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과 청의 조화 >
※ 황진이의 인생과 시문학..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황진이..
그녀의 이력이 단순한 조선 중기 명종조 화류계의 명기로,
음풍농월의 명인으로, 그렇게 알고있으나,
그 이면 또한 자신을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가엾은 영혼이 타고 가는
상여위에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주어 그 가는 자의 영혼을 달래,
순탄히 그 가는 저승으로의 길을 가게 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때문에 자신의 일생이 만인을 위한 꽃이 되어버린 숙명적인 여인으로
누구나 그렇고 그렇게 황진이를 인식하여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 흐르는 진실, 사랑 그리고 그녀 의 시문학 등
그녀가 소유했던 삶 속의 모든 것들은 우리후대 인들이
그녀의 심오한 내면세계를 모르고 한 말이 거의 태반인 것 또한 사실이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면 그녀가 가졌던 사유 인생관 그리고 애정관을 그녀의 한껏 승화된 마음의 창,
그녀의 작품들 한시와 시조란 이름의 열차를 타고
조선 중기의 옛 시대로 시간 여행을 松都의 옛 길로 떠나 보기로 하자.
그녀는 한시보다 시조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나
한시에도 아주 능했음을 다음 시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능소화와 참새>
* 詠半月. 반달을 노래함..
誰斷崑山玉 누가 곤륜산 옥을 떼어내어
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는가
牽牛離別後 견우신랑 직녀아내 이별 후
愁擲壁空虛 시름에 겨워 허공에 던져두었네
崑崙山은 전설상의 산으로 거기에는 옥이 많이 난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쪼금 찍어낸 참 빚 모양의 달이 은하를 배회한다는
황진이의 섬세한 기지야말로 시인의 경지를 초탈한 선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감히 이拙人은 생각해보는 것이다.
황진이의 그 경지는 李白 杜甫 孟浩然를 넘어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한 누이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 라 생각해본다.
특히 시를 사랑하는 이 세상의 여인들은 황진이의 다정다감한 그 韻을 사랑하리라.
黃眞伊 朴淵瀑布 徐華潭(徐敬德) 이세 傑物이 松都三絶이라,
사람들은 그 으뜸이 황진이라 했다한다니......
< 墨竹圖 >
* 送別蘇陽谷詩..
月下庭梧盡 밝은 달 아래 뜨락 오동잎 다 지고
霜中野菊黃 서리 내려도 들국화는 노랗게 피어있구나
樓高天一尺 누각 높아 하늘과 지척의 거리
人醉酒千觴 사람은 취하고 남겨진 술잔은 천이라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 차가운데 거문고는 화답하고
梅花入笛香 매화가지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와라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그대, 나 이별 후
情與碧波長 정은 물결 따라 멀리멀리 가리라.
이 시는 황진이가 蘇陽谷(蘇世讓)과 이별 할 때 지어준 시라 하는데
그 節奏感이 음악처럼 물 흐르듯 壓卷이다.
流水와 冷은 소양곡을 말함이요
菊花 梅花는 황진이 자신을 隱喩한 것이라 생각해본다.
여기서 소양곡은 당대의 이름난 학자라고 하는데
그는 여색에 신중하기를 친구나 후학들에게 역설하면서
내가 만일 여색에 眈溺하며는 나을 개새끼라(犬子) 부르라 하였다,
하지만 그는 황진이의 미색과 풍월에 현혹되어 自繩自縛 하였다하니
그를 친구들은 犬子님 하고 불렀다한다.
풍류란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 石榴의 孤獨 >
* 청산리 벽계수..
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明月이 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 시조에는 重臣 李氏 碧溪守와의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碧溪守는 벽계고을의 수령으로 목민관을 지칭하는 말로
지금의 개성 부근으로 추정하고있다.
이와 음이 같은 "碧溪水"라 하고 자신의 기명인 "明月"을 짜 넣은
황진이의 예리한 기지이리라 생각해 본다.
황진이는 순수하지 못한 꾀임 수로 자신을 가까이 하고자 한
벽계수를 이 시조를 지어 말에서 떨어지게 하였다 하는데
이는 엉뚱한 생각을 품은 벽계수를 보기 좋게 골탕먹이는
황진이의 여유로운 풍류의 여운이 아닐까..?
蛇足하면 이 시조는 엉큼한 자 벽계수를 보기 좋게 조롱한
축객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역설적으로 벽계수를 조롱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 시조를 듣고 낙마한 어리버리한 벽게수란 자는 진정 풍류를 알았단 말인가?
* 산은 옛 산, 등.. 2수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물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 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가.
이 두 수 시조에는 한 인걸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정이 담겨있다.
인걸은 누구였을까.
문헌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徐敬德을 말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황진이가 평생 성인으로 우러러 사모한 인물이 서경덕이었기 때문이라
졸인은 생각도 해본다..
한때 황진이는 속세를 떠나 산수를 즐겼다 한다.
금강, 태백, 지리 등 여러 산을 유람하고 송도로 돌아온 것은 화담이 세상을 뜬 후였다.
그녀는 화담정사의 물가에 나 앉아 "지나가는 것은 물과 같은 것, 밤 낮 없이 멎지 않는다"
"(서자여사逝者如斯)" 라는 논어 말씀을 되 챙겨본다.
생전의 화담을 애도하고 추모한 시조는 "유한한 인생의 한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說理가 아닌" 정서적인 멋을 느끼게 한다.
남성을 "물"로 여성을 "산"으로 비유한 것도 진이의 機智에 찬 풍류이리라 느껴본다
어촌의 노옹
情 恨의 時調 3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더냐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구타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1-
내 언제 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2-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3-
이 세 편은 情恨의 시조다. 상대방은 누구였을까.
이에 따르는 이야기도 전하지 않는다.
기생이었으니 각기 다른 대상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보면 이는 황진이의 풍류를 모르는 이야기다.
이는 한 사람에 대한 애틋한 情恨을 노래한 連作으로 보아야 한다.
1.에서는 이별에 아무런 안달 없이 보내놓고 나서야 그리워지는 사랑을,
2 .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철이 바뀌어도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을,
3에서는 그 사랑과 다시 만날 밤의 정경을 상상으로 담아낸
일련의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어
윗 삼 수도 역시 對象人이 스스로 도인, 묵객 蘇陽谷(蘇世讓)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수 묵 蓮 >
* 明月이 된 황진이...
주지하다시피 황진이는 송도출신(開城) 명기로 그녀의 妓名은 明月이라고 누구나 알고있다.
중종 때 황 아무개 進士의 庶女로 태어났으며, 經書에 능하고 詩 ·書·音律에 뛰어났고,
더구나 아름다운 용모는 타인의 追從不許였다 한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相思病으로 죽자
妓界에 투신했다 하니 인간의 길흉화복은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이리라.....
- 자료출처/문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