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sr]산행,여행

곤명에 관한 자료

이름없는풀뿌리 2015. 10. 1. 09:46

쿤밍 [(곤명), Kunming]

 

중국 윈난성[]의 성도().

 

본래는 타이족()의 영역이었으나 원대() 이후 중국 중앙정부에서 관할하게 되었고, 청국 ·프랑스 조약 및 윈난~베트남 철도의 개통 등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철강 ·정밀 공작기계 ·화학비료 ·방적 ·전력 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부근에서는 인광석() ·구리 ·석탄 ·철광석 등이 생산된다. 또 베트남과 구이저우[]로 통하는 철도, 구이저우 ·쓰촨[] ·광시[西] 등으로 연결되는 간선도로의 요지이다. 과학원()의 남서분원(西) 등이 있고 남쪽에 텐츠[滇] 등의 경승지가 있다.

 

윈난성 [雲南省(운남성), Yunnan]


면적은 43만 6200㎢, 인구는 4288만 명(2000)이다. 성도(省都)는 쿤밍[昆明]이다. 북쪽은 쓰촨성[四川省]과 시짱(西藏) 자치구, 동쪽은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와 구이저우성[貴州省], 남쪽은 베트남과 라오스, 서쪽은 미얀마와 접한다. 서부를 남동쪽으로 흐르는 위안장강[沅江]을 경계로 동부는 윈구이[雲貴] 고원 서부를 이루는 해발고도 1,500∼2,000m의 뎬둥[滇東] 고원, 서부는 여러 줄기의 산맥과 그 사이를 누장강[怒江:살윈강 상류]·란찬강[瀾滄江:메콩강 상류]·진사강[金沙江] 등이 흐르는 협곡이 나란히 뻗어 뎬시종곡[滇西縱谷] 지대로 나뉜다.


또한 서부 등지에서는 아직도 단층작용이 계속되기 때문에 이곳은 지진 빈발지역에 속하며, 아열대지만 고도가 높아 겨울은 온난하고 여름은 서늘하여 날씨가 1년 내내 봄과 같다. 강수량도 여름을 중심으로 1,000∼2,000mm로 많은 편이다. 이곳에 타이족(族)의 남소국(南詔國)과 대리국(大理國)이 있었는데, 13세기경부터 중국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되고, 17세기 말 청대(淸代)에 윈난성이 설치되었다.


쿤밍 분지 등 고원의 작은 분지와 하곡평야 등지에서 2기작(期作)의 쌀을 비롯한 밀·옥수수·콩·고구마·잎담배·차·목화·과수 등이 재배되고, 남부에서는 바나나·파인애플·커피·고무 등의 열대작물도 재배된다. 산지가 많기 때문에 임산자원도 풍부하여 티크재(材)·동유(桐油)·칠(漆) 외에 각종 약재가 산출된다. 서부와 남서부의 산간지대에서는 소규모의 목축도 이루어진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중국 최대의 생산을 올리는 거주[箇舊]의 주석, 둥촨[東川]의 구리를 비롯해서 석탄·철광석·인광석 등이 산출되며, 얼하이[洱海] 호수 부근의 다리[大理]에서는 대리석도 산출된다. 이들 자원을 이용하여 쿤밍을 중심으로 철강·공작기계·주석·구리 등의 야금(冶金) 및 화학·금속가공·시멘트·피혁 등 외에 제지·제당·면방직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교통은 구이저우~베트남 철도를 비롯하여 쓰촨·구이저우 등 인접 여러 성과 미얀마·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반도로 연결되는 자동차도로, 쿤밍과 국내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항공로 등이 열려 있다. 쿤밍대학·시난[西南]민족학원, 중국과학원 시난분원 등이 있으며, 소수민족의 간부·의사·기술자 배출, 말라리아 근절 등 교육·의료면에서 변모를 보이고 있다. 주요도시는 쿤밍·거주·둥촨 외에 서부의 중심지 샤관[下關]이 있고, 주민은 한족(漢族) 외에 타이족·먀오족[苗族]·이족[彛族] 등 20여 소수민족 약 60만 명이 살고 있다.

 

 

운남성(雲南省)

 중국 서남쪽 변방에 위치하며 베트남,미안마,라오스 삼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 오색찬란한 화려한 성으로 각인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이곳을 방문하게되면 오히려 이곳의 순수하면서 소박한 매력에 더욱 이끌리게 된다.

 운남성의 서북쪽은 드높은 기세의 험준한 협곡이 펼쳐져 있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전심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우뚯 솟은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옥룡설산,합파설산,매리설산 등은 그 기묘하면서 험준한 봉우리로 국내외 빙산 등반가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또한, 서남쪽에 있는 서쌍판납의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한 기세의 풍경은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의 모습을 빗댄듯 하며, 동남쪽의 산간 평지에는 합니족이 대대로 경작해온 계단식 밭이 층층이 겹쳐져 있는데, 매년 9월이면 노란색의 유채꽃이 산과 밭을 가득채워 마치 그 모습이 땅과 하늘을 황금색으로 가득 채운듯 하다.

 이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땅에는 백족, 합니족, 태족, 나시족 등 25개 소수민족들이 운남성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납시족의 동파문화, 대리의 백족문화, 태족의 패엽문화 등 그들의 다양한 신화, 가무, 그림, 음악은 운남의 독특한 민속문화를 만들어냈다.

 또, 운남성은 인류 발원지 중의 하나로서 원모현이라는 곳에서는 약 170만년전 원시인 석화도 발견되었다. 성도는 곤명시로서 '춘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여 언제나 꽃이 만발하고 산이 푸르며, 이런 자연환경에 어울려 수많은 명승고적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 최고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o 물의 축제-경홍/서쌍판납

 징홍(景洪)은 시쐉빤나(西雙版納)로 불리우는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윈난성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라오스와, 서남쪽으로는 미얀마가 접해있다. 윈난성 북부의 험준한 지형과는 달리, 이곳은 태국과 같은 남국의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란창강이 유유히 흐르면서 만든 분지에 울창한 열대 우림의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해발이 가장 낮은 지역이 447m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우림형이어서, 우기인 5-10월 중에는 1100~1900mm의 호우가 내린다. 연평균 일조시간은 1800-2200시간이라서, "여름이 길고 겨울이 없으며, 비가 오면 가을이 되는" 날씨를 나타낸다. 시쐉빤나는 북회귀선에 걸쳐 있어서, "왕관에 박혀있는 녹보석과 같은 식물 왕국"이라고 불리운다. 4000여종의 다양한 식물군으로 인해서 독특한 자연경관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는 따이족, 지눠족, 부랑족, 하니족등이 살고 있으며 징홍시를 포함하여 1개시, 2개현, 40개진이 있다. 이들의 고유명절인 포슈이지에(潑水節)에 실컷 물벼락을 맞아보는 것도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昆明 (곤명-kunming)

곤명은 운남성의 성도로써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며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해발 1,894m의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위치해 있어, 사계절 온난한 기후조건으로 늘 봄 날씨 같다 하여 춘성(春城) 이라고도 불리며, 사시사철 꽃이 끊이지 않고 피어 꽃의 도시라고도 일컫는다.

 곤명은 면적이 21,111㎢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날씨가 온화하다. 연평균 일조시간이 2400여시간으로 일년 내내 꽃이 피어있고 초목이 사계절 푸르다. 곤명의 날씨는 사계절이 봄과 같은 특색으로 봄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다. 동백꽃(茶花),백목련(玉蘭),진달래(杜鵑),보춘(報春),백합(百合),난초(蘭花),용담(龍膽), 녹계고(綠絨蒿) 등은 운남 8대명화이다.

 

현재 곤명의 화초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동남아 지역의 주요한 화초 수출 생산지 중의 하나이다. 곤명은 관광, 역사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o 역 사 

곤명은 약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279년 초(楚)나라의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배한 뒤 한(한)나라를 거쳐 원대(원대)에 곤명현이 설치 되었다. 이 곤명(昆明)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이다.

 곤명은 한때 프랑스조차지로서 가톨릭 대성당,수녀원,프랑스인들이 출입하는 클럽등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시작되는 협괘열차는 1895년~1904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끔까지도 운행이 되고 있다. 프랑스가 원한 것은 이 지방의 주석,텅스텐,아편 등이었다. 이 지방은 또 목재, 고무 쌀 등이 풍부하다. 곤명은 태평양 전쟁에는 토호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교두보로도 이용 되었다.

 

o "곤명"의 유래

 곤명은 고대에 이 지역에 있던 부족의 명칭으로 이족(彝族)의 고대 언어의 음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274년 원대에 곤명현이 생기면서 운남성의 성도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1919년 중국 지역을 공식적으로 분할 정리하면서 운남시 정부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라 칭해졌다.

 

 

o 기 후 

곤명(昆明)은 해발 1,895m의 고도와 아열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하지만 지난91년에는 눈이 조금오기도 하였다. 7월 중 최고 온도는 29도이며 1월 최저 온도는 영하 1도이다. 대개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며 이 기간의 강수량은 약 1,500m 정도이다. 동백꽃이 만발한 2월이 곤명을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곤명의 기온

도시명

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昆  明

(곤명)

최고평균

23.4

25.9

29.6

32.3

33.4

32.2

31.7

31.0

29.9

27.5

25.0

22.7

최저평균

7.9

10.8

14.6

18.4

21.3

22.1

22.3

21.4

20.1

16.9

11.7

7.9

평     균

8.4

10.1

13.3

16.6

19.1

19.7

19.9

19.5

17.8

15.1

11.6

8.6

강우량mm

10.8

13.8

16.7

20.3

89.7

174.6

205.4

203.4

125.9

79.4

39.5

12.5

 

운남 따이족의 전통축제 살수제

 매년 4월 보름에 운남성의 서쌍판납 따이족자치주의 경흥시에서 열리는 따이족의 전통축제로 재미있는 전설을 갖고 있다.

 옛날 이곳에 한 폭군이 있었는데, 동네 7명의 처녀를 강제로 아내를 삼았다. 하루는 이 7명의 아내가 담합해 그 폭군을 죽였는데, 이 폭군의 머리가 굴러가는 곳마다 불이 났다. 이 불은 여자들이 끌어 안아야 끌수가 있어서 7명이 돌아가며 1년씩 그 머리를 안고 있었다. 이를 본 동네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물을 퍼부어 핏자국을 씻어주고 마침내 그 머리가 타고 재로 남았다고 한다.

 축제 중에는 용주경기, 자작 로케트 쏘아올리기, 상각고춤, 공작새춤, 공원놀이, 쇼핑, 살수축복 등의 행사가 벌어지고 또 이날 미혼 남녀들이 '염낭 선물하기'를 통해 사랑을 약속하기도 한다.

 

 

음 식

o 쌀국수 궈치아오미시엔(過橋米線)

 운남의 기후가 사계절 온난해서 그만큼 음식의 재료도 풍부하고 다양하며 또한 신선하다. 운남의 음식은 비교적 시고 매운데, 그 맛이 깊고 풍부하다.

 유명한 요리로는 쌀국수인 미시엔(米線)이 있는데, 이것은 쌀을 발효시켜 희고 부드러우며 시원한 감촉을 주는 면발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미시엔을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궈치아오미시엔으로 운남 음식을 대표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전통음식이다. 또 이 궈치아오미시엔은 세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나오는데, 면발과 닭기름국물, 음식재료가 따로 나와서 각각 그 것들을 기호에 맞게 첨가하여 먹을 수 있다.

