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신동아그룹 ‘노른자위 빌딩’ 급매 미스터리
위장·헐값 매매 의혹…대한생명 조직적 개입 왜?
신동아그룹 계열사 매각에 석연치 않은 정황이 확인됐다. 이 작업을 주도한 대한생명이 임직원들을 동원하는 등 조직적으로 개입해 졸속 매각했다는 의혹이다. 외환위기(IMF) 당시 신동아그룹 해체 과정에서 불거진 계열사들의 헐값 매각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숱한 의문만 품고 공중분해된 신동아그룹 미스터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알짜’계열사 급매 의혹을 파헤쳐봤다.
임직원 동원 ‘유령등기’속전속결 매각 작업 진행
“대생 수뇌부 주도…청와대 질책에 졸속 처리”증언
총자산 20조원, 매출 10조원에 이른 신동아그룹은 총수였던 최순영 전 회장이 1999년 외화 밀반출과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침몰했다. 대한생명, 신동아건설, 동아제분 등 20개가 넘은 계열사들은 주인이 바뀌거나 공중분해됐다. 정부는 ‘자산보다 빚이 많은’ 신동아그룹 계열사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 회수를 위해 일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헐값 매각’등의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아직까지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가장 논란이 된 대한생명의 경우 부실회사로 지정돼 우여곡절 끝에 2002년 한화그룹이 거머쥐었다. 한화그룹은 최 전 회장을 비롯해 기존 대주주들의 소유권 법적 대응과 매각을 주관한 예금보험공사의 국제상사중재위원회 계약 무효 중재 신청 등 ‘마라톤 소송’에서 모두 승소해 지난해 8월 대한생명의 ‘진짜 주인’이 됐다.
현재 대한생명의 대주주는 한화건설(31.5%), ㈜한화(28.2%), 한화석유화학(7.3%) 등 한화그룹 계열사와 예금보험공사(33%)다. 그러나 대한생명 매각 의혹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한화 저격수’로 유명한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는 대한생명의 정상화를 위해 총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한화그룹은 불과 8236억원에 인수했다”며 “외환위기 때 3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한화그룹이 이 빚을 제대로 갚지 않은 채 DJ 정권 하에서 정경유착으로 헐값에 인수했다”고 대한생명 매각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급한 마음에…’제값 받았나
‘실탄’조달 방식도 논란거리
이 의원은 지난 2월 대한생명 매각 비리 의혹 감사청구안을 발의한 바 있다. 최 전 회장도 지난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생명은 2001년 8600여 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누가 봐도 부실기업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DJ 정권 때 선거자금을 바치지 않아 실세들에게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으로 불과 정권교체를 열흘 앞두고 대한생명 등을 헐값에 매각했다”고 폭로했다.
최 전 회장은 최근 한 기독교 행사에 참석해 대한생명 매각의 부당성을 호소하면서 “빼앗긴 그룹을 되찾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동아그룹의 ‘알짜’계열사였던 삼풍산업진흥도 대한생명과 같은 시기에 매각 작업이 진행됐다. 삼풍산업진흥은 서울 시내 노른자위인 중구 을지로 4가에 위치한 ‘삼풍넥서스’빌딩(옛 삼풍상가)을 소유하는 등 그룹의 부동산사업을 맡았다.
삼풍상가는 삼풍산업진흥이 1970년 세운 건물로 대지 1100㎡, 연면적 3만5000㎡에 14층 규모다. 최근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세운상가와 더불어 1970∼80년대 ‘장안의 명물’로 꼽혔다. 삼풍산업진흥은 신동아그룹 해체 당시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 방침에 따라 주인이 바뀌었고, 삼풍상가의 소유권도 넘어갔다. 이를 인수한 기업은 A사다. 부동산 임대·개발 업체인 A사는 2000년 삼풍산업진흥을 인수하는 동시에 삼풍상가를 매입했다. 회사 사무실도 삼풍상가 내로 이전했다.
