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r]인류진화

우리는 빙하기에 살고 있다 / 차상민

이름없는풀뿌리 2018. 11. 3. 06:37

[날씨이야기]우리는 빙하기에 살고 있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입력 2018-11-03 03:00수정 2018-11-03 03:00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이번 주 서울에서 첫 얼음이 관측됐다. 다음 주 입동을 시작으로 곧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살아 있는 많은 것들이 생명을 유지하기 힘든 계절이 온다. 겨울의 어원이 ‘집에 머물다’라는 뜻에서 비롯됐다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겨우겨우’ 살아야 하는 계절이라는 해석이 더 와닿는다.

적도에 위치한 안데스산맥에 해가 지면 열대의 더위는 사라지고 밤은 영하의 겨울이 된다. 안데스 고지대의 동물들은 해가 뜰 때까지 출산을 늦춘다. 갓 태어난 새끼가 얼어 죽기 때문이다. 새들은 밤이 되면 심장 박동을 최소화하여 겨우 생명만 유지하는 혼수상태에서 동트기를 기다린다. 안데스의 동물들은 여름과 겨울을 하루 안에 겪으며 어렵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사계절을 일 년에 경험하지만 지구는 수만 년에 걸쳐 추운 빙기와 덜 추운 간빙기를 번갈아 겪는다. 275만 년 전부터 시작된 빙하기는 4만1000년 주기로 나타나다가 90만 년 전부터는 10만 년의 주기를 보이고 있다. 빙기가 되면 지구 북반구의 대륙은 두께 2∼3km의 얼음에 뒤덮여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고 간신히 살아남은 생명들이 간빙기의 온화함을 누린다. 우리 인간은 빙하기에 태어나 마지막 빙기를 버텨내어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간빙기에 번성하며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밀란코비치는 지구의 천체운동 변화가 지구를 비추는 태양빛 세기에 영향을 주고 이 때문에 빙하기가 나타난다고 했다. 지구 공전 궤도의 찌그러짐 정도(이심률)에 따른 주기가 10만 년, 자전축 경사에 의한 주기가 4만1000년, 자전축 요동(세차운동)에 의한 주기가 2만6000년 등 ‘밀란코비치 주기’는 빙하기의 주기로 나타난다.

지구에 언제 또 빙기가 오게 될까. 과학자들의 견해는 5만 년 후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 때문에 빙기 도래가 늦춰질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산업혁명 후 지금까지 총 5450억 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였는데 이로 인한 온실효과로 지구 평균 기온은 0.8도 상승했다.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두 배 더 배출하게 된다면 5만 년 뒤에도 빙기가 안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 지구에는 또다시 빙기가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빙하기의 주기 속에 산다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호재가 된다. “어차피 빙기가 다가올 텐데 지구온난화를 걱정할 필요가 뭐 있는가”, “지구온난화로 빙기 도래가 늦춰진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러나 지구에 빙기가 오기 전에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당장 우리 아들딸, 손주들과 또 그들의 아들딸에게 미친다. 수만 년 후의 빙기의 문제는 그때의 인간이 대처할 일이다. 

지금의 생명들은 빙하기의 추위 속에서 어렵게 적응하여 살아남은 종(種)이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맹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했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빙하기에 태어난 생명들에게 온난화로 뜨거워진 지구가 오히려 버텨내기 더 힘들지 모르겠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