 먹는 방법은 날로 나오는 내용물을 먼저 닭기름에 넣고 익힌 다음에 이미 익힌 면발과 다른 재료를 넣고 먹으면 된다. 가격은 내용물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보통 5원에서 100원 사이다.

 

o 운남의 특산, 보이차(普耳茶, 푸얼차)

 각 지방마다 특유의 차가 있는데, 운남을 대표하는 차는 바로 이 보이차다.

 이 밖에도 세계적인 차 생산지로서 많은 종류의 차가 있는데, 보이지방에서 생산되는 이 보이차는 특수한 제조법과 약효때문에 가장 유명하다. 특유의 향과 맛 뿐만 아니라 알코올제거와 가래, 다이어트에 특히 효과가 있어서 현재 세계 5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o 백족의 전통차, 삼도차(三道茶, 산다오차) 

삼도차(三道茶)는 대리에 살고 있는 백족(白族)의 전통 차로 대리고성의 남문쪽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삼도차라는 이름은 녹차나 홍차처럼 맛을 내는 차의 이름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방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백족이 손님을 접대하면서 마셨던 것인데, 지금도 백족의 혼례절차에 이 습관이 남아있으며 대리를 찾는 사람들이 꼭 찾는 유명한 지방특색이 되었다. 이 차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가지 방법에 따라 세가지의 맛을 내며, 또한 이 세가지 맛은 사람의 인생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1. 첫번째 차는 쓴맛을 낸다. 운남의 녹차를 사용하는데, 인생으로 비유했을 때 소년기의 쓰라림과 고통을 뜻한다.

 

2. 두번째 차는 달콤한 맛을 낸다. 앞의 녹차에 치즈, 호두, 설탕 등을 넣는데, 중년기의 행복함과 인생의 즐거움을 나타낸다.

 

3. 세번째 차는 달콤하면서도 쓴 맛을 낸다. 녹차에 벌꿀, 들깨, 생강, 흑설탕 등을 넣는다. 추억의 차라고도 불리며 인생 말기에 지난 날의 즐거움과 고통을 회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삼도차는 그 맛 뿐만 아니라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대리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식욕을 증진시키는 등의 건강에도 좋아 이곳 사람들도 많이 찾는 차이다.

 

 

 

관광 명소

 

'고원의 진주'라 불리는 곤명호(昆明湖, 쿤밍후)

 곤명의 서남쪽, 남북으로 40km, 동서로는 8km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호수이다.

 곤명호(昆明湖)라는 이름보다는 운남의 옛이름을 따온 전지(澱池)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면적 340㎢의 중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담수호다. 또한 해발 18,885m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원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8m로 그다지 깊지 않으며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즐길 수도 있고, 담수호답게 여러 양식장들이 만들어져 있다.

 또한 서산산림공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주변 경치도 좋아 볼만한 명소들이 10여군데 있다.

 

서산(西山)

 서산(西山)은 곤명시 서쪽으로 15km떨어진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연이어진 산봉우리가 무려 40여km 뻗어있고 해발이 1900m ~ 2350m 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 머물러 쉬고 있는 봉황새를 누군가가 닭으로 알고 벽계(碧鷄-청록색의 닭.)라고 한 뒤로 벽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의 형태가 엎드려 있는 부처와 같다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산은 삼림이 무성하고 화초가 우거진 조용하고 수려한 경치로 옛적부터 운남의 제일 가경(佳境)이라 불렸다. 멀리서 바라보면 서산은 아릿다운 미녀가 늪 양안에 엎드려 있는 듯 하다. 그녀의 머리, 가슴, 배, 다리는 생생한 듯 눈에 안겨오고 비단결같은 머리칼은 물보라속에 날리는 듯 어여쁘기 그지없어 "잠자는 미인"이라고도 불린다.

 공원 내에는 1000년 전 송(宋)나라 때에 세워진 화팅쓰(華亭寺)와 타이화쓰(太華寺), 링쉬꺼(凌虛閣), 롱먼(龍門)등 둘러볼 곳이 많다.

 

o 용문(龍門)

 서산(西山)에서 가장 장관이라 할수 있는 용문은 절벽에 영웅이 마치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공중으로 비상하는듯한 기세를 느낄수 있는 달천각(達天閣 하늘에 닿는 누각)인 용문 풍경지구가 있다.  롱먼은 청대인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돌을 파내어 갔다. 그 피와 땀으로 석실, 신상, 돌다리 등이 만들어졌다.

 용문에 서서 정상을 쳐다보면, 오백리정도 떨어진 전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삼청각을 지나 산을 오르다보면 별유동천(別有洞天)이라 적혀진 석문(石門)을 볼수 있는데, 이것이 나한산 절벽상에 위치한 용문풍경구이다. 돌로 만들어진 터널을 지나다보면 첫번째 석실(石室)이 나오는데, 절벽위로 새겨진 그림이나 글따위등의 조각이 실로 아름답다.

 그 앞으로 십여m 가다보면 보타(普陀)관광 지구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절벽사이로 터널이 있으며, 마치 굽이져 돌아가듯 만들어져 있고, 높이는 비교적 높은편이며 절벽위로 창문 같은 것이 있고, 아래로는 깊은 연못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매우 아름답고 놀라와 관광객들의 주목을 끌만하다.

 다시 앞으로 30여m 정도 가다보면 두번째 석실(石室)인 자운동(慈雲洞)이 나오는데, 그 뒤로 방과 같은 홀이 있고, 이곳 벽위로 송자관음(送子觀音)이 조각되어 있으며, 앞부분의 홀에는 마치 절벽을 그 위로 걸쳐놓은듯 하며, 앞으로 굽이진 부분에 전지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앞으로 30여미터정도 가다보면, 용문이 그 앞에 높이 세워져있으며, 골목을 지나면 달천각(達天閣)이 나온다. 이 곳에는 문방(門坊), 평대(平臺), 석도(石道), 석실(石室), 신상(神像), 향로(香爐), 촉안(燭案), 공품(供品)등이 있고 모두 암석위로 조각이 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하어촌(下漁村)의 석수(조각가)인 오래청(吳來淸)이 청(淸) 고종 40 ~ 60년때, 공력(共歷) 14년, 삼청각에서 자운동을 지나는 길을 완성했다.

 그후 도사 양여란(楊汝蘭)과 양제태(楊際泰)가 계속 수리하고, 그뒤로 72년이 지난 지금은 그 규모가 거대하고 조각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중의 하나로, 지금도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운남민속촌(雲南民俗村)

쿤밍시에서 남서쪽으로 8km 거리에 있다. 윈난의 26개 소수민족 중 약12개 민족의 촌락을 실제 형태로 모아놓았다. 한 자리에서 각 민족의 주거형태와 풍속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곳이 따이족(泰族) 촌이다. 일반적으로 거기서 시작하여 '백탑(白塔)'을 지나는 코스를 택한다. 민족촌을 시계방향으로 돌면 좋으며, 시간에 맞추어서 장소에 따라 소수민족의 민속 공연이 펼쳐지므로 알맞게 걸음 속도를 조절한다.

 태족촌은 풍치가 제일 짙고 가장 아름다운 촌 가운데의 하나이다. 열대와 아열대 식물들로 빼곡하게 가꿔진 가운데 정교하고 우아한 태족의 대나무집들로 점점이 단장되어 있다.

 백족(白族)촌은 가장 호화롭다. 백족예술관은 중국에서 가장 크고 진품이 가장 많은 나비전시관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대리석 진품관내에는 기괴한 돌들이 매우 많아 눈길을 끈다.

 

도심에서 갈매기들을 볼수 있는 취호공원(翠湖公園)

 쿤밍시내의 서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14세기 중엽 원나라 때부터 개방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8개의 물비취(水翠;호수의 갯수), 4계절의 대나무비취(竹翠), 봄여름의 버드나무비취(柳翠)라 하여 '취후(翠湖)'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공원의 산책로는 십자형으로 되어 호수를 크게 4등분으로 나눈다. 남북으로 난 길은 '위엔티(院堤)'라고 하는데, 윈난 총독인 위엔웬팡(院元傍)이 수축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이 호수는 겨울에 장관을 이룬다. '붉은입 갈매기'라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기 때문이다. 한덩어리에 1위안씩 파는 빵을 쪼개어 던져주면, 물에서, 공중에서 받아먹는다.

 여름에는 취후 가운데에 있는 '후신팅(湖心亭)'에서 많은 잉어떼를 만날 수 있다. 밥풀 튀긴 것을 던져주면서 모여드는 물고기와 놀기 좋다.

 

원통사(圓通寺)

 위엔통쓰는 쿤밍시의 북쪽 원통가(圓通街)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원통산의 남쪽 자락에 위치한다.

 쿤밍에서 가장 큰 사찰로써 당나라때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부타뤄쓰(補陀羅寺)라고 했으나 원(元)나라 때인 1301 - 1319년 중건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청(淸)나라 초기에 팔각정을 세웠으며, 각종 건물들이 보수되었다. 지금은 성(省)불교협회가 자리하고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 대칭으로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천왕전(天王殿), 원통보전(圓通寶殿), 팔각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팔각정은 원통보전 앞 연못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로 내부에 천수관음상과 옥불상이 있다. 원통보전 뒤편에는 태국의 건축양식인 동불전(銅佛殿)이 있는데 동불전안에 안치된 동불상은 태국의 국왕이 선물한 것이다.

昆明-圓通寺-01.JPG

 

남성박물관(云南省博物館)

 곤명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운남성 박물관은 1958년 지상 7층건물로 세워졌다. 총 40미터 높이의 3층 보탑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1층부터 3층까지가 전시홀로서 4200평방미터의 공간에 운남의 다채로운 민족문화와 운남 청동문화전,남조대리 불교문화전 등을 열면서 여행객들에게 아름다운 곤명을 알리고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초웅만가패(楚雄万家坝) 1호 묘의 발굴현장을 복원해 놓았으며 방대한 양의 청동기 복제품들을 제작해 전시해 놓았다. 2층 왼쪽의 전시실에는 남조국(南诏国)과 대리국(大理国)시기의 출토된 불교 예술품을 위주로 원명청 3대까지의 불교문물을 전시해 놓았고, 3층 전시실에는 <운남고생물공룡화석전>에서 1988년 운남성 원모현에서 발굴된 세계 유일의 라마원인 두골화석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전시관에는 13만여점의 각종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민족 지방특색이 가득 담겨 있는 고대 청동기만 만점 이상이다. 그 외에도 지방 특색을 가진 고대 서화(书画)등이 있으며 전시품의 90% 이상이 운남성 박물관 소장품이다.

 

금전(金殿)

 금전(金殿)은 쿤밍에서 북동쪽으로 7km 떨어진 밍펭산(鳴鳳山) 꼭대기에 있으며 청나라시대때 10년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1671년에 완공되었다.

 높이 6.7 m와 너비 7.8m의 사원은 250t에 이르는 동(銅)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찐디엔(金殿)으로 불리게 되었다.

