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sr]그림,詩畵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22. 17:02

그림] Gogh, Vincent van (1853~1890)◈ Self Portrait (1887)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1881년 12월이었다.
1890년 세상을 떠날 때 그가 남긴 그림은 879점이었다.
그외에도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쓴 편지가
거의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872년 8월과 1890년 7월 사이에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668통은
 "친애하는 테오에게"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의 편지에는
그림과 그림그리기의 목표와 지향점 등이 담겨 있다.
그 밖에도 어머니, 동료인 고갱, 베르나르, 라파르 등에게
띄운 편지가 영혼의 편지에 수록되어 있다.


반 고흐가 남긴 그의 편지는 고통스러웠던 인생유전 그리고 찬란했던
미술작품의 비밀을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게 해준다.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을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차라리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

 


[그림]Gogh, Vincent van ◈ Sorrow (1882) 

 

며칠 동안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크리스틴  

 

 


테오야
그녀 몸 지나간 욕망들
어떤 빛깔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 몸 굴곡 따라가는 일은 사창가에서 나오던
새벽만큼이나 질기고 지루한 시간이 필요하단다.
자꾸만 넘어지는 연필,
그녀는 끝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젖꼭지에 연필 끝 닿았을 때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뭉갰다.


色을 가질 수 없는 영혼이
팔레트를 뒤엎을 것만 같다 테오야
이 여자에게 어떤 색깔을 입혀야 하나...


창녀들
심장이 토해내는 듯한 홍등가의 색깔과
헤이그 노동자들 헤어진 작업복 군청색...
어떤 영혼들은 자신들 색깔을 튕겨내는 것만 같아


테오야
이제 막 그녀 손가락을 그렸다.
길게 뻗은 팔목은 이 여자를 새처럼
날아가게 만들 것 같구나 저 팔목,
어떤 색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내 영혼의 빛깔이란다.


내 심장이 그녀 가슴에 닿는 순간
색칠하지 못한 이 그림의 여백은
그녀 심장 속에서나 꿈틀대겠지
귓속에서 웅성거리는 소용돌이 테오야,
그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하나...

 

 

[그림]Gogh, Vincent van ◈ Young Scheveningen Woman Knitting (1881)

 

 

1881년 12월 21일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그녀만을 원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여자에게 가고 싶어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느냐고 혼자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겠지.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 논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내가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비합리적인고 분별 없는
내 성격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빌어먹을 벽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고,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그림]Gogh, Vincent van ◈ Woman Miners Carrying (1882)  

 

 

 

1882년 5월 3일~12일

 


글쎄, 예절과 교양을 숭배하는
너희 신사들에게 물어보고 싶구나.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 있고, 더 자상하고, 더 남자다운 자세냐?
지난 겨울, 임신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받은 여자지.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때에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녀를 계속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과거의 길,
그녀를 구렁텅이로 내몰 것이 분명한
그 길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녀는 돈이 없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 돈을 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른 여자가 내 가슴을 뛰게 한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멀리 떠나버렸고,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자, 병들고 임신한 데다
배고픈 여자가 한 겨울에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

 


[그림]Gogh, Vincent van ◈ Sketch of a Seated Woman (front view) (1888)

 

 

1882년 5월 3일~12일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게 힘들었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나는 좋은 모델을 가진 덕분에 데생에 진전이 있었다.

 

 

[그림]Gogh, Vincent van ◈ Portrait der Mademoiselle Ravoux (1890)  

 

 

1885년 12월 28일

 

 
모델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밤새 꽤 바쁘게 일했음이 분명한 모습을 하고 찾아왔다.
인상적이게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샴페인은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슬프게 해요."


그 순간 나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것 같았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쥐어뜯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같은 모델을 놓고 옆모습으로 두 번째 습작을 시작했다.
 

요즘은 온통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생각뿐이다.
그들의 그림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한다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양홍색과 코발트색에 푹 빠져 있다.
코발트는 아주 신비로운 색으로, 사물 주변의 분위기를
만들 때 이보다 더 적합한 색은 없지 싶다.
카르민은 포도주의 붉은색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며 포도주처럼 강렬하다.
에메랄드 그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절약이다.
카드뮴색(노란색 계열)도 마찬가지다.
 

