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과학적인韓國史

(49)새로 태어나는 도깨비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2. 12:44
새로 태어나는 도깨비(1)
한국인은 도깨비 이야기 듣고 자라, 하면서 어른된다
고대부터 선조들 마음속에 분명한 믿음으로 자리잡아
필자는 1980년대 말 세계적인 영화제가 매년 열리는 칸느 부근의 프랑스 과학연구단지 소피아앤티폴리스에서 근무한 바 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니스대학 부총장인 엘레강 교수의 초청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문을 들어서서 수영장까지 딸린 커다란 집을 한참 들어가는데 집안이 모두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현관 앞에 음식이 놓여 있고 거실로 들어가는 통로 한쪽에 아마씨가 뿌려져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고블랭(Goblin, 프랑스판 도깨비)을 쫓아내기 위한 비책이란 대답이었다. 대학교 부총장이라는 사람이 도깨비 운운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고블랭을 쫓아내려면 아마씨를 뿌리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설명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엘레강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고블랭은 집안일을 망치는 말썽꾸러기 도깨비이다. 아마씨를 뿌려 놓으면 고블랭이 이를 하나하나 줍는 동안에 지쳐버리거나 날이 새어 장난을 칠 겨를이 없게 된다고 한다. 문 밖에 음식을 놓아두는 것도 아마씨를 줍는 동안에 배가 고프면 이를 먹으라는 뜻에서다. 고블랭은 산등성이나 동굴 같은 곳에 살며 외모는 흉측하고 이상스럽게 생겼다는데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유사했다.


세게 과학의 선두주자인 프랑스에도 비슷한 풍습



프랑스는 세계 과학계를 이끌고 있는 선진 과학국 중의 하나다. 게다가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화학 교수가 고블랭을 쫓는 관습을 행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재미 있는 풍습이라고 생각했다. 조사를 해본 결과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같은 존재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금천교의 역삼각형 귀면. 귀면은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다리의 중앙에 있는 역삼각형의 석재를 『창덕궁수리도감의궤』에서는 ‘청정무사’라고 했는데 귀면이 잠자리 두 눈 사이의 모습과 유사하여 명칭된 듯하다.


도깨비 이야기는 한국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화일 것이다. 약간 익살스러우면서도 뿔과 이빨을 갖고 있는 이 동물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동물이지만 우리에겐 매우 친근하다. 부모로부터 ‘도깨비에게 잡혀가 혼이 난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아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고 또 도깨비 이야기를 하면서 어른이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인 어른치고 아이들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도깨비 이야기가 늘 넘쳐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후배가 도깨비 이야기 중 가장 잘 알려진 『도깨비 방망이』를 거론하면서 ‘말도 안 되는 모순투성이’라고 열을 올렸다. 『도깨비 방망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어떤 사람에게 아들 형제가 있었다. 형은 장가를 들어서 잘살고, 동생은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끼니를 이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형은 저만 알고 마음씨가 나쁜 반면, 동생은 마음씨가 착하고 예의가 바른 까닭에 주변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어느 날 동생이 산에서 갈퀴로 갈잎을 긁고 있는데 개암(개금) 하나가 굴러오자 아버지께 드리겠다면서 주웠다. 개암 한 개가 또 굴러 오자 이번에는 어머니께 드릴 생각으로 주웠다. 세 번째 개암이 굴러오자 비로소 자신의 몫이라며 주워서 집으로 가져가려는 데 날이 저물었다. 하는 수 없이 어느 빈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 집은 도깨비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도깨비들이 들어오자 그는 천장의 대들보 위에 몸을 숨겼다. 도깨비들은 그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방망이를 두드려 음식과 술 등 필요한 것을 모두 만들어 놓고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숨어서 도깨비들을 보고 있던 그는 배가 고파지자 개암 하나를 ‘딱’하고 깨물었다. 도깨비들은 그 소리를 듣고 산신령이 노했다면서 방망이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는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집으로 가서 부러운 게 없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 맞은 형이 이 소식을 듣고 산으로 가서 갈퀴로 갈잎을 긁었더니 역시 개암이 굴러왔다. 그는 첫 번째 것은 자기 자신이 갖고 두 번째 것은 아내에게 주며, 마지막 것은 부모에게 드리겠다고 생각했다. 개암을 갖고 날씨가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깨비들이 살고 있는 빈집을 찾아갔다. 밤중이 되자 동생의 말처럼 도깨비들이 나타나 잔치판을 벌렸다.  그는 개암을 깨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깨비들이 도망을 치기는커녕 그를 끌어내려 도깨비 방망이를 훔쳐간 도둑놈이라고 두드려 패는 것이었다.'

