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 전봉건 / <꿈속의 뼈>(1980) -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랑
- 전봉건 / <전봉건 시선>(1985) -
사랑한다는 것은
열매가 맺지 않는 과목은 뿌리째 뽑고
그 뿌리를 썩힌 흙 속의 해충은 모조리 잡고
그리고 새 묘목을 심기 위해서
깊이 파헤쳐 내 두 손의 땀을 섞은 흙
그 흙을 깨끗하게 실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삼킨 어둠이어도
바위 속보다도 어두운 밤이어도
그 어둠 그 밤을 새워서 지키는 일이다.
훤한 새벽 햇살이 퍼질 때까지
그 햇살을 뚫고 마침내 새 과목이
샘물 같은 그런 빛 뿌리면서 솟을 때까지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 전봉건(全鳳健, 1928 ~ 1988)
평안남도 안주 출생. 공무원이었던 전형순(全亨淳)의 일곱째 아들이다.
1945년 평양 숭인중학교(崇仁中學校)를 졸업하고, 1946년 월남하여 형 전봉래(全鳳來)의 영향으로 문
학 수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문예(文藝)』에 시 「원(願)」·「사월(四月)」·「축도(祝禱)」가
서정주(徐廷柱)와 김영랑(金永郞)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등단 직후 6·25로 군에
입대하였고, 1951년 중동부전선에서 부상하여 제대한 뒤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의 시는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전쟁의 비인간적 부조리를 고발하고, 평화에 대한 갈망
을 노래하면서 리프레인(refrain, 후렴)의 사용으로 음악성을 추구하였다. 초기 시로 분류되는 1950
년대의 작품은 김종삼(金宗三)·김광림(金光林)과 함께 낸 연대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1957)와 첫 개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에 수록되어 있다.
1960년대에 시론집 『시를 찾아서』(1961)와 장시집 『춘향연가(春香戀歌)』(1967)를 출간하였다. 한
편, 방송시극에도 관심을 가져 「꽃소라」(1964)·「모래와 산소(酸素)」(1968) 등을 발표하였다.
또,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現代詩學)』을 창간하여 죽기 전까지 그 주간으로 일하였다.
1960년대 시의 특성은 초현실주의적인 수법으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며, 시집 『속의 바다』
(1970)에 그러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전봉건의 시는 동화적 순수성과 정신주의의 추구라는 두 가지 특성을 드러내는
데,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피리』(1980)와 선시집 『꿈속의 뼈』(1979)가 그러한
작품을 수록한 저서이다. 1980년대에는 실향민의 향수와 수석(水石)에 대한 관심을 상상력의 원천으
로 하는 시를 썼는데, 전자는 시집 『북(北)의 고향』(1982), 후자는 시집 『돌』(1984)에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6·25의 비극적 체험을 민족사적 차원에서 형상화하는 연작시 「6·25」를 계속
발표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이외의 저서로는 선시집 『새들에게』(1983)·『전봉건시
선』(1985)·『트럼펫과 천사』(1986)·『아지랭이 그리고 아픔』(1987)·『기다리기』(1987)와 산문
집 『플루트와 갈매기』(1986)가 있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로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
았다. 19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실존하는 삶의 역사성」(최동호, 『아지랭이 그리고 아픔』, 혜원출판사, 1987)
「어둠속을 나는 꿈의 새」(이형기, 『기다리기』, 문학사상사, 1987)
「추락과 상승의 시학」(이승훈, 『새들에게』, 고려원, 1983)
피아노(전봉건) / 시낭송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