이듬해엔 당국의 리모델링 허가를 받아 2007년 공사를 끝마쳤다. 상가 위주의 건물은 명품 사무공간으로 거듭났다. 수백억원을 들여 재건축에 가까운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이 빌딩은 20여개가 넘는 대한생명 영업소를 비롯해 한화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제일은행, 신한은행, 신한증권 등 대부분 금융사들이 입주해 ‘금융센터’로 재탄생했다. 이 와중에 일방적 계약 해지 등의 이유로 세입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과거 ‘장안의 명물’
현재 ‘신 금융센터’
하지만 A사가 삼풍산업진흥을 인수하는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정황이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이 작업을 주도한 대한생명이 임직원들을 동원하는 등 조직적으로 개입해 졸속 매각했다는 의혹이다. 2007년 말 해산 처리된 삼풍산업진흥의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A사의 인수 직전 기존 등기이사들이 사임하고 새로운 인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일요시사>가 신임 등기이사들의 당시 신원을 확인한 결과 거의 대한생명 임직원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들은 회사의 일방적인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선임되거나 선임 사실조차 몰랐다. 대한생명이 당사자 몰래 명의를 도용했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한생명 부장으로 재직하던 B씨는 2000년 2월 삼풍산업진흥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01년 10월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이 시점이 매각 작업이 끝난 시점과 맞물리면서 의혹을 사고 있다. 이후 B씨는 대한생명 상무를 지냈다.
B씨는 “회사(대한생명)에서 ‘이름만 걸라’고 지시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저 이름만 빌려줬다. 매각 업무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C씨도 대한생명 부장을 맡다가 2000년 2월 삼풍산업진흥 사내이사에 올랐고, 2001년 12월 사임 때까지 두 회사의 업무를 겸직했다. C씨 역시 이후 대한생명 상무를 역임했다. 그는 “그런 사실이 있냐. 금시초문이다. 이사 선임 경위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삼풍산업진흥 매각에 깊숙이 관여한 전직 대한생명 한 간부는 “삼풍산업진흥 매각은 대한생명 수뇌부가 주도했는데 등기이사로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경영진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다”며 “매각이 지지부진해 경영진이 수시로 청와대에 불려가 질책을 받았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경영진이 무리할 만큼 매각에 속도를 내 결국 졸속으로 처리된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선임 사실 모르기도
더 큰 문제는 삼풍산업진흥이 졸속으로 매각되면서 헐값에 넘기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A사의 ‘실탄’조달 방식이 논란거리다. 부동산 관련 업계에 따르면 A사는 230억원 상당에 삼풍상가를 포함한 삼풍산업진흥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현재 이 빌딩 토지와 건물의 장부가액은 약 450억원대지만, 공시지가로 따지면 실제 가격은 평당 1억원을 호가해 1000억원에 육박한다.이 빌딩 부지의 공시지가는 A사가 삼풍산업진흥을 인수한 2000년만 해도 ㎡당 570만원에 머물렀지만, 올해 1210만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여기에 리모델링, 주변 개발 호재 등을 감안하면 건물과 대지의 시장가치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 나올 만큼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삼풍상가는 서울시가 인근 세운상가 등을 초고층단지로 재개발하려는 초대형 프로젝트 지역이다. 개발이 이뤄질 경우 현재보다 부동산값이 더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는 얼마 남지 않은 서울 도심의 노른자위 땅으로 꼽힌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삼풍상가 주변은 서울시의 개발 계획 중심에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최신식 리모델링 공사를 마쳐 이 일대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며 “대형 빌딩은 요즘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지만 토지 실거래가는 공시지가를 크게 웃돈다”고 말했다.
시중가 1천억원 호가
불과 20억원으로 ‘꿀꺽’
사실 삼풍산업진흥 매각 후 정치권에선 특혜 의혹이 적지 않았다. 전직 청와대 인사가 동생과 공동 소유하고 있는 A사의 미심쩍은 인수 방식 탓이다. A사는 인수금액 230억원 가운데 빌딩 입주사들의 임대보증금이 180억원이란 점에서 일단 50억원만 투자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마저도 30억원 정도를 건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결국 20억원으로 인수가 가능했다는 결론이다. 반면 A사가 한 해 거둬들이는 임대료와 관리비 수입은 70억원이 넘는다.