‘붉은악마’의 포스터. 붉은악마에서 차용한 치우천왕을 도깨비의 원형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후배는 개암이 굴러왔을 때 동생이 우선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나중 것을 자신이 갖겠다고 한 대목은 이해가 되나 도깨비 집에서 그들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상황에서 개암을 깨문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개암 깨무는 소리에 도깨비들이 도망갔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며 웃었다.


현대는 도깨비 방망이 욕심낸 형을 "인간적" 평가도



도깨비 방망이가 탐이 나 욕심을 부리다 봉변을 당하는 사람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도 했다. 우선 개암이 들어오자 자신과 아내를 먼저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가족단위가 핵가족 중심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욕심 많은 사람의 적극적인 자세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됐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부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직접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 나서는 형이야말로 현대인이 본받아야 할 인물상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적 시각으로 볼 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므로 목적달성을 위한 적극적 시도가 가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민담도 현대적으로 각색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불합리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민화나 전설은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설이나 민담은 그 자체가 당시의 사회와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후배가 지적하는 내용 모두가 터무니없는 객설로만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리 현대화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과거의 유산 없이 현대화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비록 답답하게 살았고 이해되지 않는 국면이 많았다 하더라도 바로 그런 과거가 미래를 알차게 대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혹부리 영감·도깨비 감투 등 지방마다 설화 다양



『도깨비 방망이』의 내용은 퍽 단순하면서도 매우 교육적이다. 착한 사람은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지만 욕심쟁이는 도깨비 방망이를 얻으려다 오히려 망하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흔히 고약한 형과 착한 동생으로 대비된다.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나 『흥부전』의 기본구조와도 유사하다.

『도깨비 방망이』와 같이 잘 알려진 또 다른 설화는 『혹부리 영감』으로 우리나라 전 지역에 전승되고 있다. 이 내용도 자못 해학적이다.

'혹부리영감이 어느 날 도깨비들을 우연히 만나 노래를 불렀다. 도깨비들이 노래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어 혹에서 나온다고 하자 도깨비들은 혹을 떼고는 재물을 주었다. 도깨비가 준 재물로 부자가 되자 또 다른 혹부리영감이 도깨비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나오는 곳을 도깨비가 묻자 영감이 역시 혹에서 나온다고 했고, 도깨비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다른 혹마저 붙여 주었다.'

고구려 귀면와당. 고구려 장군총에서 발견된 귀면와당으로 이를 도깨비로 인정할 경우 삼국시대에 이미 도깨비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설화는 선행자는 행운을 얻는 반면 모방자는 불운을 겪는 내용으로 창조적 행위를 긍정하고 모방행위를 부정하고 있다. 특히 혹을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행위는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두 번 거듭 속지 않는다는 점과 더불어 누구를 속여서 잘되고자 하는 생각은 간혹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는 가르침이 반영되어 있다.

『도깨비감투』는 머리에 쓰면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마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몸에 등거리를 걸치거나 풀잎을 지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내용도 자못 해학적이다. 충청남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를 김열규의 『도깨비 날개를 달다』에서 발췌해 본다.  

'옛날에 갓을 만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영감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열심히 갓을 만들어 팔았지만 늘 생활이 쪼들려서 갓 만드는 짓을 언제 면할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평소와 같이 한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늙도록 갓만 만드니 화가 날만하다고 웃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시커먼 그림자가 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까만 도깨비였다. 놀랍게도 도깨비는 영감의 소리를 듣고 도우러 왔다며 회색 감투를 그에게 주었다. 감투를 쓰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영감을 볼 수 없으니 영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밤부터 영감은 감투를 쓰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고 나왔다. 도둑 때문에 마을이 온통 소동이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감이 감투를 벗어 놓고 담배를 피우다가 실수로 담뱃불에 감투 한 쪽을 태워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에게 감투를 기워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마침 붉은 헝겊 밖에 없어 그것으로 감투를 기웠다.

그는 빨간 헝겊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감투를 계속 쓰고 남의 집 물건을 훔쳐다. 마침내 도둑을 맞은 사람들은 빨간 헝겊조각이 왔다 갔다 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소금 장수 집에 들어가서 지게에 얹어 놓은 소금을 지고 나오는데 주인이 몽둥이로 후려치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집으로 도망쳐 왔다. 아내는 영감을 자리에 뉘면서 공연히 딴 생각 말고 부지런히 갓이나 만들어 팔자면서 도깨비감투를 불살라 버렸다.'

