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분석' 잇따라 성과
티베트인 高山 체질로 3000년 전 유전자 변이…
고대인류 치아 화석 분석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100만년 전에 분화 밝혀져
현생 인류는 가장 최근의 어느 시점, 어느 지역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를 이루었을까. 고대 인류와 갈라지기 시작한 때는 또 언제일까. 인류사(史)의 여러 수수께끼들이 최근 '유전자 분석'이라는 신무기로 잇달아 베일을 벗고 있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캐내는 정과 끌 대신 컴퓨터와 유전자 분석기(sequencer)로 무장해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밝혀내고 있다.◆인류 가장 최근의 진화, 티베트에서 일어났다
일반인들은 해발 4000여m에 이르는 티베트의 고산 지역에 오르면 머리가 아프고 산소 부족으로 고산병에 쉽게 걸린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고산병에 걸리는 일이 드물다. 고산병의 원인은 산소 부족으로 인체가 적혈구를 더 많이 만들면서 피가 짙어지기 때문인데 티베트인들은 선천적으로 적은 적혈구로 많은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고산병에 잘 걸리지 않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족과 티베트인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티베트인만 특이하게 보유한 30여개의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다. 특히 산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해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게 해주는 유전자 변이(EPAS1)의 경우 티베트인의 87%가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족의 91%는 이 유전자 변이를 갖지 못했다.
라스무스 닐센(Nielsen) UC 버클리 교수는 "티베트 같은 고산지역에서는 잘못된 유전자 변이를 가진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라며 "인류에 유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발견"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UC 버클리 외에도 중국 베이징 게놈 연구소(BGI)와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참여했다. 주로 미국 연구팀이 컴퓨터로 통계적인 해석을 하고, 유전자 추출 및 염기서열 분석은 중국·덴마크 연구팀이 유전자 분석기를 활용해 맡았다. 특히 중국·덴마크 연구팀은 각 DNA를 18회 절단해 수많은 절편(切片)으로 나누고 표준 인간게놈과 비교했다. 이들은 내년까지 2500명의 인간 게놈(유전정보의 총합)을 분석할 계획이다.
- ▲ 전통 복장을 입은 티베트 여인. 최근 미국·중국·유럽 공동 연구팀은 3000여년 전 티베트인이 중국 한족에 비해 고지대에 더 적합한 유전자 변이를 갖도록 진화했음을 밝혀냈다.
유전자 분석기술은 최근 인류의 다른 진화과정에 대해서도 성과를 올렸다. 현생 인류가 과연 고대 인류에서 언제 분화됐는지 치아 화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것.
스페인 그라나다대 연구팀은 최근 400만년 동안 나타난 고대 인류 치아 화석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분석해 인류의 진화과정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연구 과정에서 연구팀은 지난달 23일 현생인류가 고대 인류 중 인류에 가장 가까운 네안데르탈인과 약 100만년 전에 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알려진 것보다 50만년이나 빠른 것이다.
- ▲ 달빛 아래 비친 티베트의 산하(山河). 티베트는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지대가 대부분이어서 저지대에 사는 다른 민족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과학계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그동안 약 50만년 전에 인류와 분화됐으며 약 3만년 전 멸종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번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공존한 기간이 훨씬 길어지게 된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경쟁·교배 등 훨씬 복잡한 관계를 가졌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실제로 올해 5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분석해 인류와 이종 교배가 이뤄졌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구팀은 당시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아프리카 출신 이 외의 현생 인류와 비교하면 약 1~4%가 공통된다고 밝혔다.
영국 런던대의 휴 몽고메리(Montgomery) 교수는 "최근 활발한 유전자 분석 연구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밝혀주는 것은 물론이고, 현생 인류의 유전자 결함을 치료해주는 연구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