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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유물로 재구성해본 고조선의 강역의 범위

이름없는풀뿌리 2016. 1. 13. 17:24

1.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유물로 재구성해본 고조선의 강역의 범위

 

글 순서

1.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유물로 재구성해본 고조선의 강역의 범위

2.환웅, 웅녀의 실제 유골상과 물의 수호신 용이 있는 유적

3.고조선을 침략한 진개의 유물과 고조선 역사까지 침범하는 동북공정  

 

 1부 제 5의 문명 요하를 가다(2009.8월 29일 토 20:00~21:00 KBS 1TV)

 

1) 우리 문명의 시원지

흔히 우리문명의 시원지를 홍산 문명이라 하다가 요즘은 요하 문명이라 하는데 사실 이 홍산이나 요하는 멀지 않기 때문에 홍산문명, 요하문명하는 소리는 지금 우리가 붙여놓은 이름이지 실은 그곳이 그곳인 같은 지역이었다.

KBS 에서는 이 프로 방영에 그간 유명한 국내 담당분야 학자와 중국의 역시 유명한 담당분야 학자들의 해설로 방영을 했는데 글쓴이는 매우 좋은 유물 정보도 얻었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같은 범위의 사건을 다른 문화의 사건인것처럼 잘못 알기 쉽게 보도된것도 있어 글쓴이는 방영 순서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건 같은 유물은 한군데로 몰았으며 또 우리 상고사 역사를 밝히는데 자료가 빠진것은 그간 글쓴이가 수집했던 자료로 보강 하고 화질 문제로 KBS 에서 DVD를 구입 캡춰 사진을 올리며 이 글을 쓴다.

 

 

우선 요하문명이라는 요하부터 본다. 지금은 물이 많이 말라 작은 강이지만 대략 4~5 천년 전만해도 많은 물이 있는 큰 강이었다 하는데 이 부근에서 우리 고대 문명 특히 대략 8 천년전 여신족 이었던 곰네(熊女)족의  많은 유물이 출토 된다.

 

다음은 홍산 문명이라는 홍산이다.

 

 

이 홍산에 누가 만들어 걸었는지는 모르나 꼭 차마고도에 나온것 같은 오색천 쪼가리를 걸어 놓았기에 이것의 이유와 또 앞으로 다음장에 나올 환숫님과 곰네(熊女) 할머니가 밝달임금(檀君)을 낳고 환숫님과 같이 하늘나라, 즉 지금 바이칸 호 부근에서 내려온 대략 3 천명의 무리와 혼혈 우리 민족을 세우고 앗선(첫 조선)을 세우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잠시 말을 옆으로 돌린다.

 

글쓴이가 전에도 수 많은 글을 올렸드시 이 땅덩이는 생명들이 살라고 만들어 진것이고 모든 생물의 숫은 씨를  뿌리는 존재이며 여음은 그 씨를 받아 키우는 존재이니 사람도 여기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하느님의 신지녹도전자 진본 천부경 교훈은 불교의 심본주의(心本主義)나 기독교의 신본주의 와는 다른 인본주의 (人本主義)다.

이렇게 사람은 사내는 씨를 뿌리고 여자는 씨를 받아  키우는 일이 중요한데 우리 밝달임금때만 해도 결혼제도가 없었다.

그저 씨름의 승자가 씨를 뿌리고 겨집 역시 아무나 가리지 않고 그저 씨름의 승자면 씨를 받아 키웠던 것이기에 하느님 아들이라는 환숫(환웅) 조차도 사내마을인 서자부(庶子部)에 살았기 때문에 서자  환웅이란 기록이있다.

 

2) 씨름의 우리말 뜻

씨름은 '씨놀음 '이 단축된 말이다. 그렇다면 '씨노름' 은 무엇인가?

