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sr]역사,종교

교황서거에 부쳐 (유럽의 기독교, 로마캐톨릭의 역사)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8. 14:38

요한 바오르 2세 교황이 서거하였다. 그는 26년간 재임중 무려 129개 국가를 방문하여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을 호소하였다. 오래 전 우리나라도 방문하여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어김없이 온 세계의 메스컴이 중계하는 가운데 교황은 바티칸 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선포하였다. 인류역사상 평화와 화합 캠페인을 이만큼 한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황만큼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구교와 신교로 불리는 같은 뿌리를 가진 종교이다. 같은 하나님, 같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같은 성경(천주교의 7권은 빼고)을 믿는다. 그래서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로 갈라진 구교와 신교를 통합하고 화합하자는 운동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몇 년 전 바티칸 교황청은 천주교만이 참교회요 구원이 있는 교회이며, 그 동안 노력해온 카톨릭, 개신교의 초교파 통합운동도 카톨릭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카톨릭의 우월적 지위라니, 참교회라니,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베드로(헬라어로 반석이라는 뜻)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리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하게 하실 것이며, 또 천국열쇠를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개신교는 이 “베드로(반석)”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은 베드로를 베드로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개인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하셨으며 베드로가 천국열쇠를 가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은 변개하지 못 하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한 번 주신 이상 베드로가 천국열쇠를 가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독신이었으며 로마에 가서 초대교황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베드로의 교회만이 참교회이고 교황이 천국열쇠를 이어받음으로써 로마 카톨릭만이 천국열쇠를 지닌 참교회라는 것이다. 참교회는 여럿일 수 없고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독신이 아니었다. 장모가 열병을 앓을 때 주님이 고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기독교가 로마로 전해진 후 200년이 넘도록 박해를 받았는데 베드로가 언제 로마에 가서 초대교황이 되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를 우리는 사도(使徒 Apostles)라고 부른다. 물론 바울까지 포함해서이다.

그리고 이 사도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을 속사도(續使徒 Apostolic Fathers), 그리고 그 후에 교회들을 이끌어간 분들을 교부(敎父 Church Fathers)라고 부른다. 사도들이 세우고 뒤를 이어서 속사도와 교부들이 이끌어간 대표적인 교회들은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 이렇게 다섯 개였다. 이 중 네 개의 교회가 중동지역과 소아시아에 있었고 로마교회만이 멀리 서편 이탈리아에 있은 셈이다.


이 다섯 개의 교회 중 중 특별히 신학적 논쟁이나 활동이 활발했던 교회는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와 터어키에 있는 안디옥 교회였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교회에는 큰 규모의 도서관이 있었고 신학교와도 비슷한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 같은 이단이 대두될 때마다 이단교리에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고 올바른 교리를 세운 혁혁한 공로를 세운 교회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가 이끌어간 교회였고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도 이 곳을 선교여행의 출발지로 삼고 있었다.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 그리고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는 자마다 적그리스도"라고 엄히 영지주의자들을 공격하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요한이 이끌었고 후에는 유명한 순교자 폴리캅이 이끌었던 교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7세기에 이슬람교가 일어났다. 이슬람은 잘 알다시피 히라 동굴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자신이 가장 위대한 최후의 선지자로 세움을 입었다는 마호멧이 세운 종교이다. 그들은 우상을 부수며 위대한 신 알라만을 섬기라고 외친다. “오직 알라만이 신이다. 그리스도가 어디 있느냐?” 이슬람은 그리스도를 부정하며 하나님은 오직 알라신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의 부정에서 출발하는 종교인 셈이다.


서기 622년 7월 16일 이같은 교리를 외치다가 그들이 메카로부터 메디나라는 곳으로 도망한 사건(헤지라)이 모하메드 월력 첫째날이 된다. 그리하여 23 년 동안 하늘로부터 받은 계시라면서 무식한 모하멧이 멋대로 읊은 것을 받아적은 코란이 경전이 되고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절하고, 금식하고(라마단), 메카를 순례하고, 구제를 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어처구니없는 교리의 이슬람은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단의 최대의 도구가 된다.