                            "계속"


 

Carmen Cuesta / Shape Of My Heart

 

 

 

 

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 Self Portrait (1889)

 

 

 

1874년 1월

 


네 편지를 보니 미술에 큰 흥미가 있는 것 같구나.
좋은 일이다.

네가 밀레, 자크, 슈레이어, 랑비네,
프란스 할스 같은 화가들을 좋아한다니 나도 기분이 좋다.
모베가 말했듯 '바로 그거다'.


밀레의 그림 [저녁 기도], 정말이지 '바로 그거'라니까.
장엄하고 한마디로 시 그 자체인 작품이지.
너와 그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Angelus(1857 - 1859)

 

 

 

지금은 편지로 이야기하는 수 밖에 없지.

될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이...

 

 

[그림]Gogh, Vincent van ◈ Two Peasant Women in the Peat Fields (1883)

 

 


1881년 10월

 


예술가는 초기에는 자연의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대립으로 기가 꺾이기는커녕

자연을 자기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자연과 정직한 데생화가는 하나다.


자연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연을 움켜쥐어야 하며 그것도 두손으로 힘껏 붙잡아야 한다.
자연과 자주 씨름해온 나의 눈에는 자연이 유연하고 순종적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지금 그 문제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자연과의 씨름은,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 말은 싫든 좋든 대립을 조금씩 완화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 많은 분야에서 공통된 말이겠지만,
특히 데생에서는 '꾸준함이 항복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Peasant Burning Weeds (1883)  

 

 

 

1882년 3월 3일

 


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것 솔직히 인정한다.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한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한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지.

 


[그림]Gogh, Vincent van ◈ Portrait of Boekverkoper Blok  (1882) 

 

 


1882년 7월 21일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더 흡족할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교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겠다.
옛것을 모방하는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


밀레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리 수도 있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림]Gogh, Vincent van ◈ Beach at Scheveningenin Stormy Weather(1882)

 

 

 

1882년 10월 22일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State Lottery Office (1882)

 

 

 

1883년 3월 21~28일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더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집시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에 잼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림]Gogh, Vincent van ◈ Road with Cypress and Star (1890) 

 

 

1883년 7월 11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황야의 오솔길에
서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 일이다. 히이드로 뒤덥힌
갈색의 황야를 좁고 하얀 모래길이 가르지르고,
그 위에 엄격하게 보이는 개성있는 인물이 서 있는 모습으로.


하늘은 조화롭고 열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을 풍경 속에 서로 팔을 끼고 있는 그림도 그리고 싶다.

 


[그림]Gogh, Vincent van ◈ Peasant Woman Digging (1885)  

 

 

1885년 4월13일

 


밀레가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 
한 말을 상시에의 책에서 읽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말 모두를 기억하지는 못하고 골자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사람들의 무관심) 내가 값비싼 구두를 신고 신사의 생활을 원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막신을 신고 나갈 것니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그렇게 되었지.

 


[그림]Gogh, Vincent van ◈ Still Life of Shoes (1886)

 

 

 

내가 잊을 수 없는건
"문제는 거기에 나막신을 신고 가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다시말해, 농부들이 만족하는 종류의
음식, 옷, 숙소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지.
밀레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다른 화가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인 것이지...

 


★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프랑스 화가]

자연주의 기법으로 농촌 풍경과 농부들의 삶을 그렸다.

인상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Potato Eaters  (1885) 

 

 

1885년 4월 30일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Good Samaritan (version of Delacroix painting,1890)

  


1885년


테오에게
사람들은 기술을 형식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부적절하고  공허한 용어를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냥 내부려두자.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Sower with Setting Sun (1888)

 


1888년 6월

 


베르나르에게
[씨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라빛을 띠고 있네.

잘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네.
하늘은 황색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Sower(1850) 

 

 

 

이 두그림을 보면 밀레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고흐에 있어서 밀레는 정신적,작품적으로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그의 모든작업의  배경은 밀레의 영혼과 같이 살아 숨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바탕은 밀레의 모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의 편지 내용에 많이 언급된다.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는 프랑스의 화가로서,
고흐, 고갱, 세잔과 교류하며 서로 자화상을 교환하기도 했다.

