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r]인류진화

동굴벽화 ㅡ 라스코와 알타미라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21. 13:26



라스코 동굴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 쇼베 동굴벽화

 박형민 2019. 9. 10. 17:09


언어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의식의 수준도 올라간 원시인들은 좀 더 고차원의 미술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프랑스의 몽티냑이라는 작은 마을의 동굴벽화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몽티냑 마을의 위치

몽티냑 마을은 위의 지도와 같이 프랑스 남부지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라고 합니다.

라스코 동굴 약도

라스코 동굴 단면도

몽티냑 마을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는 10대 소년들이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발견 시기가 1940년대이니, 발견된지 채 100년이 되지 않은 것이죠.

황소 갤러리

황소 갤러리

동굴에 들어가면 황소갤러리가 나옵니다.

여기에 그려진 황소는 지금은 멸종한 오록스라는 종이라고 합니다.

왜 황소를 그렸을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주변에 오록스가 살아서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기법적으로는 입에 물감을 머금고 뿌리는 스프레이 기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동굴은 굉장히 어두웠을텐데, 어떻게 그렸을까요?

이렇게 생긴 램프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기름을 붓고 천에 불을 붙여 동굴 내부를 밝힌 것이죠.

손잡이에는 이름까지 표기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램프가 있다고 하더라도 험난한 동굴에,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불빛에 의지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고생을 해가며 동굴에 벽화를 그린 이유가 무엇을까요?

아마도 종교적 이유이지 않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장소성

장소성이란 작품과 전시하는 공간의 관계입니다.

원시미술은 이러한 장소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시인들은 소처럼 생긴 돌에 소를 그렸습니다.

이 돌 위에 그린 소는 깔끔한 캔버스 평면 위에 그려진 소와 완전히 다른 맥락입니다.

이렇게 원시미술은 "장소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라스코동굴 샤프트, 내장이 튀어나온 소와 쓰러진 남자

사다리를 타고 샤프트(절벽)를 내려가면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창자가 흘러나온 성난 소가 있습니다.

그 앞에는 새모양의 머리를 한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주변에 코뿔소와 새가 무심하게 자리잡고 있네요.

이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는 이는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추상적으로 그려진 쓰러진 사람의 "성기"에 눈이 갑니다.

원시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단순화되고 추상화된 인물화에서

남성의 경우에는 성기를 꼭 그려넣는다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원근법

라스코동굴 네이브의 두 마리 들소

우리는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기에야 비로서 발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겹쳐진 물체의 뒤를 흐리는 공기원근법은 이미 원시인들도 알고있었습니다.

위의 그림의 들소 다리를 보면 공간감이 느껴지죠?

원시인들이 이미 원근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니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폐쇠된 라스코 동굴

아쉽게도 라스코 동굴은 직접 가서 관람하기 어렵습니다.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들어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을 상대로 왜 폐쇠를 시켰을까요?

몰려드는 관객이 내뿜는 온도, 이산화탄소등으로 동굴 내부의 환경이 변화되고

갑작스런 습도변화, 심지어는 관객들의 손길때문에 동굴 내부가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불가피하게 폐쇠되었다고 합니다.

인조 라스코 동굴

라스코동굴 근처에는 내부구조를 재현해 위에 벽화를 그린 인조 라스코 동굴이 있다고 합니다.

구조를 최대한 복제했다고 하니, 장소성도 나름대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가끔은 위의 사진처럼 순회전을 하기도 하나봅니다.

진짜 라스코 동굴은 못들어가게 되었으니, 아쉬운데로 복제 동굴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과 미술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설을 믿게되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진화된 호모사피엔스와 그 사촌격인 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는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닮았지만 다른 종이라고 합니다.

당나귀와 말격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그런 관계이지요.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두뇌가 크고 힘도 셋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호모사피엔스는 온 지구로 뻗어나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평균 수명이 15세였다고 합니다.

또한 힘이 별로 세지 않아,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질병과 사고등에 취약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필요했습니다.

젊은 남성은 사냥을 나가고, 사냥을 할 수 없는 노인은 어린 아이를 돌보면서 "사회"를 꾸렸습니다.

역할을 분담해서 생존했던 것이죠.

사회성을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손 호모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통해 "미술"을 시작합니다.

이제는 같은 세대끼리만 유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간에도 "미술"을 통해 협력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지혜를 물려주면서 호모사피엔스는 살아남을수 있었습니다.

그럼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멸종했을까요?

현생인류에 의해 멸종당했다는 설,

기후에 의해 멸종당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배를 통해 호모사피엔스에게 흡수되면서 멸종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