 

쿤밍 세계원예박람원

 1999년 '인간과 자연-21세기를 향한'이라는 주제로 '세계 꽃 박람회'가 열렸던 장소이다.

 쿤밍시내에서 북동쪽으로 8키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 금전풍경명승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산과 물, 수풀의 적절한 배합으로 훌륭한 자연환경과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원예박람원은 실내 전람관, 실외 전람관, 공공시설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실내 전람관은 중국관, 사람과 자연관, 대온실, 과학기술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국의 유구한 원예전통과 풍부한 원예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외 전람관에는 수십개에 이르는 세계각국과 국제조직 및 중국각지에서 건설한 주제 전람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구, 형형색색의 꽃들, 열대에서 냉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와 지형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이 뿌리내려 있다. 모두 보려면 하루를 꼬박 걸어다녀야 한다.

 

흑룡담(黑龍潭) 공원

 흑룡담풍경구는 곤명의 북부 용천산으로 곤명시와 약 17km 떨어져있으며, 북부의 오노산(五老山) 기슭에 위치해있다. 이곳 사람들이 칭하는 사미(四美)가 있는데 각각 한사(漢祠), 당매(唐梅), 송백(宋柏), 명묘(明墓)가 그것으로, 한쪽 만의 벽위로 뿜어져 나오는 물은 그윽하고 맑으며 풍경의 우아함을 더해준다.

 매우 오래전에 10마리의 교룡이 인간세계에서 항상 악을 행했는데, 여동빈(呂洞賓 : 팔선중의 한명)이라는 자가 아홉마리의 교룡을 물리치고 진압하였는데, 나머지 남은 한마리의 흑룡이 이곳에 남았고, 따라서 흑룡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흑룡담 풍경구 내에는 두개의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데, 이중 하나는 담변의 흑룡궁으로 하관(下觀)이라 불리우며, 명홍무(明洪武) 27년(1394년, 3개의 입구와 4개의 궁이 있으며, 녹색 수림이 무성하다) 건공되었다.

 둘째는 고목이 무성한 곳에 위치한 용천관(龍泉觀)인데 상관(上觀)이라 불리워진다.

 명대에 건공되어 570년이상 되었다. 웅발(雄拔)의 아치형 패방 자극현도(紫極玄都)를 지나면, 뇌신전(雷神殿), 북극전(北極殿), 삼청전(三淸殿), 옥황전(玉皇殿), 장춘진인사(長春眞人祠)등 13개의 전각이 있다.

 청(淸)조 고증에 근거하여, 이곳은 일찍이 한(漢)대 흑수동(黑水洞)이 건공되었고, 연못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당, 원대 건공되기 시작하였으나 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다시 명대 삼중용천관도원(三重龍泉觀道院)이 건설되었다. 삼청전의 앞으로 5척정도 높이의 매우 큰 동향로가 있는데, 청조 25년에 주조되었으며, 화로에는 사람이 누워있는 무늬가 세겨져 있으며, 그 무늬 아래로 전서 28체가 새겨져있는데, 그 조각이 실로 아름답다.

 또한 유명한 삼이목이 화로를 향해 서있고, 당대 심어진 매화나무는 매년마다 꽃이 만발하다. 또한 이곳에 세워진 소나무는 약 25척에 달하며, 다섯사람이 늘어서야 둘러설수 있는 너비를 지니고 있고, 연분홍꽃이 만발한 도화나무는 높이 처마에 닿을듯하게 서있는데 역시 매우 장관을 이룬다.

 이 삼대 나무와 한사(漢祠)를 합하여 용천사절(龍泉四絶:4대절경)이라 부른다.

 흑룡담내로 명대(明代) 묘가 하나 있는데, 이것은 명조 문사인 벽이망(霹爾望)이란 사람의 것으로, 그는 명말/청초때 군대에 들어간후 청조의 쌀을 먹는 것은 치욕이다라고 하여 전 식솔들과 함께 이곳 흑룡담에 몸을 던졌으며, 후에 사람들이 그의 충성심을 기념하고자 흑룡담변에 합장묘를 만들어주었다.

 흑천관비정(黑泉觀碑亭)내로는 역대 진귀한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최고는 단연 철자비이다. 이 비석은 명(明) 영낙년(永樂年) 운남의 장춘진(長春眞) 사람인 유연의 책에서 따온 만물자생(萬物玆生)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그 기세가 마치 용이 하늘로 나는듯하며, 끊지않고 글자를 한번에 모두 써넣었다. 빛이 비석위로 쏟아지면 몇분후 오목한 부분에 빛이 굽이져 닿아 마치 북을 퉁퉁 치는듯한 느낌이 드는데 따라서 철자비(凸字碑)라 불리워진다. 흑룡담공원의 관광을 위해서는 시내에서 9번버스를 타면 이곳 앞까지 다다를수 있다.

 

대관루(大觀樓) 공원

 쿤밍시의 서남쪽에 '띠엔츠'와 접해있다. 타이화(太華)산 봉우리와 마주보고 있다고 하여 '진화푸(近華浦)'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따관로우는 청나라 강희21년(1682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강희29년에 이르러 통월정, 등벽당, 그리고 가장 장관인 '따관로우(大觀樓)'가 만들어졌다.

 185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66년에 윈난성주 왕지웬에 의하여 재건되었다.공원을 둘러보는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출입구의 반대편에 있는 호수를 배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축죽사(筑竹寺)

 쿤밍시에서 서쪽으로 18km 거리에 있다.

昆明-筑竹寺.jpg

 '헤이린(黑林)'으로 가다가 '옥안산(玉安山)'의 허리를 끼고 돌아 3km 정도 가면 '치옹쥬쓰'에 다다른다. 

 북송연간(960~1127년), 운남성이 아직 대리(大理)라는  독립국이었을 무렵, 고광(高光). 고지(高智)라는 두형제가 사냥을 하던중 한 마리의 코불소를 따라갔다가 옥안산(玉安山)에서 그행방을 놓치고 만다. 문득 보니 구름속에 위엄 있는 중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중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손에 있던 축죽(筑竹) 지팡이 뿐이었다. 형제는 영감을  받아 이곳에 절을 세우고 축죽사(筑竹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사찰은 원나라 때인 1280년에 처음 설립되었는데 불교 선종이 운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가 1885-1891년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청나라 광서(光緖) 16년(1890년)에 사촌성 출신 조각가인 여광수(黎廣修)가 5명의 제자와 함께 제작한 오백나한상이다. 형태가 각양각색인데, 희노애락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각 조각들은 인체묘사 뿐 아니라, 의복, 문양등도 독특하다.

 중국의 적지않은 사찰에 오백나한이 있지만 이곳의 조각은 그 가운데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안령온천(安寧溫泉)

 여행시 두배이상의 관람과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자 한다면 가장 훌륭한 선택은 당연히 곤명의 서쪽으로 4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녕온천이라 할수 있다.

 이 온천은 1400년이전에 이미 동한(東漢)에서 발생했다. 안녕온천은 산천이 수려하고, 환경이 그윽하고 조용하며, 광천수가 흘러나오고, 그 깊이를 뼛속 깊이 느낄수 있다.

 광천수의 색은 짙푸르기 때문에 마치 옥의 결정체를 보는듯 하다하여 벽옥천(碧玉泉)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

 안녕온천은 안녕현 접경지점의 안녕산(安寧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탕랑(사마귀)호수와 조계(曹溪)가 자살했던 격강(隔江)을 바라볼수 있다.

 온천의 남쪽으로 10m 이상의 긴 환운암이 길의 양편으로 늘어서있고, 수목이 서로 교차하며, 동굴이 겹겹으로 위치해 있으며, 역대 운사들의 시가 세겨진 암석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명대 양승암(楊升庵)이 말하길 칠미(七美)라 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맑은 물은 거울과 같고, 돌과 연못은 하늘을 이루며, 언제나 이끼가 끼지않고, 더러운것이 근접하지 못하며, 냉온의 정도가 적합하며, 차(茶)를 타기 적합하고, 요리를 하기에도 적합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칠미이다.

 온천의 온도는 대략 42℃ ~ 45℃정도로 유황성분도 없고, 하루 유출량이 약 6000t정도이다. 함유성분으로는 탄산, 마그네슘, 칼륨, 라돈등이 주를 이루며, 씻고 마시기에 모두 적합하다. 또한 피부병이나 류마티스 관절염과 여러가지 현상의 장과 위병에 효과적이며, 명대초 문인이였던 양진이 말하길 천하제일탕(天下第一湯)이라 하였다. 현재는 유명한 관광 유람요양지의 하나이며, 유람객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거나, 기타 관광을 할수 있다. 안정온천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곤명시 서역에서 전용버스를 타고가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꼽히는 석림(石林)

 

 

 곤명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석림(石林)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명승지로 대자연의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 남쪽으로 400㎢나 되는 구역에 흑색 삼림과도 같은 수백개의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다. 홀로 놓여있는 것도 있고 가로세로 엇갈려 하나로 이어진 것도 있다. 그중 유명한 이자정석림(석림-돌숲)은 면적이 약 12㎢이고 기괴한 돌들이 천태만상을 이루어 천하 제일 기관(기이한 풍경)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은 석림호수, 대석림, 소석림, 리자원 등 몇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광 여정은 5000여m, 석림풍경구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며 돌기둥, 석벽, 돌봉우리가 온갖 자태로 기이함과 아름다움을 뽐낸다.

어떤 돌기둥은 40-50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이곳의 돌들은 절묘한 그림과 같이 그 특이함으로 매일 방방곡곡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모은다. 공작새가 날개를 다듬는 듯, 서우가 달을 바라보는 듯, 唐僧石, 悟空石, 八戒石, 沙僧石, 觀音石, 將軍石, 士兵石, 시를 읊는 시인 등 무수한 석상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동물석상 외에 비 내린 뒤의 죽순, 버섯, 꽃 등 식물과 흡사한 돌들도 수없이 많다. 종석(鐘石)이라 불리는 돌은 두드릴 때마다 수십가지의 다른 소리를 낸다.

石林.JPG

 

 이 자연 석림은 거대한 자연 石景예술 보물고와 같이 유람객들이 마음껏 관상하고 상상하게 한다. 꼬불꼬불한 작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미궁 선경에 들어선 듯한 황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내용출처 : [기타] http://www.startour.pe.kr/local/china/china_infom_kunming.htm

 

 

 

곤명 시내에 있는 민속마을내 티벳불교탑

 



내가 중학교 일학년때(1955년), 큰형님으로 부터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또 TV에서 흑백으로 된
영화도 여러번 봤다.
언젠가는 한번은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던중 이번 겨울 배낭여행지로 이곳을
정하고 친구들과 여러번 만나서 상의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자료도 수집하여
지난 2월 4일 떠나 16일 에 돌아왔다.
환차로 많은 손해를 봤던 쓰린 마음을 달래려고 떠났던것 같다.

물에 비친 삼탑

 



우리들 일행의 구성은 몽골, 라오스, 실크로드를 같이 다녀왔던 윤수홍교수, 정인환
선생, 박교수와 나 이렇게 네사람이다.
이중 박교수는 종교 사회학을 전공하였기에 같이 배낭여행을 하는 동안 라오스에서,
또 이번 운남성 여행에서 종교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상식을 갖게
되었다.
지난 실크로드 배낭여행때 기록용으로 갖고 다니던 휴대용 녹음기를 잃어버렸기에
이번에는 작은 수첩에 기록하기로 마음을 작정하고 시간 나는데로 기록하니 녹음
할때 보다 더한 감흥을 얻게 되고 기록에 대한 새로운 습관을 갖게 되었다.

