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2023/07/24, Remenbrance / Ernesto Cortazar)
이름없는풀뿌리2023. 7. 24. 07:04
인류의 기원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1) 인류의 기원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그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단 한 줄 밖에 서술하지 못하였다.
그 말은, “사람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도 조명해봐야 할 것이다.”였다.
그가 인류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 추앙받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론’을 펼치면서,
왜 인류도 진화와 관련이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였을까.
그것은 신(神)이 생명을 창조하였다는 시대의 거센 조류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한 본능은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을까?’ 등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었다.
이러한 인간의 궁금증에 화답한 것이 바로 ‘인류 화석’이었다.
인류 화석은 최초의 인간 기원을 추적하는 데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하였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인류의 기원은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어서 자바원인, 베이징원인 등의 발견으로
다시 50만 년 전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지금은 ‘분자시계’ 등의 활약으로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단 1% 정도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불어 오스트랄로피테신(호미니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을 총칭하는 말)과
인류 진화단계의 첫 단계로 보이는 약 600~700만 년 전의 ‘투마이’ 화석 등이 발견되어
인류 기원을 찾는 과거로의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1-1) 루시의 아기 셀람
1974년 11월,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아와시 강가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미국의 인류학연구팀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호미니드(인간과 가까운 종을 통칭하는 말)의 화석을 발견했다.
그것도 한 점이 아니라 여러 점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다.
키 1m 가량의 20세 전후 여성으로 추정되었다.
인체의 40% 정도의 척추뼈, 골반뼈 등을 찾았고,
당시까지 발견된 인류 화석 중 가장 완벽한 형태였다.
특히, 무릎뼈와 휘어진 척추 등은 두 발로 걷는 인간의 그것과 흡사했다.
새로운 발견에 들떠 있던 발굴단 캠프에는 당시 유행하던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울려 펴졌다.
그 화석의 여성은 비틀즈의 노래 제목을 따라 ‘루시’라는 별칭을 얻었다.
‘루시’는 그렇게 320만 년의 깊은 잠에 잠에서 깨어났다.
<최초의 인류, 루시>
(휴스턴<美텍사스주> AP=연합뉴스) 지난 2007년 8월 14일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 자연사 박물관이
공개한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Lucy)의 3차원 입체 모형.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UT 오스틴) 연구팀은 29일 '루시'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
루시가 나무 등의 높은 곳에서 추락해 골절과 장기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서 2006년에 과학잡지 <네이처>는
독일 막스 프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알렘세게드의연구팀이 ‘루시’와 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하는 아기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에티오피아 북동부지역에서 발견된 화석은 3세 아기로
330만 년 전 홍수에 떠밀려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화석은 에티오피아 말로 ‘평화’를 뜻하는 ‘셀람(Selam)’이라고 불렸다.
7년여의 작업 끝에 셀람의 두개골과 몸통, 척추, 팔다리는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복원되었다.
셀람의 뇌 크기는 성인의 70% 정도였다. 학자들은 셀람의 뇌 성장속도가
침팬지보다 느린 것으로 봐서 인간에 더 가깝다고 추정하였다.
<에티오피아 국립 박물관, 셀람>
루시와 셀람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걸었지만,
나무도 역시 잘 탔다는 것을 화석의 분석으로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완전한 사람의 단계는 아니었지만, 분명 인류 쪽으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이로서 300~370만 년 전에 살았던 루시와 셀람의 종(種)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초기 인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인 ‘루시의 아기 셀람’은
인류의 기원을 밝힐 수 있도록 300만 년 전 과거로 우리를 데려갔다.
<투시의 아기 셀람 복원도>
1-2) 다르게 진화한 인간과 유인원
‘루시와 셀람’의 발견처럼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고인류학은,
1억 년 전부터 진화해 온 영장류 가운데서
우리 인류에 가장 가까운 종(種)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약 2천만 년 전에서 8백만 년 전에 이르는 지층에서 다량의 화석을 발굴하고 있다.
이미 약 1400만 년 전에 살았던 유인원의 턱뼈 화석을 발견하였다.
