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일본 후쿠오카의 천년 고찰인 센뇨지(千如寺)를 찾은 한국 스님들이 사찰 뒤편 숲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와 풀, 나한상이 조화를 이루었다. 일본 진언종의 총본산인 젠츠우지(善通寺)의 새벽예불에 참석한 한국 스님들. | |||||||
목조로 된 법당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거기에 1000년 전에 만든 ‘십일면 목조 천수 관음 입상’이 있었다. ‘두~웅!’하는 북소리와 함께 ‘끼이~익’하고 나무로 된 여닫이문이 열렸다. 관음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서 기타무라 류카이(喜多村龍介) 주지 스님이 ‘반야심경’을 읊었다. 적막과 북소리, 어둠과 빛의 교차, 기도와 독경의 메아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거기에는 대단히 정제된 시·공간의 미학이 있었다. 다만 불교의 제례의식적 측면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기타무라 주지 스님의 상좌는 자신의 친아들이다. 며느리는 사찰 내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일본에선 “절에 시집을 가면 잘 가는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찰 운영은 일종의 ‘가업’(家業)이기도 했다. 그러나 센뇨지도 한때는 300개의 승방이 있을 만큼 큰 절이었다고 한다.
◆일본 불교의 선(禪)전통=일본에는 여러 불교 종파가 있다. 크게 진언종·정토종·정토진종·조동종·임제종 등으로 나뉜다. 승려 대부분은 결혼을 한다. 다만 조동종과 임제종의 일부 승려만 독신을 지킨다. 일본에서 불교를 공부했던 동화사 강주 해월 스님은 “일본의 임제종은 간화선 수행을 하진 않는다. 대신 마음을 살피는 관법(觀法) 위주로 수행을 한다. 육조 혜능대사의 『육조단경』에 나오는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의 종지를 따르고 있다”며 “조동종과 임제종에선 재가불자들의 생활 속 선수행도 매우 활성화돼 있다. 임제종 불자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도 아침마다 좌선을 한다”고 설명했다.
23일 히로시마의 붓츠우지(佛通寺)를 찾았다. 임제종 불통사파의 총본산이다. 임제종 사찰이라 그런지 경내가 담백했다. 법당이나 종루에도 울긋불긋한 단청이 없고, 자연스런 나뭇결 무늬만 보였다. 선종 사찰답게 ‘달마상’도 모셔져 있었다. 선방도 들렀다. 다다미 마루에 한국 스님 20여 명이 올라가 잠시 좌선도 했다. 일본 스님이 죽비를 들고 돌아다니며 견책(좌선 중 자세가 무너지는 이에게 죽비로 어깨를 때리는 일)도 했다. 임제 법통을 잇는 조계종이라 한국 스님들이 가장 반가워한 사찰이었다.
◆수첩 들고 사찰 찾는 일본 불자=관음성지를 찾는 일본 불자들은 꼭 수첩을 들고 다녔다. 해당 사찰의 종무소에서 도장을 받기 위해서다. 2~3년에 걸쳐 ‘33 관음 성지’의 33개 도장을 다 찍으면 사후에 극락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관 속에 그 수첩을 함께 넣는다고 한다. 일본 특유의 순례 문화와 정토 신앙이 빚어내는 묘한 풍경이었다.
절집에서 점도 봤다. 동전을 내고 종이쪽지를 뽑는 식이다. 펼쳐서 ‘좋은 일’이 나오면 집에 가져가고, ‘나쁜 일’이 나오면 사찰마다 정해진 장소에 매달아놓고 간다. 그럼 액운이 풀린다고 믿는다. 진언종이든, 임제종이든, 천태종이든 사찰마다 그런 문화가 있었다. 그만큼 이벤트적인 요소가 강했고, 그만큼 대중적이기도 했다. 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 진경 스님은 “사찰순례 문화를 한국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일 불교 교류의 장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후쿠오카·히로시마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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