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남효온은 1485년 금강산 유람을 떠나 발연암(鉢淵庵)에 도착한다. 거기서 이런 유희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폭포 위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물 위에 놓은 뒤 올라타고는 물길을 따라 떠내려가는데, 기술이 없는 사람은 몸이 뒤집혀 떠내려가 웃음거리가 된다고 한다.
그게 정말인가? 오늘날의 ‘워터 봅슬레이’같은 흥미로운 물놀이가 그때도 있었다니! 귀가 솔깃했지만 점잖은 양반으로서 차마 직접 해 보기 민망했던 남효온은 옆에 있던 승려에게 넌지시 말한다. ‘한번 해 보소….’ 중이 여덟 번 모두 성공하는 걸 본 남효온은 체면이고 뭐고 당장 물 속으로 뛰어들어 여섯 번 성공하고 두 번 실패한다. 사람들이 박장대소했지만 워낙 재미있는 놀이인지라 저녁밥을 먹고 또다시 폭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금강산을 찾은 조선 선비들을 그린 겸재 정선의 '풍악도첩' 중 '백천교'(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은 이렇게 사람을 천진하게 만든다. 온갖 가식(假飾)과 허례(虛禮)는 거기서만큼은 잠시 잊어도 좋았다. 조선 선비들은 그랬다. 산에 올라 기이한 경관을 구경하고 별스러운 유흥을 즐겨 가슴속의 티끌을 씻어내고자 했고, 산사에 묵을 때는 씻은 듯한 달빛이 만들어내는 고요함에 젖었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정적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영혼을 살찌우는 구도(求道)의 행위이기도 했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어느 날부턴가 교정에서 멀리 바라보이던 친근한 산들의 모습이 높은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됐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먼지 묻은 고서 더미들 속에서, 산문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며 풍취와 철학을 깃들인 선인들의 유산록(遊山錄)을 골라내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전국 35곳의 산을 소재로 한 54명의 유람록을 번역하고 그 의미를 친절하게 해설한 이 책은, 그래서 산을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선비의 세계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산문기행-조선 선비, 산길을 걷다>(이가서)를 쓴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터뷰./유석재 기자
‘관동록’을 쓴 홍인유는 “낮은 데서부터 높은 이상으로 상승하고 지류를 소급해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 배우는 사람의 일임에야, 산놀이의 가치는 새삼 다시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일이 곧 정신세계를 고양하는 것과 통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퇴계 이황은 ‘소백산 유람록’에서 “내가 여기 왔을 때는 하루도 막힌 적이 없었으니 어찌 만 리 길을 내달려온 쾌활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깨달음이란 꾸준히 정진하는 가운데 얻는 것이지 찰나의 순간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적 진술이다.
때로 그 기행문은 눈물을 삼킬 만큼 비장하다. 서포 김만중이 귀양길에 쓴 ‘첨화령기’는 평북 선천에서 서울 삼각산과 똑같이 생긴 산을 보고 놀라는 가운데 고신(孤臣)의 외로운 심사를 이렇게 기록한다. “아아! 내가 도성을 떠나 여기에 올 때 나를 전송하던 사람들은 모두 근교에서 돌아가고, 오직 화산(삼각산)의 비취빛만이 쫓아와서 떠나지를 않는구나….”
저자는 선비들의 산행이 때로 여러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것이었음도 지적한다. 한 번 산을 찾으면 열흘 이상 걸렸고, 기생·악공·광대를 데리고 가거나 고관인 경우엔 현지 지방관에게 수행하러 나오게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잡하게 놀지 않았다.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읊었으며 현지의 경관과 풍속을 꼼꼼히 기록했다. 직역이면서도 물 흐르듯 부드러운 원문의 번역은 물론, 수많은 도판들을 일일이 찾아내 편집한 출판사의 노력도 무척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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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을 하나 던지겠다. 삼천리강산 최고의 명산은 어디인가. 수려하고 신비롭기로는 금강산이요, 높고 영험하기로는 백두산이요, 넓고 깊기로는 지리산이다. 현답은 저마다 뛰어남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답을 내놓으려면 그 산들을 최소한 한 번씩은 올라 봐야 하지 않겠는가. 불문(佛門)에서 이에 답한 이가 있다. 전국 산사를 구름처럼 떠돈 서산대사이다. 서산대사는 “금강산은 빼어나지만 장엄하지 못하고,지리산은 장엄하지만 빼어나지 못하며,구월산은 빼어나지도 장엄하지도 못하지만 묘향산은 장엄하면서도 빼어나다”며 그가 말년에 주석했던 묘향산을 최고의 산으로 꼽았다.》 평민층에서도 그런 평가를 찾을 수 있다. 판소리 ‘변강쇠전’에서 변강쇠와 옹녀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논하며 “동 금강 석산(石山)이라 나무 없어 살 수 없고, 북 향산(香山·묘향) 찬 곳이라 눈 쌓여 살 수 없고, 서 구월 좋다 하나 적굴(도적 소굴)이라 살 수 있나. 남 지리 토후(土厚)하여 생리(生利)가 좋다 하니 그리로 살러 가세”라는 대목이다. 