그 화석 ‘드리오피테쿠스(Dryopithecus)’는 사람과 유인원이 갈라지기 이전의 것이기 때문에
인류만의 조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진화론이 발표된 초기에 ‘다윈의 개(불독)’라는 별명을 얻은 토마스 헉슬리는
1863년 《자연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발표하였다.
그 책에서 헉슬리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진화론을 적용하여 인간도 진화의 과정에서 생긴 것임을 주장하였다.
그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이 원숭이보다는 우리 인간에 훨씬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헉슬리의 견해는 처음에는 조롱과 빈축을 샀지만,
오늘날 해부학이나 단백질의 분자구조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점차 헉슬리의 이론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류의 공동조상을 침팬지나 고릴라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유인원 역시 인간과 다른 갈래로 진화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견과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인류학자들은 드리오피테쿠스 같은 종으로부터 인간과 유인원은
약 700만 년경 전에 서로 다른 종으로 분리되어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1-3) 두 발로 걷기
이와 같이 초기 인류의 화석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
우리는 사람과(科)와 원숭이과(科)가 갈라져 진화하는 분기점을 추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과(科)의 화석은 +
아프리카 차드에서 발견된 약 700만 년 전의 ‘
투마이(차드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화석도 있지만,
비교적 폭넓게 인정되는 경우는
약 400만 년에서 3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이 화석은 두뇌용량이 500cc가량이며 “두 발로 걸었고”
돌과 나무를 도구로 사용하고 집단수렵을 했다.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 근처의 타웅에서
1924년에 발견한 화석을 연구한 레이몬드 다트는
그 얼굴과 이빨로 미루어 보아 사람과 유인원의 중간단계라고 생각하고,
‘남쪽의 원숭이’란 뜻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남쪽의 원숭이’가 초기 인류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다른 영장류와 달리 ‘두 발로 걸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학계에서는 초기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두발로 걷게 된 이유를 다양한 관점에서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초기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이유를,
기후의 변화로 열대우림이 줄어들고 넓은 초원이 늘어나 먹이를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직립보행의 이유로
‘육아(섹스)가설’ 등과 같은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허리를 곧게 펴고 직립 보행을 한다.
곧게 서서 걸으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혁명적 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직립 보행을 위해서 골반이 작아지는 진화를 겪어야했다.
그 때문에 ‘아기집’이 작아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목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약하고 미성숙한 아이를 낳아 집단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미성숙한 아이를 오랜 기간 양육하게 되면서
집단의 문화를 전수하며 자식에게 생존을 위한 지혜를 심어주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도 바로,
‘두 발로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 인류의 기원을 찾아서
인간의 기원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과학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외계 종족이 원시 지구를 찾아와
외계인의 몸을 분화시켜 인류의 기원이 되는 유전자를 지구에 퍼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최초의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서 만들었다는
중국의 신화인 <여와(女?)> 이야기나,
하느님이 흙먼지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빚었다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서술처럼
신화와 종교도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기원은
수백만 년 전 화석의 발견과 그 화석의 연대와 변화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분자시계’의 이용 등으로 새로운 영역이 꾸준히 개척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머지않아 좀 더 구체적인 증거로 최초 인류의 근원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은 늘 우리를 과거로 흥미로운 여정을 떠나게 한다.
2-1) 분자시계의 원리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말에서 ‘영장류’가 유래하였다.
그렇다면 영장류에 가장 가까운 포유동물은 무엇일까.
진화생물학에서 분류한 내용을 보면, 소나 개, 호랑이보다
땅속이나 동굴 등에 사는 두더지나 박쥐가 더 영장류에 가깝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연구에 사용되는 방법이 바로 ‘분자시계’이다.
분자시계는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DNA나 단백질 등의
분자 속에 시계처럼 시간을 새겨가며 변화하는 부분을 추정하여,
그 변화를 나타내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DNA가 ‘변화(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속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분자시계의 핵심원리는 ‘돌연변이 속도’로
진화의 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원리로 분자시계는 생물의 종(種)이 나누어진 시기를 추정하는 데 널리 이용된다.
