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서벌> 전지로하늘이내려/하늘님은아신다/무지개/어떤경영/어떤경영별곡

이름없는풀뿌리 2024. 3. 21. 02:06
전지全紙로 하늘이 내려 - 서 벌(서봉섭) / 제11회 주앙시조대상 수상작 - 진박새 머리 위로 하늘이 내려 온다. 눈부신 닥나무밭 어마하게 가꾸어져 우리가 잠든 사이에 뜬 전지全紙 내 려 온 다. 살며시 내리는 동안 햇살 누가 채자採字하고 구름이 먹이는 먹물 은윽히도 찍는 전지全紙 스치는 바람들의 도련刀鍊에 참 온전한 경전 經典되네. 어김없이 내려온다. 날이 날마다 전지全紙는 지상地上 늘 아침경전 한낮경전 나절가웃 경전. 한밤엔 또렷또렷한 별빛 서법書法 금강경. 내, 한 마리 새라 친다면 쇠박새쯤 되는 건지. 그조차 못 되는 새 외톨이조調 우지짖지. 설령, 내 잘못 찍힌 글자라한들 이리 아직 숨쉰다네. * 전지(全紙) : ①신문 따위의 한 면 전체 ②자르지 않은 온장의 종이, 전판 ③모든 신문. * 은윽하다 : 으늑하다 ①푸근하게 감싸인 듯 편안하고 조용한 느낌이 있다 ②조용하고 깊숙하다. * 채자(採字) : 활판 인쇄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음. * 도련(刀鍊) : 종이의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베는 일. * 나절가웃 : ①하룻낮의 4분의 3쯤 되는 동안 ②반나절. * 진박새 : 동물 박샛과의 텃새. 머리 꼭대기, 턱 밑, 위 가슴은 검은색이고 목은 흰색, 등 쪽은 회 색이며 날개에는 두 줄의 가는 흰색 띠가 있다. * 쇠박새 : 동물 박샛과의 새. 박새와 비슷한데 머리에서 뒤 목에 이르는 부분만 검은색이다. 높은 산의 숲속에 번식하고 겨울에는 떼를 지어 다닌다.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하늘님은 아신다 - 서 벌(서봉섭) - 유난히 무더운 올여름, 아열대성 소나기가 지상을 때리고 가자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저렇게 고운 무지개가 뜨다니, 아마도 어딘가에서 ‘지극히 조심스레 마음씨 가꾸신 분’이 ‘막 세상 버렸나’보다. 그러니 하늘님께서 ‘당신만 아시고는 색동무덤 써 주’시는 게지. 사람은 속여도 하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다 알고 계시니···. 무지개 - 서 벌(서봉섭) / 우리시대현대시조 100인선 26 - 지극히 조심스레 마음씨 가꾸신 분. 그분, 방금 막 세상 버렸나봐. 하늘님 당신만 아시고는 색동무덤 써 주신다. * 작품해설/석야 신웅순 : 조심스레 마음씨 가꾸신 분이 지금 막 세상을 등졌는가보다. 그래서 하늘 님이 아시고 색동무덤 써주셨나보다. 무지개는 지상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차안과 피안을 이어 주는 다리이다. 선녀들이 물 맑은 깊은 계곡에 목욕하러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전설도 있지 않은가. 무지개는 잠깐 나타났다가는 금세 사라진다. 무지개를 초극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육사의 「절정」에도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어 겨울은 강철 로 된 무지개라 했다. 불교에서는 무는 존재하지 않는 고정된 경계나 틀이 없는 깨달음의 상태이다. 차안과 피안이 연결되어 있는,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는 다리. 이것이 초극의 경지이며 시간도 무 화되는 엑스터시의 경지이며 무(無)의 경지가 아니가 싶다. 시인은 왜 여러 편의 시조에서 무지개를 등장시켰을까.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혼자서 살았다. 탈출구가 필요했고 자신을 초극할 필요 가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무지개를 선택한 것이다. 어떤 때는 미친 듯 화를 내고 어떤 땐 부처님처 럼 양순하고 어떤 때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 소크라테스. 시인은 천생 시인일 수 밖에 없다. * 작품해설/유자효 : 하늘님은 아신다. 유난히 무더운 올여름, 아열대성 소나기가 지상을 때리고 가 자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저렇게 고운 무지개가 뜨다니, 아마도 어딘가에서 ‘지극히 조심스레/마음 씨/가꾸신 분’이 ‘막/세상/버렸나’보다. 그러니 하늘님께서 ‘당신만 아시고는/색동무덤 써 주’ 시는 게지. 사람은 속여도 하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다 알고 계시니···. 발상이 동화적이고 아름 답다. 이 시조를 쓴 서벌 시인은 1965년 공보부 공모 제4회 신인예술상 문학부 시조 부문에서 ‘낚시 심서(心書)’로 수석 당선했다. 그의 자필 연보를 보면 1980년 마흔두 살 이후 직장 없이 살아왔다고 돼 있다. 그의 고단한 삶은 연작시조 ‘서울’의 1에 ‘내 오늘/서울에 와/만평(萬坪) 적막을 사다’ 에 잘 그려져 있다. 