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r]인류진화

네안데르탈인 멸종 사건, 범인은 호모사피엔스

이름없는풀뿌리 2020. 6. 1. 07:51

네안데르탈인 멸종 사건, 범인은 호모사피엔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6.01. 03:02 댓글 45

 

78만 년 전 기후 데이터 수집.. 시뮬레이션으로 이동 과정 분석
기후변화-이종교배 영향 미미.. 현생인류와의 자원경쟁서 밀려

인간의 먼 친척뻘인 네안데르탈인은 멀게는 40만 년, 가깝게는 20만 년 전부터 유럽과 시베리아에 널리 퍼져 살았다. 도구를 만들고 집단생활을 하며 장신구를 만들어 멋까지 부리는 등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약 4만 년 전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극히 일부가 현생인류와 짝짓기를 하고 후손(현대인)의 게놈(유전체)에 자취를 남겼을 뿐이다.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를 두고 다양한 가설을 세웠다.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졌다거나 기온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변덕스러운 기후로 멸종했다는 가설이 지금까지 제기됐다. 현생인류와의 이종교배로 자연도태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악셀 티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28일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시대의 옛 기후 데이터를 이용해 과거 환경을 복원하고 이들이 확산하는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정한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티머만 단장은 약 78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와 지구 자전축 변화 데이터를 수집해 과거 유럽 기후를 정교하게 재현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지구 자전축과 공전궤도는 2만∼10만 년마다 바뀌는데 그 결과로 지구 기후가 바뀌고 아프리카에 머물렀던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약 11만 년 전부터 2만3000년 전 사이에 1470년 주기로 온도가 급격히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스러운 기후(단스고르외슈거 이벤트)도 재현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수만 년간 환경 변화에 따라 어떤 지역으로 이동하고 사라졌는지 반영한 ‘인류확산모형(HDM)2’를 적용해 분석했다. 이를 표현한 모델 개발과 분석에는 지난해 4월부터 대전 유성 IBS 본원에 도입한 슈퍼컴 알레프가 활용됐다. 티머만 단장은 “기존에도 이 주제를 다룬 연구가 있었지만 복잡한 장기 기후변화 효과를 다루지 않았고 지질학적 특성이나 인류의 공간적 확산을 다루지 않아 지나치게 단순했다”며 “이들을 고려해 포괄적이고 정량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사실상 첫 사례”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세 가지 가설에 나타난 조건을 넣어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자원을 둘러싼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도태된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사냥 기술, 병에 대한 저항성, 출산 능력 등 여러 요인이 경쟁력 격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중부 유럽과 북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는 시점을 500∼1500년 앞당기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대세’를 바꿀 만한 원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전부터 살아오면서 멸종 시기(4만 년 전)보다 더 급격한 기후변화에도 적응했다”며 “추위를 현생인류보다 잘 견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생인류와 섞여 사라졌다는 가설 역시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가 확산하는 시기에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번 시뮬레이션 연구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 우리가 행한 최초의 주요 멸종 사건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를 더 확대해 식생과 문화, 바이러스 등 병원체를 반영한 새 모델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질학 분야 국제학술지 ‘신생대 제4기 과학 리뷰’ 6월호에 발표됐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4만년전 사라진 네안데르탈인, 알고보니 우리와 머나먼 친인척[BOOK]

중앙일보

입력 2022.04.01 14:00

업데이트 2022.04.01 16:31

책표지

네안데르탈
리베카 랙 사익스 지음
양병찬 옮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4만년쯤 전 지구에서 사라졌다. 인간의 눈에 다시 발견된 것은 1856년. 독일 어느 채석장 인근의 펠트호퍼 동굴에서 짐승 아닌 사람의 것이되, 두개골의 크기부터 지금의 인류보다 확연히 큰 뼈가 나오면서다. 이들에게는 채석장 인근 지명을 따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라는 학명이 붙여졌다. 알고 보니 앞서 벨기에의 동굴이나 지브롤터의 채석장에서 나온 두개골 역시 네안데르탈인의 것이었다.

