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
- 정지용 / <조선지광>(1927) -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지줄대는 : 주절대는
* 얼룩백이 황소 : 거무스레한 무늬를 지닌 황소
* 해설피 : 해가 설핏할 때. 저물녘
* 풀섶 : 풀숲
* 함초롬 : 함초롬하게, 가지런하고 곱게
* 성긴 : 드문드문한
* 작품해설 : 이 시는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대규모의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 비로소 밝은 세상에 얼굴을
내민 정지용의 대표작이다. 한때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문학사에서 실종되었던 그는 최근 납북되었다는 사실이 밝
혀지면서부터 그에게 씌워진 멍에가 하나씩 벗겨지고 있지만, ‘한국 현대시의 효시오, 자각(自覺)’이라는 명예
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정지용의 시사적 위치를 이것저것 장황하게 말
하기보다는 청록파 세 시인(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을 『문장』지에 등단시킨 그들의 스승이었다고 하면, 그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는 우리말로 씌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지용만큼 체득하고 있던
시인도 드물다. 이러한 평가에 적합한 이 작품은, 그가 일본에 유학 중인 1923년 3월에 썼다고 하는, 그의 초기
시의 대표작이다. 이 시가 씌어진 1920년대 초가 『백조』를 중심으로 한 낭만적·퇴폐적 감정 분출의 풍조가 문
단을 지배하였던 시기였음에 비추어 볼 때, 주로 1930년대나 되어야 니타나는 ‘고향 회상’의 시정(詩情)을 이처
럼 차분한 어조로 시대를 앞당겨 노래했다는 것에서 그의 선도적 시 세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대중가요로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고향 충북 옥천을 떠나 낯선 타국 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망국의 설움을 간직하고 생활하던 젊은 시인은 꿈
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따스한 정경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가 노해하는 고향의 정경
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 특정 지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이 지줄대고’
‘어룱백이 황소가 금빛 울음을 우는 곳’이며 ‘짚베개을 돋워 고이시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
리 민족의 고향에 대한 보편적 정서와 부합된다. 그러므로 그의 향수는 그만의 향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인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 향수로 확산된다.
이 시는 음악의 반복 형식처럼 구성되었는데, 각 연 모두 ‘-는(던) 곳’으로 끝맺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의 정경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강조하는 단순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감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홀수 연은 고향
의 정겹고 따슿한 모습을, 짝수 연은 고향의 아픈 모습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고향의 밝고 어두운 모습승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고향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흙내음과 간난(艱難)한 삶의 고난이 함께 존재하는 곳
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지줄대는’ · ‘해설피’ · ‘풀섶’ · ‘함초롬’ 이라는 감각적 우리말 구사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 냉온 감각 등의 수준 높은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써 이 시는 수준 높은
서정성을 획득한다.
고향
- 정지용 / <정지용시집>(1934)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유리창 1
- 정지용 / <조선지광>(1930) -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
비
- 정지용 / <문장>(1941) -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윤두서,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 비단에 담채, 34.3×44.3㎝, 해남윤씨가전고화첩(海南尹氏家傳古畵帖)>
말(馬)
- 정지용 / <정지용시집>(1935) -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정지용(鄭芝溶, 1902 ~ 1950)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
* 상세 소개 : 1902년 충북 옥천(沃川) 출생.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이상(李箱)과 조지훈(趙芝薰)ㆍ박두진(朴斗鎭)ㆍ박목월(朴木月) 등의 시인을 등단시킨 공로가 있다.
섬세한 이미지와 세련된 시어를 특징으로 하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초기에는 이미지즘 계열의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유작으로는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 『백록담(白鹿潭)』(문장사, 1941) 등 두 권의 시집과
『문학독본(文學讀本)』(박문서관, 1948), 『산문(散文)』(동지사, 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1988년 민음사에서 김학동 교수의 편집으로 시집과 산문집으로 구분하여 전집(全集)이 간행되었으며,
이후 2016년 권영민 교수가 새로 엮은 전집이 시, 산문, 미수록 작품 세 권으로 개정되어 간행되었다.
尹斗緖自畵像. 국보(1987.12.26 지정).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38.5㎝, 가로 20.5㎝. 윤영선 소장. 몸은 완전히
생략하고 얼굴만 확대하여 표현한 특이한 형식의 자화상으로 그 유례가 없다.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정기 어
린 눈,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 잘 다듬은 수염 등을 정확하고 섬세한 필치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윤두서가 인물
화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해주며, 동시에 동양의 초상화가 추구한 전신의 기품을 가장 잘 보여주
는 것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481호 해남윤씨가전고화첩(海南尹氏家傳古畵帖) 2권 중 <윤씨가보>에는 산수화 및 산수인물화 23점,
풍속화 5점, 나한도 2점, 인물화 4점, 사생도 3점, 마도 5점, 화조화 2점 등 모두 44점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전남 해남군 소개 https://blog.naver.com/s1yu/223105056868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이다. 1693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산수·인물·초충·풍속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특히 인물화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그
의 자화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과 비견되기도 한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 절세의 초상화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삼
재로 불린다.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
윤선도(尹善道, 1587년 7월 27일(음력 6월 22일) 조선국 한성부 출생 ~ 1671년 7월 16일(음력 6월 11일) 전라남도
해남군 보길도에서 별세)는 의금부 금부도사 겸 통덕랑 등을 지낸 조선 시대 중기, 후기의 시인·문신·작가·정
치인이자 음악가이다. 본관은 해남, 자는 약이(約而) 이고,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시호는 충헌
(忠憲)이다.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이었던 (尹唯深)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 윤유기(尹唯幾)의 양자이다. 화
가 공재 윤두서의 증조부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5대조부이다. 정철, 박인로, 송순과 함께 조선 시조시가의 대표적
인 인물로 손꼽히며, 오우가와 유배지에서 지은 시인 어부사시사로 유명하다. 풍수지리에도 능하여 홍재전서에는
제2의 무학(無學)이라는 별칭이 등재되기도 했고, 의사로 민간요법에 관련된 저서인 약화제(藥和劑)를 남기기도
했다.
향수(정지용) / 이동원, 박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