도깨비와 갓. 갓을 만드는 영감이 도깨비감투를 쓰기만 하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설화는 우리 선조들도 공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마술적 물건을 얻게 된 방법은 여럿이다. 도깨비에게서 직접 얻는 방법도 있고 도깨비가 장난하다가 버려둔 것을 갖고 온 경우,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곤충이 떨어뜨린 풀잎을 줍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둑질의 형태도 시장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 외에 남의 집 제사음식을 훔쳐 먹는 경우도 있고 형제간의 선악대립을 담은 시나리오도 있다. 이 유형은 서양의 ‘요술 모자’와 같은 내용이며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도깨비감투』는 서양의 투명인간과 같이 인간의 육신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었음에도 남을 해치거나 감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정권을 잡으려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잔칫집이나 제삿집 음식을 훔쳐 먹는 정도이고 관가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루거나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투명인간 이야기는 특히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긍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는 과정에 부당한 일을 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권선징악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감각에 맞춘답시고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을 탈취하는 등의 일을 꾸미게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감투』는 우리나라 설화 중에서는 비교적 흔치 않은 환상적인 소재를 다루었다는 데서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 설화는 거의가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공상적인 내용을 설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가 과학 기술면에서 뒤떨어지는 요인이었다고 줄기차게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혹부리 영감』이나 『도깨비감투』는 우리 선조들도 SF 즉 공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깨비의 종류 : 실체 없는 관념적 문화 소산



도깨비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우선 도깨비란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도깨비를 광의로 해석하면 귀면(鬼面) 모두를 도깨비로 인정해야 하는데 도깨비는 실상 관념적인 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실체가 없다. 도깨비가 관념적인 문화의 소산이라는 것은 도깨비를 정의하는 것도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도깨비는 다양한 상징성을 갖고 있고 따라서 그 설명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문효근은 가비와 귀(鬼)를 연관시켜 가비와 갑을 동의 음으로 보면 갑을 귀와 같다고 분석했다. 한자표현에 있어 귀신과 도깨비를 혼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육서심원(六書尋源)』에 의하면 귀자(鬼字)나 귀자 변(鬼字 邊)글자가 179자나 되는데 모두 도깨비 또는 귀신과 관련된다. 도깨비를 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도깨비가 신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응당 귀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도깨비를 지칭하는 명사는 무수히 많다. 도채비, 돗가비, 독갑이, 독각귀, 귀것, 망량, 영감, 물참봉, 돛채비, 또깨비, 또째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증거이다.

김종대는 우리나라에서 도깨비란 단어가 처음 나타난 것을 15세기 초로 보았다. 조선 전기에 발간된 『석보상절』에 ‘돗가비’란 용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월인석보(月印釋譜)』, 『역어유해(譯語類解)』, 『계축일기(癸丑日記)』에도 도깨비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있다.

무속으로 들어온 도깨비. 일부 무속인들은 탈문화의 기원이 도깨비 문화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김재연의 호의에 의해 촬영).


문헌상으로는 도깨비라는 말은 이조 초기에 나타났지만 도깨비에 대한 관념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매년 목멱산제(남산제)를 주관하고 있는 김재연은 탈 문화의 기원이 도깨비 문화에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르면 추석을 의미하는 ‘한가위’의 ‘가위’는 ‘깨비'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가위 때 모여서 즐기는 놀음을 ‘깨비 놀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깨비가 끼위→거위→가위로 발음이 변하여 한가위, 추석으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도깨비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는 뜻이다.


무섭지만 해학적…반인반수의 치우(蚩尤)와 비슷



도깨비의 모습은 부릅뜬 눈으로 악귀를 쫓는 형상이지만 잘 뜯어보면 매우 해학적이다. 무서우면서도 우스꽝스런 표정은 장승의 표정과도 일치한다. 바로 우리 민족의 도깨비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도깨비에 대한 외경심과 해학성이 고루 섞여 있다.

우리나라 도깨비의 원형을 치우(蚩尤)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치우가 사용했다는 청동가면이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한민족은 이를 악귀를 쫓는 도깨비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여하튼 학자들은 우리 선조들이 벽사의 상징물인 도깨비를 창안해 낸 것으로 추정한다. 동북아시아의 고대 문명의 하나인 동이족의 문화에서 도깨비가 독자적으로 출현했다는 것이다. 벽사를 위한 무서운 인물상을 만들다보니 도깨비는 자연 반인반수의 특징을 보여주며 치우와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재일에 따르면 도깨비는 한반도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으며 도깨비가 순 토종이고 순 국산이다. 한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라서 그 존재를 지켜왔다고 그는 강조한다.

고대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도깨비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 증거가  도깨비의 모습이 그려진 기왓장이다. 지붕의 망와(望瓦)에 귀면(鬼面)이 찍혀져 있다. 망와란 망을 보는 기와라는 뜻이다. 무서운 도깨비가 망와에 그려져 있으면 집안에 들어오려던 악귀가 겁을 먹고 물러간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귀면망와는 순전히 우리 것으로 중국에서는 귀면망와를 사용하지 않는다.