민속마을 십이간지 광장

 



현직에 있는 윤교수와 정년 퇴임한 정인환 선생과는 허물없는 중학교 동창이고,
박교수는 10년 후배되는 사이지만 그동안 배낭여행에서 쌓아온 정이 두터워 언제나
호흡이 잘 맞는것 같다.
총대장은 윤교수가 언제나 맡아 왔기에 이번에도 일정 예약과 진행, 그리고 경비
일체의 집행과 기록을  담당했다.
약학을 전공 하기에 일행의 건강 관리까지 담당하고, 여행 일정 진행과 꼼꼼한
경비 집행, 기록으로 우리들은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총대장 한테서 느낀다.
총대장인 윤교수는 지금 까지도 그랬지만 여행을 마치고 4~5일후에 해단식(?)을 할때면
모든 경비 내역을 상세히 적어 다음의 여행에 도움이 되겠끔 정리해 알려준다.
또 정인환 선생은 항상 많은 양의 메모리 갖고 다니며 음식 부터 많은 경치의 사진을
찍어 여행의 보고라 할만큼 많은 자료를 갖고 있고, 종종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을
타기도 하여 우리들의 여행을 알리는 홍보역할을 맏는다고 할수 있다.
박교수는 종교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전문 지식을 조사하고 우리들에게 알으켜 주어
여행지의 지식을 많이 배우고 있어 놀이적으로 변할수 있는 여행을 아카데믹하고
풍요롭게 해 준다.

소수민족 아가씨

 



나는 일정중에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할때 주위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을 물어
보고 확인하는 역활을 맡아한다.
또 다녀와서 서툴지만 기록을 남기는 일도 내 나름대로 해둔다.
모두들 사진을 좋아해서 디카는 물론이려니와 필림 카메라로 열통 가깝게 슬라이드로
찍는 열성 파이기도 하다.
윤교수와 박교수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대학교 동호회에서 사진전도 한다.

티벳사원

 



나는 이번에 사진기 때문에 아주 난감한 일을 당했다.
여행 넷쨋날, 따리(大理)에서 이틀째 되는날, DSLR형 카메라의 1기가 바이트 용량의
메모리 카드를 대체 할려고 칩을 뽑는데 메모리 칩 에 꽂히는 침이 두개가 부러져서
카메라를 사용할수 없게 되었다.
실크로드 이후 바쁘다는 핑게로 한번도 메모리 카드를 교환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
지만 얼마나 서운하고 화가 나는지...
하는수 없이 삼성 케녹스 V4 컴팩트 디카와 필림(슬라이드) 카메라로 일정을 기록하였다.
그러니 사진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좋은 경치 앞에서 자주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날씨가 화창하여 큰 부조를 받은것 같다.

석림

 



배낭여행이니 아침 늦게까지 잠도 자고, 맛있는 토속 음식도 찾아다니고 하니 언제나
우리들 마음은 여유로웠다.
특히 중국 춘절(설) 기간이라 어디를 가도 붉은 등을 달아두어 일생중에 가장 화려한
밤경치를 봤는것 같다. 패케지 여행과는 달리 시장이나,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찾아 다니며 특이한 구경과 경험도 많이 했다.
총대장 윤교수의 세심한 진행과 경비 집행, 단합된 마음이 여늬 페케지 여행단 보다
저렴하고 더 많은 곳을 구경하고 경험했는것 같다.
매일밤, 지방 특유의 음식과 술을 찾아 다니며 마셨으니 라오꽁(老公)들의 마지막
발악(?)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나이에도 문화의 다양성을 느끼고, 공존의 기쁨도 함께 한것이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따리의 야경

 



다만 모두가 중국말을 모르니 의사 소통이 가장 문제가 되었다.
나의 1988년에 두어달 배웠던 짧은 중국어와 박교수의 20여년이 넘은 중국어 실력을
총동원하고, 중학교때 소파 선생님 한테서 매맞아 가며 배웠던 한문도 총동원 하고,
언성 까지 높여 가며 손발짓도 다하며 바디 랭귀지를 연출하니 모두들 그때 마다
박장대소를 해대었다.
세친구의 나이가 60대 중반이라 소변은 왜 그리 자주 마려운지...또 중국 변소는
유료라 몇푼 않되는 돈(70원정도)이지만 아깝고(?) 기분 나쁘고 귀찮아 물을 적게 마셨다.
운남성 음식들이 얼마나 짠지, 또 소금에 저린 야크고기를 먹을때는 너무 짜서 먹지
못했던적이 있었다.
지금 운남성엔 봄이 와서 꽃이 피지만 샹그릴라는 좀 추운 편이다.
곧 황량한 들판이 푸르게 변하면 풀뿌리 케어먹는 말, 소, 돼지들도 살 오르는
소리가 들릴것 같다.

백족(白族) 아가씨

 


리짱이 해발 2,200m이고, 샹그릴라가 해발 3,200m라 그냥 있어도 숨이 찬다.
그래도 윤교수는 3,700m 고지대에서 뛰기도 했으니 실크로드 여행때 보다는 건강이
많이 좋아진것 같다.
먼산에 얹힌 만년설과 푸르디 푸른 높은 하늘, 맑은 공기를 싫컨 보고 마시고 왔다.
오늘 오후 부터 유예된 여러가지 일들을 찾아 몇일간은 바쁘게 싸다녀야 겠다.
천여장이 넘는 사진을 천천히 정리하고, 수첩에 기록된 곳곳을 더듬어야 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정사 보다는 야사 쪽을 더듬어 볼가 한다.
닥아올 5월에 또 다른 친구가 샹그릴라로 가자고 해서 그러마 하고 언질을 주었다.

그때 바쁜 일이 없어야 할텐데....

리짱 고성내

 

흑룡설산과 백수하(白水河)

 

3700m위에 있는 티벳사원

 

백족마을

 

리짱 고성 야경

 

흑룡담과 옥룡설산

 

리짱 고성내 야경

 

샹그릴라 納白湖-겨울이라 물이 없다.

 

샹그릴라 시내가 보인다.

 

 

 

개원(開遠): 운남성 남쪽의 현. 명나라 때는 아미(阿迷)라고 불렸다. 곤명, 하구(河口)의 중간에 있다. 기후가 따뜻하고 서강(西江) 상류의 여강(濾江)연안은 농업이 발달하고    과수원으로 적합하다.

고구(箇舊)
운남성 남부의 도시. 원나라 이전에는 은의 산지였으나 지금은 중국 제 1의 주석산지이다. 작은 분지이다.

곡정(曲靖)
운남성 동부에 있는 도시. 당나라 때 남녕주(南寧州), 미현(味縣)을 설치하고 명,청때는 곡정부라 하였다. 농산물로 유명하다.

곤명(昆明)
운남성의 저명한 도시. 전지( 池) 북안. 옥석과 구리의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곤명지(昆明池)
운남성 운남부에 가까운 대호. 전지( 池), 전남택( 南澤)이라고도 한다. 해발 2천미터의 높은 곳에 있으며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다. 보도하(普渡河)를  거쳐 북으로 흘러 양자강으로 들어간다.

난창(瀾滄)
운남성의 서남부에 있는 현. 현성은 만로하(漫路河)의 상류에 있다. 일대에 백이족(白夷族)이 살고 있다. 절의 산지로 유명하다.

난창강(瀾滄江)
운남성에 있는 강. 녹창강(鹿滄江)이라고도 한다. 발원지는 티벳(서장)의 탄리산맥의 동쪽에서 시작하여 운남성으로 흘러들어가서 난창강이 되고 이 하류가 인도차이나로 들어가서 메콩강을 이룬다. 이 강은 급격한 산협(山峽)을 흘러내리기 때문에 그 광경은 시, 회화에 흔히 볼 수 있으나 선박의 왕래는 몹시 불편하다. 강의 깊이는 곳에 따라 1킬로가 되는 곳도 있다.

등충(謄衝)
운남성 서부에 있는 도시. 등월(謄越)이라고도 한다. 황사(黃絲), 사향을 수출한다.

대리(大理)
운남성 서부의 현. 옛이름은 태화(太和). 월남과 미얀마의 공로이며 대리석의 산출로 유명하다. 창산(倉山), 이해( 海)등의 명승지가 많다.

몽자(夢自)
운남성 동남부의 도시. 개구에서 나는 주석을 수출하며 부근의 산물을 집산하여 상업이 성하다.

무정(武定)
운남성 북쪽의 도시. 본래는 만이(彎夷)의 땅이었으나 원나라 때 예속되어 무정로(武定路)와 화곡주(和谷州)를 두었고 명나라때 무정부로 개명되었다. 운남, 사천, 서강 3성의 교통요지이다.

사모(思茅)
운남성 서남부의 도시. 한족(漢族)과 이족(族:族)과의 접주(接住) 지대.

소통(昭通)
운남성의 도시. 금사강(金沙江: 양자강의 상류)의 지류와 지류 사이에 있는 고지(高地)에 위치하며 표고는 1,950미터이다.

애뇌산(哀牢山): 애뇌산은 운남성에 위치한 절산이다. 산세는 험악하여 계곡은 깊고, 봉우리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사시사철 밤낮없이 구름과 안개에 덮혀있는 봉우리는 그 전모를 눈으로 불 수가 없었으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천길 절벽 사이에는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험함 골짜기가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구비구비 거복을 이룬 산줄기는 백리나 뻗쳐있고, 온 산은 나이를 알 수 없는 거목으로 끝없이 뒤덮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년을 두고 인적이 드문 이 숲속에는 독사와 맹수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운귀고원(雲貴)
운남, 귀주 두 성의 대부분과 광서, 호남, 사천성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 서편은 대리, 서편 창힐산(蒼 山)의 단층애, 동편은 원강(沅江). 서부는 높고, 동남부가 얕다.

월강( 江)
운남성 동북부에서 발원하여 귀주, 광서, 광동 3성을 거쳐 남해에 이르는 강. 주강(珠江)이라고도 한다. 주류는 서강(西江), 유정(流程) 약 1천 킬로. 화남(華南) 최대의 강으로 수리(水利)는 양자강에 다음 간다.

홍하(紅河)
운남성 중부에서 발원하여 남동으로 흘러 동경(東京)만에 들어가는 강. 지류에 흑하(黑河)가 있다.

이해( 海)
운남성 대리의 동방에 있는 대호. 해발 2천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쳐져 있다. 어족이 풍부하다.

 

 

안녕하세요. 배낭여행으로 최적지 중에 한곳을 여행하시는거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좋은 여행 되시고요.

짝은 지식이지만 몇자 적겠습니다.

