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친일시인부록1) 친일문학의 태동과 반민족 행위의 기록

이름없는풀뿌리 2023. 10. 3. 18:37
■ 부록1) 친일문학의 태동과 반민족 행위의 기록 □ 부록1-1) 친일 문학이란? □ 부록1-2) 친일문학인의 문학상은 폐지해야 한다 □ 부록1-1) 친일 문학이란? ▶ 친일 문학의 시작 친일문학이란 1937년 5월 조선문예회(친일문예단체)의 결성에서 시작되어 학무국 사회 교육과가 주동 하여 조선총독부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일본 침략 전쟁이나,황민화 정책 등을 찬양하고 이를 격려하기 위해 시작한 문학이다. ▶ 친일 문학의 성격 자발성, 적극성, 중복성으로 첫째, 일본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일왕을 중심으로 국가조직을 격려하고 찬양하는 것. 둘째, 스스로 일본 국민이라 긍지를 가지고 일본에 감사 하는것을 내용으로 한다. 셋째, 일본어로 창작한다. 사례) 1) 1940년대 김억의 “종군간호부의 노래” 2) 1940년대 최남선의 “김소좌를 생각함”, “정의의 개가”, “방호단가”, “장성(長城)의 파수” 등의 국민문학의 원시적 출발인 애국가요로 시작되었다. ▶ 조선문인협회 결성 1939년 4월에는 임화, 최재서, 이태준이 주동하여 황군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여 김동인, 박영희, 임학수 등은 전선기행, 전선시집 등을 발표한후 그해 10월 조선문인협회를 설립 일본과의 내선일체를 부르짖는 목표하에 초대회장으로 이광수가 선출되었다. ▶ 전시 체제와 친일 문학 일본은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전시 체제에 돌입하여, 한반도를 일제의 병참 기지로 삼 고 친일 문학인들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친일을 강요,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노력하였다. 당 시 친일 가담은 단지 몇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지식인, 저명 인사들이 모두 이 에 해당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 친일 문학인 42명 명단 1) 시 분야 :12명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2) 소설, 수필, 희곡 분야 : 19명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3) 평론 분야 : 11명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 대표적 친일 문학인 친일 내용 1) 김동환(金東煥, 巴人, 1901 ~ 1958) 도요대학 KAPF가담 창씨명 白山靑樹 - 약력 1901년 함북 경성 출생 1929년 6월 종합잡지 {삼천리} 경영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1년 임전대책협의회 발기인으로 참여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 작품 목록 1939.12 일천 병사의 삶(시) 삼천리 1939.12 고란사에서(시) 삼천리 1940.7 탄환과 펜의 인연 삼천리 1940.7.6 전승과 문화의 융성 매일신보 1940.11.19 신윤리의 수립 매일신보 1941.1 백림개선 신시대 1941.2.24-27 문화부대의 신궁공역봉사기 매일신보 1941.9.18 건국영웅과 문화 매일신보 1941.11 임전보국단 결성에 제하여 삼천리 1942.1.10 비율빈 하늘 위에 일장기 매일신보 1942.1.12 대전과 반도아동(시) 매일신보 1942.1.13 미영장송곡(시) 매일신보 1942.1.14 남국에서 오는 배(시) 매일신보 1942.1.15 남방만리 새 동무(시) 매일신보 1942.2.6-7 이십오만의 대진군(시) 매일신보 1942.2.6-7 축삼배 매일신보 1942.5 내외 동포에 호소함 대동아 1942.5 군복 깁는 각씨네(시) 대동아 1942.5 남원기행(시) 대동아 1942.3.9 오호 태평양 상의 군신(시) 매일신보 1943.8.7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시) 매일신보 1943.11.6 권군 '취천명'(시) 매일신보 1944.1.6 적국 항복 받고지고(시) 매일신보 한국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을 지음. 친일시를 50편 가까이 발표하고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 및 1941년 쯤부터 친일잡지를 발행. 광복 후 반만특위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친일행위에 대한 사 죄의 글도 남김. 그의 아들 또한 아버지에 대해 쓴 책 서문에 아버지인 김동환의 친일활동에 대해 사 죄하는 글을 남기고 인터뷰도 함. 2) 김상용(金尙鎔, 月坡, 1902∼1951) 릿교대학 이화여대 교수 - 약력 1902년 경기도 연천 출생 1928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30년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동아일보』에 발표 - 작품 목록 1942.1.27 영혼의 정화 매일신보 1942.2.19 성업의 기초 완성 매일신보 1943.8.4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매일신보 “왜 사냐건 웃지요” 라는 구절로 유명한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저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인 1943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등 총 3편의 친일 작품을 게재하는 등 친일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됨. 이화여전에서 교편을 잡고있을 때, 교육자답지 못한 처신으로 학생을 자살하게 만들어 당시 문단에서 큰 비판을 받은 흑역사가 있음 3) 김억(金億, 岸曙, 1896 ~?) 게이오대 문과 (김소월의 스승으로 오산학교 교사) 창씨명 岸曙生 필명 金億, 본명 金熙權 - 약력 1886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14년 동경 유학생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에 <미련>, <이별> 발표 1924년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 1937년 조선문예회 활동 1950년 6·25 때 납북 - 작품 목록 1939.1.4-6 신춘문단의 전망 매일신보 1940.11.30 국가와 개인 매일신보 1942.3.10 육군기념일에(시) 매일신보 1943.6.6 아아 야마모토 원수(시) 매일신보 1944.1.4 신년송(시) 매일신보 1944.1.27 님따라 나서자(시) 매일신보 평북 정주 출생으로 교편을 잡으면서 동아일보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며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문인 보국회 등에 동참하여 친일 활동을 하였다. 매일신보(1933, 1944년)를 통해 시로는 “군가적으로 씩 씩하고 우렁차야 한다”, “대동아 결전, 미국,영국을 격멸하자”, “님 따라 나서자”에서는 가미카 제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인 가네하라 군조를 뒤따르자“며 징병을 격려하는 시를 집필하였다. 4) 노천명(盧天命,1912~1957) 이화여대 황해도 장연 출생, 조선중앙, 조선, 매일신보 기자 - 약력 1912년 황해도 장연 출생 1934년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 1955년 서라벌 예술대학 출강.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근무 - 작품 목록 1941.7.8 시국과 소하법 매일신보 1942.2.3 나의 신생활계획 매일신보 1942.2.19 싱가폴 함락(시) 매일신보 1942.2.28 진혼가(시) 매일신보 1942.3.4 부인근로대(시) 매일신보 1942.3 노래하자 이날을(시) 춘추 1942.3 전승의 날(시) 조광 1942.12.8 흰 비둘기를 날려라(시) 매일신보 1942.12 만주문학대표 오여사에게 춘추 1943.3 직업여성과 취미 신시대 1943.6 여인연성 국민문학 1943.8.5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시) 매일신보 1943.11.10 출정하는 동생에게 매일신보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로 유명한 시 “사슴”이 대표작. 태평양전쟁을 찬양하고 많은 조선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선동 하는 시를 많이 지었으며, 가미카제를 찬양하는 시도 발표함. 이런 악질 친일행위도 모자라 친북까지 했던 기회주의자로 매우 유명함. 한국전쟁 때 서울이 북한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친북 활동하고 다시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국군을 위한 활동을 했다고 함. 강약약강 스타일. 문학가인 모윤숙, 최정희와 매우 친했는데,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셋이서 나란 히 친일을 함. 