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 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 장군의 시 단장지통(斷腸之痛)
경술국치 이후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부사령으로 활동하였다. 1917년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한 장군은 대한독립의군부, 길림군정사 등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조국의 광복을 위한 적극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주장하며 노령 ·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아울러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 활동하며 사관연성소를 설치하여 독립군 간부를 육성하고 한인동포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여 무기를 확보하는 등 북만주 한인사회를 바탕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10월 일본군 대부대가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만주로 출병하자 장군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과 연합하여 청산리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독립전쟁 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와해된 독립군 단체를 수습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한 후 다시 북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1925년에 신민부를 조직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이어 1929년 재만 동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무정부주의 이념을 수용하며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고 동포들의 생활안정 및 무장투쟁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30년 1월 24일 해림현 산시역 부근의 정미소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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