비행기표는 검색창에 할인항공권 치시면 아마도 차이나로드 라는 곳이 가장 저렴할 것입니다. 표는 여행사에  직접가셔서 받으셔야  합니다.( 참고 - 네이버 검색 : 주는기쁨 나누는행복 카폐 가셔서 비행기표 부탁하면 다른곳보다 저렴하게 구할수 있습니다)

여행은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가야 합니다. 필요한것은 현지 해결한다고 생각해야 하고요^^

운남의 기온은 사시사철 거의 봄입니다. 낮기온과 밤기온은 4월에서 10월초까지는 봄과 같습니다.  밤에는 사람에따라 느끼는것 틀리지만  "춥습니다."  그리고 샹그릴라와 같은 해발 3500미터 이상 올라가는 지역은 역시 몹시 춥고요.  위도상으로는 대만 상하이 등과 비슷하지만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원지역이라서 시원하고 건조한 기온으로 30도가 넘어도 땀이 나지 않습니다.

반팔 반바지 좋고요 긴바지하나와 비가 왔을때를 대비해서 긴팔 하나정도면 좋습니다. 비상약 챙기시고요...(설사약,지사제,소화제,소독약,소염제 등등)

(비행기 왕복(대략60만원) 끊고요  운남지역 여행경비는 1인당 39만원(중국돈3000원)정도 생각하시면  훌륭하게 여행 가능하고 선물도 만땅 살수 있습니다.)

첫날 인천-곤명 비행기로 3시간 반 걸립니다. 저녁출발 비행기라서 도착은 12시 반정도 도착합니다.  중국은 시간이 한국보다 한시간 늦습니다.

(인천공항 H창구에서 중국 입국합니다. 들어가는 첫번째가 A,B,C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곤명 게스트하우스 (BBC쿤밍 : 검색하면 나옵니다)이곳에 미리 예약하시면 마중나옵니다. 거기서 하루 주무시고 (가격저렴하고 한국식음식제공)  아마 여기에 예약 하셨을꺼라 생각되는데 ^^ 맞나요??????

1일차 (20일) :  운남 민족촌과 서산을 구경합니다.  일요일이라서 사람이 많을것을 대비해서 일찍가주는 센쓰^^ 필요합니다.

              중국은 56개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27개 소수민족이 운남에 살고 있고 전부 본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운남을 여행하면서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를 할수 있기때문에 강추입니다. 그들만의 풍습과 공연도 있기때문에 좋습니다.

공연 다 보시고 점심 대략 드시고 ^^ 후문쪽으로 나가면 곤명 서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보면 다마스 같은 봉고보이시면 "워 따솬 파 시샨"(나는 서산을 오르려고 한다) "뚜오싸오"(얼마냐) 라고 말하시면 15원(스우콰이) 정도 주면 올라갑니다. 산 중간까지 올라가는데 조금 돌아서 가지만 가장 싸고 편하게 가는 방법입니다. 중턱에 내리는곳에는 중국국가를 작곡한 얼이 묘가 있고요 거기서 남쪽으로 5분 걸어가면 입장료 15원내고 본격적인 서산을 느낄수 있습니다. 역시 절정은 절벽을 깍아만든 동굴통로와 통로 창으로 보이는 데치호수입니다 덴치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크기의 호수로 수평선이 보일정도로 큽니다.  조금더 오르면 "용문"이 나옵니다. 등용문 이라고도 하는데 문 중간에 있는 여의주를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 믿음도 있죠... 거기서 10분정도 더 올라가면 서산 정상입니다. 서산 정상을 중심으로 서쪽은 샤오스린(소석림)지역이 펼쳐지고 동남쪽은 덴치호수가 시원하게 보입니다 북동쪽은 곤명시내가 내려다 보이고요. 곤명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내려오실때는 15원내고 리프트 타시면 아까 차에서 내렸던 그곳에 도착합니다.  다시 차 같은 것을 잡아타고 시내로 나가는 방법이 있고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민족촌 후문까지 내려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는 60원입니다.

숙소에서 나오기전에 명함을 받아서 나오시고 택시를 타셨을때는 명함 보여주시면 데려다 줍니다. 시내까지 택시비는 약30원입니다.

일찍 주무시고요...

2일차(21일 월요일) : 아침 6시 일어납니다. 7시20분 첫차를 타야 합니다.

                                      숙소로 부터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그렇지만 표를 끊어야 하니까 늦어도 6시50분까지는 도착해서 7시 20분 따리행 첫차를 끊습니다. 7시 이전 출발 차량도 있지만 그것은 16인승 중빠고요. 타셔야 할 차는 고속버스입니다. 요금은 110원정도 4시간 달려서 12시 정각 쯤 따리에 도착합니다.

  버스 터미널에 삐끼를 뒤로 하고 터미널 정문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4번버스를 탑니다 1원 내시고요... 30여분 후에 따리고성에 도착합니다. 고성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보입니다) 3번째 정거장 가서셔 내리세요 그리고

 "공안쥐 짜이나알"(공안국 어디에요) 물어보세요. 그럼 바로 앞쪽 골목길 알려줍니다. 걸어서 20미터 들어가면 따리 "넘버3 게스트 하우스" 보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은 곳이죠 (검색창에 "따리사랑" 까페가 거기입니다) 하루20원 숙박하시고 따리에서 몇일 쉽니다. 꼭 가야 할 곳이 "남조풍정도"입니다. 그곳 들어가는 날짜부터 확인하시고요. 6명이 예약되어야 들어가는 곳인데 멋진 곳입니다. 짐푸시고 오후에는 따리 고성 이곳저곳 관광하십시오.

 

3일차(22일 화요일) : 아침7시 반에 문열어줍니다. 아침일찍 고성에 올라가서 사진찍으세요 아침 사진 죽입니다. 8시반까지 돌아와서 식사하고 9시 창산말트레킹 가십시오 강추입니다.

 전날 저녁에 사장님께 이야기 해 놓으시면 아침에 말 주인이 옵니다. 따라가시면 됩니다.

운남은 보이차를 나르기위한 차마고도가 발달된 곳입니다. 창산은 몽고군이 말을 타고 넘어와서 유명한데... 하여간 50원이면 창산 왕복 말트레킹 4시간이상 말탑니다. 잊지못할 좋은 추억이 되실껍니다.

오후 2시 다되어서 내려오실꺼에요 식사하시고 3탑사 앞까지 갔다오세요 3탑은 중국 보물1호입니다. 들어가는것은 하지마히고 80원이 아깝습니다. 바깥에서 사진찍으시고 다시 오세요 70미터의 탑이 먼곳에서나 앵글에 잡힙니다. ^^  운남의 대표적 유물이기때문에 그리고 중국보물1호의 의미가 있는 탑이니까 꼭 사진은 찍습니다.

 

오후 따리 이곳 저곳 보시고 골목골목 돌아보세요. 따리는 백족자치구입니다. 백족은 과거 몽고군에 의해 장안으로 끌려간 10만고려민족이 원나라 패망후 명군을 피해 남하해서 자리잡은 곳이 이곳이여서 흰옷을 즐겨입고 한국사람들이나 먹는 장 종류, 된장,고추장 등등 그리고 비슷한 말들이 많은곳이라고도 합니다. 하여간 백족문화를 한번 느껴보세요. 이곳만의 동파문자도 보시고 ....

저녁에는 물이 흐르는 카페에서 한잔하는것도 좋은 추억이 될듯합니다.

4일차(23일 수요일) : 남조풍정도는 가고싶다고 갈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미리 카페에 가셔서 확인하시고 가는 날짜는 월,화,수요일 중에 예약 가능하다면 그날짜의 일정과 바꿔서 꼭 다녀오세요... 액기스 입니다.

 

 남조풍정도를 가야 합니다. 중간에 갈수 있다면 꼭 중간에 다녀오시고요

남조풍정도는 오후4시 정도에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전에는 얼하이관광을 추천합니다. 얼하이호수는 긴거리 45킬로, 짧은거리 6킬로의 귀같이 길게 생긴 수심65미터의 거대한 호수입니다.  배표는 100원이지만 숙소에서 미리말하시면 50원에 표를 구할수 있습니다. 약 4시간정도 걸리고요 오전에 다녀오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배를 타고 4군데 정도 들리는데 들어가는 마을과 섬마다 입장료 별도로 받습니다. 2원에서 10원정도 ... 상술로 운영되는 느낌도 있지만 얼하이호수에서 보는 창산과 따리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오후에 남조풍정도를 들어갑니다.(숙박 식사 포함 200원)  하루를 거기서 잡니다(일정은 거기가서 느끼세요&^^)

5일차(24일 목요일) : 11시 30분까지 남조풍정도 입구로 모입니다. 배를 타고 나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오후 1시정도면 도착합니다.  식사하시고 리지앙(려강)으로 출발합니다. 버스요금 110원정도

숙소는 미리연락해 놓은 "낭만일생"이라 불리우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일박 40원정도고요. 하여간 리지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곳입니다. 터미널에서 택시타고 "따오 구청 먼코"(고성입구 갑시다)하면 10원정도 나옵니다.

 

입구에서 20미터 걸어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물래방아 두개 보이고 왼쪽으로 2층에 한국식당 (맛있음)보이고 물래방아 물흐르는 다리 건너기전 오른쪽으로 보이는 작은 골목을 따라 끝까지 가면 약 7분... 쓰방지에(사방가)라는 곳이 나옵니다. 거기서 "완고루 짜이날리"(만고루 어디있죠)라고 무르면 가르쳐주는 골목길 따라 4분 올라가면 "낭만일생" 나옵니다.  예약은 곤명 게스트하우스나, 따리 게스트하우스에 가시면 연락처 있습니다. 그 곳에서 전화 하셔도 됩니다.

거기 짐 푸시면 저녁....

 

저녁식사는 쓰방지에 내려오셔서 아까 온쪽가는 입구 오른쪽에 보면 벗꽃마을 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맛있습니다. 이곳 쓰방지에를 기점으로 움직이세요 .... 별로 해깔릴 것도 없고 거의 다 이곳으로 연결됩니다.  리지앙은 야경이 최고니까 이곳 저곳 다니면서 사진 팍팍찍으시고.... 리족과 모수족등 소수민족 복장을 한 분들과 사진도 찍으시고..... 물소리 들리는 카페에서 분위기도 잡아보세요 ^^

 

6일차(25일 금요일) : 아침일찍 리지앙 고성에 나가시면 사람들 하나도 없습니다. 이때 사진 찍으셔야 좋습니다. 어제 봐둔 곳들 그리고 모르는 곳도 이때 이용해서 여기저기 다니세요. 좋은 느낌 받으실꺼에요...리지앙은 해발 2500정도 입니다. 저녁에는 춥습니다.

 

 호도협을 갑니다. (비가 왔었거나 온다면 절대 가지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낙석으로 죽었습니다.  일주일간 비가 안왔다면 꼭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운남의 백미중의 한곳이고 자연에 감동을 받는 곳중에 한곳입니다. 호도협가는 정보는 리지앙의 숙소에서 얻으시면 가장 저렴하게 다녀오시는 방법 말해줄꺼라 믿습니다.  호도협 트레킹은 1박 2일 코스입니다.  일정이 안되니까 그냥 고성입구에서 출발하는 당일코스의 버스를 이용하면 일인당 왕복 50원정도면 다녀올수 있습니다.

리지앙으로 다시 돌아와서

저녁식사하시고 아침에 미리끊어놓은 침대버스를 타고 곤명으로 돌아옵니다. 저녁 7시정도 출발하는 버스가 두대가 있고요. 도착은 다음날 아침 6시정도에 곤명 도착합니다. 요금은 130원정도 합니다.    그것이 싫다면 다음날 비행기표를 미리 끊으십시오. 할인항공권 끊으면 대략 500원정도에 올수 있습니다. 주말이기 때문에 가격의 변동 있습니다.