이 분도 성격이 어떤 의미에서 어마어마했다고 함. 그래서 별칭이 여자 김동인. 조선 일보, 중앙일보 등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대동아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친일 작품, “싱가폴함락대”, “부인근로대”, “님(일왕)의 부르심을 받고”, “군신송”...등을 남겼다. 5) 모윤숙(1910 ~1990) 함경도 원산 이화여대 경성제국대 - 약력 1910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55년 한국자유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및 문총 최고 위원 196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9년 3·1문화상 1991년 금관문화훈장 추서 - 작품 목록 1940.9.10 신생활운동과 오락취미의 정화 매일신보 1940.9.17 창조적인 생활 매일신보 1942.1.6 동창 매일신보 1942.1 동방의 여인들 신시대 1942.2.21 호산나.소남도(시) 매일신보 1942.3.9 어머니의 힘 매일신보 1942.5 여성도 전사다 대동아 1943.5.27 아가야 너는(시) 매일신보 1943.11.12 내 어머니 한 말씀에(시) 매일신보 1943.12 오시지 않았는데(시) 신시대 1943.12 어린 날개(시) 신시대 1945.1.3 신년송(시) 매일신보 노천명, 김활란과 함께 대표적인 여성계 친일파 지도자로 유명. 특히 대표적인 친일 여성문학가인 노천 명, 최정희와 친분이 두터웠다고 함. 태평양전쟁 학병 지원 독려글을 많이 씀. 그러나 광복 후에는 반공 을 외쳤고 이승만 지지를 위해 UN총회에 참가. 이후에는 이승만 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여러 활동을 함. 1940년부터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를 비롯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국민의용대 총사령부에서 활동하면서“대일본제국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하자”,“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조선 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등의 친일적 내용의 글들을 신문에 연재 하였다. 광복뒤에도 문단과 정계에서 한국대표 문인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6) 서정주(徐廷柱, 未堂, 1915 ~2000) 고창 한국예술원 원로 창씨명 達城靜雄 호 미당(未堂) - 약력 1915년 5월 16일 전북 고창 출생 1936년 <시인부락> 주재. 생명파(인생파) 시인 1942년 7월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 시가에 대하여」를 『매일신보』에 발표 1942년∼1944년‘인문사' 입사, 『국민문학』[국민시가] 편집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 회장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77년 문인협회 이사장 2000년 금관문화훈장 추서 - 작품 목록 1942.7.13-17 시의 이야기 매일신보 1943.10 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춘추 어머니에게 1943.9.1-10 인보의 정신 매일신보 1943.10 스무살된 벗에게 조광 1943.10 항공일에(시) 국민문학 1943.11 최체부의 군속지원(소설) 조광 1943.11.16 헌시(시) 매일신보 1943.11 경성사단 대연습 종군기 춘추 1943.12 보도행 조광 1944.8 무제(시) 국민문학 1944.12.9 송정오장송가(시) 매일신보 한국 현대시를 논할때, 1순위로 거론되는 시인. 그런데 그 끝내주는 재능을 친일활동과 독재찬양에 사용한, 대표적인 친일문학가이자 기회주의자. 특히 반인륜 범죄라 불리는 가미카제를 옹호 및 미화 하는 친일시를 발표함. 광복 후 반공 보수 노선이 되어 이승만 전기를 집필하고 전두환 탄생축하시를 짓는 등 독재정권 찬양도 서슴치 않았음. 1942년“다츠시로 시즈오”란 이름을 시작으로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 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항공일에”, “최제부의 군속 지망”, “오장 마쓰이 송가” 따위의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자체 조사하여 발표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자 1차 명단(708명)에 포함되었다 7) 주요한(朱耀翰, 頌兒, 1900 ~1980) 메이지 학원, 민주당 민의원 창씨명 松村紘一 - 약력 1900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29년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논설위원 1939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시부 회장 1944·5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1945년 해방 후 문단 활동 중단 - 작품 목록 1940.12 동양해방(시) 삼천리 1941.3 첫피(시) 신시대 1941.9 임전조선 신시대 1941.11 손에 손을 국민문학 1942.1 루즈벨트여 답하라 신시대 1942.1 명기하라 12월 8일(시) 신시대 1942.1.7 태평양의 시대 매일신보 1942.1.8 국민시가의 경향 매일신보 1942.1 팔굉일우(시) 삼천리 1942.2 미영의 동아침략 신시대 1942.2 상해조계진주일에 왕군에게 보냄(시) 조광 1942.2 대동아행진곡(시) 춘추 1942.2.18 싱가폴 함락가(시) 매일신보 1942.2.23 동아의 새봄(시) 매일신보 1942.3 마음 속의 싱가폴(시) 신시대 1942.3.23 대동아권과 문화의 문제 매일신보 1942.4 승리의 태평양(시) 춘추 1942.4 전필승,공필취 신시대 1942.5 노무와 의용화 문제 대동아 1942.6 징병령 실시와 조선청년 신시대 1942.7 새로운 각오 대동아 1942.12 12월 7일의 꿈(시) 신시대 1942.12.8 성전찬가(시) 매일신보 1942.12.11 반도청년 궐기하라 매일신보 1943.3 최저생활의 실천 신시대 1943.5.13 아침햇발(시) 매일신보 1943.6 바다로 가리(시) 춘추 1943.6 다섯가지 사명 신시대 1943.6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문학 1943.7.30 손에 손을(시집) 박문서관 1943.8 선서식 신시대 1943.9 불타는 희망 신시대 1943.10 직장, 도장, 전장 신시대 1943.11.18 나서라 지상명령이다 매일신보 1944.1 결전하 만주의 예문상태 신시대 1944.1.19 천인침 매일신보 1944.1 나의 결전 좌우명 신시대 1944.3 싸우는 연극의 자세 신시대 1944.5 우후(시) 신시대 1944.7 정밀(시) 신시대 1944.10 적 미국의 사상모략 신시대 1945.1.29 파갑폭뇌(시) 매일신보 주요한은 시 “성전찬가”에서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며 격정적으로 일본을 찬양하는 시들을 창작하였다. 또한 “적, 미국의 사상모략”이라는 평론에서 미국을 백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지적 하면서, 대동아 단결을 이룩하여 조선의 청년들은 분연히 일어나 영국과 미국의 모략을 분쇄해야 한 다고 주장하였다. 8) 최남선(崔南善, 六堂, 1890 ~ 1957) 와세다 대학 / 조선사편수회 위원 호 육당(六堂) - 약력 1890년 서울 출생 1919년 3·1 독립선언서 기초, 민족대표 33인 중 1인 1927년 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만몽일보(滿蒙日報)』고문 1939년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차 도일 1950년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촉탁, 서울시사(市史) 편찬위원회 고문 1957년 뇌일혈로 사망 1958년 우이동에 기념비 건립됨 - 작품 목록 1937.8.15 내일의 신광명 약속 매일신보 1943.3 만주건국의 역사적 유래 신시대 1943.11.4 보람있게 죽자 매일신보 1943.11.20 나가자 청년학도여 매일신보 1943.12 보람있게 죽자 조광 1944.1.1 아세아의 해방 매일신보 1944.2 성전의 설문 신시대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저자. 시인이자 역사학자. 기미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쓴 사람. 역사 학자로서도 업적이 꽤 있다고 함. 원랜 독립운동가였으나 이광수처럼 변절한 친일파. 학도병을 권유 하는 친일 선전문을 쓰고, 학도병 참여 권고를 위해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을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는 등 빼도 박도 못할 친일반민족행위자. 