김황식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2년 예금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대한생명이 자회사인 신동아건설의 거액 부채를 탕감해주고 자회사들을 헐값에 매각했다”며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사의 경영관리를 예보가 소홀히 해 삼풍산업진흥 등이 헐값 매각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한생명 측은 삼풍산업진흥 경영진에 등기됐던 이사들이 회사 임직원인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해당 임직원들이 모두 퇴사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일체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한화그룹이 인수하기 전인 신동아그룹 시절 벌어진 일이라 현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삼풍산업진흥 경영진에 오른 인사 등 매각 작업과 관련이 있는 임직원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사직해 현재 회사에 없다”며 “2002년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이후 스스로 물러나거나 물갈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매각 과정에 문제가 있더라도 신동아그룹 또는 과거 대한생명에 책임이 있지 한화그룹이나 현 대한생명은 전혀 연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단독]檢, 신동아건설 ‘비자금 조성’ 내사
2009-10-14 02:57 | 2009-10-14 03:16 |
계좌추적 등 통해 회삿돈 빼돌린 단서 포착
‘일해토건’서 인수때 DJ정부 실세개입 의혹도
검찰이 대형 종합시공업체인 신동아건설의 비자금 조성 단서를 잡고 내사 중인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는 이 회사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함께 2001년 이 회사가 중견 건설업체인 일해토건에 인수합병될 때 부당한 특혜가 있었는지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개월 전부터 이 회사의 회계 관련 자료를 분석해 왔으며,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자금 흐름을 수사한 결과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회사 경영진이 수년 동안 대규모 아파트 시공과정에서 공사 관련 하도급 비용을 실제 금액보다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일해토건과 신동아건설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하는 등 본격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삿돈 횡령 등 비자금 조성 의혹뿐만 아니라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일해토건의 신동아건설 인수 과정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부터 진행된 신동아그룹 해체 과정에서 신동아건설 등 계열사 매각과 관련해 DJ 정부의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77년 신동아그룹 계열사로 설립된 신동아건설은 2001년 시공능력 평가액이 3000억여 원으로 당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여의도 63빌딩 등을 건설한 업계 40위권(현재 30위권) 건설회사였다. 그러나 2001년 신동아건설은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중소규모 업체인 일해토건에 전격 매각됐다. 일해토건은 DJ 정부 당시 관급공사를 수주하면서 1999년 91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급성장한 토목건설업체다. 당시 일해토건은 채무 870억 원을 승계하고 신동아건설을 불과 1억7700만 원에 인수했다. 2002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야당 의원들은 “신동아건설 주가를 주당 1원으로 평가해 헐값으로 매각했다”며 “신동아건설 인수자인 일해토건이 정권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특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신동아건설에 대한 본격적인 내사에 들어가면서 DJ 정부 당시 최대 의혹사건으로 꼽히는 신동아그룹 붕괴 과정의 실체가 드러날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1999년 최순영 당시 신동아그룹 회장이 구속된 뒤 대한생명과 신동아건설, 공영사, 동아제분, 프린스호텔 등 계열사가 차례로 매각되면서 신동아그룹이 해체됐다.
검찰 수사는 일단 일해토건과 신동아건설의 횡령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파헤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일해토건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DJ 정부 실세들이 신동아그룹 해체에 개입했는지를 가리는 데까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지난 2001년 신동아그룹 계열사였던 신동아건설이 일해토건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갖가지 의혹과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4조5백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은 지난 2000년부터 계열사인 신동아건설을 매각하기로 하고 충일건설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충일건설은 대한생명에 대해 주식매각대금 3백억원과 대한생명이 신동아건설로부터 받아야 할 채무 4천37억원 가운데 1천8백억원을 주겠다는 인수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한생명이 더 높은 가격을 요구했고, 충일건설이 담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 협상은 깨지고 말았다. 이후 더 이상 매수자가 나서지 않자 대한생명은 같은 해 9월 신동아건설 청산 방침을 발표했지만, 불과 몇 달 후인 12월에 갑자기 청산방침을 철회했다. 그리고 2001년 5월 일해토건과 양해각서를 체결, 그해 9월 매각했다. 일해토건은 주식매각대금 1억7천7백만원을 지불하고, 대한생명의 채무 4천37억원 가운데 8백70억원만을 떠안았다. 그리고 1천5백70억원을 대한생명이 출자 전환하는 조건으로 신동아건설을 인수했는데 이후 출자 전환 예정가를 전환사채로 변경했다.