 


                             "계속"

 

 

 

 

 

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 Self Portrait (1889)

 

 

1888년 6월

 


펜과 종이를 대할 때처럼 물감을 사용할 때도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색을 망칠까 싶어 두려워하다 보면 꼭 그림을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부자였다면 지금보다 물감을 덜 썼을 것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Starry Night (1889)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그림]Gogh, Vincent van ◈ The Postman: Joseph Roulin (1888)

 

 

 

1888년 9월 8일

 


우체국에서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을 부치면서,
새 그림 <밤의 카페>의 스케치도 함께 넣었다.
이제 일본판화의 성격을 약간 가미하면 완성될 것이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Night Cafe(1888)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함으로써,
부드러운 녹색과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함으로써,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그림]Gogh, Vincent van ◈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1888)   

 

 

 

1888년 9월

 


이번 주에 그린 두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림]Gogh, Vincent van ◈ Self-Portrait as an Artist(1887-8)

 

 

 

세 번째 그림은 흐릿한 베로네즈 녹색 바탕에 잿빛 톤으로 그린,
퇴색한 느낌을 주는 자화상이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이번 주에는 그림 그리고, 잠자고, 먹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6시간씩 총 12시간의 작업을 했고,
단번에 12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Langlois Bridge at Arles with Women Washing (1888)

 

 

 

1888년 10월 24일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그림]Gogh, Vincent van ◈ Van Gogh's Room at Arles (1888)

 

 

 

1888년 12월 23일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두 사람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가 이곳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 그걸 찾게 될까?
묵묵히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다.

 


[그림]Gogh, Vincent van ◈ 고갱의 의자(左,1888)와 고흐의 의자(右,1888) 

 

 

 

1889.1

 


아직 한겨울이니 제발 조용히 작업할 수 있게 내 버려다오.
그  결과가 미친사람이 그린 그림에 불과해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칼륨 정제를 복용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Courtyard of the Hospital in Arles (1889)

 

 

 

1889년 4월 30일

 


아무 대가없이 나를 받아들여줄 병원은 없다는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너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런 가책없이
나를 자살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테지.
비겁한 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테니까.
우리가 계속 사회에 대항하고
우리 자신을 방어할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Gogh, Vincent van ◈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1889년 9월

 


테오에게...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 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 져갈 수 있을까
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계속"                    

 

그림]Gogh, Vincent van ◈ 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1889년 9월 7일~8일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그림]Gogh, Vincent van ◈ Die Runde der Gefangenen (1890)

 

 

 

1890년 5월 4일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느님 맙소사!
1년이 넘도록 참아왔으니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지루함과 슬픔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의 인내심이 극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임시 변통에 불과하더라도.

 


[그림]Gogh, Vincent van ◈ Wheat Field Under Threatening Skies (1890)  

 

 

 

우측에서 온 길은 중앙에서 줄로 갈라지는데
가운데의 밝은 길은 동생 테오 부부가 걸어갈 미래
좌측으로 사라지는 길은 고흐를 나타내며
지평선 중앙의 구름을 보면
중앙에는 두개의 구름이 합쳐져있는데 이것은 테오부부
이 구름에서 떨어져 나가는 또 하나의 구름은 반 고흐를 의미하며
이는 절망적인 결의를 상징한다.


- 미술 평론가 고바야시 -

 


[그림]Gogh, Vincent van ◈ Wheat Field (1889) 

 

 

 

1890년 6월

 


테오에게
"나는 해바라기 연작을 그린 것처럼 실편백나무 주제 연작을 그리려 한다.
왜냐면 아직 내가 보고 느낀 것 같은 실편백나무를 그린 화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의 오베리스크처럼 아름답다"

 


[그림]Gogh, Vincent van ◈ Portrait of Dr Gachet (1890)

 

 

 

1890년 7월 24일 [마지막 편지]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50프랑 수표 고맙게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너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네 가정의 평화문제라면, 잠시 파란이 있어도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프랑스어나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론 할 때 이런저런 면의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게 그리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지만.
요즘은 온통 그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화가들처럼 잘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으니, 오늘날 화가들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
그런데 화가 공동체를 결성하는 게 유용하다고
화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이냐?
하긴, 공동체가 결성되더라도 다른 화가들이 파멸한다면
공동체 역시 파멸하게 될 테지.