잡지 “소년”을 창간,“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고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 독립선 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 한명으로 일제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곧 이어 동아일보를 거쳐 조 선사편수회, 총독부중추원 등에서 활동하는등 친일 활동을 하였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진보적정신이 청조를 구축하려는 전쟁이라는 성전론을 주장하면서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일본관동군이 세운 건국 대학 교수로 있으며 재일조선 유학생들의 일본전쟁 참여를 강연 독려하기도 하였다. “김소좌를 생각 함”,“정의의 개선가”,“성전의 설문”,“아세아의 해방”등이 성전론을 피력한 작품들이다. 9) 김해강(金海剛, 1903 ~ 1987) 본명 金大駿 - 약력 1903년 전북 전주 출생 1925년 전북 사범 학교 졸업 전주 사범 학교, 전주 고등학교 근무 1925년 시 <달나라>가 {조선문단} 응모에 당선 193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새 날의 기원>이 당선 1936년 {시건설} 동인으로 참가 1963년 예총 전북지부장 역임 - 작품 목록 1940 청색마(靑色馬) 1942.6 아름다운 태양(시) 조광 1942.3.13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 매일신보 1942.3.27-28 호주여 매일신보 1968 동방서곡(東方曙曲) 10) 김동인(金東仁, 1900 ~1951)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원 창씨명 東文仁 - 약력 1900년 평양 출생 1919년 {창조} 창간 1939년 '성전종군작가'로 황군 위문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 1955년 '사상계'에서 동인문학상 제정 - 작품 목록 1941.7 백마강(소설) 매일신보 1942.1.23 감격과 긴장 매일신보 1942.2 아부용(소설) 조광 1944.8-12 성암의 길(소설) 조광 1944.1.1-4 총동원태세로 매일신보 1944.1.16-28 반도민중의 황민화 매일신보 1944.1.20 일장기 물결 매일신보 1944.12.10 문화인의 총궐기 매일신보 1945.3.8 전시생활소감 매일신보 소설가. 대표작은 “감자”,“배따라기”,“운현궁의 봄”. 그를 기리는 동인문학상이 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변절. 내선일체 황국신민화에 동조하는 등 여러가지 친일 행위를 적극적으로 행함. 일 례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했다는 것도 모르고 일본인 관리를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작가단 을 만들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가, 일왕이 항복선언을 하는 것을 미리 알고있던 일본인 관리에게 까였다고 한다. 광복 후에도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구구절절 변명이 가득 담긴 글들을 발표. 친일 과는 별개로 성품이 좋지 않았었다고 함. 1919년 3월과 1942년에는 아우 김동평의 3.1운동 격문을 써준 것이 발각되거나 일왕에 대한 불경죄로 투옥되거나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일제 말기에 친일행위를 시작, 1939년 성전종군작가로 황군 위문 을 떠나고 조선문인보국회(친일문학단체)간사를 지내는등 1944년엔 친일소설 “성암(聖岩)의 길”도 발표하였다. [오마이뉴스] [주장] ‘동인문학상’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By 민족문제연구소 - 2020년 11월 6일 958 친일문인 김동인 기리는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 열려… 한국 문단의 역사정의를 기다리며 매년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10월이 되면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기념식에 대해 논란이 반복된다. 문학상을 제정해서 기념하는 이유는 미당 서정주든 금동 김동인이든 팔봉 김기진이든 한국 근현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반민족 행위와 군사독재 모두 역사 청산 이 좌절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특정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특정 인물을 기리고 기념한다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감이 되기 보단 오히려 본받지 말아야 할 부분이 훨씬 많다면 기념식이든 문학상이든 폐지해 야 마땅하다. ‘춘 원(이광수) 문학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같은 논리로 중앙일보가 제정해 추진하던 ‘미당문 학상’이 그런 논란 속에 지난해 폐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인문학상’은 김동인의 친일행적이 밝혀지지 않았던 시절, 다시 말해 역사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1955년에 <사상계>에서 처음 제정해 이듬해부터 기념했다. 경영난으로 중단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87년부터 조선일보가 이어 받아서 ‘동인문학상’을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동인은 과연 이광 수나 서정주, 김기진처럼 친일반민족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는 인물일까? 그동안 김동인은 한국 사회 최초로 문예 동인지 <창조>를 발간한 인물로, 그리고 근대문학의 형식을 열어젖힌 인물로 높게 평가돼 왔다. 실제로 <창조> 창간호에 발표된 ‘약한 자의 슬픔’은 이광수의 ‘무정’처럼 3인칭 ‘그’의 사용, 과거형 서술, 구어체 등 근대문학의 형식을 싹틔운 작품으로 인 정받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자연주의 문예사조를 처음으로 한국 문단에 퍼뜨린 인물로 추앙받아 왔 다. 그러나 ‘동인문학상’ 시상의 적절성 여부를 논하면서 문예비평가 늘샘(김상천)은 자신의 논문 에서 이렇게 갈파한 적이 있다. “1917년에 부친이 별세하고 쌀 3천석에 해당하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평양에서 제일 큰 집에 산 그는 조선의 귀공자나 다름없었다. 당시는 나라를 빼앗기고 그 울분을 삭이지 못해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만세로써 저항하던 시대로, 유관순처럼 나이 어린 소녀들조차 분연히 일어났던 민족정신 대고취의 시기였다. 그러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일본을 산보하듯 드나들며 기생오입을 밥 먹듯 이 하고 돌아다닌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조선의 방탕 부르주아 문사였다. 그런 그였으니 호가 또한 ‘금동琴童’이었거니와, 그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호승심이 있었다. 그가 천재 작가 이광수와 호적수 염상섭을 그토록 의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 김상천(2020) ‘야비 한 자연주의 – 김동인론’ 4쪽. 19살의 나이에 <창조>를 자비로 발간할 정도였으니 김동인의 재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김동인의 재력은 1927-1929년 사이 사업 실패로 급격히 경제적으로 추락한다. 그 시기 김동인 이 발표한 작품들 ‘송동이’, ‘죽음’, ‘구두’, ‘거지’는 하나같이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내맡 긴 약자의 삶, 바로 먼지처럼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묘사이다. 10월 31일 열린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 인가’에서 연구자 김춘규(서울대)는 그런 작품 경향을 이렇게 분석했다. “점차 약자로 변모해 가던 1930년 초중반에서 진정으로 약자가 되어버린 이 순간, 그가 자신을 의탁 하기 위해 달려간 장소가 조선총독부라는 것은 일제에 대한 그의 인식 변화를 극단적으로 반영한다. 당시 김동인이 여러 모로 궁지에 몰렸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가 도움을 청하고 의탁할 수 있는 장소 가 일본 정부밖에 없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의 선택은 강자-약자라는 이분법적 세계의 질서 속에서 과거 자신이 추구하던 강자의 모습을 당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동인은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하자는 일제의 이상으로부터 한때 자신이 꿈꾸던 강 자의 환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 김춘규(2020) ‘김동인 소설의 변화와 제국주의 욕망의 동일화 과 정’ 14쪽. 김동인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었던 시기는 중일전쟁(1937) 이후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1938. 