망와는 삼국에서 모두 사용했는데 특히 고구려 장군총의 유물 중에서도 도깨비와 같은 와당이 발견되었고 고구려 벽화에도 해학적인 도깨비에 가까운 문양이 나타나있다. 백제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도깨비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신라 도깨비는 대단히 정교하면서도 뚜렷한 형태의 도깨비이다.   

망와에 그려져 있는 귀면을 도깨비로 인정하는 학자들은 도깨비의 기원이 악귀를 쫓는 벽사의례의 소산이라고 설명한다. 도깨비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존재가 아니다. 절이나 궁궐의 석수(石狩), 문살문양에도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유도 도깨비가 있어야 절이나 궁을 지킬 수 있다는 뜻에서이다.

반면 강은해는 『삼국유사』의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을 우리나라 도깨비의 시조로 삼았다. ‘도화녀와 비형랑’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25대 사륜왕의 익호는 진지대왕이며 성은 김씨요 비(妃)는 기오공의 딸 지도부인이다. 즉위한 지 4년에 정사가 어지럽고 또 음란한 짓이 많아 그가 폐위되었다.

이에 앞서 사량부에 서녀(庶女)가 있어 얼굴이 고와 도화랑이라고 했는데 어느 날 왕이 그녀를 불렀다.

"여자의 지킬 바는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 것이니 남편이 있는 여자는 만승(제왕)의 위엄으로도 어쩌지 못합니다."
"너를 죽이면 어찌하겠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다른 일은 원하지 않습니다."
"네 남편이 없으면 되느냐."
"그러면 될 수 있습니다."

왕은 도화녀를 그대로 놓아주었다. 그 후 왕은 폐위되어 사망했고 3년 후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 도화녀의 남편이 죽은 열흘 후 왕이 생시와 같이 나타나 "네가 이전에 말한 대로 지금 네 남편이 없으니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도화녀는 그제야 승낙하고 왕을 7일 동안 머물게 했다.

도화녀는 이내 태기가 있어 비형랑이라는 아이를 낳았으며 진평대왕이 그를 궁중에 데려다가 길렀다. 비형랑이 나이 15세에 집사(직명)를 차수(差授)하니 번번이 궁궐의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가 황천의 귀신들을 데리고 놀다가 절간의 새벽종이 울리면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의 귀면와당. 통일신라시대(7∼8세기)의 와당으로 도깨비가 있어야 절이나 궁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왕이 비형랑에게 귀신을 불러 신원사에 다리를 놓으라고 말하자 비형랑은 귀신의 무리를 데리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았고 그 다리를 귀신다리(鬼橋)라고 불렀다. 왕이 귀신의 무리 중에서 인간세계에 출현하여 정사를 돌볼 자가 있느냐고 묻자 비형량은 길달이란 귀신을 추천했다. 길달은 충성스럽고 정직해서 각간 임종의 뒤를 잇는 아들로 삼았는데 여우로 변하여 도망치는 것을 보고 비형랑이 귀신을 시켜 그를 잡아 죽였다.

귀신 무리들이 비형랑을 두려워하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집에 붙여놓고 귀신의 접근을 막았다.

"성제(聖帝)의 혼이 아들을 낳았다.
여기는 비형랑의 집이다. 날고뛰는 잡귀들이 이곳에는 머물지 말라."'

위와 같은 기록들을 근거로 많은 학자들이 광의의 도깨비 즉 귀면을 갖고 있는 귀신을 도깨비에 포함시키길 선호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삼국유사』의 ‘도화녀와 비형랑 이야기’의 귀신무리를 도깨비로 볼 수 있느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귀신 이야기에는 도깨비가 등장하지를 않는다.

우리 설화나 전설에 도깨비가 지칭되지 않았다고 해서 도깨비가 고대부터 우리 민중 사이에 알려졌다고 추정하는 것이 무리라는 해석도 있지만 도깨비에 대한 개념이 고대부터 선조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갖는다.

벽사 의미를 갖는 망와가 정확히 도깨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도깨비로 여겨도 좋은 마음속의 그림과 형체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재일은 도깨비의 일차적인 주거지는 한국인의 마음속이라고 주장했다. 마음이라지만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이르기까지 도깨비가 그 영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점은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날의 어린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를 쉽게 납득한다는 것은 그들의 납득을 돕는 요소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깨비에 대한 오랜 상상과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계속)   04/12/27 이종호(
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새로 태어나는 도깨비(2)
유럽인에 사랑받는 고블랭 우리 도깨비와 흡사
성질 변덕 간혹 좋은 일 하지만 나쁜 일 더 많아
<각 국의 도깨비>

프랑스의 고블랭은 우리의 도깨비와 흡사하다. 고블랭은 집에 있는 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성질이 변덕스럽고 간혹 좋은 일을 하지만 나쁜 일을 더 많이 한다. 밤이 되면 벽과 문을 두드리며 가구를 옮겨 놓기도 하고 접시를 깨기도 한다. 자는 사람의 침대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술집도 자주 들러 사람들을 놀라게도 한다.

