴적층에서 발굴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서 발표한 유골의 연대측정에 대한 이견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절대 연대 측정방법에는 C14 탄소연대측정법, 열형광법, 아미노산정량법, 핵분열비적법, 전자상자성공명법 등 10여 가지가 있다. 가장 유명한 C14 측정법은 196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리비가 제안한 것으로 이산화탄소(CO2)의 동위원소인 C12와 C14의 비율이 일정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주로부터 지속적으로 도달하는 우주선은 대기 중의 질소와 결합하며 이들 중 몇몇 질소 원자에 의해 방사성 탄소인 C14로 변한다. 이 탄소 동위원소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신속하게 흡수된다. 생물이 죽으면 더 이상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못한다. 따라서 죽은 동물, 식물, 박테리아 안의 방사성 탄소인 C14는 붕괴되어 그 양이 점점 줄어든다. 반면 C12는 비방사성이므로 유기체가 죽어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하면 C14 대 C12의 비율은 유기체가 죽은 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므로 일단 한번 살아 있던 물질이라면 이 기술에 의해 연대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C14 측정법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C14의 연대 측정법은 대략 500년부터 7만년까지의 대상물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3만5000년 전까지가 한계라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전자상자성공명법(ESR)은 1944년에 원리가 밝혀진 후 198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고고학과 지질, 지리학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한 최신 측정법이다. 우주선을 포함한 자연 방사성 원소들에서 나오는 방사성이 물질에 닿으면 그 물질에 흠집을 남기는데, 이 결함은 방사선 양에 비례하여 많아지며 색을 띠게 된다는 것이 이 측정법의 핵심이다. 이 결함의 양, 즉 홑전자의 수는 피격된 방사선의 양에 비례하는데 이 결함을 전자스핀으로 검출한다는 것이다. 전자스핀이란 전자의 회전에 의해 원전류를 발생시키면서 자기장을 구성하는데 이를 마이크로파가 존재하는 전자기장 안에 두면 손상된 부분이 마이크로파를 흡수하여 그 방향이 반대가 되는 것을 뜻한다. 전자상자성공명법은 다른 연대측정법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퇴적암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어 지질과 고고학계에서 근래에 많이 이용된다. 더구나 이 측정법의 측정 상한은 1억 년이나 되는데다 측정 시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조개, 뼈, 질그릇 등 고고학적 유물들 거의 모두 측정이 가능하다. 평양시 상원군 흑우리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검은모루 유적은 원래 40만∼70만 년 전으로 추정되었으나 근래에 100만 년 전의 원인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하여 수정 발표된 것도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하여 재측정했더니 연한이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측정방법은 특히 청동기·신석기 시대의 유물 측정에 두각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 학자들이 북한측의 발표에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단군릉에서 발굴된 사람뼈를 C14로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천∼1만 년 이내의 인골에는 탄소연대측정법을 사용하는 것이 통례인데 1만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에 주로 이용하는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단군 뼈라고 주장하는 인골 중에서 단군의 나이를 골반뼈로 추정했다고 하는데 골반뼈는 나이가 아니라 성별 추정용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탄소연대측정 장치, 탄소연대측정방법은 대략 500년에서 35000년이 된 살아있던 생명체의 죽은 연대를 측정하는데 적합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학자들은 유골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하면 몇 그램이면 충분한데도 C14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시료가 몇 킬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단군릉에서 나온 인골이 많지 않은데 C14에 의한 방법을 적용하면 연대는 측정할 수 있으나 유골은 남지 않는다는 뜻으로 더불어 단군의 유골을 영구 보존하는 것도 후손들이 할 의무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북한측은 물리학자도 아닌 고고학자들이 측정방법론을 갖고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학자나 중국 학자가 연대측정치를 발표하면 아무 의심 없이 믿는데 북한 학자들이 발표하면 의혹을 가진다고 항의하며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니라 측정장치의 원리를 잘 알고 있는 물리학자나 기계공학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사용한 측정장치를 엄밀하게 검증하자고 반론을 폈다. 그런데 전자상자성공명법에 대한 논쟁은 1987년에 캐나다의 맥매서대학에서 발표된 논문에 의하여 더욱 가열된다. 이 논문은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인골을 측정할 경우 가장 적합한 것은 치아에 있는 에나멜이며 그 외의 뼈들은 측정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특히 화석화된 인골은 성분이 변하므로 인골의 절대연대 측정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이 설명에 의하면 평양에서 발굴된 단군 인골을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측정할 경우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도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인골을 측정할 경우 오차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지지 않았다는데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 물론 남한 학자 모두가 북한의 단군릉 발굴과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 1993년 10월에 열린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1차 학술발표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검토한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주장이 완전히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군릉에서 발견된 유골이 진짜냐 아니냐만 따진다면 북한 측의 주장이 억지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단군릉을 고구려인들이 개축할 때 유골의 연대를 측정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고구려식으로 무덤을 개축하면서 무덤이 개봉될 때 발견된 유골을 원형 그대로 매장했다는 것이 상식이다. 후학들에게 많은 문제를 남겨 준 단군릉은 앞으로 보다 많은 자료 제공과 연구가 이루어져 명쾌한 결론을 우리들에게 줄 것으로 기대한다. 04/3/6 이종호(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