7일차 (26일 토요일)

곤명도착,  한국에 가지고 갈 선물종류를 구입합니다.

보이차는 "진니엔 신차 게이워바"(올해나온 새로운 차로 주세요) 한편당 50원이 넘지 않는것으로 구입하시고요. 어짜피 곤명에서 사는 보이도 산지에서 나온거라 믿기는 어렵기 때문에 비싼돈 들일필요없습니다)

친구들에게 줄 선물은 소수민족인형 열쇠고리를 사세요. 개당 2원 이상 주지 마시고요. "얼콰이, 얼콰이"(2원, 2원) 무지하게 외치세요 그럼 2원에 줍니다.

저녁 비행기 놓치지 않도록 늦어도 비행장에 저녁 8시까지는 가서 기다리시고요 ^^

좋은 여행 되시고 기타 궁금한 질문은 "주는기쁨 나누는행복" 카페에 문의하세요. 운남에 살고 있는 한국분들이 도움 주실꺼에요 ^^

 

 

 

1. 옷차림

여름에 윈난을 여행할 때는 긴 소매셔츠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외선으로부터 과도하게 타는 것을 방지해주고, 모기나 해충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줍니다. 일교차가 크므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시간에는 낮 시간대보다 기온이 많이 내려갑니다. 보온을 위하여 울로 된 얇은 스웨터를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겨울철에도 윈난의 대부분 지역들이 그다지 춥지는 않지만 너무 두껍지 않은 다운쟈켓이나 털옷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면으로 된 속옷도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봄 가을에도 얇은 스웨터와 가벼운 외투는 필수입니다. 윈난의 대부분 지역이 다양한 날씨 변화를 보이기 때문에 긴 바지도 꼭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2. 신발

 

윈난의 대부분 지역은 지형이 험한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새 신발이나 굽이 높은 구두는 적당치 않습니다. 운동화나 가벼운 등산화를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3. 양말

 

땀 흡수가 빠른 면 양말을 준비하십시오. 특히 겨울철에 여행하시거나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적당한 양말을 여유있게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4. 선글래스

 

윈난(운남)의 대부분 지역이 고지대이기 때문에 자외선이 강합니다. 특히 봄철에는 먼지나 모래로부터 눈을 보호해 줍니다.

 

5. 마스크

 

윈난에서는 겨울과 봄철에 특히 바람이 강합니다. 마스크를 준비하시면 모래바람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줍니다.

 

6. 썬 블록

 

고지대여서 자외선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SPF 30이상의 썬블록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옥룡설산 트레킹에는 필수입니다

항공요금은 약 50만원(인천-곤명 직항)

 

 운남성은 관광할 곳이 많습니다만 곤명을 중심으로 다음네곳을 추천합니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있을 것입니다

곤명

 서산

 석림

 구향동굴

       중국대륙의 서남부 자연의 신비로움과 다양한 색채를 간직한 운남성의 성도 곤명. 2억7천만년 전 망망대해의 밑바닥이었던 곳으로 돌기둥이 겹겹이 겹쳐진 광경이 아찔할 정도로 수려한 석림과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유석이 있는 구향동굴 그리고 수직으로 서있는 절벽 속에 서있으면 구름 속에 떠 있는 듯한 서산에서 모든 관광객은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을 하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른 아침에 12개 소수민족의 풍속을 모아놓은 운남민족촌을 관람한 후, 시샨(西山)삼림공원으로 가는 케이블 카를 타고 롱먼(龍門)으로 향한다. 절벽을 깎아 만든 곳으로 길을 따라가면서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보며 시샨 관광의 백미를 즐긴다.



  현재 곤명에서는 한국사람들의 대명사인 김치가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중국어디에서 생산한 김치보다 맛이 있습니다.

님 좋은 여행 되십시요.

 

 

 

운남성 소수민족들의 명칭과 특징

 

 

○이족

인구분포
윈난성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소수민족으로 약446만명이 살고 있다. 이족은 중국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데 전체 인구수는 약 660만명이다.

역 사
이족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그 기원은 고대 서남북부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구챵인(古羌人;gu qiang ren)과 관련있는 쿤밍인(昆明人;kun ming ren)이다.

언어와 문자
고유한 민족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이족어는 한장어계(漢藏語系), 장면어족(藏緬語族), 이어지(Yi語支)에 속하며, 지역별로 구별되는 6개의 방언으로 나뉜다. 6개의 방언 사이에는 차이가 크며, 서로 의사소통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다.
또한 약 1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일종의 표의(表意)문자형식의 고유문자를 가지고 있다.

전통복장
이족은 검은색을 숭상하기 때문에 검은 옷을 즐겨 입는다. 이족만큼 전통적인 민족복장이 다양한 소수민족은 없다. 100여 종류에 이르는 전통복장은 다양한 스타일과 무늬, 공예품 장식, 색상으로 연출된다.

종 교
이족은 호랑이를 숭상하고 무사의 용기를 강조하며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불과 호랑이는 이족 원시종교의 중심 개념이다.

축 제
훠바지에(火把節, 횃불축제)와 챠화지에(揷花節, 꽃축제)때에는 전통악기인 취주악기인 루성(Lu Sheng)과 삼현악기가 연주되고 전통무용이 재현된다.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워 씨름, 소싸움, 꽃장식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담소를 한다.

하니족

인구분포
거의 대부분이 윈난성에 살고 있으며 약 126만명에 이른다. 윈난성(云南省) 남부 일대인 홍허(紅河)자치주, 위시(玉溪), 시쐉반나(西雙版納)자치주, 쓰마오(思茅)등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대부분이 산지(해발 800-2,000m)에 거주한다. 일부 소수지만 중국이외에도 태국,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에도 분포한다.

역 사
하니(哈尼)족은 오래된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이족, 라후(拉祜)족, 나시족과 같이 치앙(羌)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쓰촨(四川)성 일대에서 유목을 하던 이들은 당나라 초기에서부터 중원지역과 관계를 갖기 시작했으며, 7-8세기에 이동을 시작하여 10세기 중엽, 현재의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하니(哈尼)족은 지금까지 다른 민족을 지배하기보다는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는데, 청나라시절에 이족과 함께 反淸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으나 실패로 끝났다.

언어와 문자
이들은 3종류의 방언으로 구별되는 고유한 언어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문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57년에 정부에서 라틴어 표기를 이용해서 만들어 준 문자가 있으나 대개는 자기들의 문자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전통복장
전통 복장에 있어서는 검정색과 푸른색이 주류를 이룬다. 남자는 주로 앞섶이 갈라진 상의에 긴 바지를 입고 검은색, 혹은 흰색의 두건을 두르며 부녀자들은 주로 옷깃이 없고 오른쪽에 섶이 있는 상의와 긴바지를 입으며 가슴에는 은으로 만든 장신구 달기를 좋아한다. 복장으로 미혼과 기혼을 구분하도록 되어 있는데, 쉽게는 머리에서 구분 할 수 있다. 미혼일 경우는 머리를 길게 땋고, 기혼일 경우는 머리를 올린다. 또 바지의 길이로 구분하기도 하고, 허리에 두르는 띠의 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생 활
하니(哈尼)족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름을 짓는 방식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의 끝자가 아버지의 이름의 첫 자가 되고 아버지의 이름의 끝자가 아들의 이름의 첫 자가 된다. 이런식으로 계속 이름을 이어가는 것을 부자연명제(父子連名制)라고 부른다. 이렇게 이름을 이어가는 것은 문자가 없는 상황에서 족보를 기억하는 방법이었고, 그 집에 속했다는 귀속의식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종 교
하니(哈尼)족은 만물이 다 영이 있다는 원시종교를 갖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하니족이 조상숭배와 다신을 섬기며 "뻬이마(貝馬)"와 "니마(尼馬)"로 불리는 두 종류의 박수가 있다. 뻬이마(貝馬)는 남자로서 경전을 읽고 악귀를 쫓아내며 혼을 떠나 보내는 등의 비교적 큰 종교활동을 주관한다. 니마(尼馬)는 남녀 모두 있으며 사람들에게 길흉을 점쳐주고 무술과 약초를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일을 주로 주관한다.

축 제
스위에니엔(十月年)은 하니족의 신년축제라고 할 수 있다. 하니(哈尼)족의 역법(曆法)에 의하면 10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절기를 지키는 시기는 음력 10월 12지로 계산해서 첫 번째 용의 날에 시작해서 원숭이의 날에 마친다.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고 맞이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키우치엔(秋千 - 그네), 모치우(磨秋 - 시이소오 같은 형식), 뚜이챵(對唱 - 남녀가 팀을 나누어 하는 노래 시합), 춤, 씨름 등의 놀이를 한다.

신미지에(新米節)는 새로운 곡식을 거두어들인 후에 지내는 축제인데 그 의미는 새로운 곡식과 쌀로 밥을 해 먹는다는 뜻이다. 신미지에(新米節)는 다른 절기에 비해 지키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 하니족이 사는 지역이 해발의 차가 심해 수확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新米節에는 밥을 한 시루 해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 시루 안에는 반드시 묵은 쌀을 아래에 놓고 위에는 햅쌀을 놓아서 밥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묵은 쌀이 떨어지기 전에 햅쌀을 거두어 들여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또 내년에도 계속 여유있는 생활을 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한국의 추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따이족

인구분포
윈난성의 따이족 인구는 약 106만명이다. 주로 시쐉빤나(西雙版納)의 따이족자치주, 더홍(德宏)따이족-징포(景頗)족자치주, 껑마(耿馬)따이족-와(Wa)족자치현, 멍리엔(孟連)따이족-라후(拉祜)족-와(Wa)족자치현 등 4개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윈난성 내지(內地)에 거주하는 따이족은 극히 적은 수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변방지역(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두고 있음)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역 사
따이족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독특한 민족으로, 문헌에 의하면 고대 남방의 '위에(越)'인이 선조이다. 이는 고대 장쟝(長江)일대, 윈난(云南)성과 동남연해근처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던 '바이위에(百越)'인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이위에(百越) 민족그룹은 많은 씨족집단으로 구성된 형태로서, 그 중에 당시 지금의 윈난과 미얀마 경계지역인 더홍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띠엔위에(Dian越)'가 오늘날 따이족의 조상이 된 것이다.

따이족은 당(唐),송(宋)시대에 사회의 빠른 발전을 가져왔고, 한동안 난쟈오국(南詔國)과 따리국(大理國)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러나 10세기말 따이족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데 이른바 '징롱진디엔국(景Long金殿國)이다. 이후 원(元)시대에 '투쓰(土司; 세습족장)제도가 사회에 출현하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전까지 약 38代를 이어오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언어와 문자
따이족은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크게 더홍(德宏)방언과 시쐉빤나(西雙版納)방언으로 나눌 수 있다. 따이 문자는 본래 고대 인도자모(印度字母)계통의 병음문자로써, 태국, 미얀마, 베트남의 문자와 동일한 계통에 속한다.

