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업강국의 꿈…‘백합나무’ 재배 성공 |
[국책연구소에서는 지금 ①] 국립산림과학원 |
“돈이 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 지난 4월 5일 식목일, 수원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시험림에서 기념식수를 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돈이 되는 나무-.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산림정책의 지상명제는 치산녹화였다. 헐벗은 산을 푸르게 만들려면 빨리 자라는 나무가 주요조림수종으로 꼽혔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예전의 헐벗은 산은 볼 수 없게 되었고, 세계가 알아줄 만큼 모범적인 육림국가가 된 것이다. 국토의 약 64%가 산지인 나라답게 울창한 숲을 조성했으니, 녹화사업은 크게 성공한 셈이다. 이즈음부터 산림당국은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다. 산림녹화에는 성공했지만, 수종선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값이면 돈이 되는 나무를 심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비등했다. 그때부터 ‘돈이 되는 나무(樹種)’ 찾기가 시작되었다. 대개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부터 지금까지를 산림자원화를 위한 경제수종심기가 본격화 되었으며, 그 일련의 과정이 녹화사업이후 산림당국의 역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래수종을 비롯해서 외래수종 등 수많은 품종의 나무들이 역시 수많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갔다. 그동안 38개국에서 412종이 도입돼 우리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나무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때로는 이종(異種)끼리의 교배를 통해 우리 풍토에 맞는 품종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중에는 리기테다소나무, 낙엽송, 삼나무, 해송, 현사시나무 등등 우리네 귀에 익은 나무도 여럿 탄생했다. 때로는 이런 나무들은 ‘대통령 특별지시’에 의해 녹화사업의 주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나무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뒷전으로 밀려나 개중에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들도 있다. 한때는 과일을 따먹을 수 있는 유실수가 각광을 받기도 했고, 목재로 쓰임새가 크다는 나무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생명은 길지 못했다. ‘숲속의 여왕’…수익률 낙엽송의 16배 말 그대로 경제수림이 갖춰야할 조건에 미흡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제수림은 대개 다섯 가지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비싼 목재가격이 비싼 수종이어야 한다. 그래야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둘째, 입지적응력이 강해야 한다. 즉 웬만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야한다. 셋째, 곧고 굵게 자라는 나무여야 한다. 그래야 생산량이 많고, 쓸모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넷째, 병충해에 강해야 한다. 다섯째, 육림(관리)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현재 목재자급률은 6%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오는 2050년까지 30%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목표다. 한해 목재수요량은 약 2700만 입방미터(약 17억 달러), 목표 연도인 2050년에는 약 4200만 입방미터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정책적 지원이나 특히 기존의 수종으로는 난망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동안 목재의 자급률을 높이는 데 적합한 품종의 나무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진행돼왔다. 그 중심에 국립산림과학원(원장 서 승진)이 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는 우리나라 육림정책의 과학적 대안을 연구 개발하는 산림정책의 실질적인 산실이다. 바로 이곳에서 임업강국의 꿈을 실현 가능케 하는 경제성이 뛰어난 나무의 대량생산기술을 완성해 낸 것이다. ‘숲속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백합나무를 재발견, 본격적인 보급에 나선 것이다. 백합나무의 고부가가치를 입증하고, 대량 재배기술을 개발, 성공하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이 숨어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최 완용 부장(임학박사)을 비롯해서 유 근옥 연구관(농학박사), 김 인식 연구사(임학박사) 등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백합나무의 재발견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우선 내부에서부터 인정을 안 해 주더라니까요. 이 친구가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반응이었어요.” 백합나무 재배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 중 한사람인 유 근옥 박사-. 여러 해 동안 세인의 눈밖에 있던 백합나무의 새로운 면을 관찰하고, 이 나무야 말로 21세기 우리나라 산림자원의 핵심 수종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내외에 알리기 시작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지난 1999년의 일이었다. 사실 백합나무에 대한 평가는 이미 십 수 년 전에 끝났다. 외래수종에다가 대량 생산을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할 양묘기술 개발이 어려웠고, 게다가 산지가 많은 우리 토양과는 맞지 않는다는 평가였다. 그런 나무를 뒤늦게 거론하고 나선 유 박사의 말에 선뜻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유 박사도 백합나무와의 인연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대학졸업 후 곧장 산림공무원으로 봉직하면서 처음 얼굴을 마주한 것이 바로 백합나무였다고 한다. “그 후 14년 동안 관찰한 결과, 역시 이 나무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리고는 백합나무에 대한 미련을 접었습니다.” 인연을 끊었던 백합나무를 유 박사가 다시 보게 된 것은 독림가로 유명한 백제약품의 김 동구 회장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김 회장은 지난 70년대부터 전남 강진에 있는 사유림 1200ha에 20여종의 나무를 심고 경영하는 영림가로도 이름난 인물. 그런 김 회장이 지난 97년경 그동안 현장에서 관찰해온 백합나무의 우수성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를 알게 된 한국포플러위원회(회장 심종섭)회원들이 현장답사 후 우수성을 확인했다. 그 후 1998년 7월 7일, 위원회는 산림청에 백합나무를 경제조림수종으로 추천하는 건의를 하게 된다. 이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부가 검증작업에 착수하게된 것. 심층조사에 나선 유근옥 박사를 비롯한 5명의 연구진들은 우선 강원도 춘천 등 전국 6개 지역에 적응성 검정림으로 조성해 놓은 백합나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백합나무는 일찍이 1925년과 ‘27년에 소량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들여 온지 오래된 나무였다. 그 후 ‘69년~’73년까지 미국에서 종자를 들여와 각지에 심었던 것이다. 현재는 김 동구회장의 사유림에 약 30ha가 조성돼 있고, 전국 13개소 40여ha에 20년 이상 된 백합나무가 자라고 있다. 검정결과 백합나무는 현재 보급 중인 낙엽송이나 스트로브잣나무 보다 생장과 경제성에서 월등한 것으로 밝혀졌다. 낙엽송보다 무려 16배 정도의 경제성이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게다가 국내외에서 합판, 가구, 건축재 등 80가지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 이때부터 유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들은 확대보급에 필요한 양묘(養苗) 및 조림기술을 정립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백합나무 종자의 발아조건, 양묘시업기준 등을 2년간에 걸쳐 집중 연구한 결과 당초 10~20%의 저조한 발아율을 90%이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과 조림기술을 터득했다. “처음에는 파종을 하고 며칠을 기다렸는데도 발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백합나무가 빛을 못 본 이유가 양묘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도 해봤죠. 백합나무 씨앗은 발아조건이 안 맞으면 7년간 땅속에서도 안 썩고 그대로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해요. 충분한 수분과 온도를 맞춰줘야 발아를 하다고 여겨 온실에서 키웠더니 드디어 싹이 나더군요.” 양묘에는 성공했지만, 정말 이 나무가 용재림으로 우수한 품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했다. 아무리 크고 굵게 자라는 나무라 해도 목질(木質)자체가 좋지 않으면 경제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시행착오 끝에 양묘조림기술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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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5.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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