2. 4)에 기고한 ‘국기'(國旗)라는 산문에서 일장기를 극찬했다. 나아가 태 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며 일본신민”임을 강조했다. 그러면 서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겠다” 고 다짐하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인류 역사를 재건하는 성전(聖戰)”으로 미화했다(김동인 (1942) ‘감격과 긴장’ <매일신보> 1942. 1. 23). 계속해서 김동인은 ‘문학인의 책무’가 크고 중대하다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좌우할 수 있 는 중차대한 열쇠를 잡았노라는 자각과 긍지 아래서 우리의 무기인 문필을 가장 효과 있게 이용할 것”을 역설했다(김동인(1944). ‘총동원 태세로-決戰下 文壇人의 決意’ <매일신보> 1944. 1. 1). 한 마디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문필보국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논리였다. 강자인 제국주의 논리를 내면화함으로써 김동인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친일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다. 이런 변절과 전향의 배반된 모습을 두고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문학평론가 김영삼(전남대)은 이렇게 분석했다. “전쟁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조선을 대륙병참기지의 중핵적 지위로 격상하고 대 동아공영권에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서 지도적 지위에 놓게 한다는 제국주의의 권력 작동 방식은 ‘식민지적 전향자’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편승하면서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하기에 충분히 달콤한 인 식적 유혹이었을 것이다. 김동인은 이에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종족적 차이를 거세하고 동아시아제 국 건설이라는 파시즘적인 국가주의 동일화의 전략에 근거하여 ‘단일민족’임을 선언한 것이다.” – 김영삼(2020) ‘제국과 친일의 생명정치 논리’ 22쪽. 근대문학의 형식을 개척한 선구적 인물로 한국문단사에선 김동인을 단연 높게 평가한다. 그의 자연주 의 문예사조가 일본 명치학원 유학 시절 스승 시마자키 도손의 작품과 그의 영향 하에 형성된 것임은 독립연구자 늘샘(김상천)의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 카프의 수장 임화의 표현대로 한국 근대 문학이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이식문학’이었음을 김동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놀랍게도 김동인은 해방되던 날 오전에,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더 친일적인 문인단체를 만들어보겠다 고 나섰던 인물이다. 사회적 약자를 경멸했던 문인으로 자신이 설정한 세계관과 강자의 논리 앞에 약 자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의 손짓을 보이질 않았다. 어떤 측면에선 당대 지식인들 세계에서 지배적 세계관으로 통용된 사회적 진화론에 기초해 있었다. 다시 말해 강자의 논리를 자신의 인격 속으로 내면화한 인물로 그 자신의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시킨 작가였다. 그런 연유로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전신)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선 김동인을 친일문인 42명의 명단에 수록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김동인은 무려 4쪽에 걸쳐 그 반민족 행위의 죄악상이 서술돼 나온다. 이렇듯 비루한 김동인의 작품세계를 두고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임명선(<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은 “소설 속 하층계급의 인 물의 존재가 김동인이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을 반증한다면 여성 인물들은 김 동인 자신의 뒤틀리고 문제적인 남성성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건강한 문학적 감수성을 위해서라도 ‘동인문학상’은 ‘미당문학상’처럼 폐 지돼야 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창간 주체인 ‘대정친목회’가 친일반민족 단체였음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진정한 1등 신문은 한국 사회의 귀감이 되는 신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족을 배반한 자를 기리는 문학상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 필요치 않다. <2020-11-04> 오마이뉴스 11) 유치진(柳致眞, 東郞, 1905 ~ 1974) 통영 일본 릿교대학 - 약력 1905년 경남 통영 출신 1940년 조선극작가동호회 회장, 조선연극협회 이사 1941년 현대극장 대표 조선문인협회 상무간사 1943년 8월 25일 대동아문학자대회 2차대회 참가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회장 1945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 작품 목록 1940.7 대륙인식 인문평론 1941.1.3 국민연극 수립에 대한 제언 매일신보 1941.2 신체제하의 연극 춘추 1941.3 아름다운 도시 신시대 1941.12 연극계의 회고 춘추 1942.2.19 축 싱가폴 함락 매일신보 1942.6 북진대 여화 국민문학 1942.7.30-8.5 개척과 희망 매일신보 1942.9 극장은 연극을 결정한다 신시대 1942.9 만주분산개척민촌을 보고 춘추 1942.11-43.1 대추나무(희곡) 신시대 1943.6 싸우는 국민의 자세 국민문학 극작가이자 소설가. 친일극단을 운영하고 친일작품을 연출. 서울예대 설립자. 서울예대에 이 사람의 흉상이 있다고 한다. 유치진의 친동생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그 유 명한 시“깃발”을 쓴 청마 유치환. 유치진은 국민 연극 이념의 수립에 기여하며 “국민연극 수립에 대한 제언”과 “신체제하의 연극” 등의 평론을 발표하였으며, 중일전쟁 발발후 현대극장을 발족시켜 총독부의 만주 이민 정책에 호응하 는 친일 내용의 “흑룡강”, 친일의 선봉인 이용구를 찬양한“북진대”의 희곡을 쓰고 공연하였다. 12) 이광수(李光洙, 春園, 1892∼1950) 일본 메이지학원으로 유학 창씨명 香山光郞 - 약력 1892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출생 1904년 진보회 참여 1919년 2·8 독립선언서 기초, 8월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사장 겸 편집국장 1926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취임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 1942년 대동아문학자대회 1차대회 참가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이사, 학병 권유차 동경에 다녀옴. 1944년 11월 대동아문학자대회 3차 대회 참석 - 작품 목록 1939.2 가끔씩 부른 노래(시) 동양지광 1939.9 육장기(소설) 문장 1939.11.14-17 문학의 국민성 경성일보 1939.12 지원병장행가 삼천리 1939.12 선행장(소설) 家政の友 1940 국민문학과 그 순진성 애국대연설집 1940.1 조선문화의 장래 총동원 1940.2.16 국민문학의 의의 매일신보 1940.2.20 창씨와 나 매일신보 1940.3 내선일체와 국민문학 조선 1940.3-7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 녹기 1940.3.2-6 지원병훈련소를 보고 매일신보 1940.4 내선일체와 조선문학 조선 1940.5.17-20 산사사람들 경성일보 1940.7.6 황민화와 조선문학 매일신보 1940.8.3-5 예술의 금일 명일 매일신보 1940.8 나의 교우록 모던 일본 1940.8.28 의무교육과 우리 각오 매일신보 1940.9 내선청년에 고함 총동원 1940.9.30 조선문예의 금일과 명일 경성일보 1940.9.4-12 심적 신체제와 조선문화의 진로 매일신보 1940.9.19 배움의 감격 매일신보 1940.10.1 조선문학의 참회 매일신보 1940.10.1-9 동포에 고함 경성일보 1940.11 얼굴이 변한다 문예춘추 1940.11 지원병 훈련소의 하루 국민총력 1940.12 문사부대와 지원병 삼천리 1941.1 신체제하의 예술의 방향 삼천리 1941.1 동포에 고함 박문서관 1941.1-3 그들의 사랑(소설) 신시대 1941.1 어버이(시) 신시대 1941.1 우리집의 노래(시) 신시대 1941.1 신시대의 윤리 신시대 1941.1 인간수행론 신시대 