632년 모하멧이 죽고 그를 계승한 네 명의 칼리프(Caliphs)는 인도로부터 대서양에 이르는 로마제국 보다 더 넓은 모슬렘 제국을 창설하는데 성공한다. 662년에는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샤가 이슬람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637년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칼리프 오마르(Omar)는 예루살렘의 옛 유대인 성전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건설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그리하여 고대의 가장 귀중한 문헌들과 성경의 초기사본들은 사라져 버렸다.


이슬람 제국은 계속하여 아프리카 북부해안을 따라 서진하면서 위대한 기독교 교부인 어거스틴과 키프리안이 활동하던 하니발의 고향 카르타고도 무너뜨렸으며, 마침내 711년에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까지 집어 삽키고 말았다. 그리고 곧 이어서 프랑스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732년, 모하메드가 죽은지 꼭 100년이 되던 해 프랑크 왕국의 지도자 칼 마르텔(Charles Martel)이 투르(Tours)에서 아랍 군대와 맞서 6 일 간의 전투 끝에 그들을 패배시키고 그들을 피레네 산맥 너머로 격퇴시켰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은 그 후에도 700년 동안이나 스페인에 남아 있었고 1492년 아라곤의 페르디난드(Ferdinande of Aragon)가 이슬람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Granada)에서 저항하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Moors)를 아프리카로 쫓아낼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슬람의 발호의 와중에서 다섯 개의 교회 중 서쪽에 있던 로마교회만이 피해를 당하지 않은 셈이었다. 또한 남아있던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사라지고 로마교회만 남게 된 것이다.


이 로마교회도 11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유럽의 여러 국가를 통치한 군주들에게 침범 당하고 무시 당하는 등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교황권을 확립하게 된다. 이 후에도 프랑스의 아비뇽, 이탈리아 북부의 피사 등 세 곳에 3명의 교황이 나타나 서로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합집산을 거쳐 12세기에 들면서 비로소 전 유럽을 하나의 교황권으로 묶는데 성공한다. 특히 그레고리 7세 교황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Henry Ⅳ)와 충돌, 그를 파문하고 카놋사에서 항복을 받아낸 사건은 교황권 확립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그리고 로마교황은 캐톨릭(Catholic), 즉 전우주적 유일교회라는 뜻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고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교회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교황권의 절대적 권위를 세워나가는데 전력을 다 한다.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는데는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러야 했다. 그러나 로마 캐돌릭은 그 순교자들의 피 위에 자기들의 왕국을 세워나갔던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은 교부(Church Father), 즉 교회의 최고 지도자라는 이름에서 출발한다. 교황을 영어로 "Pope“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파파(Papa)"의 변형이다. 우리는 한자어로 ”천주교의 황제, 또는 교회의 황제“라는 뜻의 “교황”이라고 부르지만 지금 온 세상이 교황을 ”Pope", 즉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아니 무서운 일인가? 하늘에 게신 하나님 말고는 아버지로 부르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그를 아버지로 부르다니.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23:8)”



다른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는 구원의 비밀이 들어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부니 조상이라는 말이 없이 다 아버지(히브리어로 “아브”)이고 손자니 자손이라는 말이 없이 다 아들(히브리어로 “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때 그들도 모두 아브라함의 허리 속에 들어 있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아브라함과 하나이므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라고 주장하셨다. 그래서 유대인은 그를 돌로 치려고 했다. 주님은 자신을 찢어서 그 살을, 그 생명을, 아니 그 아들 됨(Sonship)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이것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 곧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우리의 장자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천주교는 교황이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는 교황의 자녀들이 된다는 말인가? 베드로의 후계자와 한 몸이 되어서, 교황과 하나가 되어서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뿐만 아니다. 천주교에서는 또 다른 아버지들이 있다. 그들은 신부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또한 초신자가 세례를 받으면 그 초신자의 신앙을 이끌어줄 선배교인들을 대부(代父), 대모(代母)로 맺어주는 제도를 두어 교인들의 결속을 다지는 도구로도 사용한다.


