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남이본야생화

남이 본 천리포 수목원(2) -본문-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27. 11:16
남이 본 천리포 수목원 (1)밀러의 熱情 1945년, 파란 눈의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는 미군의 정보장교로서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그는 정보장교의 직책 덕분에 한국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고, 한국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이후 출국하였다가 다시 한국을 찾은 밀러씨는 한국은행에서 근무를 하던 중, 1962년 가난한 농민의 땅 2천 평을 사달라는 부탁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을 계기로 수목원의 부지 구입이 시작된다. 이후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땅을 팔고자 하였고 이렇게 모인 땅 6천여 평에 밀러씨는 수목원을 조성하자 마음을 먹게 된다. 하지만 해변의 토양과 기후는 나무에게 맞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수목원을 만드는 데에 난색을 표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1970년부터 본격적인 수목원 조성에 착수한다. 사업가로서 벌어들인 돈을 전부 수목원에 쏟아 부어 부지를 넓혀갔고, 해마다 한두 번씩 미국의 묘목 경매에도 참여하여 신품종의 식물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2)민병갈 수목원 자신은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밀러씨는 1979년 한국에 귀화하여 '민병갈' 이라는 한국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2000년, 부지를 18만평 까지 넓힌 천리포 수목원은 세계에서 13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아시아 최초로 인정되었으며, 각종 식물학회 등이 열리는 아름다운 곳으로 성장했다.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업인 으로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민병갈씨는 같은 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 그의 나이 82세의 일이었다. 세상을 떠나면서 민병갈씨는 제2의 조국인 한국에 자신이 평생을 바쳐 키운 수백여그루의 나무들을 선물하게 된다. 죽음에 이르면서 까지도 자신이 사랑하던 목련나무 아래에 묻히길 원하셨던 민병갈씨는 현재 천리포 수목원의 목련 가운데 하나인 태산목 아래에 잠들어 계신다.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던 한국인 민병갈씨의 천리포 수목원은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1. 수목원에서 바라본 천리포 2. 꽃댕강나무 3. ? 4. ? 5. ? 6. 낙우송 펜데스(Taxodium distichum "Pendens") 7. 부탄송 8. 노랑목련(희귀종) 9. 금목서/은목서 10. 벨가못(bergamot) 11. 호랑가시나무 12. 황금왜성편백 13. 태산목 아래 잠들어 계신 민병갈씨 14. 금꿩의다리 15. 티보치나 (Tibouchina urvilleana) 16. ? 17. ? 18. 니포피아 '아틀란타' (Kniphofia 'Atlanta') 19. 노루오줌 20. 여뀌바늘 21. ? 22. 범부채 열매 23. 바람꽃 24. 땅꽈리 25. ? 26. 금영화 27. 개쉬팝나무 28. 황금달맞이 29. 백산풍로초 30. 참좁쌀풀꽃 31. 흰색도라지겹꽃 32. 망종화 33. 수국원 34. 겹삼잎국화와 삼잎국화 35. 36. 연못의 부처꽃 - 에버골드사초- 37. 사초와 억새 군락 38. 빅토리아연, 가시연 39. 흰어리연 40. 가시연 천리포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영어: Chollipo arboretum)은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있는 수목원이다. 한국식물과 세계식물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한국식물의 세계적 위치 규명, 식물자원보호와 실용화를 위한 사업 및 국민에 대한 식물 교육장을 제공할 목적으로 1996년 8월 5일 설립 허가된 대한민국 산림청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천리포수목원은 1962년도부터 전 재단 이사장 민병갈(閔丙㵧: Carl Ferris Miller, 79년도 귀화)원장이 매입하면서 비롯되었다. 약 60ha으로 이루어진 천리포수목원은 1970년부터 부지의 연차적인 확보와 함께 현지에 적응이 가능한 식물들을 한국 및 유사한 기후권의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왔다. 천리포수목원은 그 동안 한국의 모든 관련 분야 및 학과의 전문인들에게 연구 및 실험 자료로써 활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식물자원의 가치와 그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의 해양성 기후조건은 여름에는 내륙보다 서늘하고 겨울에는 오히려 온난하므로 난대성 식물에서 아한대성 식물들까지 재배할 수 있는 식물종류의 폭이 넓은 것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천리포수목원의 가장 큰 장점으로 다양한 상록 활엽수들과 고산성 식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미국 등 60여 개국으로부터 수집된 식물들은 목련을 비롯하여 약 6,686종에 이르며(1999년 4. 18일 기준), 이를 포함한 14,000여 종류의 식물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다 식물종 보유 수목원으로 2000년 국제수목학회(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 IDS)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았다. 