고블랭이 유럽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부모 말을 안 듣는 아이들에게 벌을 주기도 하지만 착하고 예쁜 아이들에겐 선물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요정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고블랭의 장난을 막기 위해 아마씨를 뿌려 놓는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고블렝 게임. 고블렝은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도깨비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므로 많은 예술작품에 등장한다.


중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한자 표현으로 '망량'이나 '이매' 등을 사용하는데 망량은 산에 있는 정령이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매는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짐승으로 이들은 사람을 홀리는 정체불명의 요괴이며 독각자(禿脚子)라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고유 신앙 가운데는 어떤 물체든지 특별한 동기를 가지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점차로 그것이 정신을 가지게 되는 소위 정(精)이 된다는 믿음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가구에 사람의 피가 묻었다면 그것이 햇빛을 받아 요괴가 된다는 것 등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精)이 된 독각자를 신으로 모신다. 일단 숭배 신으로 모시기만 하면 요괴라기보다는 소신자(小信子)라는 수호신이 된다. 성격이 퍽 변덕스러워 남의 재물을 훔치기도 하지만 대접을 잘하면 재물을 갖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서 소신자를 모시는 가정이 많다. 이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도움도 주고 다소 멍청하기도 한 점이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유사하다.

일본에는 도깨비에 해당되는 것으로 오니, 천구(天狗), 하동(河童) 등이 있다. 일본의 오니는 우리의 도깨비보다는 광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대체로 뿔 두 개가 나고 빨강 파랑 등의 색깔이 있는 해괴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한국의 도깨비는 귀신도 사람도 아닌 존재이다. 중국의 귀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람이 죽어서 되는 귀신뿐 아니라 뭔가 인간과는 다른 존재 전체를 일컫는다. 또한 중국의 귀는 사람이 죽어서 된 존재라 하더라도 한국의 귀신과 다르다. 대표적으로 강시는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이지만 한국에는 그런 귀신이 없다.

일본의 요괴는 신이나 귀신,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말하지만 특히 사람이 죽어서 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도깨비가 우리 민족 고유의 독자적 노선을 걸어 왔다는 것을 뜻한다. 도깨비 이야기는 후대에 널리 퍼지면서 점점 내용이 풍부해졌다.

물론 한국의 도깨비 중에도 나무나 돌 등의 자연물이 변해서 된다는 개념도 있다. 예컨대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가 나타나 심술을 부리므로 칡덩굴로 묶어 놓고 다음날 가보았더니 헌 빗자루 하나가 묶여 있다든지, 나그네가 밤길을 가다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깨어보니 부지깽이 하나를 안고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런 예이다.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도깨비석. 도깨비의 도움으로 벼슬까지 하게 되어 그 은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김공선정지비’라는 명문이 새겨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자용은 도깨비가 동양 3국에서는 한국이 원전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설화집 『유양잡조』에 중국과 일본이 신라에서 도깨비를 차용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중국인들은 신라의 도깨비 방망이를 송곳으로 변형시켰고, 일본인들은 도깨비 방망이를 손잡이가 짧은 망치로 변형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의 도깨비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일본이 지진, 태풍, 화산폭발 등 천재지변이 많으므로 신라의 도깨비가 보다 강렬한 도깨비로 변하면서 험상궂은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추정한다.

일각에서는 뿔 달린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이고 우리나라 도깨비는 뿔이 없다고 하지만 동양 도깨비는 모두 한국에서 기원하므로 모두 뿔이 있다고 조자용은 설명한다.


사발 깨지는 소리로 자신을 들어내기도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외다리이다. 『포박자(抱朴子)』에도 도깨비는 발이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도깨비는 머리를 산발하고 대개 산길이나 들길에서 나타난다. 또한 도깨비는 변신의 천재이다. 대체로 머리에 뿔이 나고 방망이를 들고 있지만 형체 없이도 사발 깨지는 소리, 기왓장 깨지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로 자신을 들어내기도 한다.

'우탕탕', '우르르쾅', '와장창' 등은 도깨비 출현을 알리는 의성 의태어들이다. 그들의 출현은 늘 충격적이고 소란하고 무질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깨비는 사람들이 쓰는 물건들을 지물(持物)로 하고 있다. 방망이 부지깽이 빗자루 절굿공이 체 키 홍두깨 솥 돈 방석 등으로 도깨비는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도깨비 가족을 정확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이유는 도깨비가 어떤 구체적인 틀에 의해서 전승되어 온 것이 아니라 악귀를 쫓는 민중적인 믿음에 의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용준은 제주도의 도깨비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갓 양태만 붙은 파립을 쓰고 옷깃만 겨우 붙은 베 도포를 입고, 총만 붙은 미투리를 신고 한 뼘도 안 되는 곰방대를 물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다.'