1941.2 생사관 신시대 1941.3 학명기 신시대 1941.3 행자 문학계 1941.3.10-14 문인의 응소 매일신보 1941.4.22-5.1 일본문화와 조선 매일신보 1941.4 대화숙수양회잡기 신시대 1941.6.28-7.3 근로와 문화 매일신보 1941.6 인생과 수양 신시대 1941.7.6 인고의 총후문화 매일신보 1941.7 부여행(시) 신시대 1941.7 사변과 조선 신시대 1941.7.31-8.2 국가와 문화 매일신보 1941.9 긴박한 시국과 조선인 신시대 1941.9-1942.6 봄의 노래(소설) 신시대 1941.9.4-7 반도 민중의 애국운동 신시대 1941.10 반도의 자매에게 고함 신시대 1941.11 (속) 반도의 형제자매에게 보냄 신시대 1942.1 선전대조(시) 신시대 1942.1 항구원대한 구상 조선공론 1942.1 사상 함께 영미를 격멸하라(강연) 신시대 1942.1.3 태평양이여 매일신보 1942.1.12-15 생활도 결전적 매일신보 1942.1 군마 춘추 1942.1 개회사 신시대 1942.3 싱가폴 함락하다(시) 신시대 1942.4 인생관,국가관,연애관 등등 신시대 1942.4 진주만의 구군신 (시) 신시대 1942.5 병역과 국어와 조선인 신시대 1942.5 지금이야말로 봉공의 기회 대동아 1942.5 토쿠토미 소호선생과 만나 이야기대동아 1942.6 징병과 여성 신시대 1942.6 국어와 조선어 신시대 1942.7.30 황민생활요령 매일신보 1942.9 앞으로 2년 신시대 1942.10 사상의 간소화 신시대 1942.12 대동아 일주년을 맞는 나의 결의 국민문학 1943.1 전망(시) 녹기 1943.2.5-8 문학의 신도표 매일신보 1943.2 국민문학문제 신시대 1943.2 폐하의 성업에 춘추 1943.2.27 개병의 노래 모집에 찬사 매일신보 1943.3 올바르게 사는 법 신시대 1943.3 키쿠치 캉 의장께 대동아 1943.3 동아정신 수립에 대하여 대동아 1943.7.3 백천영자훈도순직 매일신보 1943.7.28-31 병제의 감격과 용의 매일신보 1943.8 대동아 전쟁의 교훈 녹기 1943.10 가가와 교장(소설) 국민문학 1943.11 군인이 될 수 있다(소설) 신태양 1943.11.5 조선의 학도여(시) 매일신보 1943.12.10 학병에게 감사 매일신보 1943.12 대동아(소설) 녹기 1944.1.1 새해(시) 매일신보 1944.1.17 학병에게 보내는 세기의 감격 매일신보 1944.2 새해의 기원(시) 신시대 1944.5 파리 반도작가단편집 1944.6 원술의 출정(소설) 신시대 1944.7.19 승리의 일(시) 매일신보 1944.7 절하는 마음 신시대 1944.8 청년과 금일 신시대 1944.8 두 사람(소설) 방송지우 1944.9 전쟁과 문학 신시대 1944.10 반도 청년에 붙임 신시대 1944.10 소녀의 고백(소설) 신태양 1944.12 적함대 찾아노라(시) 신시대 1945.1.18 모든 것을 바치리 매일신보 1945.1 대동아문학의 길 국민문학 1945.1.26-2.1 전쟁과 문화 매일신보 1945.7.1-5 소개기 매일신보 한국 최초 근대소설<무정>이 대표작.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과 함께 동경삼재라 불리기도 했음.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그 업적으로도 쉴드칠 수 없는 엄청난 친일파이자 반민족행위자. 신 한청년당, 상해 임시정부 활동, 2.8독립선언서도 쓰는 등 한 때는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1920년대에 들어서 민족개조론 등을 발표하면서 변절.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친일활동을 함. 창씨개명을 권유,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찬양, 내선일체론을 정당화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은 100편이 넘는 친일 시, 소설, 논설을 썼음. 1940년 창씨개명 후 이광수는“의무교육과 우리의 각오”등 많은 논설과“조선의 학도여”,“성전 3 주년”의 수필을 썼으며 “반도민중의 애국운동”등의 평론, “자원병훈련소”등의 방문기 등 모든 문학 장르에서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발표하였으며, 1943년부턴 학병 권유의 글과 연설을 번갈아 발 표하기도 하였다 13) 채만식(蔡萬植, 白菱, 1902 ~ 1950)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 와세다대 중퇴 호 白陵 - 약력 1902년 전북 옥구(沃溝) 출생. 1924년 「새 길로」- 『조선문단』12월호 발표 후 등단 한 때 동반작가로 불려짐 1937년 「탁류」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 - 작품 목록 1940.7 나의 '꽃과 병정' 인문평론 1940.11.22 대륙 경륜의 장도 그 세계사적 의의 매일신보 1941.1.5 시대를 배경하는 문학 매일신보 1941.1 문학과 전체주의 삼천리 1941.1 자유주의를 청소 삼천리 1941.7 혈전(소설) 신시대 1943.1.18 영예의 유가족 방문기 매일신보 1943.1 지인태 대위 유가족 방문기 신시대 1943.1 추모되는 지인태 대위의 자폭 춘추 1943.3 농산물 출하(공출) 기타 반도노광 1943.8.3 홍대하옵신 성은 매일신보 1944.6 경금속 공장의 하루 신시대 1944.10.5-1945.5.15여인전기(소설) 매일신보 채만식은 1940년대 후반기부터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풍자정신과 리얼리즘 방법론 으로 식민지 한국사회의 현실성을 우리 역사의 굴절을 냉정한 묘사가의 시선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다 후에 친일을 하게 되고, 해방 후에 일제 말기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민족의 죄인”(1948)을 발 표하였다. 14) 김기진(金基鎭, 八峰, 1903 ~1985) 청원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 창씨명 金村八峯 - 약력 1903년 충북 청원 출생 1925년 카프(KAPF)결성에 참여 1938년 7월 3일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결성위원 1944년 제3회 대동아문학자 대회 참석 - 작품 목록 1940.2.27 문예시감 매일신보 1941.11 아세아주의와 김옥균선생 조광 1942.1.9 국민문학의 출발 매일신보 1942.1.28 역사적 명령 매일신보 1942.2.20 신세계의 첫 장(시) 매일신보 1942.2 대동아전송가(시) 조광 1943.8.1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시) 매일신보 1943.11.5 나도 가겠습니다(시) 매일신보 1943.11.5 가라 군기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시) 매일신보 1944.10.4 경산시첩(시) 매일신보 1944.10.18 의기충천(시) 매일신보 1944.2.20 보도정신행 매일신보 1944.9.6 이 길로 가자 매일신보 1944.1.5 탄환과 충언 매일신보 1944.1.19 신전의 맹세 매일신보 1944.8.17 문화인에게 격함 신시대 1945.3.12 금감단편 매일신보 1924년부터 매일신보, 시대일보, 동아일보등의 기자로 활동하며 1940년대부터 수필.시.평론 등으로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다. 가장 강력한 친일 문예조직인 조선언론보국회 이사로 있으며 징병제 실시 당일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 친일 행적을 드러냈다. 15) 박영희(朴英熙, 懷月, 1901~ 납북) 서울태. 도쿄 세이소쿠학교 창씨명 芳村香道 - 약력 1901년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天然洞) 출생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 주도 1934년 <최근 문예 운동의 신전개와 경향>을 발표하며 전향 1939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1942년 11월 3일 대동아문학자대회 1차대회 참가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총무국장 1950년 6·25 때 납북 - 작품 목록 1939.7.25-26 {보리와 병정} 서평 매일신보 1939.10 전선기행 박문서관 1939.10 전쟁과 조선문학 인문평론 1940.1.1 국민문학의 건설 매일신보 1940.4.25 문장보국의 의의 매일신보 1940.7.6 문학운동의 전시체제 매일신보 1940.8.4 지식인의 이론 매일신보 1940.8.15-20 포연 속의 문학 매일신보 1940.11.6-7 신체제를 맞는 문학 매일신보 1941.3 꾸밈없는 야심 신시대 1941.4.11-16 문학의 새로운 과제 매일신보 1941.4 부여신궁어조영근로봉사에 춘추참례하여 1941.7.6 국민적 신문화의 제안 매일신보 1941.11 임전체제하의 문학과 문학의 국민문학 임전체제 1942.3.16 신시대의 문학적 이념 매일신보 1942.10.29 대동아문학자대회 출석을 앞두고 매일신보 1942.12 한층 더 좋은 작품을 신시대 1943.2 이천오백만의 기대 춘추 박영희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계열에서 친일을 한 대표적인 작가로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념”이라는 말로 전향 논리를 폈지만 실제로 그의 전향은 단순한 부일(附日) 협력의 길로 걸음을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1938년 도쿄에서 시국 대응 전국 위원회에 참가하면서 친일활동을 시 작, 조선문인협회 간사로 활약하며 “시국 대응 전선(全鮮)사상 보국 연맹의 간사”,“황군 위문 작 가단”의 일원으로 “전선기행”을 창작하였다. 