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의 비밀
거미는 지구상에서 곤충에 이어 가장 종류가 많은 생물이다. 4만종의 대집단으로 번성한 거미는 해충을 잡는 기막힌 거미줄 묘기로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거미가 번지점프, 사냥, 먹이 포박, 고치 만들기, 비행 등을 위해 무려 9가지나 되는 거미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국대 문명진 교수(생물학)는 왕거미의 몸을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해 이 거미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다양한 거미줄을 만들어내는지 밝힌 논문을 한국곤충학회지, 한국생물과학회지에 발표했다.
문 교수가 연구한 왕거미는 매일 체중의 10%에 이르는 거미줄을 뱃속 실샘에서 액체로 만들어낸다. 거미가 이 액체를 배의 꽁무니에 있는 3쌍의 실젖을 통해 뿜어내면 고체 상태가 되는 데 이것이 바로 거미줄이다.
거미는 매일 새 그물을 친다. 먼저 나무나 풀 위에 올라가 번지점프를 하면서 자전거 바퀴살 모양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동심원 모양의 포획사를 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거미줄을 싹 먹어 치워 알뜰살뜰 재활용까지 한다.
문 교수는 “번지점프용 줄은 병상선이라는 실샘에서 나오는 데 단위 굵기로 비교한다면 강철은 물론 인류가 만든 가장 강한 섬유인 케블라 섬유보다도 훨씬 강도가 높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미국 해군은 낙하산 줄이나 방탄조끼에 필요한 강력한 섬유를 만들기 위해 이 거미줄을 연구 중이며 몸 속에서 분해되는 수술용 봉합사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거미의 진짜 사냥 비결은 먹이 포획용 그물을 치는 데 쓰는 ‘포획사’에 숨어있다. 흔히 우리는 거미줄은 모두 끈적거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나일론실처럼 매끈하다. 오직 포획사만이 끈적거려 그물에 걸린 곤충이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거미가 그물 위를 어슬렁거릴 때 자세히 관찰을 하면 바퀴살 모양의 줄만 밟지 끈적이는 포획사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문 교수는 왕거미가 마치 연줄에 사금파리 섞인 풀을 묻히듯 거미줄에 끈끈이 풀을 바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왕거미가 편상선이란 실샘을 통해 매끈한 줄을 몸 바깥으로 뿜어내면 노즐 양쪽에 포진한 초승달 모양의 수상선이 끈적이를 발라 포획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 과정은 연싸움을 할 때 사기그릇을 빻아 풀을 쑤고 이를 줄에 발라 연줄을 강하게 만드는 것과 똑같다”고 설명한다.
한편 거미는 줄에 먹이가 걸리면 잽싸게 달려가 각각 1백 쌍이 넘는 이상선과 포도상선이란 작은 실샘에서 한꺼번에 줄어 뿜어 먹이가 꼼짝달싹 못하게 포박한다. 또 거미 암컷은 관상선에서 나온 줄로 자신이 낳은 알이 안전하게 월동할 수 있는 고치를 만든다.
알에서 부화된 후, 일시적으로 공동생활을 하던 어린 거미가 독립생활을 시작할 때가 되면, 줄을 이용해 먼 곳으로 비행도 한다. 높은 나무나 풀 위로 올라가 바람 부는 방향으로 거미줄을 풀고 점프하면서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어떤 거미는 무려 그 비행고도가 3000m에 이르기도 한다.
문 교수는 “거미는 먹이를 먹은 뒤 불과 20분이면 거미줄에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해낸다”며 “그 비결은 거미가 먹이의 몸 속에 소화효소를 주입해 완전히 녹인 액체상태로 빨아먹고 매우 효율적으로 단백질을 합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거미는 자기영역에 들어오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습성 때문에 누에나방의 실크처럼 대량 사육에 의한 생산이 불가능하다. 거미줄이 산업화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거미의 유전자를 누에나 대장균에 넣어서 거미줄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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