너는 그런 경우,
화상들이 인상파 화가들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개인적인 노력은 별소용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여러 가지 일을 겪었는데,
정말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그림]Gogh, Vincent van ◈ The Church at Auvers-sur-Oise (1890)

 

 

 

윗그림 교회 입구가 보이지 않는 교회 뒷면을 그린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반감을 뜻하고
왼쪽으로 걷는 여인은 과거의 그가 사랑한 여인들의 상징이며
오른쪽 길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상징한다고 한다.


고갱이 브르타뉴 지방에서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그린 다른 그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Paul Gauguin(佛,1848~1903) ◈ The Swineherd, Brittany  (1888)

 

 

 

동봉한 것은 도비니의 정원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다시 스케치한 것이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생각해서 그린 작품 중 하나다.
구식으로 이엉을 인 지붕과 비온 후의 광대한 밀밭 정경을 그린
30호 크기 그림 두 점도 대략 스케치했다.

[고호가 보낸 마지막 편지]
(테오는 이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테오와 고흐의 관계를 알 수 있고
정신병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이후 1890년 6월 동생 테오와 돈 문제로 다투고 돌아온 고흐는
7월27일 초라한 다락방 침대위에서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그를 라부의 가족들이 발견한다.)

 


[그림]Gogh, Vincent van ◈ An der Schwelle der Ewigkeit  (1890) 

 

 

 

[빈센트가 자살한 당일까지 지니고 있었던 편지]

 


너의 염려해 주는 편지와 같이 동봉한 50프랑의 지폐,
고맙다. 갖가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헛수고라 생각해 버렸다.
신사들이 네게 대해 여러 가지로 편의를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너의 가정이 무고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는다.


좋은 경우나 나쁜 경우도 상상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5층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네게나 조에게 얼마나 중노동이 될까 하는 것은 십분 짐작이 간다.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물론 다행이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에 어째서 내가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더욱 머리를 냉정히 하여 장사 이야기라도 할 수 있게 되려면
아직도 아득한 일인 것 같다.


현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고,
이미 그 말을 전했다고 생각되지만,
그 사실에 어느 정도의 공포를 가진 채
자각하고 있었으며,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다른 화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거나 간에 무의식적이나마
실제 장사의 일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틀림없이 우리들은 자기들의 그림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아우야, 이런 말을 언제나 네게 했고,
최선을 다하자고 끊임없이 바라던 내 생각을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전하겠다.
거듭 말하거니와 너는 단지 코로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는 전혀 다르며,
나를 통하여 많은 그림 제작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니까,
비록 네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


관련성 있는 위기에 즈음하여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네게 그 말은 적어도 중요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현지 실존하고 있는 예술가나 과거의 예술가의 그림과 화상과는
지금도 완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렇다.

 


[그림]Gogh, Vincent van ◈ Pieta (1889)  

 

 

 

나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졌으며,
내 이성을 반쯤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너는 화상답지가 않다.
너는 동료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에서 활동한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1890년 7월 24일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그림]Gogh, Vincent van (1853~1890)◈ Self-Portrait Dedicated to Paul Gauguin (1888)

 

고갱이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중에

 


고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네
정말 슬픈 일이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네.
그 가여운 친구가  자신의 광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네.


지금 세상을 떠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라 할까.
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환생하여 그가 전생에서 한 훌륭한 일로 보답받을 수 있을 테니까 .
그나마 동생에게 버림받지 않았고 화가 몇 사람이
그의 작품을 이해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이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림]Gogh, Vincent van ◈ Fifteen Sunflowers in a Vase (1888)

 

 

 

고흐는 고갱과는 밀접한 관계를 지녔었다.
고흐는 예술가를 꿈꾸는 동료들이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작업을 하는
화가공동체를 꾸리는 것을 진심으로 갈망했다
그러나 관심 있는 사람은 오직 고갱 한 명뿐이었다.


고흐는 신부 같은 맘으로 고갱을 기다리며
그가 거처할 방에 걸기 위해서 '해바라기' 연작을 그리게 된다.
고흐는 노란 색을 얻기 위해 황시증을 걸리게 하는
압상트를 매일 마셔댔다.

