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sr]음악세계

박인환 "목마와 숙녀"

이름없는풀뿌리 2016. 1. 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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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 / 박인희 낭송

 

 

 

한 잔의 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인제가 낳은 시인 박인환은 1950년대를 극명하게 살다 간 시인이다.
비록 31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온 몸으로 불태운 그의 시혼은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박인환의 초기시는 해방 후 외국군대의 진주와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좌익에 가까울 정도의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낸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서 박인환의 시는 전쟁과 살육을 용인할 수도,

용인할 수도 없는 고뇌 속에서 비극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다는 양심적 가책은 결국

전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우익 쪽으로 선회하게 한다.

이러한 입장은 박인환 뿐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의 경우에도 해당될 것이다.

 

전후 박인환의 시는 극심한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주의적 양상을 보여준다.

삶의 터전은 무너지고 전쟁에 나갔던 젊은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쟁이 민족의 통일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준 것도 아니다.

 

전쟁은 어느 편이건 패배의 상처만 남긴 채

막대한 인명의 손실과 천만에 가까운 이산가족과 더불어 끝나고 만 것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에 값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이러한 전쟁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은

당시 휴전회담 반대라는 거대한 민족적 분노로 그 좌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를 생각할 때 허무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단지 민족해방과 자유수호라는 명분으로 색칠해진

 살육, 운명의 장난에 불과했을 뿐인 것이다.

남아있는 것은 폐허와 허무의식, 그리고 모멸적인 삶 뿐이다.

그것은 죽음과 같은 삶이다.

여기서 그의 의식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허무적 센티멘탈리즘에 빠져들게 된다.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서 자행된 무수한 살육과 파괴,

그것은 인간적인 의지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나약성을 말해줄 뿐이며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노리개가 된

인간 자체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얻은 것 없이 단순한 살육과 파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시인이 추구해왔던 인간적인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신뢰에 깊은 상처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전쟁 전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고 그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박인환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보인다.

전쟁 기간 중의 비인간적 체험 때문에

다시는 미래를 꿈꿀 수 없고 과거에 대한 회상만이 가능한 것이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과거의 청춘의 추억만이 박인환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인환의 죽음 직전에 씌어진 것으로 이야기되는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들 시에 드러나는 것은 인생에 대한 허무와

과거에 대한 회고적 센티멘탈리즘이다.

이들 시가 깊은 천착을 통해

적극적으로 현실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박인환을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의지의 부족에 원인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 역시 박인환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전쟁을 마음 속에서 합리화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비극을 보게 된다.

<목마와 숙녀>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 형식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애도의 밑바닥에는 전후 박인환의 인생에 대한 허무와 회의가 짙게 깔려 있다.

 

박인환은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감을 제시하고

그것을 전쟁으로 인한 사랑과 인생, 문학의 죽음이라는 우리 현실에 비유적으로 관련시키고 있다.

버어지니아 울프가 절망적인 현대적 상황 때문에

인간에 대한 모든 가치와 신뢰를 상실하고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듯이

시인의 현실 역시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만큼

절망적이며 이는 곧 전쟁으로 인한 가치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단락은 버어지니아 울프의 삶의 지향과 절망에 대한 우리의 이해로 이끌어간다.

각 구절은 "―해야 한다"라는 당위를 나타내는 종결어미로 끝나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모든 가치가 훼손된 절망적인 상황을 다시금 인식시킴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시인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

처량한 목마소리,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가

서로 어울려 하나의 등가체계를 형성하며

진지하게 살고자 했지만 페시미즘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인생을 버린

늙은 여류 작가와 같은 삶의 포기에 도달치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녀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처량한 목마소리를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들어야 하며

동면을 거쳐 비로소 새로운 청춘을 찾은 뱀처럼 눈을 뜨고

인생의 쓰디쓴 술잔을 마셔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은 인생의 통속성과 죽음의 무의미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처량한 목마소리, 쓰러지는 술잔 소리와 대비되어

인생의 허무와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에 대한 서러움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시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동시에 전후 박인환의 인생에 대한 절망감, 허무감을 잘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인생은 통속적인 것인데 자살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지만

 실제로 절망 속에서 끝내 자살로 삶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류작가와 우리 전후의 절망적인 삶이 대비되어 있는 것이다.


박인환은 시집 후기에서 현대를 불안과 위기의 시대로 파악하고

반인간, 반생명적인 현대문명의 산물들로부터 진정한 시민정신,

즉 시의 원시림을 추구하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 시민정신이란 폭넓은 개념으로 제반 비인간적인 현대문명의 산물들과 대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크게 비인간적인 것과 대립되어

순수한 인간성, 인본주의의 추구와 신식민지적 음모와 대립적으로 민족의 주체적인 삶의 추구를 의미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인본주의적 입장은 현대의 모든 가치, 사상의 위기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든 사상과 교리가 결함을 노출하고 위기를 드러내는 현대 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의 본능과 체험 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 대한 입장 역시 이러한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이반되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추종이나

현실과 유리된 복고적인 감상, 토속주의를 거부하고

순수한 본능과 체험에 의지하여 현실을 파악하고

현대문명의 여러 모순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인환의 시는 몇차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6.25 이전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그의 순수한 생명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추구, 그리고 민족 현실에 대한 관심이다.

순수한 삶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추구는 문명적인,

 비인간적인 것과 순수한 인간적 욕구나 생명의지, 반항 등의 대립을 통해 제시되며

민족적 현실에 대한 관심은 해방직후 외세의 진주로 인한 신식민지적 문화의 침투와

민족문화 내지는 민족 정신의 대립을 통해 나타난다.


6.25 중의 그의 시는 주로 전쟁의 파괴와 살육에 대한 절망,

그리고 전쟁 상황 속에서의 실존적 선택의 문제가 중심이 되며

전후 박인환의 시는 살육과 파괴에 복종한 인간성에 대한

절망으로 인한 좌절과 허무감,그리고 센티멘탈리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반생명적인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원시림,

즉 인간성의 탐구라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박인환은 결코 현실과 무관한 딜레탕트도, 전형적인 속물주의자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박인환의 시는 초기시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여주며

전쟁과 관련된 시들은 파괴와 살육으로부터 인간적인 것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절망, 그리고 비극적 선택의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시 이데올로기 편향의 전쟁시들 가운데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것이다.
전후의 감상적 허무주의 역시 전쟁을 합리화할 수 없었던

50년대 가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소녀적인 감상으로 처리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한편 그의 시는 초기 시에서 후기시까지 전체 변화과정을 통해

초기의 진보적 경향으로부터 반공적인 이념으로 선회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변화는 전쟁이 강요하는 비극적인 선택과 관련된 것으로

우리 사회의 분단 고착화 경향을 반영해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