 

이처럼 그 존재가 알려진 건 불과 160여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에 살았던 35만년쯤의 세월에 비해 엄청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우리의 정보는 크게 달라졌다. 최근 들어 각종 신기술을 결합한 연구가 새로운 데이터를 쏟아낸 덕분이다. 영국의 고고학 연구자가 쓴 이 책은 그런 방대한 연구성과를 아울러 네안데르탈인이 어떤 이들이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종합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여러 통념을, 예컨대 진화에서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는 본래 우월한 종이고 네안데르탈인은 여러모로 뒤떨어진 종이라는 식의 생각을 뒤집는다. 매머드와 빙하를 배경으로 털옷을 입은 채 덜 떨어진 표정을 짓는 이미지도 마찬가지. 극지방 빙하에 누적된 정보를 통해 고기후의 변화를 되짚으면 네안데르탈인은 빙하기보다 간빙기에 더 오래 살았다. 그중 1만년 가량은 유라시아 지역의 기후가 지금보다 더 온난한 시기였다.

톰 비에르클룬드가 재구성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 [사진 생각의힘]

이들은 매머드나 곰 같은 큰 동물만 아니라 거북·홍합을 비롯해 작은 동물과 물고기와 새를 잡아먹었다. 각종 돌 도구를 만드는 솜씨만 아니라 나무로 창을 만들고 동물 뼈로 촉을 만드는 솜씨도 발휘했다. 동물의 뼈에 문양을 새기기도 했고, 때로는 죽은 이를 매장하기도 했다. 소규모 공동체 생활을 한 흔적도, 치아 등 신체 손상이 있는 약자가 돌봄을 통해 생존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흔적도 있다.

이런 면면 이상으로 놀라운 것이 연구방법이다. 퇴적층을 조사해 시기를 추정하거나 20세기 중반 도입된 방사성 원소 연대 측정은 기본. 치아에 남은 흔적으로 이들이 앞니를 죔쇠로 이용해 동물 가죽을 손질했을 것이라는 추정과 함께 그 흔적의 방향에 따라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를 알기도 한다. 유적에서 나온 동물의 뼈가 알려주는 것과 별개로, 치아에 남은 치석을 통해 이들이 뭘 먹었는지 직접 분석할 수도 있다. 치석에서 열매 등 식물을 먹은 흔적만 나온 어느 네안데르탈인은 채식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초기의 발굴이 훗날 중요 정보가 될 부분을 간과하거나 파괴한 것과 달리 이제는 현장의 거의 모든 것을 3D로 모델링하곤 한다.

톰 비에크클룬드가 재구성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 [사진 생각의힘]

최근 연구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아무래도 "종을 초월한 사랑"이다.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처음 채취한 1997년만 해도 미토콘드리아DNA 분석만 가능했는데, 2010년 핵DNA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나온 유골 가운데 데니소바인으로 불리게 된 인류와 함께 어머니가 네안데르탈인, 아버지가 데니소바인인 10대 소녀가 확인됐다. 나아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이종교배도 여러 지역에서, 여러 차례 벌어졌음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이어졌다.

이 책이 인용한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사람에게서 1.8~2.6%의 네안데르탈인 DNA가 발견된다. 서유럽인보다 아시아인·오세아니아인 등에 그 비중이 높은 편이다. 단, 사하라 이남 지역 혈통인 사람들은 해당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곳에 퍼진 이후 이종교배가 이뤄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머나먼 일가친적인 셈이다.

 

기존의 통념은 종종 고인류학 연구에 장벽이 되곤 했다.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적 시선 등도 그 예다. 이 책이 새롭고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그래서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을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의 정거장이나 초기모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히 중심에 둔다.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아니듯 사람의 역사는 현생 인류만의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진화적 맥락. Ma는 백만년 전, Ka는 천년전을 뜻한다. [사진 생각의힘]

물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저자는 여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왜, 어떻게 멸종했는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네안데르탈인 유적은 이 책에 실린 지도에 표시된 곳만도 약 100곳. 그동안 나온 유골은 수천점, 그 주인은 수백명이다. 다른 고인류에 비해 풍성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가 이 모두를 대상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수십만 년에 걸친 삶을 추적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저자는 종종 소설적 묘사와 상상을 곁들여 연구의 방향성을 제언하기도 한다. 실은 8년에 걸쳐 이 책을 쓴 원동력도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그의 10여년 전 첫 논문이 "소설에나" 다뤄질 얘기란 혹평을 받은 덕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