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출
- 한 창 현 -
영혼을 담보로
양심에 칼질하는
삼류시인과 화가를 생각하니
몽땅 벗어 준 나목의 비애로
현기증은 소리없이 혼절한다
무채색 표백된 겨울 바다
절망의 구름은 미아로 서성거리고
웅성거림으로 하늘색을 지운다
그리고
한번의 구역질로 산성비를 토한다
거미줄로 장식된 창틀 사이로
튀겨져 나가는 마지막 정령들
작은방은 얼름골 빙벽으로 변한다
붓대를 잡고 선을 긋는다
분열된 자화상
창살 없는 감방에 유배된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면
어눌한 태양이 땅끝에 턱걸이할 때
낯선 도망자의 얼굴로
탈출 만을 생각한다
길 잃은 유성 하나
긴 사선을 긋는다
빙 어
- 한 창 현 -
순결의 산과 강
비탈진 골짜기에도
빛이 스며들고 바람도 유영 친다
강을 따라서 길게 누워버린 길
겨울 숲은 그리움 되어 뒤따라온다
사랑은 임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얼음 골 다리 건너
나지막이 자리잡은 겨울의 횟집
작은 수족관에는
머리를 한쪽으로만 향하는 빙어
죽음을 예측하면서도
앞서서 이승을 버리려고만 한다
겨울의 깊이만큼
더욱더 투명한 속마음
겨울은 눈부시도록 곱게 흥분된다
그대 생이 얼마나 욕심이 없었으면
저렇게 다 보여주는 것일까
그대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마지막 사랑으로 채워주고 가는 걸까
그대 작은 몸뚱이 도려내면
투명한 겨울 편지되어
가슴 없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눈다
그대 몸짓은 이슬 같은 영혼
순백의 눈꽃으로 피어난다
흰 접시마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다 비워놓고 그대는 떠나는구나
그대 유영에 내 마음 실어
긴 겨울 강은 사색으로 헤엄친다
빙어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