신동아건설이 대한생명에 갚아야 할 채무 8백70억원에 대해서는 3개월 이내에 4백20억원을 갚고, 4백50억원은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일해토건이 3개월 이내에 갚기로 했던 4백20억원에 대해서 사실상 탕감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한생명과 일해토건은 9월5일자로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그 계약 기준 날짜를 그해 3월31일로 소급해 적용했다. 이에 따라 그해 4월1일부터 신동아건설이 일해토건으로 넘어가기 전날인 9월4일까지 신동아건설이 자체적으로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한 부분도 일해토건의 소유로 인정되었다. 일해토건이 자신들의 현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신동아건설 자산을 매각한 대금으로 4백20억원을 갚은 셈이었다. 한마디로 일해토건은 당장 1억7천7백만원만 갖고, 자본금 9천2억원에 도급 순위 42위였던 대형 건설사를 인수했던 것이다.
이는 2000년 충일건설이 제시했던 인수 조건과 비교할 때 파격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헐값 매각’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에서도 대한생명이 신동아건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1년 11월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한나라당 윤영탁 위원은 “일해토건은 당장 현금 1억7천7백만원만 가지고 신동아건설을 인수하게 된 것으로서 일해토건에 대해 엄청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대한생명 회장 등이 배임까지 무릅쓰면서 일해토건에 대해 이러한 특혜를 준 것이야말로 어떤 정권·권력의 외압이 있었다고 입증할 수 있는 근거다”라며 특혜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2002년 10월2일 예금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김황식 한나라당 의원은 신동아건설 매각 특혜 의혹과 관련해 “대한생명은 신동아건설로부터 받아야 할 채무 4천37억원 중 3천1백67억원을 탕감하고 나머지 8백70억원에 대해서는 3개월 이내 4백20억원을 갚는 것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머지) 4백50억원은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는 조건으로 처리하면서 담보를 취득했다고 하는데 담보 가치가 거의 없는 100억원대에 불과한 담보를 취득하고 매각했다. 나도 국회의원을 관두고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 세상에 이런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했다.
이같은 특혜 의혹에도 불구하고 일해토건에 인수된 신동아건설은 분양 사업과 민간 건축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종합시공능력 평가에서 전년보다 5계단이나 상승한 35위를 기록했다. 한국신용평가는 기업신용등급을 ‘BBB-(안정적)’로 평가했다.
지난 10년간 가슴 속에 묻어뒀던 신동아그룹 해체 진상을 털어놓다!
“법적 절차와 형평성 무시한 잘못된 판단”
“잠깐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1999년 2월 10일 오전 7시, 서울시 한남동 崔淳永(최순영·70) 신동아그룹 회장 자택에 검찰 수사관 3명이 들이닥쳤다. 최 회장과 신동아그룹에 狂風(광풍)이 불어닥친 순간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영장을 보여주시오.”
“가보시면 압니다.”
최 회장은 영문도 모른 채 검찰로 연행됐다. 이튿날 그는 외화밀반출, 계열사 불법대출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그는 검찰조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자산규모 20조원의 신동아그룹이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그룹 해체’라는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신호탄이었다.
두 차례의 구속. 평생 일군 회사와 사회적 지위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치욕뿐이었다. 그는 그룹 총수치고는 꽤나 긴 2년6개월간 구치소 신세를 졌다. 구속 8개월 만인 1999년 10월 보석으로 석방됐다가 2005년 1월 다시 법정구속됐다. 해를 넘겨 2006년 9월 건강악화로 구치소에서 쓰러지자 병원으로 실려갔다. 몸은 밖에 있었지만 지루한 법정공방은 계속됐다.
“신앙의 힘으로 참고 견뎌”
신동아그룹이 공중분해된 지 10년 만에 입을 연 최순영 前 회장. |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8월, 그는 광복절 特赦(특사)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세상까지 그를 자유인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은 그의 사면을 ‘특혜’로 봤다.
그래서 그는 큰 마음을 먹었다.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10년간 묻어뒀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됐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취재진은 서울시 양재동에 있는 횃불선교재단을 찾았다. 최순영 회장은 선교재단 이사장실 옆 작은 방을 얻어 쓰고 있었다. 10년 만에 언론과 만나는 탓인지 그의 얼굴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신앙의 힘으로 참고 버텨왔다”고 했다. 10년 만에 터진 말문은 질문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할 때는 격정적으로,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본 임직원들에게는 용서를 바라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10년이라는 세월 때문인지, 올해 일흔이 된 나이 때문인지, 그는 세상사를 초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10년 동안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재판하느라, 구치소 들락날락하느라 하는 동안 정권이 두 번 바뀌었네요. 정치적으로 엮인 사건은 사회적 여건이나 개인의 희망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치가 경제를 앞질러 가고 있어요.”