선비의 평가는 없을까. 2007/03/24 18:5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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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 편으로 꼽히는 조선시대 유산기(遊山記) 중 35곳 명산에 대한 55명의 선비들의 유산기의 핵심을 풀어낸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은 1611년 쓴 ‘두류산기행록’에서 자신이 약관의 나이부터 삼각산(북한산)에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백운대를 올랐고, 벼슬길에 나선 뒤엔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온갖 명산을 답사했고, 백두산은 물론 요동(랴오둥)에서 북경(베이징)에 이르는 명산을 모두 감상했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으뜸으로 꼽은 산은 지리산. 그는 한때 “우리나라 산은 풍악산으로 집대성된다”고 생각했다가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뒤 “그 웅장하고 걸출한 것이 우리나라 모든 산의 으뜸”이라 밝혔다. 심지어 “인간세상의 영리를 마다하고 영영 떠나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면 오직 이 산(지리산)만이 은거할 만한 곳”이라고 적었다. 그런 유몽인이 말년에 광해군과 인조의 정권 교체기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산은 정작 금강산이었다. 생육신으로 유명한 남효온 역시 벼슬길이 끊긴 후 명산대천을 유랑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꼽은 최고의 산은 금강산이었다. 이는 같은 산유(山遊)라도 서유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쫓고, 남유는 산해진미를 쫓고, 북유는 미인을 쫓지만 오직 동유만이 맑은 마음을 쫓는다는 영조 때 문인 이용휴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남효온의 맑은 마음에는 훗날 조선시대 금강산의 관광 상품으로 각광 받게 된 발연(鉢淵)에서 물미끄럼타기(워터 봅슬레이)를 날 저물 때까지 탐닉한 동심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인간적이다. 백두산을 ‘조선의 곤륜산’으로 꼽은 민족주의적 과학자 서명응, 황진이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진 못했어도 한라산 정상에 오른 최초의 기록을 남긴 쾌남아 임제, 유배 길에 북한산을 빼닮은 산을 발견하고 두보의 시구에서 따온 ‘첨화령’이란 낭만적 이름을 붙인 시인 김만중, 집안에 산수화를 걸어놓고 거문고로 물소리 바람소리를 대신했던 예인 강세황…하지만 지리산을 17차례나 올랐다는 남명 조식이 남긴 문구만큼 등산객의 눈길을 잡는 구절이 또 있을까. “위로 올라가는 것도 그 사람이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그 사람이니, 다만 발 한 번 내딛는 데 달린 일이다.” 조선시대 유산기 250편을 뽑아 다양한 시각물과 함께 인터넷에 구축한 스토리뱅크 ‘조선시대 유산기(yusan.culturecontent.com)’를 참조하면 좀 더 입체적 감상이 가능하다. 권재현 기자 2007/03/24 18:5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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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 심경호 지음 ‘요즘 사람들은 사색속에서 태어나서 각기 자신의 스승만 성인이라고 하고, 남의 스승은 도적이라고 한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 또한 그러하다.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질고 지혜로운 자들도 또한 그러하다.’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1771-1853)이 쓴 ‘유산록’에 나오는 글로 지리산을 등반할 때 만난 노인이 문벌을 묻자 한 말이다. 산행을 함께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데 당파를 따지고 취향을 구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란 지적이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그 자체가 소중하고, 특히 산행 가운데 대화는 천진해야 한다는게 이양언의 생각이다. 선인들은 기심(機心), 즉 세속적인 욕심을 잊으려는 ‘청유’의 방편으로 산천유람을 즐겼다. 따라서 산행기(유산기)속에는 그들이 세속과 일정 거리를 둔 맑은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는 인생관이 담겨있다.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허균, 김종직, 조식, 채제공, 박제가,이규보,최익현,이덕무 등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 지성 54인의 명산 35곳 유산기(遊山記)를 모은 책 ‘산문기행-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가 출간됐다. 산은 선비들에게 치열한 자기 수련의 도장이자, 휴식과 풍류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유산기에는 산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안내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인생과 철학, 예술이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은 정보전달을 위한 오늘날 여행서와는 달리 글쓴이의 사상을 소개하는 철학서이자, 미적감각이 묻어나는 문체를 볼수 있는 예술서이며, 당시의 사회풍속을 소개하는 인문서이기도 하다. 책의 특징은 옛 선비들이 쓴 원문과 함께 글맛을 살린 번역문을 싣고, 풍부한 해설과 그 시대의 산수화 70여점을 곁들여 눈맛을 더해주고 있다. 백두·한라·지리·금강산의 산행기를 묶은 ‘성산편’과 한반도의 ‘북부의 산’. ‘중부의 산’, ‘남부의 산’, ‘그리운 산’등 5부로 나뉘어 편집을 했다. 부록편 ‘선비들의 우아한 산행’에는 선비들의 산행준비와 등산방법, 등산시 비상식량, 숙박시설, 여행기록 등 풍속화처럼 흥미로운 인문학적인 지식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책은 유산기가 주는 문학적인 즐거움과 함께 인문학적인 즐거움을 동시에 아우르는 책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심경호 지음. 이가서. 2만9800원. <변상섭 기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