설립자 민병갈씨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웨스트 피츠턴에서 태어났고, 버크넬(Bucknell)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할 줄 알았고, 한자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징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1944년 콜로라도 대학의 해군 정보학교 일본어 과정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1945년 4월 일본 오키나와 섬 미군사령부의 통역장교로 배치되었다. 그는 1946년, 한국에 연합군 중위로 처음 오게 되었다. 당시 25살이었고, 그 후 다시 1947년 1월 주한미군사령부 사법분과위원회 정책고문관으로 지원해 한국으로 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 다시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그 후 1953년 한국은행에 취직해 자리잡을 때까지 전쟁시에 일본과 미국, 한국을 왔다갔다 해야만 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천리포수목원 조성을 시작하여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였다. 그는 서울의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수목원 조성에 힘을 쏟았고, 한국과 식물에 대한 공부에 힘을 쏟았다. 천리포수목원은 1979년 재단이 되었고, 1989년까지 10년 동안 해외 교류 학습을 통해 영국 왕립 원예협회(RHS) 공로메달을 수여받았다. 재단 출범 전해인 1978년 민병갈은 남해안 답사여행에서 감탕나무(Ilex)와 호랑가시나무의 자연교잡(交雜)으로 생긴 신종 식물을 발견하였고, 세계에서 한국의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으로 검증되었다. 민병갈은 국제규약에 따라 발견자와 서식지 이름을 넣은 학명 'Ilex x Wandoensis C. F. Miller'을 국제학회에 등록했고 한국이름은 '완도호랑가시'로 정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배양된 완도호랑가시는 종자목록(Index Seminum) 발행을 통한 다국간 종자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퍼져나갔고, 천리포수목원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1978년부터 1998년까지 36개국 140개 기관과 교류 관계를 맺어 다양한 품종의 나무를 들여왔다. 민병갈은 국제적인 교류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나라의 환경과 식물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1997년 4월 국제목련학회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1998년 5월에는 미국 수목원이 주축을 이룬 범세계적 학술친목 단체인 HSA의 총회를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2002년 4월 8일 81세로 숨을 거두었고, 한국에 수목장으로 묻혔다.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사망 후 후임 이사장에 문국현(文國鉉) 유한킴벌리 사장을 추대하여 운영되고 있다. 민병갈은 2002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미국 프리덤 재단(Freedo ms Foundation)에서 평화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실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우정의 메달을 수상했다. 안타깝게도 이 상훈은 그의 죽음으로 여동생인 준 맥데이드(June MacDade)가 대리수상하였다. 그가 조성한 천리포수목원은 다양한 식물 품종으로 주목받았고 2000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가 지정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Arboritum Distinguished for Merit)', 미국 호랑가시학회(HSA, Holly Society of America)가 선정하는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itum)'이 되었다. 백목련과 자목련만 알던 사람이 천리포수목원에 오면 처음 보는 목련에 눈이 휘둥그레지기 마련이다. 연지색이나 노란색 꽃을 매단 목련이 있는가 하면, 겹꽃이 피거나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늘어진 것, 만개해도 오므린 봉오리 형태를 간직하는 것 등…. 세계 최고 수준인 약 430개 품종의 목련이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밀러가든 들머리에서 주먹보다 큰 연분홍 꽃을 매단 ‘밀키웨이’가 방문객을 맞는다. 뉴질랜드에서 중국 원산의 목련을 교배해 만든 품종이다. 연못가로 내려가면 ‘벌컨’이 탐방객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밀키웨이’와 사촌간이지만 짙은 적색의 꽃이 화사하다. 자목련보다 색깔이 진하고 꽃잎 앞뒤의 빛깔이 같은 것이 특징이다. 김미정 수목원 코디네이터는 “벌컨이 필 때쯤이면 목련 마니아들로부터 개화 여부를 묻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지만 목련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인 목련원이 생태교육관 뒤에 마련돼 있다. 엘리자베스 품종이 탐스런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수목원 설립자인 고 민병갈(귀화 전 이름 칼 페리스 밀러)이 미국의 이모를 그리며 심었다는 글귀가 팻말에 적혀 있다. 옆에는 국화처럼 꽃잎이 많은 품종인 ‘파우더 퍼프(분첩)’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민병갈이 1973년 황폐한 모래언덕이던 이곳에 처음 심었던 나무가 목련이었다. 목련에 반한 그는 이후 사재를 털어가며 외국의 식물원과 양묘장, 목련 애호가로부터 목련 품종을 수집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1997년 국제목련학회 총회를 유치함으로써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은복 천리포수목원 이사장(한서대 명예교수)은 “400품종 이상의 목련을 갖춘 수목원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특정한 식물군을 집중적으로 모아 비교연구할 수 있는 학술적 의미가 크고 조경과 원예에 활용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목련뿐 아니라 400여 종류가 있는 호랑가시나무류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동백나무 380여 종류, 무궁화 250여 종류, 단풍나무 200여 종류 등 특정 분야에 다양성을 집중시킨 것이 이 수목원의 강점으로 꼽힌다. 