사람과 유인원이 약 700만 년 전에 분리되었다고 측정한 방법이 바로, 분자시계의 원리이다.
2-2) 인류기원설 논쟁 재연, “현생 인류는 누구 자손인가?”2-2-1) 아프리카기원설과 다지역기원설
…인류학자들은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를 놓고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프리카기원설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의 직립원인(호모 에렉투스)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모든 인류의 어머니는 하나라 하여 ‘이브이론‘이라고도 일컫는다.
다지역기원설은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진화해 현대인류가 됐다는 학설이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지역기원설의 대변자인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자
밀퍼드 월포프는 인류가 200만년 전 지구로 확산된 뒤
각자 독립적으로 떨어져 오늘날의 인간으로 서서히 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호모 에렉투스는 오늘날의 중국인이 됐고,
원시 유럽인에서 영국인, 이탈리아인, 독일인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 국립역사박물관의 크리스 스트링거 교수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최초의 유럽인이 현대 유럽인의 조상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유럽지역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측정했다.
결론은 고대 유골들은 현대 유럽인의 조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현생 인류가 멀지 않은 과거에
아프리카에서 생겨나 유럽, 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니면서
친척 호모 에렉투스를 멸종시키고 전세계의 주인이 됐다는 가설을 세웠다.
세계인의 어머니는 한사람이라는 것이다.
2-2-2) 비밀문의 열쇠, 미토콘드리아 속 유전자
월포프와 스트링거의 논쟁은
10년 전 고생물학 토론에 끼어든 유전학자들에 의해 막을 내리는 듯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앨런 윌슨 교수는
현생 인류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분자 시계‘를 찾아냈다.
세포핵에 들어 있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유전자(디엔에이) 1% 정도는 핵 바깥의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다.
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여성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특징이 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될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수정란에 남지 않는다.
또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난다.
유골에 남아 있는 디엔에이의 돌연변이를 보고
얼마나 오래 전에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는지를 측정하면
그 유골의 조상이 언제 발생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측정법으로 유골과 현대 인간의 견본을 조사한 결과
지구상의 모든 종족과 인종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거의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인의 어머니는 기껏해야 20만년 전에 살았다.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에서 유독 크게 나타났다.
측정 결과로 추론하면 현생 인류는 1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동을 했고,
4만년 뒤 호주로, 3만년 전쯤 아메리카로 이주했다.
아프리카기원설에 판정승이 내려진 것이다.
2-2-3) 분자 시계 (molecular clock)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은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나,
환경의 변화가 크면 그 지역에 살던 생물의 수는 줄어들고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생물의 수가 증가할 기회가 부여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뒤집어 보면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생물체가 많을수록, 즉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진화가 진행된 시간이 길고, 환경의 변화도 컸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 폭이 크면 클수록
진화의 시간이 오래되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63년 주커칸들과 라이너스 폴링은
돌연변이에 나타나는 단백질의 변이,
나아가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DNA의 변이를 조사하면
진화가 일어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자 시계’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핵 DNA에 비해 돌연변이가 훨씬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그 변이 정도를 조사하면 정밀한 분자시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영국의 고인류학자
크리스토퍼 스트링거와 미국의 알란 윌슨은
각각 두개골 화석을 비교와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한 분자유전학적 방법으로
현생 인류가 약 15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한 후,
이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노아의 방주 모델’또는
‘미토콘드리아 이브’(모든 인류가 한 어머니의 자식들이란 뜻)라 부르기도 합니다.
3) 인류의 진화 - 두 발로 진화의 길을 헤쳐온 인류
1982년 12월, 충청북도 청주군 문의면 두루봉 일대에서
석회석 채굴을 위해 산을 뒤지던 광산회사 소장 김흥수는 석회동굴을 발견했다.
그런데 석회동굴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그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동굴 안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사람 유골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뼈들이 예사 유골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고고학자들에게 발견 사실을 알렸다.
조사한 결과 동굴의 유골은 무려 4만 년 전 어린아이의 화석이었다.
