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랑시대로……?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2007/07/12 -
뒤웅박 나무숟가락 이 빠진 막사발까지
다 챙겨 짊어져도 얄팍한 살림살이
허기져 떠돌던 할아버지 질경이처럼 발붙인 곳
부뚜막 황토맥질 맨손으로 가다듬은 아버지
머물고 싶은 마음, 물 항아리 깊이 묻고
푸성귀 거친 밥일망정 달디달게 받으시며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로 족하제 암만, 그려”
비바람 스며드는 집 소탈한 웃음 묻어나고
이불 속 달박달박한 자식들 그저, 자랑거린데
우렁이 새끼 제 어미 살 다 파먹고 기어나가듯
뼛속까지 텅 비어도 내색 한 번 못하고
버겁진 온 몸을 밀어 넓은 세상 길을 트니
자고나면 껑충 뛰는 부동산 시세 쫓아
철새처럼 무리무리 짐을 싸는 세대들
실뿌리, 그마저 끊겨 道理는 멀고 먼 얘기
단 번에 낚아채려 컵라면에 한뎃잠 자며
사나흘씩 줄을 서도 당첨은 선택된 자의 몫
또 다시 줄 설 곳 찾아 떠도는 행렬 그 뒤
비정규직 구조조정
내몰려 등이 휘고
떠밀린 국제시장
빈손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
한 겨울 고치 없는 애벌레
감싸줄 나뭇잎은…….
강가 암벽 - 짝사랑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물을 굽어보면서도 한없이 목이 마른
탄타로스의 이 형벌 끝이 보이지 않는데
찢어진 살갓을 비집고 솔씨 하나 촉 틔운다
* 탄탈로스(Tantalos) : 그리스 전설에서 소아시아의 시피로스산 부근의 왕. 제우스와 플루토의 아들
로 펠롭스(Pelops)와 니오베의 아버지. 막대한 부를 가지며 신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거만하게 자
라서 신들을 시험하고자 자기 자식 펠롭스를 죽여 요리한 뒤, 이를 신들에게 바쳤기 때문에, 또는 신
들의 식사에 초대된 후 그 비밀을 인간에게 누설했다, 또는 신들의 음식물인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홈쳐서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에 벌로서 지옥의 밑바닥인 타르타로스로 떨어졌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그는 거기에서 목까지 늪 속에 잠겨 있었는데,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이 없어지고,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머리 위의 가지에 손을 뻗치면 가지가 물러나서, 영원한 굶주림과 갈증에 고통을 당했다고 하
며, 또한 핀다로스에 의하면 머리 위에 큰 돌을 매달아서 끊임없이 눌리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탄탈로스에 살해된 펠롭스는 이후 신들에 의해서 소생되고, 아트레우스의 아버지, 아가멤논,
메네라오스 등의 조부가 되었다.
미이라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흙으로 돌아가야 할 편안한 길 막아서서
산 자들의 욕망으로 내 육신 탱탱히 조율해
이, 저승 단단히 잇대어 촘촘촘 박음질했다
산성비 썩지 않는 낙엽 그네들 바램인가
바위 속 깊이 잠든 화석 그들에겐 무엇인가.
영생도 큰손 가지면 근저당 잡을 수 있나
동백꽃 붉은 기름 화르르 온 몸에 부어
소지 올리듯 소지 올리듯 그렇게 떠났으면
흙으로 갈 수 없다면 한 줌 잰들 어떠리.
* 420년 전의 애절한 편지 : 1998년 4월 안동 정상동 택지조성을 위해 이곳에 있던 분묘를 이장하던
중 조선중후기를 살았던 고성 이씨(固城李氏) 15세 이명정(李命貞1504∼1565)의 처 일선 문씨(一善文
氏)가 미이라 상태로 45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후 20여 일만에 다시 손자인 이응태(李應
台1556∼1586)가 염습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두 사람의 목곽 내
부가 조금도 상하지 않고 당시의 염습(殮襲)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발굴된 것은 한국 복식사(服飾
史) 연구에서 커다란 수확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두 분묘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목곽 뚜껑을
열면서부터 최후 시신에 착용된 염습의를 포함한 염습구(殮襲具)를 단계마다 확인하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출토된 복식 자료들은 각 복식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어떻게 배치
되었는지, 또는 어떻게 착장되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사료로서의 가치
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임란 전 조선 전기의 남녀 염습의가 정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
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이응태의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원이 아버지에게'와 눈물과 함
께 짰을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신발), 이응태의 형님의 애절한 만시(輓詩) 등의 발굴은 우리 모
두에게 450년 전의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어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응태의 부인이 죽은 남편에게 보
내는 편지글이 눈길을 끌었는데, "원이 아버지에게로"로 시작하는 "思夫曲"은 남편을 여윈 아내의 애
절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아내의 애
틋한 사랑이 담긴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한글 편지체를 보면 궁녀들이 쓰던 궁체와 백성
들, 특히 여인들이 자유롭게 쓰던 민체가 있다. 물론 남녀노소가 일상의 중국식 문자 생활 안에서 어
렵게 계층적인 의식으로 이어 온 것이 한글 즉 언문(諺文)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일상의 민중 의식이
규식화된 문자 생활보다 더 값지고 애틋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수많은 한글 자료 중에서
위에 소개하는 이응태(1556~1586) 부인의 편지는 몇 년 전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 된 것으로
내간체의 백미로 꼽을 수 있기에 별도로 위에 소개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전인 1586년, 한 여인이 서
른 살에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로 다정 다감함과 애절한 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여 마음이 애
틋하다. 특히 죽은 남편의 시신 옆에는 부인이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 삼은 짚신이 놓여있었으니 그
절절한 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안동대학교 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중)
원이 아버지에게
-이응태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1586년)-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달려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당신께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어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한글편지)-
<안동대학 사학과 임세권 교수 현대어로 옮김>
고삐 잡혀 끌려갔나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좋은시조 2022 가을호 -
이슬 굴리던 웃음소리
반딧불 따라 스러졌나
외롬 타는 숫매미는
동네 설움에 자지러지고
예 있던 팔팔한 추억
고삐 잡혀 끌려갔나
떡 맛 장 맛 넘겨주던
튼실한 돌담이며
김매고 북돋우고
거름 주어 가꾸던 情
도회지 살집 좋은 바람
밀어닥쳐 허물리고
가난을 찍어 놓은
몇 자의 흑백사진
가물가물 졸고 있는
마을지기 할아버지
먼 기억 가지 끝마다
꽃등을 매다시나
못2 - 이혼녀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혹독하게 내려치는
망치의 그 매질도
탄력 있게 받아내며
당당히 박혔었지
벽면을 쩡쩡 울리며
자리잡고 으스댔지
걸 것
못 걸 것
모두 걸어 힘들었고
게다가 무심한 벽은
더 힘들게 만들었어
나날이 야위어가며
탈출을 꿈꾸었지
자리 옮김 다짐하고
벽에서 뽑혔을 때
반쯤은 휘어지고
벽면도 뚫어졌어
한자리 박힌 그대로
그냥 살걸 그랬어
바람 바람아(정서주) / 미스트롯3(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