역경 속에서도 그는 연작시조 ‘어떤 경영’ 등 현대시조사에 남을 우수한 작품 들을 썼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지금의 세상살이도 팍팍하고 힘들긴 마찬가지다. / 유자효 시인 중앙일보(2021. 8. 12) 어떤 경영(經營).1 - 서 벌(서봉섭) - 목수가 밀고 있는 속살이 환한 각목(角木) 어느 고전(古典)의 숲에 호젓이 서 었었나 드러난 생애의 무늬 물 젓는 듯 선명하네. 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톱밥 대팻밥이 쌓아가는 적자(赤字)더미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 * 작품해설/임종찬 : 서벌은 본명이 서봉섭( 徐鳳燮)이고 1939년 경남 고성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 다. 그는 평생 가난을 마누라처럼 끼고 살았다. 성격이 단호한 데가 있어 오래 친히 지내려면 인내심 이 좀 필요하지만 시조는 그를 닮지 않았다. 자기 인생이 적자더미에 짓눌려 살았음에도 무늬 고운 각목처럼 시조가 고와 사람들이 그를 아꼈는데 오래 살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무는 원시 의 무늬를 내장(內裝)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드러내지를 않는다. 깎고 썰고 다듬어야 비로소 내장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가식의 겉옷을 벗고 순수를 드러내었을 때만이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법이다. 곧은 뼈 같은 각목의 아름다움을 자기 생애에 비추었다고 보여 이 작품 을 읽을 때마다 각목 같았던 그가 생각난다. 부산시조시인협회·국제신문 공동 기획 임종찬·시조시 인·부산대 국문과 교수 * 작품해설/이해우 : 이 시조를 읽으며 장인을 생각했다. 한 곳에 몰입하며 인생을 모두 투자한 장인 의 혼을 생각했다. 호젓이 큰 나무가 되었는데 이젠 필요 없다 생각되는 것을 자꾸만 깎아나간다. 마 침내 군살이 하나 없는 뼈 하나로 남게 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시조가 아닐까 싶다. * 작품해설/김진희 : 계절의 정수리를 아프게 지나면서 나이테를 하나씩 새기는 나무. 시의 화자는 고전의 숲에서 호젓이 서 있는 속살이 환한 나무의 생애를 더듬는다. 그대는 지금 어떤 경영을 하십 니까.‘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자꾸∼시를 쓰는가? 어째 나는 밥도 되지 않는 ∼을 자꾸 하는가? 좀체 펴지지 않는 살림살이에도 자신을 채찍질하듯 자학 행위는 끝이 없다. ‘톱밥 대 패 밥이 쌓여 가는 적자더미’지만 시인은 눈만 뜨면 습관처럼 깎고 썰며 다듬는 행위(경영)에 몰입 하고 있다. 곧은 뼈를 시적 자아와 동일시하여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운’ 각목으로 비 유하고 있다. 처절한 자아성찰이 돋보이는 이 시의 체감 온도는 몇 십여 년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뜨겁다. 어떤 경영(經營).별곡 - 서 벌(서봉섭) - 앓는 바다, 그 가슴에 몸 반을 파묻은 섬. 맥(脈)과 맥 이어놓고 뜻과 뜻 포갠 산들. 누굴까, 이처럼 수륙으로 편집해 낸 그이는. 행간(行間) 골목길을 드나드는 사계 위로 누군지 날마다 와 환히 대장(臺狀)을 본다. 그러나 끝내 재교(再校)로만 넘어가고 마는 세계. 아무래도 나는 벽자(僻字), 아니면 오식(誤植)이리. 무리를 써 가며 용케도 버티지만 설 자리, 아니 설 자리를 노려보는 핀셋이여. * 서벌 시인의 「어떤 경영(經營)·별곡」/ 조동화(시인) 서벌 시인은 1939년 10월 17일 경남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 바루절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달성(達城), 본명은 서봉섭(徐鳳燮)이며, 서벌(徐伐)은 그의 필명이다. 1945년 광복 직후 그는 외가가 있는 고성 읍 수남리 남포 갯가로 이사하여 꿈 많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문학을 좋아하고 조숙했던 시인은 1957 년에 벌써 고성읍의 문우(文友)들과 함께 등사판 동인지인 『갈매기』를 내는 한편, 이때부터 본격적 인 습작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시전문지 『신시학』 5월호에 박남수, 고원 두 시인의 심사로 「연구 작품」 두 편이 뽑혔고, 이 일은 그가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 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진주개천예술제 한글시 백일장에서 장원 없는 차상으로 입상하였고, 이듬해 마산문화제 한글시 백일장에서도 장원으로 입상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춘수, 설창수, 정진업, 이 석, 문덕수 등 시인들을 찾아 문학에 관한 고견을 습득한 것과 아울러 고성의 문우들과 동인지 『기 수문학(旗手文學)』을 낸 것도 모두 이 무렵의 일이었다. 1961년 리태극(李泰極) 교수의 서문을 받아 습작시조집 『하늘색 일요일』을 새글사판으로 내었는데, 그것이 『시조문학』지 1회 추천으로 인정을 받았다. 