임전체제하의 문(文)과 문학의 임전체제, 2천5백만 반도청년에게 격함이라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16) 백철(白鐵, 1908 ~1985) 평북 도쿄 사범학교 영문과 창씨명 白矢世哲 - 약력 1908년 평북 의주 출생 1931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졸업 귀국후 {개벽사} 편집부장 1939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0년 {매일신보} 학예부장 1941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국민연극연구소 예술개론 강사 1943년 {매일신보} 베이징 지사장 겸 특파원,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1962년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 3.1문화상 - 작품 목록 1938.12.18 이상의 필요 매일신보 1939.1.6 -7 해석에서 주장으로 매일신보 1939.4 시국과 문화문제의 행방 동양지광 1939.10 전장문학 일고 인문평론 1939.10.4 전선시집 서평 매일신보 1939.10.15 전선기행 서평 매일신보 1940.7 금후엔 문화적 사명이 중대 인문평론 1940.11 신체제와 저널리즘 인문평론 1940.12 천황폐하어친열특별관람식배관근기삼천리 1941.3 내선유록이 깊은 부소산성 문장 1941.5.31- 생활과 문화 매일신보 1942.1 낡음과 새로움 국민문학 1942.11 결의의 시대 국민문학 1942.6-7 문학의 이상성 동양지광 유학시절 일본 문단 데뷔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광복 이후 대한민국 문단의 비평계를 주도하며 친일행 각을 펼쳤다. 백철의 평론 “낡음과 새로움”은 국민 문학의 원칙을 밝힌 것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17) 이효석(李孝石, 可山, 1907 ~1942) 36세 요절 “메밀꽃 필 무렵”등 서정적인 소설을 많이 쓴 이효석은, “아자미의 장”이라는 소설에서 일제가 민족 말살의 수단으로 권유했던 이른바 일선 통혼(한일간의 혼인으로 한민족의 핏줄을 말살 하려던 정책)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18) 곽종원(郭鍾元, 1915.5.3~?) 호는 춘파(春波) - 약력 1915년 경북 고령 출생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 한국문학가협회 창립 간부, 한국문인협회 이사 1955년~1968년 숙명여대 교수 - 작품 목록 1944.3 적극성의 추구 동양지광 1944.4 결전문학의 이념 국민문학 1944.8 학도 근로동원에 대해서 국민문학 1944.9 해양남아의 요람 국민문학 1945.2.16~19 문학의 함축성 매일신보 1945.6.26~28 창작월평 매일신보 19) 김문집(金文輯, 1907~?) 호 화돈(花豚) 창씨명 大江龍之介 - 약력 1907년 대구출생 1939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간사, 국민정신 총동원조선연맹 총재부 촉탁 1941년 일본 귀화 - 작품 목록 1939.7.16 축하할 죽음 국민신보 1939.9.23-28 일본문화의 특수성 매일신보 1939.9 조선민족의 발전적 해소론 서설 조광 20) 김소운(金素雲/1907.1.15~1981) 호 월파(月坡) - 약력 1902년 경기도 연천 출생 1928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30년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동아일보』에 발표 - 작품 목록 1942.1.27 영혼의 정화 매일신보 1942.2.19 성업의 기초 완성 매일신보 1943.8.4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매일신보 21) 김용제 (金龍濟, 1909-1994) 창씨명 金村龍濟, 호 지촌(知村) - 약력 1909년 충북 음성 출생 1931년 일문시 「사랑하는 대륙」을 『나프』지에 발표. 일본 프롤레타리아 시인회 간사, 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 사무국장, 프로문화동맹 조선위 동경지부장 등 역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복역 1937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 작품 목록 1939.3 전쟁문학의 전망 동양지광 1939.4 내선일체의 가(시) 동양지광 1939.4 민족적 감정의 내적 청산 동양지광 1939.4.9 황군위문문사부대 매일신보 1939.6 조선문화운동의 당면 임무 동양지광 1939.7.26-8.1 문학의 진실과 보편성 경성일보 1939.8 싸우는 문화이념 녹기 1940.1 전장의 미 인문평론 1942.2 해신(시) 조광 1942.3 사석(시) 국민시가 1942.3.19-21 창작론의 전진과제 매일신보 1942.12 12월 8일(시) 동양지광 1943.2 어동정(시) 녹기 1943.7.20 바다에서(시) 경성일보 1943.7.20 위대한 전사(시) 경성일보 1943.11 불문의 도(시) 국민문학 1943.11.9 나는 울었다(시) 매일신보 1943.12 아세아시집 대동문화사 1944.2 종제에게(시) 동양지광 1944.3 이봄(시) 동양지광 1944.4 갑종(시) 동양지광 1944.6 보도시첩(시) 동도서적 1944.8 장정(소설) 국민문학 1944.9 학도동원(시) 동양지광 1944.11 입단하는 아침(시) 문학보국 22) 김종한 (金宗漢, 1916~1944) 창씨명 月田茂 - 약력 1916년 함경북도 경성군 명천 출생 1937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시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당선 1939년 『문장』에 「귀로」, 「고원의 시」, 「그늘」, 「할아버지」, 「계도」등 추천 - 작품 목록 1940.3 시단개조론 조광 1940.11 살구꽃처럼(시) 문장 1941.4 항공애가(시) 문장 1942.1 원정(시) 국민문학 1942.3.16 춘복(시) 매일신보 1942.3 일기의 윤리 국민문학 1942.4 합창에 대해서(시) 국민문학 1942.5 풍속(시) 국민문학 1942.7 유년(시) 국민문학 1942.9.2 국어공부기 매일신보 1942.11.13 조선시단의 진로 매일신보 1943.1.16 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 매일신보 1943.2 거종(시) 춘추 1943.3 신진작가론 국민문학 1943.5.26 해양과 조선문학 매일신보 1943.6 사상의 탄생 신시대 1943.8.6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자 매일신보 1943.8 병제와 문학 신시대 1943.12 문화의 일년 신시대 1944.1 용비어천가(시) 신시대 1944.7.14 생성하는 문학정신 매일신보 23) 박영호(朴英鎬, 생몰년 미상) - 약력 1930년대 중반 동양극장 전속작가 - 작품 목록 1940.2 잔등불(희곡) 문장 1941.2 수류 문장 1942.2 갱생일가(희곡) 국민문학 1942.9 산돼지 국민연극경연대회 1943.9 물새 국민연극경연대회 1943.12 좁은문(희곡) 조광 1944.3-5 김옥균의 사(희곡) 조광 1944.7 혈서(희곡) 신시대 1944.11 제2의 동키호테 동양지광 1945.2 별의 합창 국민연극경연대회 24) 박태원(朴泰遠, 1909∼1986) - 약력 1909년 서울 출생 1933년 구인회 참여 1941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3년 조선문인협회 평의원 1945년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참여 소설부 위원 1950년 6·25전쟁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작품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0년 복위. - 작품 목록 1941.2 아세아의 여명 조광 1942 군국의 어머니 조광 1945.5.16- 원구 매일신보 25) 송영(宋影, 1903~1979) - 약력 1903년 서울 출생 1925년 KAPF 가담 1934년 신건설사사건으로 피검 1937년 동양극장 문예부원 1946년 10월 월북 1978년 지병으로 사망 - 작품 목록 1942.1.15-20 국민극의 창작 매일신보 1942.12.16-20 극계의 총관 매일신보 1943.8.5 영원한 충성 매일신보 1943.9 역사 연극경연대회 1943.12.17-21 연극의 결전체제 매일신보 1945.2 신사임당 연극경연대회 1945.2 달밤에 걷던 산길 연극경연대회 26) 유진오(兪鎭午 1906∼1987) - 약력 1906년 서울 출생 1939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 1942년 11월 3일 대동아문학자대회 1차대회 참가 1943년 8월 25일 대동아문학자대회 2차대회 참가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평의원 1947년 대한민국 제헌국회헌법 기초위원 1952∼65년 고려대 총장 1960,61년 한일회담 수석 대표 - 작품 목록 1940.7 소감 삼천리 1942.3 지식인의 표정 국민문학 1942.11 국민문학이라는 것은 국민문학 1943.1.9-13 동양과 서양 매일신보 1943.6 환멸 신시대 1943.10 부상견문기 신시대 1943.11.18 병역은 큰 힘이다 매일신보 1944.9 우리가 반드시 승리한다 신시대 27) 이무영(李無影, 1908~1960) - 약력 1908년 1월 14일 충북 음성 출생 1934년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로 입사 1943년 장편 『청기와집』으로 조선예술상 수상. 1950년 한국전쟁시 해군 정훈장교 입대 1957년 단국대 국문과 교수 - 작품 목록 1942.2.19 가련한 처칠의 말로 매일신보 1942.3.17-21 문학의 진실성 경성일보 1943.2.25-28 개척촌을 보고 매일신보 1943.4 토룡(소설) 국민문학 1943.5.3-9.6 향가(소설) 매일신보 1945.5.5 소개 산 전투 매일신보 28) 이서구(李瑞求, 1899~1981) 창씨명 牧山瑞求, 호 고범(孤帆) - 약력 1899년 경기 안양(安養) 출생 1921년 조선일보 도쿄(東京)특파원 1935년 동양극장 전무 1942년 조선연극문화협회 초대이사장 - 작품 목록 1941.3 사람값을 한 기쁨 신시대 1942.2.20 감격과 축하 신시 1943.7 보도연습기 조광 1944.6 불이농장에서 신시대 29) 이석훈(李石薰 1908.1.27~1950?) 