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상님들 등장에… 인류 족보, 자꾸만 꼬이네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 인류 진화공식 '흔들'
2015년 나타난 '문제적 조상' 호모 날레디
현생 인류처럼 쭉 뻗은 다리 가졌지만 손은 나무 타기에 좋게 굽어있어
이상래 국가영장류센터장 / 박건형 기자 / 입력 2017.01.07 03:03
2015년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 연구팀이 새로운 인류 조상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이 인류 조상의 이름을 '호모 날레디(Homo naledi)'라고 지었다. 날레디는 이 지역 언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호모 날레디의 발견은 과학계에 축복이자 숙제이다. 현재 전 세계 과학자 사이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탄생한 인류의 조상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의 인류가 됐다는 정설(定說)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다. 인류의 조상이 하나가 아니라거나 아시아에서 인류가 시작됐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호모 날레디는 이런 논쟁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고인류학 연구의 대(大) 전환점에 등장한 호모 날레디는 과연 인류의 역사에 대해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까.
◇인류 역사를 비춘 '별' 날레디
초등학생들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현생 인류의 진화 순서를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이 인류의 족보를 과학자들이 쓴 것은 40년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유전자(DNA) 분석 등 본격적인 고인류학 연구 기법이 등장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이전까지는 화석의 모양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각 화석 사이에 있는 수만~수십만년의 간극을 연결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류의 조상들이 발굴되고 우리의 몸속에 네안데르탈 등 다른 종(種)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호모 날레디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조상이 등장했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하나의 조상에서 한 가닥으로 대물림하면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통의 조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존 상식대로라면 진화를 거치면서 인류의 조상들은 점점 원숭이의 특징과 멀어지고 현생 인류와 가까워져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영장류와 공유하는 특징은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호모 날레디는 화석의 형태만으로는 연대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호모 날레디는 현생 인류에 비해 작은 뇌를 가졌지만 손바닥과 손가락뼈를 볼 때 도구를 정교하게 다뤘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다리가 직립보행에 적합하게 길고 곧았다. 또 발은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나란히 배열돼 두 발로 걷는 것은 물론 뛰는 것도 가능한 구조였다. 오늘날의 인류와 비슷한 특징들이다. 반면 길고 휘어진 손가락과 어깨는 나무에 매달리거나 올라타기 좋은 형태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하다.
근래 발견된 인류의 조상은 또 있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남아공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가 발굴됐다. 2013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레디-게라루 지역에서 발견된 인류 조상의 화석은 28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류인지 호모 종류인지 결정되지 않았다. 턱뼈는 호모 종류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다른 특징들은 인류의 조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는 기존 계통과는 맞지 않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조상 화석도 발견됐다. 불과 십수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들은 모두 인류의 진화가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증거가 된다. 여러 종이 공존하고 각자 진화한 뒤 이종 간 짝짓기를 통해 유전자가 뒤섞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오늘날의 인류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인류의 대이동
지금까지는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탄생한 뒤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인류의 대이동(human migration)'을 거치면서 지구의 정복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약 5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호모 에렉투스를 비롯한 다른 종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최근 '다지역 기원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미 수백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에렉투스가 아시아·유럽·중동 등 각지에서 각자 진화해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가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런던대 마리아 토레스 교수 연구팀은 2014년 "중국 후난성의 한 동굴에서 현생 인류에 가까운 사람 치아 화석 47개를 발견했다"고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치아는 8만~12만5000년 전 것으로 추정됐다. 아프리카에서 5만년 전 현생 인류가 출발했다는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발견이다. 발견이 거듭될수록 진화와 이동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잃어버린 고리'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는 모양새이다.
다지역 기원설의 가장 유력한 근거는 유전자 분석이 제공했다. 고인류의 화석에서 유전자를 뽑을 수 있게 되면서 현재 사람들과의 비교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07년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파보 박사는 화석을 이용해 수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201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는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독특한 유전자가 1~3%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생 인류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면서 피가 섞였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현생 인류가 공통의 조상에서 태어나지 않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진화한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인류의 또 다른 사촌이자 5만년 전에 살았던 데니소바인 역시 오늘날 이누이트(에스키모)와 호주 일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전자를 남겼다. 지난해 데니소바인과 이누이트인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UC버클리대 라스무스 넬슨 교수는 "이누이트인이 다른 종족보다 추위에 잘 견디는 이유가 바로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퍼져 나가는 인류의 대이동 방식과 시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액슬 티머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장은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류가 최초로 유럽에 정착한 시점이 기존에 알려진 6만년 전이 아니라 8만~9만년 전이고 유럽이나 중동에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티머만 단장은 인류가 굳이 안정적인 정착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 배경에 기후변화가 있었다고 가정했다. 기후가 변하면 식량과 물 등 생활할 수 있는 여건도 바뀐다. 주변 여건이 나빠졌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없었던 초기 인류가 거주지를 옮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티머만 단장은 이 기후변화 모델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성해 인류가 어떻게 이동했을지를 추정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인류의 조상들은 12만5000년 전 아프리카 내에서 이동하기 시작했고 9만년 전에는 인도와 남중국까지 영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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