1954년 이전에는 4종의 문자를 사용했으나 1954년에 기존 문자를 변형하여 새로운 따이(Dai)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원래의 따이(Dai)문을 좋아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통복장
여자의 경우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쌍빤나의 여성들은 다채로운 색상의 옷과 우아하고 날씬하게 은으로 만든 허리띠를 맨 길게 늘어진 치마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장식으로 생화를 장식하여 쪽을 지거나 또아리 머리를 한다.

금, 은, 동으로 만든 장신구도 많이 착용한다. 남자의 복장은 일반적으로 오른쪽 앞섶을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상의와 좁게 단을 접은 길고 넓은 통의 바지를 입는다. 의복은 대체적으로 백색이나 청색의 면으로 만들며, 청색으로 만든 허리띠를 매고 백색이나 청색으로 만든 머리수건을 두른다.

종 교
따이족은 주로 소승불교를 믿지만 원시종교 신앙형태도 가지고 있다. 불교 사찰과 탑은 마을마다 있다. 따이족은 일생동안 불교와 분리되어 살 수 없다. 출생시부터 불교신도가 될 뿐만아니라, 이름 역시 불교로부터 받는다. 시쐉빤나(西雙版納), 껑마(耿馬), 멍리엔(孟連)의 경우 남자는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일정기간(수개월 혹은 10년)동안 승려생활을 한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에 진출하면 경시와 천대를 받는 풍습이 있다.

이밖에 귀신을 섬기는 일종의 원시신앙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농업생산과 생활에 연관된 것이다. 자연만물에는 모두 영혼이 있고 그래서 각양각색의 신과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太陽神, 山神, 水神, 家神등). 이들이 사람에게 행복도 주고 재난도 주기 때문에 이들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축 제
포쉐이지에(潑水節)(따이력6월 6일-7월 6일 : 양력 4월)는 따이족의 절기 중 가장 민족적 특색을 지닌 3대 절기중 하나이다. 포쉐이지에(潑水節) 첫날 새벽에 남녀 모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데 청년들은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하며 특히 여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치마와 좋아하는 장식과 생화로 몸을 치장한다.

젊은이나 노인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서로를 위해 물을 뿌리며 축복을 빈다. 물을 뿌리면서 한편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水-水-水"라는 소리를 내면서 물을 뿌린다.

바이족

인구분포
약 148만명이 살고 있으며, 그중 따리 바이(大理白族)족 자치주에 80%가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는 쿤밍(昆明), 리쟝(麗江), 누쟝(怒江), 원샨(文山), 띠칭(迪慶), 츄숑(楚雄)등 윈난성의 서북쪽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쓰촨성(四川省), 꾸이조우성(貴州省), 후난성(湖南省) 등지에도 거주하고 있다.

역 사
바이(白)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는 민족 중의 하나이다. 전국(戰國)시대에 초(楚)나라의 군사들이 운남지역으로 들어와서 교통이 편리하고 자연 환경이 좋은 곳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본래 있던 민족들과 통혼을 했다. 한(漢)나라 시대에도 윈난(云南)으로 군사를 파견했는데, 이때 많은 수가 윈난에 머무르게 되었고, 또한 전쟁을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국시대에 이주해 왔던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쏘우(sou)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쏘우"중에서 일부분이 나중에 변화의 과정에서 白族의 선조가 되는 "바이만(白蠻)"을 형성했다. 8세기 중엽에는 남조국(南詔國;nan zhao guo)이 따리 얼하이(大理Er海)지역을 통일하였고, 따리국(大理國)을 거치는 500년의 통치가 있은 후 점차적으로 한 언어와 풍속을 지닌 안정된 민족공동체가 되어 가면서 "바이런(白人)"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하나의 독립된 민족이 되었다.

언어와 문자
바이족은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으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문자는 없어지고 지금은 한자(漢字)를 사용하고 있다. 대리에 거주하는 바이족은 95% 이상이 자신의 언어를 말할 줄 알며, 그들끼리 대화할 때는 바이족 언어로 얘기한다. 바이족 언어에는 북부, 중부, 남부 3개의 방언이 있다.

전통복장
흰색은 바이족이 특히 좋아하여 전통복장의 의복 색상으로도 흔하게 쓰인다. 얼하이(Er海)의 주변이나 동쪽의 젊은 여자는 머리를 길게 길러서 하나로 땋은 다음 빠오토우(包頭)를 한바퀴 두른다. 상의는 소매가 짧은 흰색 옷을 입고, 검은 색 옷깃이 있는 겉옷을 입는다. 화려하게 수놓은 앞치마를 하고, 하의는 바지를 입는데, 대부분 바짓가랑이에 흰색, 옅은 녹색, 남색 등의 천으로 둘러 장식을 한다. 신발은 꽃으로 수놓은 뾰족한 신을 신는다. 얼하이(Er海) 서쪽지역의 여자들은 머리를 틀어 올려 은장식품을 꽂고 검은 천으로 두른다. 상의는 앞이 짧고, 뒤가 길며, 목의 모양은 둥글고, 오른쪽 옷깃이 위로 가도록 된 옷을 입는다. 허리에는 허리띠를 두르는데, 양 앞섶에 그림이 있거나 꽃수를 놓은 색이 있는 긴 천을 이용한다. 바지는 비교적 짧고, 신발은 짚신을 신는다.

생 활
농업기술이 발달한 바이족은 대리석 채굴과 공예품 생산, 목각제품 조각에도 뛰어나다. 얼하이(Er海 - 따리(大理)지역에 있는 호수)부근에서는 어업으로 생활한다 따리고성(大理古城)을 돌아보고 얼하이(Er海)에서 배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전통茶(三道茶)를 마시면서 바이족의 음악과 무용 등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전통복장을 볼 수 있다. 시죠우(喜州), 죠우쳥(周城), 그리고 샤핑(沙坪)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바이족 전통시장도 특색이 있다.

축 제
바이족은 노래와 춤에 뛰어난데, 싼위에지에(三月街), 위탄후이(漁潭會) 때는 민족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절기이며 커다란 장이 서는데 예술, 체육활동 등과 함께 진행된다 훠바지에(火把節) 축제에는 여러 가지 민족 전통 놀이(소싸움, 양싸움, 활쏘기, 경마, 극놀이, 씨름, 그네뛰기 등)가 행해지고, 밤에 있는 횃불놀이가 장관을 이룬다.

○쫭족

BC 1세기전의 긴 역사를 가진 쫭족은, 그들 조상들이 구오딩(Guoding)과 로우오(Louwo)국을 세웠으며, 한나라 황제로부터 책봉되었었다

먀오족

먀오(苗)족 이름의 유래는 고대 갑골문자에서 처음 찾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먀오족의 근원을 중국 고대전설시대에 활동했던 '지우리(九黎)' 부락집단의 '싼먀오(三苗)"로 보고 있다. 원, 명, 청나라에 이르러 이들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꾸이조우(貴州)서남부와 윈난,그리고 하이난(海南)과 월남, 라오스 등지에 정착하여 오늘의 먀오족에 이르게 되었다.

먀오족 복장은 중국 소수 민족 가운데서 가장 화려한 복장 중의 하나이다. 남자의 경우, 짧은 상의와 긴 바지 혹은 큰 옷깃과 긴 적삼이 특징이며, 여자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치마를 입거나 또는 바지를 입으며, 여러 모양의 악세사리를 걸친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옷차림과 평상복 그리고 성별과 연령에 따라 입는 옷 등 약 100여 종이 넘는 복장으로 구분된다.

○리쑤족

역사기록에 의하면 리쑤족은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이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래 리쑤족은 쓰촨(四川)성 서남부와 윈난성 서북부에 살고 있었는데, 13세기, 16세기, 17세기에 세 번에 걸친 민족 대이동이 있었고, 그 이후 현재의 위치에 거주하게 되었다.

후이족

후이족은 농업과 무역을 중시했으며, 수공예품의 질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라후족

라후(拉祜)족의 대부분이 만물에 영이 있다는 정령신앙과 다신숭배의 원시종교 또는 대승불교를 믿으며,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는다. 라후족이 믿는 다신 중에 가장 큰 신은 '어샤(厄霞)'인데, 이는 수호신으로서 우주와 인류를 창조하였으며, 만물의 주재이고,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믿는다.

○와족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자연숭배의 신앙이 있는데, 그 중에서 물소를 가장 숭배한다. 자신들의 생활에서 물소만큼 유익을 가져다주며 도와주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소는 도움을 주면 주었지 절대로 사람에게 해가 되게는 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게 되었고, 가장 숭배하는 대상으로 변했다. 그래서 마을 입구마다 물소의 해골이 걸려있고, 어떤 집은 집의 지붕이나 문의 입구에 물소의 해골을 걸기도 하고 물소 머리모양의 장식을 달기도 한다.


○라시족

나시족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 문헌상 3개 방면에서 초기 納西선민의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이 주변 민족과의 계속적인 융화과정을 거쳐 오늘의 나시민족이 형성되었다.

1. 甘肅省과 靑海省의 黃河, 湟水일대의 '(구챵런)古羌人' ; 이들은 유목민족으로 戰國시대(BC.475-221)에 서남쪽으로 이동하면서 四川省을 걸쳐 지금의 麗江 일대에 거주하게 되었다.
2. 고대 西南민족중의 하나인 '마오니우이(Mao牛夷) '바이랑이(白狼夷)의 지파인 '(이런)夷人'.
3.본래 윈난성 리장현일대의 거주하고 있었던 '투주(土著)'주민

야오족

윈난성의 야오족은 약 18만명인데 이는 중국 전체 야오족의 8.2%에 해당한다. 이들은 주로 윈난성 동부의 허코우(河口)야오족자치현, 웬샨장족먀오족자치주의 마콴(馬關), 푸닝(富寧), 광난(廣南) 등지에 살고 있다.

○장포족

징포족은 윈난성에만 유일하게 있는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더홍(德宏)따이족-징포족자치현의 산악지역에서 살고 있다. 총 인구는 121,000명으로 농업을 주요산업으로 하는데, 주로 쌀, 사탕수수, 기장과 옥수수를 재배한다.

징포족은 매우 오랜 고대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노래와 춤이 뛰어나다. 집을 새로 짓거나 수확을 하거나 결혼식, 장례식 또는 귀한손님을 환영할 때 이들은 춤과 노래로써 의식을 치룬다. 남성들은 긴 칼을 차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일생동안 가지고 다니는 칼은 방어뿐만 아니라 생산도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둥그런 은 장신구로 장식된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다. 징포족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술 도기를 직접 가지고 다니며, 독성을 예방하거나 일사병을 방지하기 위하여 항상 담뱃잎, 빈랑(檳 )열매 등을 씹고 다닌다.

징포족은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가 있다

○장족

장족은 윈난성 서북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띠칭(迪慶)장족자치주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전체인구는 116,000명으로 중국 전체 티벳족의 2.5%에 해당한다. 높이 솟은 눈 덮힌 산기슭과 누쟝(怒江), 란창쟝(瀾滄江)의 합류 지점 횡단산 계곡에 사는 장족은 근면하고, 용감하며, 온화하면서 예의바른 민족이다.