서벌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이듬해 박천, 백신설과 함께 3인 시집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를 새글사 판으로 내었고, 1963년에 「연가」,「가을은」 2편의 작품이 2회 추천작품으로 뽑혔으며, 이어 1964년 「관등사」로 『시조문 학』지 3회 추천을 완료했다. 그리고 이 해에 한국시조작가협회가 창립되었는데, 젊은 시인은 바로 그 창립 회원이 되었다. 1965년 문화공보부 공모 제4회 신인예술상 문학부 시조 부문에 「낚시 심서(心書)」가 수석 당선되었 고, 박재두, 김춘랑, 이금갑, 김교한, 김호길 등이 멤버가 된 시조동인지 『율(律)』을 창간 주재하 였다. 1967년 뒤늦게 군에 입대했으며, 제대 후에는 잡역 노동판을 전전하다가 대한 약사회 기관지 약사공론사에 편집기자로 입사했다. 1971년 한국시조작가협회 총무가 되고 시조집 『각목집』을 냈으며, 시 동인지 『시법(詩法)』에도 참여했다. 1975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로 직장을 옮겼고, 1977년에는 친필 사설시조집 『서벌사 설』을 20부 만들기도 했다. 1979년 『독서신문』편집부장을 잠시 역임했으나 1980년 이후에는 일정 한 직장이 없이 줄곧 살았다. 결국 그는 이 무렵부터 2005년 8월 30일 타계할 때까지 무려 25년여 동 안 자신이 쓰는 시의 보잘것없는 고료와 시집의 서문이나 발문의 집필료 등으로 유일한 호구지책을 삼았던 셈이다. 1991년 사설시조집 『휘파람새나무에 휘파람으로 부는 바람』을 펴냈으나 그는 처음부터 다작(多作) 의 시인은 아니었다. 제3회 정운시조문학상(1982), 제1회 한국시조시협상(1989), 중앙시조대상 (1992), 남명문학상(본상)(1993) 등을 수상했고, 한국문인협회 이사,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시 조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앓는 바다, 그 가슴에 몸 반을 파묻은 섬. / 맥(脈)과 맥 이어놓고 뜻과 뜻 포갠 산들. / 누굴까, 이 처럼 수륙으로 편집해 낸 그이는. // 행간(行間) 골목길을 드나드는 사계 위로 / 누군지 날마다 와 환히 대장(臺狀)을 본다. / 그러나 끝내 재교(再校)로만 넘어가고 마는 세계. // 아무래도 나는 벽자 (僻字), 아니면 오식(誤植)이리. / 무리를 써 가며 용케도 버티지만 / 설 자리, 아니 설 자리를 노려 보는 핀셋이여. ―<어떤 경영(經營) · 별곡> 전문 세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어떤 경영·1>이나 <낚시 심서(心書)>를 꼽지 만 여기서는 굳이 시인의 길고긴 연작시조였던 <어떤 경영>의 끝마무리에 해당하는『어떤 경영(經 營)·별곡』을 택했다. 비록 전자가 오묘한 역작들이긴 하나 그 구도가 조금은 단조로운 면이 있는 반 면, 후자야말로 그의 웅숭깊은 시세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품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내 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가닥을 지어야 할 것은 작중화자의 위치이다. 이는 첫째 수를 보면 짐작이 가 는데 아마도 화자의 위치는 육지의 산들과 다도해의 섬들이 잘 보이는 바닷가의 어느 산봉우리 위쯤 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자연스럽게 이 시조의 내용을 살펴볼 준비가 완료된 셈이다. 첫째 수에서 시인은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진 다도해와 뭍의 울멍줄멍한 산의 능선들을 바라보며 세상 에서 제일 큰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것은 수륙(水陸)이 이어져 편집된 미증유의 책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거대하고 멋진 책을 편집해낸 이는 누구일까를 곰곰 생각해 보는 것이다. 둘째 수는 네 계절이 오가는 책 페이지의 행간(行間) 골목길에 누군가(물론 책을 편집한 그이이다.) 가 날마다 와서 책의 글자들을 점검하곤 하는 일도 바라본다. 그러나 끝내 책(세계)은 완벽한 완성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미완성인 채로 재교(再校)로 넘어가고 만다. 셋째 수는 시인의 자신에 대한 가차 없는 성찰로, 자기 자신이 그 책 속의 벽자(僻字) 아니면 오식 (誤植)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위치한 자리가 결코 자신에게 적합한 자리가 아님을 이 미 뼈저리게 느끼지만 거기서 선뜻 발을 뽑지는 못하고 버틸 때까지 한껏 버텨보고 있다. 