그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딱 10년 전이네요. 1999년 2월 10일 아침 7시쯤이었어요. 회사에 출근하려고 하는데 건장한 수사관들이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강제로 연행당했죠.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그룹 회장에서 순식간에 범죄자가 됐습니다.”
―그동안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5년이면 정권이 바뀌잖아요. ‘정권이 바뀌면 할 말을 할 수 있겠구나’고 생각했지요. 정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리 내 입장을 들어봐 달라고 해 봤자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기다렸죠. 그런데 제 마음대로 안 되더군요. 盧武鉉(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겁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을 가졌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어요. 反(반)기업 정서가 강한 정권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그러고 또 5년을 기다렸죠.”
다행히 정권이 교체됐지만 그의 나이가 벌써 70이 되어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청와대나 국회에 친구들도 많고 知人(지인)도 많았어요. 10년이 지나니까 그 사람들이 안 보여요. 과거에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10년이 지나니까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세월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게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해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느낌”
대한생명 본사가 있는 63빌딩. |
―연행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당시 한남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서울지검 특수1부 소속 수사관 세 명이 왔어요.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이라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요. 노○○라는 수사관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가자’는 겁니다. ‘영장을 보자’고 하니까 ‘임의동행 형식이니 가서 말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한참 실랑이를 벌였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그렇게 끌려갔죠.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 가듯 집 앞에서 저를 채 간 겁니다. 아무도 내가 끌려간 걸 몰랐지요. 검찰에 가서 보니 무역하면서 외화 밀반출이다, 계열사 불법대출이다, 별의별 것을 다 뒤집어씌우더군요. 그중에서 외화 밀반출 부분을 집중적으로 캐 물었어요. 아주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그렇게 들어갔다가 1심 재판이 끝날 무렵인 10월 22일 보석으로 나왔어요. 8개월 만에 나온 셈이죠.”
―연행될 때 직감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없었습니까.
“구속되리라 생각도 안 했어요. 검찰이 주장하는 외화 밀반출이니 뭐니 하는 그런 것들이 실제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당시 김○○이라는 무역업 전문가를 사장으로 채용했는데, 그게 문제가 됐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그룹을 운영하면서 보험업과 건설업 등에 주력했어요. 무역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러시아 무역 전문가로 자처하고 제게 접근한 김씨를 뽑은 게 화근이었어요. 그 사람의 계획적인 사기행각으로 엄청난 재산상의 손해를 봤어요. 김씨는 그룹 계열사인 ‘신아원’이라는 무역회사의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회사를 상대로 가짜 서류를 만들어 오일거래를 한 것처럼 위장해 650만 달러를 빼돌렸어요. 이른바 ‘미야림 오일 사기사건’이었죠.”
사기행위를 숨기려고 위장무역을 실행한 主犯(주범)이 김○○임에도 최순영 회장이 주범으로 몰렸다고 한다.
“그룹 계열사가 은행권으로부터 무역금융을 받아 해외로 송금한 부분은 전액 국내로 반입됐어요. 은행 대출금도 개인적으로 연대보증한 상태라 전액 상환됐고, 금융권에는 부실채권으로 인한 피해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튼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지만 검찰 수사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됐어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어요.”
최순영 회장이 구속될 당시 신동아그룹은 2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었다. IMF 직후라 모든 기업들이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신동아그룹은 善戰(선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생명을 비롯해 동아제분·신동아건설·신동아화재·한일약품·호텔송도비치·태흥산업·삼풍산업·대생상호신용금고·우정상호신용금고 등이 그룹의 대표회사였지요. IMF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전 계열사가 부도 없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1999년도 그룹사의 총자산이 약 19조7000억원이었고, 매출액은 9조2000억원 가량 됐어요. 대한생명이 주력회사였는데 1999년 2월 현재 자산 규모가 14조6800억원에 달했어요. 현금·예금액이 1조원, 언제든지 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유가증권이 2조5000억원 등 매월 3조5000억원 이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었죠. 5만여 명의 우수한 영업조직과 450만명의 계약자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매월 5000억원 이상의 수입보험료를 냈습니다.”
