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 움
- 강은교 -
모래밭으로 갔다. 어디인가로 바삐 가는 작은 게 한 마리를
만났다. 어이 - 나는 작은 게를 불러 세웠다. 내 그림자가
그 녀석 위로 폭포같이 쏟아졌다.
게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멈칫 그림자를 옮겨주었다.
작은 게는 헐떡거렸다. 그러다 나를 향해 발딱 돌아섰다.
열 개의 발들이 하늘을 향하여 곤두섰다. 그 중 한 개가 구름
위로 우뚝 올라섰다. 집게발이었다. 분홍 집게발, 겁에 질린
- 칼날 발톱 위로 헉헉 숨소리가 뿌려졌다.
멈칫, 내가 뒤로 물러서자, 그 녀석은 집게발을 내리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새파란 곁눈질, 나는 다시 따라갔다.
그 녀석 다시 분개하여 분홍 집게발 - 위로 한껏 올림 -
나 또 멈칫, 그림자를 치워줌. 그 녀석 다시 달리기 시작.
나 다시 따라감. 그 녀석 다시 헉헉 - 숨소리 앉은 집게발.
하늘로 솟구친 작디작은 분홍 집게발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햇볕 하나가 바삐 지나고 있엇다.
한 여름날
오후.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 시집<우리가 물이 되어> (1986)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