창씨명 牧洋, 호 금남 - 약력 1908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933년 『신동아(新東亞)』지 「황혼의 노래」 - 작품 목록 1941.2 함흥일기 신시대 1941.3 부여기행 신시대 1941.6 애견가의 수기 춘추 1941.11 반도의 신문화라고 하는 것 녹기 1941.11 고요한 폭풍(소설) 국민문학 1941.12 전환기의 조선문학 녹기 1942.1 성지참배통신 조광 1942.1 성지참배통신 신시대 1942.3 나아가자 일장기와 함께 동양지광 1942.3.7-12 국민문학의 문제 매일신보 1942.6 새롭다는 것에 대해서 동양지광 1942.7 징병.국어.일본정신 조광 1942.8.17-20 20세기의 신화 매일신보 1943.1.13 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 매일신보 1943.6 고요한 폭풍(소설집) 매일신보사 1943.7 행군 국민문학 1943.8 혈록(소설) 동양지광 1943.8 최후의 가보(소설) 신시대 1944.11 김종한의 인간과 작품 국민문학 30) 이찬(李燦, 1910∼?) - 약력 1910년 1월 15일 함남 북청 출생 1931년 동지사 결성, 카프에 가담 - 작품 목록 1942.6 어서 너의 키타를 조광 1943.3 병정 신시대 1943.6-8 세월(희곡) 조광 1944.1.19 송 출진학도 매일신보 1944.2 송 출진학도 신시대 1944.3 그나마 잘 죽어서 동양지광 1944.8 보내는 사람들(희곡) 신시대 1944.10 잔사 동광 31) 이헌구(李軒求, 1905~1982) 창씨명 牧山軒求, 호 소천(宵泉) - 약력 1905년 함북 명천(明川) 출생 1936년 『조선일보』학예부 기자 1941년 조선문인협회 상무간사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1949년 공보처 차장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973년 예술원 공로상 - 작품 목록 1941.1.5-7 각고의 정신 매일신보 1943.11.23 적 학병격최하라 매일신보 1943.12 천재일우의 때 조광 1943.12 화성돈에 일장기 날리라 춘추 32) 임학수(林學洙, 1911-?) - 약력 1911년 전남 순천 출생 1939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3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 작품 목록 1939.5.21 펜부대보고 국민신보 1939.7 전선시집 인문사 1939.8 보정성의 인상 조광 1939.9 야전(시) 조광 1939.9 야연(시) 조광 1940.7 출전한 우인 인문평론 1941.11 자화상 국민문학 1943.11.8 학도총진군(시) 매일신보 33) 장혁주(張赫宙, 1905.10.13~?) 창씨명 : 野口稔 - 약력 1905년 대구 출생 1932년 일문(日文) 소설 『아귀도 (餓鬼道)』가 『개조(改造)』에 당선 1942년 황도조선연구회, 대륙개척문학위원회 위원 역임 - 작품 목록 1939.1 가등청정 삼천리 1939.4 조선의 지식층에 호소함 삼천리 1942.6.13 개척지시찰보고 매일신보 1943.1 어느 독농가의 술회(소설) 녹기 1943.6.6 역사에 불멸할 일순 매일신보 1943.9.7-22 순례(소설) 매일신보 1943.11.11 화랑도 정신의 재현 젊은 학도의 매일신보 갈길은 하나 1944.1 새로운 출발 녹기연맹 34) 정비석(鄭飛石, 1911-1991) 본명은 서죽(瑞竹) - 약력 1911년 평북 의주 출생 1927년 단편 「성황당(城隍堂)」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1940년 매일신보 기자 [제신제] 발표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 - 작품 목록 1939.4.23 조국으로 돌아가다(소설) 국민신보 1942.2 한월(소설) 국민문학 1942.7 지식인 동양지광 1943.1.15 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 매일신보 1943.4-5 산의 휴식(소설) 신시대 1943.4 국경 국민문학 1943.7 군대생활 신시대 1943.7 사격 국민문학 1943.7 철면피 국민문학 35) 정인섭(鄭仁燮, 1905~1983) 창씨명 東原寅燮, 호 눈솔 - 약력 1905년 경상남도 울주출생 1922년 색동회 발기인 1939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1941년 조선문인협회 상무간사 1956년 서울대학교 대우교수 및 팬클럽한국본부위원장 1963년 『영역 한국시선』출간으로 제4회 번역문학상 수상 - 작품 목록 1940.1.3-5 애국문학의 제창 매일신보 1940.7.6 총후문학과 개척문학 매일신보 1940.9.9 건전한 오락은 씩씩한 국민의 표징 매일신보 1940.12.24 문인순회강연통신반 매일신보 1941.2 나의 보고서 신시대 1942.1 서양문학에의 반성 국민문학 1942.1.29 엄숙한 순간 매일신보 1942.2.18 꿈이 아니다 매일신보 1942.2.24-3.2 영국문화의 위기 매일신보 1942.12 대동아전을 맞는 나의 결의 국민문학 36) 정인택(鄭人澤, 1909~ ?) 『매일신보』학예부 기자, 『문장』기자 - 약력 1942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 1945년 조선문인보국회 소설부 회장 - 작품 목록 1940.2.16 신이상의 수립 매일신보 1941.3 부상관의 봄(소설) 춘추 1941.11 청량리계외(소설) 국민문학 1942.1 행복(소설) 춘추 1942.7.27-29 대지의 역사 매일신보 1942.8 개척민의 감정 춘추 1942.9 옥토의 표정 신시대 1943.3 만주개척지기행 국민문학 1944.6 붕익(소설) 동양지광 1942.11 검은 흙과 흰 얼굴(소설) 조광 1943.11 해변(소설) 춘추 1944 창작집 조선도서주식회사 37) 조연현(趙演鉉 1920~1981) 창씨명 德田演鉉, 호 석재(石齋) - 약력 1920년 경남 함안 출생 1945년 『예술부락 藝術部落』주재 1946년 청년문학가협회(靑年文學家協會) 결성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현대문학(現代文學)』주간 1963년 대한민국 문화포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2년 3·1문화상 - 작품 목록 1942.5 동양에의 향수 동양지광 1942.6 아세아부흥론서설 동양지광 1942.10 강창천심에 대해서 동양지광 1943.1 문학자의 입장 동양지광 1943.8 자기의 문제로부터 국민문학 1943.12 평단의 일년 신시대 38) 조용만(趙容萬, 1909~1995) - 약력 1933년 구인회(九人會) 조직 『매일신보』기자 1950년 『코리아 타임스』주필 1953년 고려대학 교수 - 작품 목록 1941.7 만찬(소설) 춘추 1941.12 근로봉사일지 조광 1942.7 배 안에서(소설) 국민문학 1942.7 차중에서 생긴 일 동양지광 1942.12 삼군 부처와 나와(소설) 국민문학 1944.1 전국 현단계와 국민의 결의 국민문학 1944.3 도시 소개와 그 의의 신시대 1944.6 흑령탄갱의 감상 신시대 39) 최재서(崔載瑞, 1908∼1964) 창씨명 石田耕造 - 약력 1908년 황해도 해주 출생 1941년 친일문학지 {국민문학} 주간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이사 - 작품 목록 1940.6 전쟁문학 인문평론 1940.7 사변당초와 나 인문평론 1941.1 전형기의 평론계 인문평론 1941.1.14 문화이론의 재편성 매일신보 1941.2 전형기의 문화이론 인문평론 1941.2 문학신체제화의 목표 녹기 1941.4 문학정신의 전환 인문평론 1941.8.2 징병감사와 우리의 각오 매일신보 1941.11 국민문학의 요건 국민문학 1942.3 나의 페이지 국민문학 1942.5-6 징병제 실시의 문화적의의 국민문학 1942.7 새로운 비평을 위하여 국민문학 1942.8 조선문학의 현단계 국민문학 1942.10 문학자와 세계관의 문제 국민문학 1943.4 선전의 효과 조선 1943.5 근로와 문학 국민문학 1943.6 사상전의 첨병 국민문학 1943.7 보도연습반(소설) 국민문학 1943.8 징병서원행 국민문학 1943.9 대동아의식에 눈뜨며 국민문학 1943.10 결전하의 내지 국민총력 1944.1.11 아세아의 해방 매일신보 1944.4 받들어 모시는 문학 국민문학 1944.5-8 비시의 화(소설) 국민문학 1944.12 금년의 신인군 국민문학 1945.2 민족의 결혼(소설) 국민문학 40) 최정희(崔貞熙, 1906~1990) 호 담인(淡人) - 약력 1906년 함북 성진 출생 1934년 2차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검거시 투옥 1950년 공군종군작가단 참가 197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2년 3 1문화상 - 작품 목록 1939.5.14 어머니의 마음 국민신보 1940 친애하는 내지의 작가 모던 일본 1941.2 환상의 병사 국민총력 1941.7.15 시국과 소하법 매일신보 1941.9.23-26 초가을의 편지 경성일보 1942.2.21 동아의 새 아침 매일신보 1942.4 2월 15일의 밤 신시대 1942.5.19 국가의 아들의 어머니에게 경성일보 1942.5 여명 야담 1942.5 군국의 어머니 대동아 1942.5 꿈은 남녁으로 대동아 1942.7 장미의 집 대동아 1942.11 야국초 국민문학 1942.12.12 푸른 하늘 경성일보 41) 함대훈 (咸大勳 1906.