로마 캐톨릭이 수도원의 엄청난 재산과 영적 권위로 유럽을 지배하려고 할 때 유럽 각국의 황제들의 저항이나 반감은 만만치 않았다. 노골적으로 캐톨릭의 권위에 대항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로마 캐톨릭은 교황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였다. 즉 교황이 영적 권세를 대표하고 황제는 제국의 머리로써 세상의 권세를 대표한다는 이론을 내세운 것이다.


즉 하늘에는 낮과 밤을 주관하는 해와 달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황과 황제에게 각각 다른 사명을 주셨는데 교황은 인간의 영혼을 다스리고 황제는 인간의 육신을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둘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로마캐톨릭의 교황은 황제의 대관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관을 씌워주며 축복하는 권한을 행사하기에 이르렀고 이로써 유럽의 황제들을 그의 영적 권위 아래 복속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영적권세를 잡은 “아버지”였던 교황은 무슨 짓을 했던가? 이들의 지배로 인한 유럽의 중세 암흑기는 그야말로 끔찍하였던 것이다.


이노센트 3세에 이르러 교황의 권세는 극에 달한다. 1215년 이노센트 3세 교황은 로마에서 라테란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다. 412명의 주교와 800명의 수도원장들이 참석하였다. 이 종교회의에서 이노센트 3세는 모든 무릎이 그리스도 앞에 끓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베드로와 그 후계자 교황에게 끓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베드로(즉 교황)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어떤 군주도 통치할 권리가 없다고 하였다.


동시에 이노센트 3세는 화채설(Transubstantiation)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사제의 말에 의하여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가 문자 그대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떡과 살을 숭배하야 하며 참교회, 즉 로마캐톨릭 교회에서 성찬을 받아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고해성사도 이 때에 만들어졌다.


교회와 세상이 모두 교황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이다. (지금도 교황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에 입맞춘다.) 교황의 말은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었고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도 교황에게 있었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천박한 세속어로 번역되어서는 안 되었다.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된 성경을 영어나 불어, 독일어로 번역하면 그는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이 되고 로마캐톨릭, 즉 교회를 침해하는 이단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오직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공부한 사제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미사에 참석하여 사제들이 라틴어로 읽는 의미조차 모르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사제들이 나누어주는 성찬을 받아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교황의 횡포가 가능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두려움이었다.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의 후계자, 오직 하나뿐인 참교회의 아버지인 교황으로부터 파문 당하면 그것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의 후계자가 "너는 파문이야." 한 마디만 하면 지옥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누가 감히 천국의 열쇠를 거머쥔 이 교황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암흑 가운데 참 빛을 찾으려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 생수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저항이 시작되는데 그 시작은 아마도 프랑스의 리용에 살던 왈도라는 사람으로 시작된 왈도파라고 불리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복음서와 성경의 일부를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였고 참된 진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229년 로마 캐톨릭은 발렌치아 회의(The Council of Valencia)에서 사제 이외의 사람이 성경을 소지하는 것을 금지하고 성경을 금서(禁書)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왈도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피이드먼트(Piedment)에서는 동굴로 피신한 400명을 불을 질러 태워죽인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14세기에 영국의 뛰어난 사제 죤 위클리프는 옥스포드 대학을 나왔으며 나중 밸리엘 대학의 총장이 되고 신학박사가 되었는데 로마캐톨릭의 화채설과 거짓교리를 비판하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교인들을 가르친 것으로 인하여 결국 종교재판을 받아 화형에 처해졌다. 로마교회는 위클리프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40년 뒤에 그 무덤을 파헤쳐 다시 유골을 태우고 부수어서 그 재를 스위프트 강에 뿌렸다.