그러자니 자연 죄밑이 되어 온갖 군상들의 ‘설자리 아니 설 자리’를 냉철하게 점검하고 있는 절대자의 핀셋 을 매순간 겁먹은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편집자(절대자)의 눈이 벽자 또는 오식을 발 견하는 순간 자신은 그 핀셋에 집혀 사라져야 할 절박한 운명이기에 말이다. 이 시조에서 우선 눈여겨볼 것은 자연(세계)을 대뜸 한 권의 책으로 상정하는 시인의 초거시적 안목 이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곧 그의 비유적 안목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과작(寡 作)의 시인으로 펴낸 시조집이 몇 권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성공작이 많은 것은 곧 그의 비 유적 안목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령 「걸어 다니는 절간, 그 암소를 노래함」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의 이런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튼튼한 / 기둥이 넷 / 기둥 받친 주추도 넷 // 용마루 굼지럭거려 / 서까래들 / 굼틀굼틀 // 뿔 솟은 / 추녀 아래엔 / 연꽃빛 풍경소리. <하략> 여기에는 보다시피 소의 우람한 모습이 엉뚱하게도 절간에 비유되고 있다. 주된 비유는 은유라 하겠 는데 일견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말 같으나 이내 보는 이로 하여금 수긍하게 하고 감탄도 자아낸다. ‘기둥’은 다리, ‘주추’는 발굽, ‘용마루’는 등뼈, ‘서까래’는 갈비뼈, ‘추녀 아래’는 목의 아래쪽이 아니겠는가. 「어떤 경영·1」에서도 그의 비유는 눈부시다. 목수가 밀고 있는 / 속살이 / 환한 각목(角木) // 어느 고전(古典)의 숲에 호젓이 서 있었나. // 드 러난 / 생애의 무늬 / 물젖는 듯 선명하네. 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 톱밥 / 대팻밥이 / 쌓아가는 적자(赤字) 더미 // 결국은 / 곧은 뼈 하나 / 버려지듯 / 누웠네. 첫째 수에서 작중화자는 목수가 밀고 있는 환한 각목을 보고 있다. 대패질에서 드러나는 나이테가 선 명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각목이다. 첫째 수와 둘째 수는 직유의 관계로 설정되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리하여 둘째 수에서 자신도 목수가 밀고 있는 각목에 다름없다는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이 끌어 낸다. 톱밥과 대팻밥이 쌓여갈수록 생애의 아픈 무늬가 더욱 선명한 그런 곧은 뼈 하나로 말이 다. 실로 처절한 자기성찰이요 신랄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이 작품의 셋째 수에 선명히 나타나 있는 운명론적 인생관이다. ‘아무래도 나 는 벽자(僻字), 아니면 오식(誤植)이리’에서 확인되듯이 그는 운명 앞에서 무척 풀이 죽어 있다. 책 (세계)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는, 오히려 그것의 격을 떨어뜨리거나 할 뿐인 벽자, 혹은 오식이라는 고백은 그의 운명에 대한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괴감(自愧感),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어쩌면 번듯한 학력이나 전문 자격증 하나 없이 생활에서는 무력하기만 한, 시인이라는 허울 하나를 벙거지처럼 쓰고 각박한 서울 생활을 꾸려가야 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귀결이 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그는 끝내 서울 생활을 작파해 버리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그 역시 그만을 신앙처럼 바라보는 피를 나눈 식솔들의 가장이었기 때문이리라. ‘무리를 써 가며 용케도 버 티지만’이라는 중장은 십중팔구 바로 그래서 나온 진술일 터이다. 인간은 운명 앞에서 나약하기 이 를 데 없는 존재다. 그래서 그 역시도 종장의 마무리에서 ‘설자리, 아니 설 자리를 노려보는 핀셋이 여.’라는 절묘한 영탄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하기야 지금부터 약 3천여 년 전에 살았던 지혜의 왕인 솔로몬도 자신이 쓴 『전도서』라는 책에서,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 힘센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먹을 것이 현명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재물이 명철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은총이 재주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때와 기회가 그들 모두에게 일어나는도다. 