지금 씨름은 황소 한 마리를 걸고 한다. 즉, 이긴 자가 황소를 타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황소 노름이지 씨노름은 아니다. 따라서 씨놀음이란 '씨를 다투는, 즉 씨를 누가 뿌릴 것인가를 경기화한 것'이고, 여기서 이긴 사내의 강인한 유전자를 전승시킬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씨놀음은 후방위교접이었으며 은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판정관 앞에서 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먼저 제시했던 보스턴 박불관의 유물. 풀치마를 입은 왕 앞에 엎드린 계집들과 그 뒤에서 엉거주춤 서있는 사내들 , 그렇다면 그들은 후방위 교접을 했다는 말이다.

 

고조선 유적지에서 출도됬으나 지금은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있는 청동기 유물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씨놀음을 통하여 기형아나 무지랭이들의 씨는 전수시키지 못하게 했었을 것이니그 덕분에 우리도 건강한 건 아닌지?

하여간 5.000여 년 전 선조들의 성생활을 두고 현재 우리가 이조 500년의 타성에 젖은 현재의 예의와 도덕이라는 잣대로 비도덕적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환숫의 상징은 소나무.

이 씨 뿌리는 기구를 가진 사내의 대표가 바로  환숫이다.

이 환숫은 신지녹도 천부경 셋에 보듯 나무(고구려때 이두를 풀어 보면 소나무) 이고 이 나무는 환숫의 남근을 의미 하므로 나무 아래는 돌을 싸아 여름 형태를 만들어 남근이 여음상에 그대로 꽃는 형태를 만들고 나무 둥치에는 새끼줄에 신성한 음모를 뜻하는 오색천을 찢어 감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6.25 전후까지만 해도 산마라에서 보던 서낭나무 이다.

 

환숫을 뜻하는 진본천부경 신지녹도전자의 환숫 글자.

 

이 그림으로 木자가 만들어 졌다. 아래 우리 조상이 만든 金文을 보실것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인용

 

따라서 신성한 음모를 뜻하는 오색천은 환숫 남근을 나무 둥치로 보고 이에 감아야 하는데 위 홍산에 걸어 놓은 것은 민속 마을에 걸어 놓은것 같이 잘못 되었다.

그러나 지금 차마고도의 티벳인들도 높은 산 봉우리 아래 이런 오색천 쪼가리를 걸어놓은것은 우리 말을 한자로 적자니 할수없이 이두를 쓴 것이고 그런 이두 기록은 고구려, 백제, 신라등의 역사를 적어놓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에도 많이 나타나지만 환단고기에도 에도 나타나고 특히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산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도 '산상웅상(山像雄常)'이라는 말이 써 있다.

 

3)산상웅상의 비밀

환단고기 소도경전 이맥의 마한세기(馬韓世記) 上 중에
...自時蘇途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山頂皆有四來之民環聚墟落四家同井二十稅一時和年豊露積邱山萬姓歡康之作太白環舞之歌以傳....
(...이때부터 소도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 을 산 정상에서 보게 되었다.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이십분의 일의 세를 내었다. 해마다 풍년이요 어덕과 산에는 노적가리가 쌓이니 백성들은 즐거워 ‘태백환무’ 라는 노래를 지어 전했다....

 

산해경 기록

 '北有樹名曰雄常先八代帝於此取之'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를 웅상이라 한다. 선대 팔대 제왕도 이를 취했다)

이말을  한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 박사는 이 山像雄常이란 말은  저 유명하신 안호상 박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한단고기 201쪽)

