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宋秀權) -
누이야
가을 山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오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江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 깊이 가라앉은 苦腦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 같이
살아서 오던 것을
그리고 山茶花 한 가지 꺽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山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盞은 마시고 한 盞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 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山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낱이
지금 이 못불 속에 비쳐옴을.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
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
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
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
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
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
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
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
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 문태준 시인의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