사람도 자기의 때를 모르나니, 마치 물고기들이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덫에 잡힘과 같이 사람들의 아 들들도 재앙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치면 재앙의 때에 덫에 걸리는도다.’ 라는 토로를 내뱉고 있는 판이니, 그 누가 운명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또한 그 앞에 겁먹지 않을 도 리가 있겠는가! 쉼 없이 닥치는 희로애락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수밖에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 게는 『페이터의 산문』으로 널리 알려진 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든 것을 운명의 직녀 클로토의 손에 맡겨두고 마음 쓰지 말라’는 식의 달관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공허하며 사치스 럽다 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의 시조 도처에서 번뜩이고 있는 탁월한 감각이다. 선정한 텍스트에서는 ‘설자리, 아니 설 자리를 노려보는 핀셋이여.’라는 구절이 그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하겠거니와, 이것은 오감(五感)에 속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육감(六感)에 속하는 감각이 아닌가 싶다. ‘핀셋’이 흔히 보는 가시적인 그 핀셋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신의 핀셋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구절은 불가시적인 것을 ‘핀셋’이라는 구상어로 가시화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 라.’는 시의 본령을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하겠다. 이쯤에서 참고로 그의 다른 작품들에 나타난 감각들을 일별해 보기로 하자. 이런 녘 멧새소리는 약초뿌리 빛깔이다. ― <산행(山行)> 부분 찬바람 / 죽비 쳐 주시어 / 쩌르르한 어깻죽지. ― <초겨울 행간(行間)> 부분 생각이 기럭떼로 문득 소스라쳐 오르고 ― <생각이 기럭떼로> 부분 오라 하여 다가서면, 푸르스름한 사투리로 / 아이고 아재 아닝교 은제 오셨는교 / 아재요, 그저 참는 기라요 / 안 그렁교 / 하는 꽃. ― <청미래꽃> 둘째 수 댕기빛 / 숨긴 말씀을 / 반달이 물고 있데. ― <그 사람의 바다> 부분 보다시피 그의 감각은 재기발랄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魔法)이 있고, 이 감각 저 감각을 넘나드는 공감각(共感覺)이 있으며, 그 감각을 치렁치렁 늘어뜨려 독자를 척척 휘감는 능청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끝까지 적재적소에서 빛나고 있을 뿐, 천박에 떨어지지 않고 있음은 그의 큰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여실히 검증해주는 바라 하겠다. 이러구러 선정한 텍스트에 대해 할 말은 다했 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글을 시작할 때 설정했던 대로 서벌 시인과 필자와의 작은 인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된 셈이다. 그와 나와는 그의 생전에 꼭 세 번 조우했다. 1985년 중앙일보사에서 한 번, 90년대에 경주에서 두 번을 만난 것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는 만남은 경주에서의 첫 번 째 만남이다. 그날 그는 고성과 양산을 두루 돌아왔다면서 고로쇠나무 수액으로 담은 한 말들이 막걸 리 통을 들고 불쑥 경주에 와 내게 전화를 했다. 그 당시 경주에는 시조 쓰는 사람이 드물어 황능곤 시인과 그가 추천해준 조순호 시인을 불러 ‘실비식당’이라는 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자정을 넘기기까지 매실주를 마시며 떠들썩하게 담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지금도 고마운 일은 4대독자로 태 어나 좀은 거만하고 현저히 붙임성이 떨어지는 나를 그가 스스럼없이 ‘아우님’이라고 불러준 일이 다. 대체 그는 그때 무슨 바람이 불어 먼 동녘 땅 서라벌까지 와서 나를 불러내고는 자청하여 외톨박 이의 넉넉한 형님이 되어주었던 것일까? 이 일은 내가 기억하는 그의 시편들과 함께 지금도 살갑기 그지없는 추억으로 내 가슴에 찡하니 남아 있다. 물보라 / 양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