놀라운 것은 아이 가슴 부근의 흙을 분석해 보니
국화꽃가루가 다량으로 나온 것으로 봐서 장례를 치른 흔적이 있었다.
▲ 충북청주 두루봉동굴 유적에서 발굴된 4만년전 구석기 시대를 살았던 ‘흥수아이’ 화석.
▲ 흥수아이 뼈 화석과 복원 보습
학계에서는 김흥수가 발견한 공을 기리기 위해
우리나라 처음으로 사람 이름을 유적에 붙여
동굴은 ‘흥수굴’, 아이의 이름은 ‘흥수아이’라고 했다.
흥수아이 이외에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장례 관습을 보여주는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있지만, 국사편찬위원회는
흥수아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장례법을 보여줬다고 인정하고 있다.
흥수아이는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4만 년이란 시간은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어림잡기 힘든 기간이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수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흥수아이 화석과 같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서 하나씩 맞춰가야 한다.
3-1) 두 발로 일어선 인류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인 토마스 헉슬리는
1893년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출간하여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이 해부학적으로 인간의 골격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주장은 인간 창조에 대한 종교적 관념을 넘어서
지질학, 생물학 같은 전문 과학 분야가 체계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렇게 전문 분야로 체계화된 각 집단은
인류 진화과정을 밝히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러한 인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2001년 아프리카 차드에서
‘삶의 희망’이라는 뜻의 ‘투마이’라는 이름을 붙인 영장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되었다.
연구를 통해 투마이 화석은
현재까지 인류의 진화 첫 단계이며,
침팬지와 사람의 중간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분자(진화)시계’ 등을 이용한 분석 결과
투마이인은 약 6~7백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화석의 연구를 통해 인류와 유인원이 분리된 시점을 약 6백만 년 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과 유인원을 나누는 근거 기준은 바로 ‘직립 보행’ 여부이다.
지금까지 두 발로 서서 생활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1863년 찰스 라이엘은 《옛인류》에서
언젠가는 인류와 유인원을 연결하는 중간형의 존재가 발견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처럼 화석으로 최초의 직립 보행하였다는 증거를 지닌
‘투마이 원인(猿人)’이 인류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3-2) 직립 보행을 한 이유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인원이 두 발로 걸은 흔적인
발자국과 뼈 화석이 발견되어 인류의 기원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화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500~600만 년 전 나무 위에 살던 유인원이 땅으로 내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 이들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인류로 진화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인원을 두 발로 걷게 하였을까?
약 1천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아프리카 지구대가 생겨났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 중앙의 밀림에서 발생한 습한 대지가
동쪽에 솟은 지구대의 경계에 부딪히면서 경계지역에 비를 내린 후,
습기를 잃은 건조한 바람으로 바뀌어 지구대 쪽으로 불었다.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이 지역은 점차 건조해졌으며,
오늘날과 같은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였다.
그 때문에 숲이 점점 사라지면서 초기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먹이를 찾아 먼 거리까지 자주 걷다 보니,
네 발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두 발로 걷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숲이 무성한 곳의 유인원은 살던 대로 변화 없이 생존하였고,
바뀐 기후에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유인원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인류로 진화의 길을 나섰다.
3-3) 호모(Homo)라는 이름
이렇게 초기 인류가 직립 보행을 시작하자 앞발은 두 손으로 변하였다.
그렇게 생긴 손으로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류학적으로 사람에 대한 분류를 요약하면 사람은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 사람종(학명:Homo Sapiens)’이다.
학계에서는 두 손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초기 인류에게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Homo)’라는 명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최초로 이름을 갖게 된 초기 인류가 ‘호모 하빌리스(손을 쓴 사람)’이다.
호모 하빌리스는 250~160만 년 전에 살았고, 키는 침팬지처럼 1m가 조금 넘었다.
하지만‘남방 원숭이’라는 뜻인 초기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400cc 정도의 뇌 용량을 가진데 비해,
호모 하빌리스의 뇌는 700~800cc 정도로 두 배 이상이었다.