도깨비가 사는 곳은 일정하지 않으나 들판 산길 계곡 절간이나 헌 집 등에 흔히 나타나고 있으므로 거처도 그러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임동권 박사는 설명했다. 특히 큰 나무는 귀중(鬼衆)이 모이는 곳으로 인식되어 거목의 죽은 가지는 베지도 않고 불로 때지도 않았다.

사용하지 않는 우물에도 흔히 도깨비가 모인다고 알려졌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광야나 덤불숲도 도깨비의 거처이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음기(陰氣)의 영이므로 음침하고 그늘진 곳에 거처하고 있다가 사람이 좀처럼 왕래하지 않는 곳이나 야음에 나타난다. 간혹 장날 장터 복판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도깨비는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소리로만 들리는 두 종류가 있는데 가시적인 도깨비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자 도깨비는 만나는 사람마다 씨름을 거는 것이 통례이고 여자 도깨비는 사람을 유혹하여 밤새 미로를 방황케 하거나 아니면 결국 목숨을 잃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설화는 극히 드물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깨비는 대체로 환청이거나 환상에 속하는 것으로 대개 괴음이 여기에 속한다. 괴음에는 기물파괴소리, 말발굽 소리 또는 우박 떨어지는 소리, 돌 구르는 소리 등이 포함된다. 괴음 도깨비의 공통점은 당하는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괴음을 도깨비의 짓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찌그러진 외양에 이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지만 도깨비는 매우 친근한 형태로 묘사된다.

물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적힌 도깨비처럼 도깨비를 중국의 귀인 독각귀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독각귀는 다리가 하나뿐인 산에 살고 있는 귀로서 그 모양새나 하는 짓이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다르다. 다리도 항상 외다리는 아니다. 그러나 하는 짓을 보면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같은데 이는 도깨비를 한자로 표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도깨비를 차용한 것 같다는 학자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뿔과 눈이 둘이지만 일본의 오니는 뿔이 하나에 눈도 하나로 표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주시 노형동 도깨비 도로. 착시현상으로 경사도 3도 가량 내리막 곡선도로지만 차를 정지하고 기어를 중립상태로 놓으면 차가 뒤로 밀리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며 도깨비 도로라고 불린다(사진 encyber.com).


남녀차별 철폐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만일지 모르지만 도깨비는 거의 대부분 남자라는 것도 특징이다. 간혹 여자 도깨비가 남자를 후리면서 요사스럽게 괴롭히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도깨비 설화는 남자가 등장한다.

한국의 도깨비는 사악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선하고 다소 어리숙한 남자를 등장시키는 것이 이야기 전개에 훨씬 적합했음직하다. 눈을 부릅뜬 못생긴 도깨비 형상의 여자를 등장시켜 남자를 유혹한다고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도깨비를 당시의 사회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김진섭은 도깨비의 모습이나 행동이 매우 해학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양반 계층의 권위주의와 허위의식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비판을 담은 풍자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적었다.

예를 들면 도깨비를 당시 양반 중에서도 정3품과 종2품에 해당하는 별칭인 '영감'으로 부른 것을 들었다. 특히 형태나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남루한 복장인데도 여자를 좋아하여 뒤쫓아 다닌다. 반면에 해녀가 목숨을 걸고 따온 전복이나 소라, 미역 등을 제물로 받고 난 다음 서민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다소 권위적이고 착취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던 양반 사회에 대한 유감과 풍자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민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밤과 상원날 밤에 도깨비불을 보아 그 해 농사의 흉년과 풍년을 점치기도 한다. 도깨비들이 불을 켜고 왕래한다는 그 날 밤에 도깨비불이 동에서 서로 가면 풍년이고 서에서 동으로 가면 흉년의 징조라고 해석한다. 이때 도깨비는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게 되는데 걸음이 빨라서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하여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다.


재미 삼아 사람 골탕먹이지만 사악하지 않아



우리나라 도깨비는 인간에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보이며 극히 예외적으로 인간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히 악독하지 않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깨비는 심술궂어서 종종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재미 삼아 사람을 골탕 먹이지만 질병을 옮기거나 사악한 기운을 퍼뜨리지는 않는다.

화려한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도깨비는 금은보화를 모으지만 사람들이 자기에게 음식이나 물건 바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서운한 대접을 받으면 반드시 보복하지만 초능력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호화스러운 곳이 아닌 다 쓰러져 가는 폐가나 들판, 산길 등에 기거한다. 그들은 금은보화를 재산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놀이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도깨비는 대체로 착하고 순하다. 욕심쟁이나 못된 사람이 곤욕을 치루는 경우도 착한 사람을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도깨비가 착하고 순한 이유는 도깨비의 출발 자체가 벽사 수호신이기 때문에 여느 사악한 잡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백제 도읍지 부여에서 발견된 도깨비 문양 전돌.