―신동아그룹은 당시 재계 서열 몇 위였습니까.
“한국의 실력 있는 기업이라 하면 삼성·현대·LG·대우 등 5대 그룹을 들 수 있겠죠. 나머지 그룹은 서로 비슷했어요. 신동아그룹은 서열상 24~25위 정도였습니다. 삼성이나 현대에 비하면 작은 회사였죠.”
―그룹사 총자산이 20조원 정도면 작은 회사는 아니죠.
“물론 그렇죠. 그런데 정치적으로 사건이 터지니까 하루아침에 계열사가 날아가 버리더군요. 정치적인 사건은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대처하는 방법이 좀 미숙했어요. 또 정권이 설마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8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는데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보석으로 밖에 나와보니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계열사 중에 대표적인 회사가 대한생명이었어요. 그룹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회사가 공중분해돼 가는 거예요.
물론 구치소 안에 있을 때부터 간접적으로 ‘그룹을 포기하라’는 의사를 전달받았죠. 저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 정부 측의 뜻을 가지고 와서 ‘정부가 대한생명, 동아제분 주식을 포기하라고 한다’고 전해줬는데 ‘나는 포기 못 한다’며 반발했죠. ‘너희들이 정정당당하게 기업을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 봐라. 이유가 상당하다면 내가 포기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버텼죠. 그래도 계속해서 포기하라는 압력이 있었어요. 결국 포기 안 했죠. 포기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결국 최 회장의 구속에 동의한 것 아닙니까.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면 실제로 나쁜 놈으로 보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김대중씨의 실세 비선조직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김대중씨 밑에서 야당생활을 하며 30년을 굶은 사람들이에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기업을 뜯어먹은 겁니다. 대표적인 게 신동아그룹입니다. 대한생명, 신동아건설 팔아먹으면서 오죽 했겠어요? 1000원짜리를 아는 사람에게 반값에 주기도 하고 100원에 팔면서 400~500원 받아먹고, 별의별 짓을 다 한 거예요. 회사 매각 처분이 잘못됐다고 조사해 달라고 수없이 이야기해도 馬耳東風(마이동풍)이었어요. 지금이라도 조사해야 해요.”
1977년 설립된 신동아건설은 2001년 시공능력 평가액이 2815억원으로 업계 42위를 차지(한때 28위 기록)한 중견 건설회사였다. 신동아건설은 당초 매각 대상이 아니었는데 김대중 정권 들어 급부상한 일해토건에 전격 매각됐다. 일해토건은 DJ 정권 당시 관급공사를 대거 수주해 1999년 91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급성장한 무명의 토목건설업체였다. 일해토건은 신동아건설 주가를 주당 1원으로 평가해 1억7700만원에 인수했다(채무 870억원 승계).
최순영 회장은 “여권 실세들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한 로비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이상한 매각이었어요. 특혜였죠. 계약시점을 실제보다 6개월이나 앞당겨 신동아건설이 2001년 3월 보유하고 있던 현금자산 400억원을 변칙으로 처리해 대출금과 상계처리했어요. 대한생명의 경우도 채무액 4037억원 가운데 채무액의 80%에 가까운 3167억원을 조건 없이 탕감 받았어요. 당시 여권실세들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한 로비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다 동교동 실세들에 의해 이루어졌어요. 정부가 임명한 이○○씨가 대한생명 회장으로 와서 신동아건설 등 계열사 매각을 주도했지요. 그 사람이 혼자 매각업무를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권 실세들과 연결돼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황○○ 장로가 비선조직 사람들을 만나니까 ‘우리 큰 잔치 하나 벌였다’고 그랬답니다. 신동아그룹 해체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그러더라는 거예요. 제 속이 얼마나 뒤집히겠어요. 그 소리를 듣고 큰 상처를 받았어요.
회사를 인수한 쪽은 호남계열이었어요. 좋은 조건으로 매각하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편 사람에게 매각한 겁니다. 소위 프○○그룹이라는 데가 한 예입니다. 어마어마한 비리가 많은데 조사가 안 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권도 같은 통속이라 조사가 제대로 안 됐어요.”