그렇다면 그런 대 석학들도 이 山像雄常을 왜 모르는가? 이는 이두로 써진 문장이기 때문에 한자 뜻대로  '山 형상의 숫컷 형상'이라고 번역하려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두를 모르면 감히 우리 역사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옛말에서 山은 '산'이라 하지 않고 '오름'이라 했다. 지금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오름세가 '위세오름'인데 이 '오름'이 바로 우리말이 그대로 살아있는 山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 글에서 山은 무엇인가? 우리말 '산'이란 400년 전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만 보더라도 丁을 '산정'이라 했다. 즉, 장정(壯丁) 젊은 '사내'를 그냥 '산'이라 했는데 이는 에 접미사가 붙어 산애>사내가 단축된 말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이 우리말 산(사내) 형상의 숫컷 나무를 한자로 적자지 사내라는 산을 山으로 적어 놓은 것이고 후세에 이를 본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그 사내인 산이 뫼인 山인줄 알고 산에 오색천을 찢어 걸어놓는 풍속이 생긴 것으로 보는데 이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즉 소나무인 환숫을 숫아있는 山으로 보고 나무 둥치에 걸어 놓아야할 오색천을 산 허리에 걸어 놓은것 뿐 이니 말이다.

 

여기서 하나 특기할 것 하나는 중국의 8 대 제왕들도 북쪽에서 이 우리의 산상웅상의 풍속을 취해 갔다 하는데 그 8 재 제왕이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로 알고있는 삼황과 오제로, 그가 누구인가는 설이 구구 하지만 대략 삼황은 태호 복희, 염제 신농, 황제 헌원을 말하고 오제는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요 도당, 제순 유우이다. 이렇게 화하족인 중국인들 조상들 초차 환숫의 풍속을 전해 갔다는것도 유의 하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위 오색천이 걸려있는 홍산은 우하량에 있고 이곳에서 주로 앗선(첫조선) 유물들이 많이 출도 된다.

 

 

 

 

4)천지인 ㅇ ㅁ 의 실물들

* 빗살무늬 토기 설명과 분포지

 앗선 유물 중에 우리 민족만이 만들었던 빛살 무늬 토기 분포지 이다.

이 빛살무늬 토기가 왜 우리 만족만의 것인가는 그 빛살의 빛은 바로 환숫을 의미하고 그 빛을 받는 누리는 바로 곰네를 의미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진녹도문자 진본 천부경 하나 둘 셋....열중 바로 하나의 '' 에 해당하는 글자다.

 

햇빛의 정기를 받는 나뭇가지. ''.

 

그 빛을 누리(땅)인 곰네게게 전해주는 ''

 

 

 

 

 

 

따라서 빛살무늬 토기는 사선인 빛과 그 빛을 받는 ㄴ 형태의 누리가 있다.

 

 

 

 

5) 천부인 ㅇ ㅁ ㅿ의 실물들

 *  하늘 천부인 청동거울

 원래 하느님은 새 나라를 세우려는 환숫께 우리 말과 글자의 표상이 되는 천지인(天地人) 천부인( 天符印)  원방각(圓方角 ㅇ ㅁ ) 세개를 내리시는 기록이 삼국유사나 환단고기 등에 써 있고 이 천부인 세개는 상징적 물건이기도 하지만 당시 쓰던 물건이기도 했으리라 추정했다.

따라서 환숫은 그 신하 신지를 시켜 이 천부인 세개로 우리 말과 글자를 만든다는 추리도 글쓴이는 육하원칙을 통해 그간 써 왔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고 이 실물이 무엇인가는 그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 했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를 하늘 천부인은 ㅇ 이며 이의 유물은  청동거울이라는 데는 여러 학자와 이견이 없었다.

 

아래는  야후에서 퍼온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  땅 천부인 방패형 작두칼

다음 方인 ㅁ 은 ㅁ 형의 방패형 작두칼이며 이 방패형 작두칼은 짐승이나 외적의 방어는 물론 짐승을 잡았을때 절단하는 칼로 한 면이 칼날이었을 것으로 보는데 이는 청동이기 때문에 재질이 물러 자주 갈다 보면 현재의 작두칼이 된것으로 보아 방패형 작두칼 이라 추리 했었으나 실물의 증거가 없던중 이번 KBS 방영으로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다음은 앗선 유적지에있는 암각화로 거의 남한의 것과 비슷한데 여기에는 ㅇ ㅁ 을 근간으로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바위의 그림을 KBS 에서 노란 색으로 돌출 시켜 그린 그림이다.