~1949) 호 일보(一步) - 약력 1906년 황해도 송화(松禾) 출생 1939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1년 조선문인협회 문학부 상무간사 1941년 현대극장 연구부 국민연극연구소 소장 1942년 조선문인협회 간사 1947년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장 - 작품 목록 1939.7 남북조선편답기 조광 1940.10.11-16 문예시감 매일신보 1940.12.9-10 맥박과 호흡의 조화 매일신보 1940.12 우리들과 지원병 조광 1941.1.5-9 지도와 새 이념 매일신보 1941.8.19-21 전쟁취재와 문학 매일신보 1942.2.18 세계변혁의 날 매일신보 1942.4.6-8 남방문화공작과 건설문제 매일신보 1942.11.18-21 전쟁문학별견 매일신보 1943.8.4 장정의 각오 매일신보 1943.8.10-14 전시수상 매일신보 42) 함세덕(1915∼1950) - 약력 1915년 전라남도 목포 출생 1936년 단막희곡 「산허구리」로 등단 1941년 현대극장 단원 1945년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간사장 - 작품 목록 1941.2.7-11 신극과 국민연극 매일신보 1942.3 추장 이사베라(희곡) 국민문학 1942.3 에밀레 종(희곡) 대동아 1943.3.2- 동경국민연극의 전망 매일신보 1944.11 거리는 쾌청한 가을날씨(희곡) 국민문학 1944.11 황해(희곡) 국민연극경연대회 43) 홍효민 (洪曉民 1904.1.21~1975) - 약력 1904년 경기 연천(漣川) 출생 1927년 {제 3전선} 발행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평론수필분회 간사 - 작품 목록 1940.10.15-25 감격의 일일 매일신보 1942.1 인생의 도 동양지광 1943.8.14-17 미소기 연성행 매일신보 1943.9 계와 일본정신 신시대 1943.9 미영사상의 본질 조광 □ 부록1-2) 친일문학인의 문학상은 폐지해야 한다 원주신문 / 임영석 / 2023. 09.27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 국민은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를 다하고 살 의무를 갖는다. 그러나 그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는 법으로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함에도 우리나라는 친일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하여 관용인지, 포용인지 친일에 앞장섰던 사람 들이 그대로 이 땅에 살았고, 그들은 이 나라 근간의 기초를 다지는 각종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해 왔다. 필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친일 문인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민족문화연구소 등에서 연구 발표한 친일 문인들에 대한 자료를 간략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고 학자다. 초기 독립선언 문을 기초하는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이후 조선사편수회, 총독부중추원 등에서 활동을 했으며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일본 전쟁 참여를 강연과 글을 통해 독려를 했다. 노천명(1912~1957) 시인은 「사슴」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기자를 지냈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의 대동아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작품 “님(일왕)의 부르심을 받고”, “부인근로대”, “군신송” 등의 작품을 남긴 시인이다. 모윤숙(1910~1990) 시인은 광복 이후 6.25 전쟁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등의 작품이 알려졌지 만,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면서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문인보국회 등의 활동을 통해 친일행위에 가담을 했다. 1933~1944년 매일신보를 통해 일본의 대동아 결전, 미국 영국을 격멸 하자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고, 일본 징병을 독려하는 시 등을 집필했다. 그 대표적 시가 「님(일 왕) 따라 나서자」 등의 작품이 있다. 김동인(1900~1951)은 소설가로 「감자」,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다」 등의 소설이 알려져 있 다. 1919년과 1942년 아우 김동평의 3.1운동 격문을 써준 것이 발각되어 일왕에 대한 불경죄로 투옥 되어 고초를 격었다. 그러나 일제말기 1944년 친일문인보급회(친일문학단체) 간사를 맡아 활동을 했 고 친일소설 「성암(聖岩)의 길」 같은 소설을 발표했다.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은 「국화 옆에서」, 「푸르른 날」, 「동천」, 등의 시로 잘 알려졌고, 그의 추천과 천거로 많은 시인들이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1942년 미당 서정주는 ‘다츠시로 시즈 오’란 이름으로 개명하여 친일작품들을 발표했으며,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 에게〉, 〈항공일에〉, 〈최제부의 군속 지망〉, 〈오장 마쓰이 송가 〉 따위의 친일 작품들을 발표 했다. 중앙일보사에서 미당문학상이 주어져 왔으나 민족문학협회와 많은 문인들의 반대로 2001~2017 년까지 수여해 오다가 폐지되었다. 채만식(1902~1950) 소설가는 「심봉사」, 「불효자식」, 「유감」 등의 작품이 있다. 1940년 이후부 터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식민지 한국사회의 현실성을 작품으로 나타냈으며, 후에 친일에 가담을 하 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해방이 되고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글을 남겼 다. 자기반성을 유일하게 글로 남기며 친일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 문인이다. 이 외에도 주요한, 김안서, 김억, 이광수 등의 문인들이 있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문학은 일 반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삶의 모습을 흡수하게 하는 장르다. 해방 이후 우리는 앞에서 열거한 많은 문인들의 작품을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다. 하지만 교과서 어디에도 친일에 가담한 사실을 나는 배운 적이 없다. 필자가 민족문학연구회에 가입해 활동을 하는 목적도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친일행 위에 가담한 문학인의 삶을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가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 라 말한다. 조선일보사에서 주어지는 동인문학상, 한국일보사에서 주어지는 팔봉 김기진 문학상의 폐 지를 외치는 것도 소설가 김동인, 김기진 이전에 민족의 정신을 왜곡한 친일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기리는 문학상은 바로 친일을, 반민족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원주신문(http://www.iwjnews.com) 친일문학인 42인.....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이상 시),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이상 소설ㆍ수필ㆍ희곡),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이상 평론) 등이다. 친일파, 끝나지 않은 심판(1부) / KBS 다큐멘터리극장 친일파, 끝나지 않은 심판(2부) / KBS 다큐멘터리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