―‘큰 잔치를 벌였다’는 말은 신동아건설 매각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까.
“그 회사를 포함해 그룹 전체를 해체시키면서 큰 잔치를 벌였다는 얘기죠. 삼풍산업도 마찬가지예요. 인수한 쪽은 은행 차입금으로 구입했는데 거의 공짜로 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이유였죠. 그룹 총수를 구속시킨 상태에서 주력기업인 대한생명을 국영화하고 그룹 전체를 공중분해시킨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돼요. 1997년 대선 때 金大中(김대중) 후보 측에 선거자금을 안 낸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겁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權魯甲(권노갑)씨 등 당시 동교동계 실세들로 구성된 9인의 비선조직 모임에서 ‘손 좀 보기로’ 한 첫 번째 그룹으로 지목된 게 신동아였어요. 비선조직의 실체는 아시아태평양재단 출신인 황○○ 장로의 傳言(전언)으로 알게 됐지요. 이 비선조직은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정권 초기에 필요할 때마다 모여 중요사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룹 해체는 DJ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거였어요.”
“한화그룹, 대한생명 인수 위해 政·官界 로비”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로비까지 벌였다. 한화그룹은 2002년 대한생명 매각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인 전윤철씨를 상대로 국민주택채권 15억원을 뇌물로 건네려다 실패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與野(여야) 의원들에게는 거액의 돈을 건넸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 ‘김대중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鄭亨根(정형근) 전 의원은 2002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도청자료를 토대로 이렇게 폭로했다.
“2002년 9월 2일 한화그룹 金昇淵(김승연) 회장이 청와대 金賢燮(김현섭)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朴智元(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인수작업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박지원 실장은 재경부 윤모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생 매각 문제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윤 차관이 책임지고 9월 5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회의에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가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조치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국정원 도청자료는 실제상황을 녹음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순영 회장은 “대한생명 매각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로비가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김대중 정권 사람들에게 얼마를 준 겁니까.
“그건 모르죠. 그걸 알면 뭐 이거 다 해결하게요. 구체적인 액수는 알 수 없지만 거액의 돈이 건네졌어요. 단순히 푼돈 얼마 가지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죠. 국민 세금이 그들에게 건네진 겁니다. 돈을 줬다는 확실한 근거를 대죠. 대한생명을 인수하려던 한화는 당시 한나라당 중진이었던 徐淸源(서청원)씨에게 10억원을 줬어요.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는데 도움을 달라고요. 그리고 노무현 측 인사인 李在禎(이재정)씨에게도 거액을 건넸어요. 전윤철씨에게도 거액을 주려다 퇴짜 맞았어요. 그게 로비를 했다는 증거입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을 받는 데 그런 돈을 썼으니 실제로 대한생명을 인수한 후에는 얼마가 건네졌겠습니까. 실무자들한테 준 돈이 그 정도였으니 그 위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건네졌다고 봐야죠.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당시 대한생명은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이 났어요. 그런 회사에 3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부은 후 한화가 인수했으니 잔치를 벌일 충분한 여건이 돼있었던 겁니다. 이거 기가 막힌 얘기예요. 관련자들을 모두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해야 해요.”
‘3500억원이 소요되는 거로 하시오’
최순영 회장은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거액의 비자금을 메우려 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한 후 은행권 출신인 고○○씨를 초대 사장으로 앉혔어요. 얼마 뒤 김승연 회장이 그 사장한테 ‘건설한 지 20여 년이 돼 가는 63빌딩 건물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라. 비용은 3500억원이 소요되는 거로 하시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대한생명 사장은 리모델링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 같아 실제 견적서를 받아 봤죠. 1000억원대 비용이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 사장은 김승연 회장에게 ‘그렇게 비자금을 만들면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김 회장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사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어요.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더 재미있어요. 김승연 회장으로서는 그 사장에게 약점이 잡힌 셈이죠. 그걸 무마하기 위해 얼마 전까지도 연봉을 그대로 주고 있다고 해요. 그 사장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니까 고위직 장관을 지낸 지인과 술을 마시며 ‘한화의 김 회장이 말도 안 되는걸 시켜서 내가 안 한다고 해 회사를 그만뒀더니 연봉을 지금도 주고 있다’고 털어놨답니다.”
월간조선3월호
″포스코의 이상한 담합(談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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