특히 도깨비는 인간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도깨비를 인간 중심적으로 끌어갔기 때문이다. 똑똑한 체하다가 항상 주인공에게 당하거나 주인공을 위협하다가도 항상 자신이 웃음거리가 된다. 도깨비에게 허점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도깨비가 인간적이라는 뜻이다. 장난을 좋아하여 사람의 다리를 걸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슬쩍슬쩍 뒷덜미를 잡기도 한다. 술과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도깨비에 관한 민담이나 설화 중에서 무리를 지어 춤을 추지 않는 도깨비 이야기는 거의 없을 정도다. 미녀를 탐하고 시기와 질투가 있지만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인간에게 불화와 반목을 처음부터 주지는 않는다.  

도깨비의 재미는 도깨비가 이와 같이 바보짓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혹부리 영감의 혹과 도깨비 방망이를 바꾼 이야기(일본의 민담이 우리나라의 민담으로 정착되었다는 추정도 있음), 돈을 빌려주었더니 매일 돈을 갚으러 와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도깨비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도깨비가 바보짓을 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씨름 이야기이다.

'도깨비가 산에서 청년을 만나자 씨름을 하자고 청했다. 청년은 처음에 도깨비의 모습에 놀랐지만 발이 하나라는 것을 알고 순순히 도깨비의 제안에 응했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다리가 하나인 도깨비의 다리를 감아 쉽게 넘어뜨릴 수 있었다. 도깨비는 계속 청년에게 씨름을 하자고 했지만 모두 도깨비가 지고 말았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청년이 무사히 도깨비로부터 벗어나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다리가 하나이면서 청년에게 씨름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도깨비가 미련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지만 도깨비가 어떻게 걷는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외다리이므로 껑충껑충 뛰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다.

대체로 도깨비와의 씨름은 끝이 나쁘지 않다. 『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것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육지에 가려고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나가는데 도중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도깨비는 그를 붙잡으며 씨름을 하자고 했다. 둘이서 씨름을 하였지만 서로 잡고 늘어져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도깨비가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했다. 그 후 계속 씨름을 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고 초저녁에 시작한 씨름이 새벽이 돼도 끝나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닭이 울자 도깨비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그때서야 허둥지둥 선착장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고 없었는데 그 후에 배가 풍랑을 만나 모두들 몰살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그의 선조가 배를 타지 못하게 하느라고 도깨비를 시켜서 씨름을 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도깨비가 사람을 이기는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매번 질 줄 알면서도 씨름을 하자는 것은 거꾸로 해석해보면 도깨비가 인간에게 매우 가깝고 친근감을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도깨비의 다리가 하나라는 것은 중국의 귀인 독각귀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도깨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도깨비가 유독 사람에게 씨름을 하자고 하는 것을 김열규는 인간의 가부장제적인 권위 및 권능, 힘에 대한 도전이라고 적었다. 남성적인 것에 주어지는 시련으로 보았다. 그는 도깨비가 아무리 천방지축이라고 해도 밤중에 여자 앞에 나타나서 씨름을 하자고 한 경우는 없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실체 없는 것 알지만 상상 속에 살아있어



2004년 6월 4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 나타난 도깨비뿔 달린 응원단 모습. 현대화된 도깨비는 각종 모임에서 단골 주제이다.
한국인치고 어렸을 때 도깨비 얘기를 듣고 자라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이지만 도깨비가 이 세상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알아차린다.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도 마찬가지이다. 산타클로스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도 초등학교 저학년만 지나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만 지나면 알 수 있는 도깨비와 산타클로스의 차이점은 도깨비는 산타클로스와는 달리 어른이 되어도 그 실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인들에게 도깨비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도깨비의 실체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상의 공간에서는 아이이든 어른이든 항상 살아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도깨비에 관한 속담을 알아보면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토종연구가 홍석화가 찾아 낸 속담을 인용한다.

◎ 도깨비 기왓장 뒤지듯 : 쓸데없이 분주하고, 자신도 별 목적 없이 공연히 뒤지기만 함

◎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고 귀신은 경으로 뗀다 : 귀찮은 존재를 물리치는 데는 나름대로 알맞은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 사건의 진행이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그 결과가 속히 나타난다.

◎ 도깨비도 수풀이 있어야 모인다 :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이 이루어짐

◎ 도깨비 땅 마련하듯 : 무엇을 해도 아무 실속이 없이 헛됨

◎ 도깨비를 사귀었나 : 까닭 없이 재산이 부쩍부쩍 늘어남

◎ 도깨비를 사귄 셈이라 : 귀찮은 자가 늘 따라다녀서 골치를 앓음

◎ 도깨비 쓸개라 : 보잘 것 없이 작고 깨끗하지 못함

◎ 도깨비감투 : 반짝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좋은 결과를 갖고 오지 못함.

