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11 04:35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땅 335㎡를 보유한 A씨. 그는 이 땅에 빌라를 신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신축 포기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30㎡(이하 전용면적) 6가구, 60㎡ 5가구 등 11가구 규모 빌라를 지어야 한다. 그런데 건축설계사무소 관계자는 “올해 주차장법이 강화돼 가구 수를 9가구로 줄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A씨는 9가구를 지어 임대하면 수지타산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보고 있다.
‘20cm의 차이’가 소형 임대주택과 꼬마빌딩 시장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3월 1일부터 강화된 주차장법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문콕 사고’ 예방을 위해 주차장 1개면의 폭을 종전 2.3m에서 2.5m로 늘리도록 한 것인데 원룸이나 빌라를 지어 임대하려던 건축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좁은 땅에 신축을 계획했던 집 주인들의 고민이 커진 것. 바뀐 법에 따라 법정 주차대수를 지키면 사업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차장법 강화로 빌라 사업성 타격
주차장법은 주차장 유형을 일반형과 확장형 2개로 구분한다. 일반형 주차장에는 중형·중형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을, 확장형 주차장에는 대형·대형SUV·승합차·소형트럭을 각각 주차할 수 있다. 현행 법상 빌라를 포함한 일반 주택이라면 일반형 주차장만 설치해도 된다. 노외주차장인 경우에만 총 주차대수의 30%를 확장형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일반형 주차장은 1개면에 대해 가로 2.5m×세로 5m 로 지어야 한다. 1개면이 차지하는 면적이 12.5㎡로, 기존 11.5㎡(가로 2.3m×세로 5m)보다 약 8.7% 늘었다. 확장형 주차장은 12.75㎡(가로 2.5m×세로 5.1m)에서 13.52㎡(가로 2.6m×세로 5.2m)로 면적이 6% 정도 커졌다.
미세한 차이로 보이지만 집을 지을 때 건축주에게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8.7% 차이 때문에 설치 가능한 주차대수가 줄고, 가구당 법정 주차 대수에 맞추기 위해 A씨처럼 가구수를 줄여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현재 다가구주택·공동주택·오피스텔 법정 주차대수는 ▲전용 30㎡ 미만 가구당 0.5대 ▲전용 30~60㎡ 가구당 0.8대 ▲전용 60㎡ 초과 가구당 1대다.
예를 들어 지상 5층 빌라를 짓기 위해 주차장을 최소 8대 설치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전 주차장법에 따르면 위 그림처럼 대지의 가로 방향으로 주차장 4대 너비(2.3m×4대), 계단·엘리베이터 너비(3m), 필로티 기둥 너비(30㎝×2), 여유 너비(50㎝) 등을 합한 13.3m가 필요했다.
그런데 주차장법 강화로 같은 조건의 빌라를 지으려면 대지 최소 너비가 14.1m는 돼야 한다. 폭이 13.4~14.1m인 땅에 빌라를 지으려던 건축주들은 법 개정으로 이전보다 주차장을 2대 줄여야 하고, 그 결과 이전보다 가구 수를 2가구 줄여야 하는 결과가 나온다.
주차장법이 주차장 설치 면적 증가에 그치지 않고, 주택 사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된 만큼 축 빌라 가격과 임대료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강화된 주차장법을 피하기 위해 올 3월 이전에 건축허가 물량이 일시적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상일 구도하우스 대표는 “올해 3월 전에 미리 건축허가를 받아뒀다면 강화된 주차장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며 “그러나 주차장법이 사업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만큼 서울처럼 땅값이 비싼 곳에선 빌라 공급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