또한 보헤미아의 요한 후스는 위클리프가 번역한 책을 읽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 성경을 가르치고 번역하는 일을 하다가 역시 로마캐톨릭의 종교재판을 거쳐 1414년 화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였으므로 로마교회와 황제는 8만명의 군대를 보내어 토벌하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 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의 사보나롤라도 로마캐톨릭의 거짓 교리에 대항하였다가 1498년 5월에 화형 당한다.


우리가 잘 아는 마르틴 루터 또한 마침 구텐베르그의 인쇄술 발명으로 95개 조항의 반박문이 대량으로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망정이지 그렇지 아니하였더라면 그 역시 종교재판을 거쳐 화형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루터 역시 종교재판이 끝난 후 생명의 위협을 받아 피신해야 했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랫동안 은둔행활을 해야 했다.


즈빙글리는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에 동참하였다가 개신교도 토벌을 위하여 투입된 로마캐톨릭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죤 칼빈도 파리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던 친구 니콜라스 꼽으로 하여금 카톨릭을 공격하고 개혁자들을 옹호하는 취임연설을 하도록 하였다가 프랑스 국왕 프란시스 1세의 칼을 피해 그 친구와 함께 스위스로 도망쳐야 했다.


영국에서도 개신교도에 대한 잔인한 박해가 계속되었고 로마캐톨릭에 저항하는 개혁자들은 잡혀서 화형에 처해졌다. 이들 중에는 웨체스터 주교인 라티머, 런던주교인 리들리, 캔터베리 대주교인 토머스 크랜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대주교라 하여도 로마캐톨릭에 반항하면 이단자가 되어 예외없이 처형되었던 것이다. 또한 25세 된 처녀 앤 어스큐도 로마캐톨릭의 거짓교리와 화채설을 거부하고 화형에 처해졌으며 신약성경을 범역하여 보급하던 틴데일(William Tyndale)도 잡혀서 화형에 처해졌다.


프랑스에서는 로마캐톨릭과 황제에 저항하던 위그노들이 잔인하게 학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네델란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화형되고 생매장되는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100년이 지난 17세기 중엽 독일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은 종교전쟁 가운데서도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후스의 고향인 보헤미아는 이 전쟁으로 쑥밭이 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사람 네 명 중 세 명은 이 전쟁으로 인하여 사라져 버렸다.


이 전쟁은 보헤미아 지방의 개신교도들이 거의 멸절될만큼 비참한 전쟁이었으나 개신교도인 스웨덴 국왕 구스타푸스 아돌푸스가 대군을 이끌고 독일로 들어와 개신교도들을 지원함으로써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결국 스웨덴 국왕은 전투중 전사하고 전쟁은 그 뒤로도 18년이나 계속된 끝에 전쟁에 지친 쌍방이 베스트팔리아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끝나게 된다. 그러나 그 뒤로도 유럽의 북부는 개신교, 남부는 캐톨릭으로 양분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필자의 다른 글 “월드컵대회로 본 역사의 인연, 네델란드와 요코하마” 참고)



“너희들은 성경을 읽지 말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속적인 언어로 말하지 말라.”

“너희는 이 떡과 포도주만 받아 먹으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로마교회만이 참교회이다. 교황이 너희의 아버지이다. 누구든지 교황을 거역하면 그는 마귀의 자식이요 화형을 당할 것이다.”


이 어두운 유럽 중세의 암흑기간 중 그 수많은 유럽인들은 죽어서 과연 천국으로 갔을까?

참교회라는 로마 캐톨릭 교회에 의하여 구원으로 인도되어졌을까?

성경도 못 읽은 그 수많은 유럽인들이 과연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을까?

그들은 신앙의 자유마져 박탈당한 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진리로부터 격리 당한 채 무더기로 지옥으로 이끌려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올리버 크롬웰의 비서였던 죤 밀턴은 로마교회는 바벨론이요 교황은 바벨론의 제사장이요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천주교에서 발행한 성경을 보면 마리아의 몽소승천(夢召昇天 : 꿈에서 하늘로 들리워 올라갔다)과 로자리(Rosary, 염주알)의 내력, 그리고 여러 가지 성례의 전통(Tradition)을 자세히 설명하여 성경처럼 읽혀지도록 만들어 놓았다. 교황의 말씀이 성경과 동등하며 교황이 소집한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교리는 전통으로서 성경의 일부와 같이 되는 것이다.