도깨비 속담을 보더라도 특별히 사악하거나 나쁜 이미지가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도깨비는 한국인들에게 무언가 미묘한 이미지의 매력을 갖는다. 그만큼 도깨비는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도깨비를 한국의 전통적인 전설로 승화시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 유럽 현대 문명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할 만큼 신화의 위력은 대단하다. 신화는 문학 연극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따위를 위한 상상의 보고이다. 심지어 복잡한 정신분석학 용어도 신화의 이미지를 빌리면 간단하게 설명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그리스 신화에서 테베의 오이디푸스 왕이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였다는 이야기로부터 비롯하여 남자는 잠재적으로 그 아버지에 대하여 반항심을 가지고 어머니에게는 특별한 애착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정신분석학의 용어), 카산드라 콤플렉스(자신의 말이 언제나 척척 들어맞는 데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로 카산드라는 '재앙의 예언자'나 '흥을 깨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등이 좋은 예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도깨비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도깨비는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데 묘미가 있다.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흔히 '도깨비 팀'이나 '도깨비 방망이'라는 말이다. 한때 현 기아 팀의 전신인 '청보 핀토스'나 '삼미 슈퍼스타스' 팀에게 쓰이더니 시즌 중에 갑자기 바닥에서 연승을 계속하거나 연패를 당할 때 또는 갑자기 타율이 올라가는 선수에게 도깨비라는 별칭을 붙여준다. 이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성적이 종잡을 수 없는 팀이나 타율의 기폭이 심할 경우를 의미한다.

도깨비방망이란 말에는 매우 짙은 해학성이 담겨져 있다. 그 누구도 방망이 속에 도깨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도깨비라는 말에 변덕스럽다거나 종잡을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변덕방망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도깨비방망이'라고 부르면 퍽 다른 느낌을 준다.

물론 도깨비라는 말이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나타나는 사람을 보고 '도깨비 같은 녀석'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도깨비가 항상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각지에서 도깨비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이곳은 각가지 종류의 물건들이 있고 물건들을 값싸게 살 수있다고 이해된다. 도깨비시장이라는 말이야말로 한국민의 정서에 가장 알맞는 이름이며 적절하게 도깨비를 표현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도깨비 시장. 각가지 종류의 물건들이 있고 가격이 싸다는 의미에서 국내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도깨비시장은 한국민들의 정서에 가장 알맞은 이름이라고 이해한다.


도깨비는 이와 같이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 항상 살아 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제주시내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제주시 노형동과 강원도 화순군에 있는 도깨비 도로이다. 화순군의 경우 착시현상으로 경사도 10도가량 내리막 곡선도로지만 차를 정지하고 기어를 중립상태로 놓으면 차가 뒤로 밀린다. 제주시 노형동의 경우 경사 3도 가량의 내리막길인데도 주변 지형 때문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므로 자동차가 언덕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착시현상으로 판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도깨비도로'라고 부르는가. 일반적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거나 느꼈을 때 대부분 귀신의 행동이라고 말하지 않고 도깨비 행동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속에 도깨비라는 개념이 들어있으며 또 도깨비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더욱이 도깨비라는 말을 붙일 때는 다소 유머러스하다는 것 자체가 도깨비가 한국인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에게 도깨비는 살아 있되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되 살아 있는 존재이다.

물론 도깨비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도깨비 불’을 드는 사람도 있다. 인적이 없는 무덤 근처나 호젓한 산 속에서 가끔 파란 불빛이 보이면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이는 인(I)이 내는 형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보았을 때도 선조들은 제일 먼저 도깨비를 연상했다.

한 마디로 도깨비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요정과 같은 캐릭터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선조들에게 SF(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부단히 지적받아 왔지만 요정과 같은 도깨비를 창안한 것을 보면 후손들이 선조들의 상상력과 과학성을 얼마나 훼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여하튼 도깨비는 과학적으로 실체를 규명하는 것보다 선조들이 만들어 준 도깨비의 아이디어를 지키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앞으로 도깨비는 더욱 자주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작가들은 도깨비를 창작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도깨비는 이제 모든 분야의 예술에 등장하길 망설이지 않는다. 현대 화가들이 도깨비를 그림의 소재로 즐겨 이용하며 도깨비 캐릭터가 어린아이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는 것을 볼 때 인간에게 꿈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도깨비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나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여하튼 어려서 자주 부르던 도깨비 노래는 생각만 해도 즐겁기만 하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 방망이를 두들기면 무엇이 될까 / 금 나와라 나와 뚝~딱 / 은 나와라 나와 뚝~딱'
04/12/31 이종호(
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