 

 

 

 

이 함안 도항리나 포항 칠포리, 그리고 울주 천전리등 한국에서만 볼 수 있던 ㅇ ㅁ ㅿ 으로 디자인한 암각화가 앗선 유적지에서 주로 나타나는 지역

 

국립 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의 말. 

 

여기서 검파형( 劍把形)이란 칼자루 무늬라는 말인데 이는 암각화의 ㅅ형인 <<<<<< 이 될 수도 있고

 방패형이란 역시 포항 칠포리나 또는 천전리 암각화와 같은 다야몬드 형 일 수도 있다.

 

 * 사람 천부인

다음은 천지인중 人인 형태의 창동과(靑銅戈)외 이것이 변해 비파형 동검, 그리고 쇠가 나오자 현재의 칼이 되는 모습이다.

 

완전 세모꼴로 된 청동과(靑銅戈)

 

 

세모뿔 삼지창이 비파형 동검으로 변하는 모습. 이는 아직 창이나 칼의  용도로는 쓸 수 없는 제례 의식용으로 본다.

 

야후에서 퍼온것

 

이것이 비파형 동검으로 변하여 유골과 같이 묻힌 그림

 

 

 

특이하게 칼 자루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비파형동검

 

비파형 동검이 출토 되는곳

 

 6) 이집트 피라밋보다 무려 천년이 빠른 적석총

 

 

 

 

 

이상으로 보아 중국인들의 문명은 황하 문명이고 이보다 수천년이 빠른 문명은 홍산문명을 포함한 요하문명과 요동반도를 포함한 장강문명이 앗선(첫조선) 문화 라는 증거가 위 유물로 나타 난다.

 

아래 KBS 에서 방영한 그림은 좀 잘못  됐다. 즉 앗선 유적지는 지금 중원이 아니라 발해만을 끼고 도는 만리장성 아래 산칭따오(靑島) 까지 포함되는 산동반도 임이 밝한= 붉한인 변한이었다는것이 치우 천왕이 황제헌원과 싸운  전적지와 묘 등으로 도 나타 난다.

 

 

또 그 부근에서 나타나는 인골들의 유전학적 검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래 KBS 에서 방영한 그림역시 좀 잘못되었다. 고 동북형의 유골은 위에서 말 했드시 지금 靑島가 있는 산동반도에도 까지에서도 나온다.

 

그렇다면 앗선의 강역은 어디까지 인가?

 

 

 

 

만리 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

 

만리장성옆 연산산맥이 화하인인 중국인과 동북형인 우리 민족의 경계 선이라 하지만 이도 잘못된 말이다.

 

 

 국제 뇌교육 종합대학원 대학교 국학과 복기대 교수의 말이다.

 

이상을 보면  요하문명, 홍산문명이 다 고고선 문화가 아니라 그 전은 부족상태의 마을 이었고 약 4500 년을 전후해 70 개 이상의 성을 관리하며 국가 체제를 이루었던 체제가 비로서 나라인 고조선이라 했으니 그 연대대는 지금 단군기원 연대와 거의 같게 맞아 떨어지며 따라서 환웅의 神市 등도 나라로 보는것은 잘못된 말이다.

 

 

이 기록들은 여러 사서에 나타난다.

 

 다음은 신문대 역사학과 이형구 교수의 말이다.

 여기서 오랑캐란 당연히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동이족이다.

 

 

 

 

 이형구 교수의 말 처럼 우리 민족의 문명을 홍산문명 또는 요하문명이라고 한정된 개념을 말 하는것은 잘못 된 것이고 실은 지금 북경까지 포함하는 발해연안 문명 이라 해야 합리적인 표현이 될 것이다.

 

 다음은 2. 환숫, 곰네상의 실제 유골과 물의 수호신 용과 있는 유적

 

 

 

 

 

 

출처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글쓴이 : 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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