목련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관련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식물이다. 목련과 식물은 중생대 백악기인 9500만 년 전 꽃 피는 식물 가운데 최초로 지구에 등장했다. 꿀벌이 출현하기 전이어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딱정벌레가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암술이 단단하다. 꽃잎과 꽃받침의 구분이 어려운 것도 원시적 속성의 하나다. 목련은 대륙이동과 조산운동, 빙하기 등 지질학적 사건을 거치며 살아남았다. 전 세계 245종 가운데 3분의 2가 아시아에 분포하는데, 특히 중국 남부에 40% 이상이 자란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일부 분포하지만 목련 품종의 대부분을 개발한 유럽에는 자생종이 없다. 우리나라의 자생종은 한라산에만 있는 목련과 높은 산에 자라는 함박꽃나무(산목련) 2종이고, 흔히 재배하는 백목련과 자목련은 중국 원산이다. 국제식물원보존기구(BGCI)는 2007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목련의 절반 이상이 야생상태에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목련은 원예종일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목재, 식량, 의약품 원료이자 생태계 건강을 가리키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식물원이 목련의 유전자원 보존과 증식, 이용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멸종위기종 5종의 서식지외 보전기관 환경부는 2006년 천리포수목원을 가시연꽃, 노랑무늬붓꽃, 망개나무, 매화마름, 미선나무 등 멸종위기종 5종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마침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는 전통 영농을 하는 수목원 내 논에서 매화마름이 꽃을 피웠다. 매화마름은 모내기철에 개화한다. 하지만 논을 가는 과정에서 허리가 여러 토막으로 잘리더라도 속이 비어 있는 줄기가 물에 떠 꽃을 계속 피우고 마디마다 뿌리를 내민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면 매화마름이 억센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음을 천리포수목원은 입증하고 있다. 또 다른 보호종인 가시연꽃에 대해서는 생활사 규명이 한창이다. 1994년 홍성 역재방죽에서 씨앗을 받아 온 가시연꽃이 연못 바닥에서 싹이 터 열매를 맺기까지를 꼼꼼히 연구하는 중이다. 종자가 물 위를 떠다닌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성과로 꼽힌다. 열매에서 빠져나온 씨앗을 감싼 투명하고 미끌미끌한 표피는 종자가 물에 떠 멀리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물고기나 곤충이 표피를 뜯어먹어 부력을 잃은 종자는 연못 바닥에 안착해 이듬해 싹을 틔우게 된다. 이 연구를 맡고 있는 남수환(교육팀)씨는 “멸종위기종 복원은 생태적 특성을 정확히 알고 난 뒤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수집한 식물이 언제 어디서 왔고 어디에 심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1974년부터 백엽상을 설치해 온도, 습도, 풍향, 풍속, 강우량 등을 기록한 것은 국립수목원에도 없는 자료이다. 1981년 5월27일 기록한 카드에는 고 이영로 박사가 오대산에서 채집한 노랑무늬붓꽃을 밸리베드에 심었다고 적혀 있다. 이런 자료는 기후변화로 인한 개화시기의 변화를 연구하거나, 멸종위기종을 증식해 복원할 기초자료가 된다. 금단의 정원 공개 1년 2009년 3월 일반에 공개되기 전 천리포수목원의 별명은 ‘신의 비밀정원’이었다. 허락을 받은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연간 1만 3천 명 정도이던 방문객 수는 지난 1년2개월 동안 19만 명으로 늘었다. 천리포수목원의 변신이 진행중이다. 천리포수목원을 지켜온 것은 “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나무”라던 설립자의 유별난 나무 사랑이었다. 미 해군 장교로 1945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24살의 칼 페리스 밀러는 인심과 풍광에 이끌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1962년 가난한 농민의 땅 2천 평을 사 달라는 부탁을 외면하지 못하면서 수목원 터 구입이 시작됐다.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땅을 팔려 했다. 그는 1970년 본격적으로 수목원 조성에 나섰고, 1979년엔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한국 귀화 1호 미국인이 됐다. 그는 서울에서 주식투자로 번 돈을 모두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해마다 한두 번씩 미국의 묘목 경매에 참여해 돈을 아끼지 않고 신품종을 사들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목원은 재정난에 시달렸다. 2002년 민원장의 타계 이후에도 재정적 어려움이 계속돼 직원들 월급도 못줄 형편에 이르자 마침내 2008년 일반 개방을 결정하게 된다. 이보식 신임 원장(전 산림청장)은 “꽃 한 송이가 밟히면 열 송이를 심겠다”고 선언했다. 개방에 따른 훼손을 적극적인 관리로 막겠다는 것이다. 새 직원을 뽑고 연간 1억 원이 드는 묘목구입을 재개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따냈다. 이 원장은 “겨우내 꽃을 매다는 가을벚꽃 등 묘목 10만 그루를 양묘해 태안지역의 조경용으로 공급할 예정”이라며 “국민의 재산인 수목원을 활용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40여 년 만에 빗장이 풀리자 탐방객은 성수기 때 하루 3천 명에 이른다. 이들이 수목원을 밟고 다니고, 개중에는 희귀종을 채취해 가는 사람도 있어, 개방 후유증을 어떻게 막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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