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압박에..'임대 후 분양' 급부상
한남더힐·나인원한남 방식
과천·세운 잇따라 "검토중"
HUG와 분양가 산정 갈등
정부가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확대 적용 방안을 다음주 초 발표하기로 하자 시행사들이 ‘임대 후 분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주택을 공급하면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난 뒤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행자로선 선분양에 적용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심사와 후분양을 포괄하는 분양가 상한제 영향도 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서울 한남동 ‘한남더힐’ ‘나인원한남’처럼 분양가가 높은 지역일수록 임대 후 분양을 추진하는 단지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사 “임대 후 분양 검토”
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과천 푸르지오벨라르테’의 사업 시행사인 대우건설 컨소시엄(대우건설·금호산업·태영건설)은 임대 후 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공공택지 S6블록에서 분양하는 이 아파트는 최근 과천시로부터 3.3㎡당 평균 분양가를 2205만원으로 책정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시행사 측이 신청한 분양가 2600만원대에 비해 20%가량 낮은 가격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임대 후 분양을 비롯해 분양가심의위원회 재심 요청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짓는 ‘힐스테이트 세운’도 최근 분양을 연기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합 측은 3.3㎡당 약 3200만원대를 원했으나, HUG는 이보다 500만원 낮은 2700만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의 시행사는 한호건설, 시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다. 회사 관계자는 “당초 후분양을 검토했지만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이마저도 의미가 없다”며 “이 때문에 임대 후 분양도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서울 용산 유엔사 부지와 여의도 MBC 부지 등 알짜 입지의 대형 복합단지들이 임대 후 분양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지 매입 가격이 높았고, 핵심 입지에 소수의 자산가를 겨냥한 최고급 주택을 짓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낮으면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 신영 컨소시엄은 여의도 MBC 부지를 6000억원에 사들였고, 일레븐건설이 유엔사 부지를 매입한 비용은 1조원에 달한다.
의무 임대 기간 4~8년 걸려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 후 분양을 적용한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한남더힐이다. 용산 옛 단국대 부지에 들어선 이 아파트는 2007년 9월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가 처음 도입될 때까지 사업계획 승인을 받지 못해 상한제 적용 대상에 들었다. 그러자 임대 후 분양으로 방향을 틀었고, 4년 의무 임대 기간이 지난 뒤 감정가대로 분양전환했다. 상한제 적용을 받았다면 분양가가 3.3㎡당 2000만원대였지만, 2013년 분양전환할 때 가격은 5000만~8000만원에 달했다. 최근에는 한남더힐 맞은편 외인아파트 부지에 건축 중인 나인원한남도 임대 후 분양 방식을 택했다.
임대 후 분양 방식을 선택한다 해도 여전히 부담은 있다. 의무 임대 기간과 건축공사비에 대한 이자 부담 등이다. 민간임대주택 특별법에 따르면 최소 4년간 임대해야 한다. 건축 공사비에 대한 이자 부담을 4년간 시행사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택지에서 임대 후 분양을 하려면 의무 임대 기간이 8년이다. 국토부가 지난해 2월 택지개발업무·공공주택업무 처리지침을 개정해 임대 의무 기간을 기존 4년에서 8년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호반건설이 위례신도시 분양주택 용지에 단기임대주택 699가구를 공급해 ‘꼼수 분양’ 논란이 일자 규제를 강화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임대 기간 이자 부담을 시행사가 떠안아야 하고, 분양전환 시점의 주택경기가 양호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며 “오히려 경기가 나쁘면 분양가 책정에 제한이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전형진 기자 iskra@hankyung.com
[레이더P] 조였다 풀었다, 분양가상한제 역사
[랭킹쇼] 1977년 첫 도입
정부가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마련에 들어가는 가운데, 해당 내용은 10월 초 시행이 예상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언제 최초로 시행됐으며, 시행과 폐지를 반복하는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1. 박정희정부 첫 시행
박정희정부는 1977년 처음으로 분양가 상한 규제를 시행한다. 주택 규모, 원가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3.3㎡당 상한 가격을 정해 그 이상의 분양가를 책정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1981년 6월에는 원유 파동과 수출 감소 등 경기 불황이 닥치자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84.9㎡ 초과)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일시적으로 자율화하기도 하나, 건설사들이 분양가를 올리며 투기 과열 양상을 보이자 1983년에 다시 기존의 제한 방식으로 돌아가며 이는 1988년까지 실시된다.
2. 노태우정부 첫 '원가연동제'
1989년 11월 노태우정부는 주택 건설 촉진을 위해 기존의 획일적인 규제 대신, '원가연동제'를 시행한다. 분양가를 택지비와 정부가 매년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해 정하는 표준건축비(현 기본형 건축비) 등에 연동해 결정했다. 지금의 분양가상한제와 동일한 방식이다. 당시 200만가구 주택 공급, 그리고 건설업계의 분양가 현실화 요구가 맞물려 시행된 제도다. 공공택지를 공급받아 건설하는 공동주택에 한해서만 실시된다.
이 조치는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주택시장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1999년 김대중정부의 분양가 자율화 조치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정부는 국민주택기금 지원 공동주택 외에는 분양 가격을 전면 자율화하겠다고 발표한다. 분양가상한제 해제 소식에 고분양가 열풍이 이어진다.
3. 노무현정부 '민간도' 분양가상한제
2000년대 이 같은 부동산 경기 과열에 노무현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규제책을 꺼내들기 시작한다. 2005년 공공택지 내 소형 아파트(전용 84㎡ 이하)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며, 택지비와 공사비를 포함한 5개 항목에 대한 원가 공시를 의무화한다. 이후 2006년 2월 공공택지 내 모든 주택으로 분양가 규제를 확대하고, 판교 신도시의 분양 과열을 막기 위해 전용 84㎡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는 분양가 외에도 별도의 채권을 매입하도록 하는 채권입찰제를 도입한다.
2007년 노무현정부는 공공택지에 이어,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로까지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해 전면 적용한다. 연이은 대책에도 8년 새 3배 넘게 치솟은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도 방식은 건설사의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원가연동제였다.
4. 박근혜정부서 사실상 '폐지'
이명박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분양가상한제 전면 폐지를 추진하지만, 분양가 급등을 우려하는 여론에 밀려 분양가상한제를 유지한다. 반면 박근혜정부는 주택사업 위축을 우려해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추진하다가 국회의 반대에 부딪히자 2014년 12월 대신 민간택지 내에서 분양가상한제를 '탄력적용'(최근 3개월간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10% 상승하거나, 청약경쟁률이 20대1을 넘거나, 아파트 거래량이 전년보다 200% 증가하는 경우)하는 방침을 내세운다. 요건을 바꿔 분양가상한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자율화한 것이다.
5. 문재인정부 적용 확대
문재인정부는 주택시장 과열을 우려해 2017년 11월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을 손질한다. 현재 주택법 시행령상에 있는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이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 곳' 등 총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9·13 부동산 대책이 시행된 지 1년도 안 돼 서울 집값은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며,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후분양'을 통해 분양가 규제를 피해가려는 움직임이 탐지된다. '후분양'을 통해 건설사들의 지나치게 높은 민간택지 분양을 승인하지 않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간접 통제 방식을 피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국토부는 12일 분양가상한제를 공공택지가 아닌 민간택지에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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