 


[그림]Gogh, Vincent van ◈ Portrait of Dr Rey (1889)

 

 

 

시립병원의 레이 의사가 고흐에게 음주를 나무라자 고흐는 이런 말을 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
올 여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로서는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찬란한 노란 색을 얻기 위해 여름내내 취해있었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Yellow House (1888) 

 

 

 

고흐는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집을 하나 얻고 그 벽을
노란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고갱은 1888년 10월 23일 , 아를에 도착하게 되고.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보고 감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안가서 그들은 예술에 대한 견해차로 자주 다투게 된다.

 


[그림]Gogh, Vincent van ◈ Portrait of Trabuc (1889)  

 

 

아를에는 반고흐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몇몇 동네분들중
드 라가르 까페 주인인 지누부인이었는데
고흐와 고갱은 지누부인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다

 


[그림]Gogh, Vincent van  ◈ The Woman of Arles (1888)   

 

 

그녀는 손님이없는 오전시간을 택해 모델서는 것에 응하게 되는데
이때 고흐는 방안에서 책을 몇권들고와서 부인 곁에 놓고 그림을 그렸다.


고갱은 그런 점이 매우 못마땅했다.
술집여주인 그리는데 옆에 누더기책은 왜 갖다놓는가 싶었다.
고흐는 아랑곳하지 않고 45분만에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Paul Gauguin(彿,1848-1903)  ◈ Night Cafe at Arles (1888)  

 

 

하지만 고갱은 같은 모델을 놓고 그린 그림이지만
고갱은 실존하는 현물을 무시하고 그림을 완성한다.


지누부인의 앉은 탁자위에는
책이 아닌 압생트술병과 술잔이 놓여있으며
당구대 뒤에 손님들로는 고흐가 좋아 했던 사람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대한 경멸을 나타내었다.


앞에서 보았던 조셉 롤링도 뒤에 앉아 있다.
지누부인의 표정도 스케치와는 다르게 유화로 옮겨질때는
더욱 냉소적인 미소로 바뀌에 되었다.

 
물론 고흐도 고갱의 어느정도 의도를 눈치채게 되었다.
그러나 화가공동체의 꿈 실현을 위해 고흐는 참았다.

 


[그림]Paul Gauguin(彿,1848~1903)◈ Van Gogh Painting Sunflowers (1888)

 

 

고갱은 윗그림을 그린 후 자신과 고흐의
우정을 기념하는 작품이라했다.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잎은 다 떨어져가고
해바라기는 커다란 눈처럼 보인다.


반 고흐는은 반쯤 감겨 멍한표정이며
들고있는 붓은 마치 바늘을 들고 있는 것 같고...
뒤의 벽 풍경화의 소실점이 반 고흐 위에 있어서
그림이 사람을 억누르는 듯하다.


고흐와 고갱은 사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었고.
급기야 고흐가 고갱에게 술잔을 던지는 일도 있게 되었다.


바로 다음날 고갱은 자신이 떠나겠음을 내비치고
겨우 겨우 고갱을 달래보았지만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림]Gogh, Vincent van ◈ Self Portrait (1889)    

 

 

여기서 고갱의 수기중 한 구절을 잠깐 보면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면도칼을 든 고흐가 나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내가 노려보니 그는 행동을 멈추고 달아났다."


달아난 고흐는 고갱이 떠난다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는 동시에
"화가 공동체의 꿈"이 좌절되는데 대한 안타까움으로
자기 귀를 자르게 되었다.

 


[그림]Gogh, Vincent van ◈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 

 

 

고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이지만
생전에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화상을 하던 그의 동생 테오(Theo)만이
형의 천재성을 이해하였을 뿐이었다.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있어서 정신적, 물질적 지주였으며
그의 그림을 이해해주는 소수의 사람중 하나였다.
고흐가 살아있을동안에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무려
668통이나 된다.

 


[그림]Gogh, Vincent van ◈ Skull with Cigarette(1886)  

 

 

 

고흐는 자신의 예술이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다가
끝내는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만다.


고흐가 죽은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25일
건강이 갑자기 악화된테오는 네덜란드의 
우트레히트에서 33세의 젊은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화장된 유해는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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