장족은 티벳 불교를 신봉하며 윤회사상을 믿는다. 축제는 종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장족은 밤새도록 불을 피워놓고 주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장족의 젊은이들은 결혼 전에 자유로이 사회활동을 하며 노래와 춤을 통하여 사랑을 표현한다

○부랑족

부랑족은 오랜 역사를 가진 온화하고 친근한 민족이며 소승불교를 믿는다. 전체인구는 84,000명으로 주로 시쐉빤나 따이족자치주내 멍하이( 海)에 있는 부랑산(布朗山) 해발 1,500m의 산악지역에 거주한다.

○부이족

윈난성에 거주하는 부이족은 중국내 부이족의 1.34%에 해당하는 약 37,000명이며 뤄핑(羅平)현 계곡에 거주한다. 부이족은 연장자를 공경하는 전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푸미족

푸미족은 운남성 서북부지역 란핑(蘭坪), 닝란(寧 ), 리쟝(麗江), 웨이씨(維西) 등과 같은 해발 2,500m의 산악지역에 주로 사는데 인구는 약 31,000명이다.

주로 축산에 종사하고 일부는 농사를 짓는다. 면과 아마직물이 유명하고 대나무와 칠기 그릇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창족


윈난성에만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며 인구 29,000명으로 더홍(德宏)주의 롱촨(LongChuan)현과 량허(梁河)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누족

누(怒)족의 인구는 27,000명이다. 분포지는 윈난성 누(怒)강 리쑤(LiSu)족 자치주의 삐쟝(碧江), 푸꽁(福貢), 꽁샨(貢山), 란핑(蘭坪)이다. 주요 거주지는 해발 1500-2000미터의 누(怒)강 양변이다.

○지눠족

지눠족 인구는 18,000명으로 시쐉빤나(西雙版納)주의 지눠(基諾)산과 푸위엔(補遠)산에 살고 있다.

지눠(基諾)족은 1979년 9월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은 소수민족이다. '지(基)'는 외삼촌이라는 의미이고, '눠(諾)'는 후대라는 의미가 있다. 이 말은 합쳐서 외삼촌을 매우 존중하는 민족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이름의 의미는 모계중심사회를 형성했었던 흔적을 보여준다.

○더앙족

중국의 더앙족은 16,500명의 인구로 모두 윈난성 내에 거주하고 있다. 주요 거주지는 윈난성 더홍(德宏)따이(Dai)족-징포(景頗)족 자치주의 루시(潞西), 루이리(瑞麗), 량허(梁河), 롱촨(Long川)등의 현(縣)지역과 바오산(保山)지구의 바오산현, 기타 린챵(臨滄)지역의 젼캉(鎭康), 껑마(耿馬), 용더(永德)등과 쓰마오(思矛)지역의 란창(瀾滄)현에 살고 있다. 모두 윈난성의 서남부 변경지역이다.

이외에 미얀마에도 뻥롱(崩龍)족으로 불리우는 24만여명 정도가 살고 있다

○멍구족

윈난성에 거주하는 멍구족은 약 13,000명으로 중국내 몽골족의 0.25%에 해당한다. 위씨(玉溪)지역의 퉁하이(通海)현 치루호(QiLu湖)를 따라 거주한다.

그들은 과거 쿠빌라이 칸의 후손이기는 하나, 주변 소수민족들의 영향을 받아서 언어와 관습 및 복장 등이 다양하게 변모하여 더 이상 기마인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윈난성의 멍구족은 농사와 어업을 주로 하고 일부는 건축일에 종사한다.


○수이족

수이족 인구는 약 8,000명으로 중국내 수이족의 2%에 해당한다. 주로 푸웬(富源)현 황니허(黃泥河)마을과 일량( 良)현 따허(大河), 롱안(龍安)에 분포한다.

윈난성의 수이족은 뀌조우(貴州) 수이족과 같이 바이유(百越)족의 뤄유(駱越)지류에 기원한다. 이들은 아주 오래 전에 현재의 거주지로 이주하여 왔다.

○만족

윈난성의 만족은 주로 청나라 초기에 윈난성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청나라의 관원이나 군인들의 후손이거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후 교직자와 과학연구에 투입된 연구원들의 후손이 주류를 이룬다.

만족은 고유한 언어가 있지만 이들은 표준 중국어를 말하고 쓰며, 한족과 같은 복장을 한다.

○두룽족

인구 약 6,000명의 아주 작은 소수민족이지만 미얀마에 더 많은 수가 살고 있다. 누쟝(怒江)주 꽁산(貢山)현의 두롱(獨龍)강 양안과 북부의 누(怒)강 양안에 주로 살고 있다.

○모수오족

모수오족의 인구는 20,000여명으로 닝랑(寧 ), 용쉥(永 )과 리쟝(麗江)에 분포한다.
주요산업은 농업과 축산이다.

특성은 근면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다.

이들의 결혼풍습은 남녀가 함께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녀 배우자중의 한가족과 함께 산다.

 

마음 속에서 자리 잡은 이상향. 말로 설명 할 수도, 글로 쓸 수도, 그림으로 그리기도 어렵지만 그 이상향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어떤 곳이 된다. 물리적인 장소를 불문하고. 찬란한 21세기에 이상향에서의 불로불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의 평화만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대리와 여강, 샹그릴라까지 품고 있는 운남성이야 말로 이상향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닐까.
 

이상향을 위한 첫 발자국, 곤명
맑고 청명한 하늘, 상쾌함을 더하는 건조한 날씨는 카메라의 기종을 막론하고 선명한 사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운남성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카메라는 여권 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니면 선명한 기억이라도. 중국의 내륙 남부에 자리한 운남성 여행은 곤명에서 시작한다. 연중 따사로운 날씨로 1년 내내 꽃을 피워 봄의 도시, 춘성(春城)이라 불리는 이곳은 서울에서 직항편이 있어 먼 거리, 낯선 지명에 비해 편한 여정을 꾸릴 수 있기도 하다. 터미널, 백화점, 관공서 등의 고층 빌딩이 있는 곤명 시내는 대도시의 면모가 보인다. 그 중 둥근 돔의 이슬람 사원은 여러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 중국에서 보는 모스크는 신기하다. 기암 괴석의 석회암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는 구향 동굴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축축 늘어지고 흐르다 멈춘 듯한 종유석들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 듯하고, 원색의 조명이 비춰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기괴한 모양을 따라 동굴 내부를 오르고 내리다 보면 동굴의 규모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아름다운 돌 무리, 석림(石林)
곤명에서 2시간 가량 떨어진 석림은 땅에서 솟아난 듯한 돌기둥들이 불쑥불쑥, 그것도 늘씬하게 쭉쭉 뻗은 것들로 숲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이름도 석림(石林). 돌로 된 숲이라니 짧은 한자 실력으로도 그 뜻은 통하고도 남는다. 바다 화석이 출토되어 먼 옛날 바다였음을 짐작하는 석림은 대석림과 소석림으로 나뉜다. 아무래도 규모면에서는 대석림인데, 장장 7km에 달하는 산책로를 따라 가면 길을 막는 돌기둥과 기암괴석, 30m가 넘는 장신의 돌 기둥 절벽들이 이어진다. 다양한 돌 기둥의 크기와 색깔, 온갖 짐승 모양의 돌들을 보며 벌어진 입은 다물어 지질 않는다. 연꽃처럼 생긴 봉우리 연화봉을 지나 물에 잠긴 석림, 검봉지(劍峰池)를 구경한다. 하지만 돌기둥들의 끝 없는 도열은 그 안에서는 도저히 그 시작과 끝을 가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석림의 웅장하고 신비한 풍경을 한 눈에 보려면 망봉정(望峰亭)에 올라야 한다. 비로소 보이는 윤곽은 거대하고 신비할 뿐이다.

 
▲ 석림의 풍경
 
▲ 석림과 관광객
 
▲ 석림의 검봉지
 
▲ 구향동굴 모습
             
▲ 황과수 폭포
 
▲ 고성도시 여강
 
▲ 여강의 로맨틱한 모습
 
▲ 운남성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묘족
 

로맨틱한 도시로의 여행,대리(따리 大理)와 여강(리짱 麗江)
대리석이 나온 대리는 중국의 스위스라 불린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은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도시 앞의 이해(얼하이 洱海) 호수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대리석의 도시답게 낮에도 환한 기운으로 빛을 내는 대리석 탑과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특히 호수에 비치는 세 개의 탑인 삼탑사는 대리의 유명한 볼거리로 놓칠 수 없다. 당나라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이 근방에선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정상에는 사리가 모셔져 있다 한다. 바다처럼 펼쳐진 이해(얼하이 洱海)호수는 대리를 포함한 호수 주변의 사람들에겐 어업의 장소이고 생계 수단이다. 건조한 기후가 만들어주는 깊고 푸른 호수의 빛깔과 주변의 풍경이 그만이다.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는 코스도 있으니 바다 만큼 큰 호수의 크기와 깊이를 느껴본다. 봄, 겨울이면 호수주변에 제주도처럼 노란 유채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여강(리짱 麗江)을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로맨틱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오래된 구시가. 그 아름다움은 유네스코에 의해 마을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이 된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구시가는 중국 전통의 건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풍스럽고, 바닥에 돌을 평평하게 깔아 다른 곳과는 걷는 맛이 다르다. 게다가 마을을 흐르는 작은 개울은 점점 수량이 줄긴 하지만 마을의 운치를 더 해준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양쪽을 잇는 석조 다리와 그런 다리를 비춰내는 개울은 여강을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든다. 어디를 가나 조명이 로맨틱함에 있어서는 한 몫 한다. 여강도 예외는 아니어서 슬슬 어둠이 내리고 붉은 등에 불이 들어오면 마을은 한층 더 따뜻함과 낭만을 품어 낸다. 구시가의 편의 시설들은 이러한 고 건축을 그대로 이용해 숙소와 식당, 기념품 가게를 꾸며 멋스러움을 더했다. 식당들도 파라솔과 작은 테이블을 한적한 야외 공간에 만들어 놓아 식사를 하면서 멀리 있는 옥룡 설산을 바라보게 했다. 여성 취향적인 면이 있지만 조악하지 않은 여강의 기념품들은 이곳에서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게 도와줄 것이다.

내 마음속의 해와 달, 샹그릴라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에서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있는 불로불사의 낙원으로 묘사된 샹그릴라는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 속에 이상향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운남성 샹그릴라(香格里拉)의 원래 지명은 중티엔(中旬). 티벳족이 많은 이곳은 가는 길은 험하지만 소설 속의 무릉도원이기에 충분하다. 현실화 된 지상낙원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점점 많아지지만 샹그릴라는 그 어원 ‘내 마음속의 해와 달’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너르고 잔잔한 호수가로 핀 야생화와 쭉쭉 뻗은 침엽수들, 푸른 초원의 동물들을 보며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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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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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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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의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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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의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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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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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시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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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이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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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지방의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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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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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수가의 불교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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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의 파고다탑

 

 

중국 곤명(昆明, Kunming)- 세계지질공원 석림(石林)

2억년 전에 형성된 전형적인 카스트르지형인 석림(石林)은 운남성(雲南省)석림(石林)이족(彛族)자치현(自治縣)
경내(境內)에 위치해 있다. 곤명에서 78Km 떨어져 있으며 중국 4A급 관광지로서 "천하제일기관(天下第一奇觀)"
이라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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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림 입구에서 안내를 맡기 위하여 앉아있는 이족 처녀가이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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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림 출입구 입장권 받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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