이들은 뇌도 발달하였지만, 특히 엄지손가락이 넓적하여
‘하빌리스(손을 쓴 사람)’라는 이름처럼 물건을 잡기 좋고 도구를 다룰 수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 때 뇌 용량이 급속도로 커진 이유도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고 손을 쓰면서 지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약 170~30만 년 전 살았던 화석인류로
‘똑바로 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 에렉투스’가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유럽, 아시아 등으로 삶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자바원인, 북경원인, 하이델베르크인 등이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똑바로 선 사람’이란 명칭이 붙여진 이유는,
더 오래전에 직립 보행을 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화석이 먼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철이 있는 온대지방까지 분포하게 되었다.
뇌용량은 850∼1,200cc로 호모 하빌리스보다 2배 정도 더 컸다.
3-4)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호모 에렉투스 이후에 등장한 ‘
옛인류(舊人)’는 약 20만∼2만5000년 전에 존재하였다.
이 옛사람들은 추운 빙하 지역까지 삶의 범위를 넓혔다.
그 대표적인 인종이 네안데르탈인이다.
1856년 독일 네안데르계곡에서 발견된 화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알려졌고,
그들 뇌의 크기는 1,200~1,600cc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
이들에게는 시체를 매장하거나 채색을 하는 등 장례문화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동굴에 살았으며, 돌칼, 돌도끼 등의 석기도 제작하였다.
이어서 3만 년 전부터 살았던
상동인, 그리말디인, 크로마뇽인 등과 우리를 가리켜 ‘현생인류(新人)’라고 한다.
1868년 프랑스 남부 크로마뇽 지방에서 화석이 발견된
크로마뇽인은 오늘날 북부 유럽인과 외모, 두뇌 크기가 비슷하다.
이들의 특징은 타제석기를 사용하였으며, 라스코 동굴벽화 같은 예술적 활동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옛인류와 현생인류는
전혀 별개의 인종으로 여겼던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2010년 5월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파보가 이끄는 연구팀이
옛인류와 현생인류 사이에 이종교배를 하였다는 연구 논문을 소개하였다.
스반테 파보 연구팀은 그 증거로
우리의 유전체(게놈)에 1~4% 정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음을 제시했다.
이는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후,
유럽인과 아시아인으로 나뉘기 전에
네안데르탈인과 이종교배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유럽인과 아시아인과 다르게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류 진화 과정으로 볼 때,
우리나라 충청도 청주지방의 두루봉 동굴에서
4만 년 전에 살았던 ‘흥수아이’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시기를 살았다.
지금까지 흥수아이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 직계조상이 아닌 ‘옛인류(舊人)’로 보았다.
하지만 우리 몸속에 흥수아이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사실로 보아
그들도 지금 우리와 같은 땅에서 살다간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5) 뇌에서 월상고랑이 뭐야?
초기 원시인류와 현재 우리의 뇌는 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하다.
아주 작은 차이점은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위치이다.
두뇌에서는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뒤쪽에 있다.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영역 경계선이
마치 초승달이나 반달의 생김새 같다고 하여,
‘월상(月相)’이란 말을 써서 ‘월상고랑’이라고 한다.
월상고랑은 두뇌 표면이 아치형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은 월상고랑이 뇌의 앞쪽에 위치하여 같은 크기라도 두뇌가 인간보다 작다.
대신 유인원은 월상고랑이 뇌의 앞쪽으로 나와
넓어진 뇌의 뒷부분 시각 영역만큼 시력은 인간보다 뛰어나다.
오스트랄로피테킨이기도한 340만 년 전의
‘셀람(<책과삶> 3월호 ‘삶은 책’ 팟캐스트 참조)’은 침팬지 뇌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월상고랑은 현재 인류처럼 뇌의 뒤쪽에 있다.
이렇게 인류와 유인원은 수백만 년 전부터 생김새는 비슷하더라도 뇌는 달랐다.
이것은 초기 인류의 두뇌가 이미 현재 인류와 같은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독서신문 / 책과 삶
Remenbrance / Ernesto Cort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