성경 곳곳에는 말씀을 읽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하였다. 요한계시록 22장에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에겐 재앙을 더 하고 생명나무에서 제하여 버릴 것이란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들어 있다. 이 말씀을 알고 있다면 천주교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연옥설은 1439년 프로렌스 회의에서 채택되었고,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는 기도문은 1508년 식스투스 교황에 의해 제정되었다. 1545년 트렌트회의에서는 전통이 성경과 동등하다는 결정을 하였고 이듬해 1546년에는 연옥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외경 7권을 정경에 추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로마캐톨릭의 성경은 66권이 아니라 73권이 된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집을 나갈 때 성경 73권 중 66권만 갖고 나갔다고들 하는데, 외경 7권이 추가된 것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은 1517년의 한참 뒤다.)

또한 교황무오설(교황은 틀림이 없다)은 1870년 바티칸회의에서, 송모몽소승천은 1950년 (한국동란 나던 해) 피우스 12세에 의하여, 그리고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하는 것은 1950년에 교황이 된 바오로 6세에 의하여서였다. 교황에 의한 성경 변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연옥이 무엇인가? 천주교인들은 날마다 고해성사(신부에게 한다)를 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선행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죽을 때 생각해 보면 도저히 천국에 올라갈 자신이 없다. 그렇게 고해성사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선행을 하려고 애썼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커트라인이 문제인 것이다. 과연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천국문 앞에 선 베드로가 그 열쇠로 내게 천국문을 열어줄까?


그런데 그 커트라인에 아슬아슬 걸려 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고 한 사람은 아슬아슬 천국에 못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그래서 연옥교리가 생겨났을 것이다. 어중간한 사람들은 연옥에서 더 고생하고 회개한 다음 천국에 들어가라.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개신교의 극단적 양분론에 비하여 연옥설은 얼마나 그럴 듯 한가?

천주교인들이 보기엔 선행도 없이, 고해성사도 없이, 연옥도 없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다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천국 간다면서 “할렐루야“ 까불어대는(?) 개신교인들이 염치없고 싸가지 없이 공짜로 구원만을 받으려 하는 인간들로 비쳐지는 것이다.


카톨릭 신자들이야말로 선을 행하는 노력을 하고 주님을 닮으려고 애쓰는 진짜 크리스챤이라고 믿는다.

개신교 교인들보다는 오히려 불교의 고승들이야말로 거룩하고 착한, 구원받아야 할 선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와 가까워져서 김수환 추기경이 절에 가서 강론하고 법정스님이 명동성당에 와서 설법을 하는 등 교류하고, 해마다 4월 초파일이 되면 “알렐루야, 부처님 오신 날 경축”, 하고 플래카드까지 성당 앞에다 내건다. 물론 절에서도 성탄절이 되면 “나무아미타불, 경축 아기예수 오신 날”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그들은 불교와 천주교, 다른 종교 간에도 화합을 이루는데 왜 개신교만이 자기네 종교만이 진리라고 우기면서 화합하지 못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한다.


물론 천주교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발견하고 참 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사와 성찬, 연옥과 고해성사, 천사와 성인숭배 등 그 수많은 전통과 거짓교리들 틈바구니에서 진리를 찾아내고 예수님의 참사랑을 발견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이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죽었다. 그는 26년 재위기간 중 사랑과 평화, 화합을 외치며 129 개국이나 되는 많은 나라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새로 선출되는 로마 캐톨릭의 교황도 여전히 바티칸 궁에서 자신의 베드로의 계승자임과 로마 캐톨릭의 참교회임을 외칠 것이며 온 세계를 누비며 주님의 사랑과 평화와 교회의 화합을 호소할 것이다.

"로마 캐톨릭이 참교회이다. 로마 캐톨릭의 권위 아래 교회들은 화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