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누구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홍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기형도의 詩가 그리워 줄을 선다
‘질투는 나의 힘’‘흔해빠진 독서’…시 9편 주제 연극‘기형도 플레이’29일까지 총13회공연 전부매진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 입력 2023.10.27.
오는 29일까지 단 13회 공연.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의 142석은 모든 공연이 일찌감치 매진됐
다. 작가 9명이 고(故) 기형도(1960~1989)의 시 9편을 각각의 짧은 이야기로 만든 극단 맨씨어터의
옴니버스 연극 ‘기형도 플레이’(연출 김현우). 시인을 추억하는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 두 행으로 끝나는 시 ‘질투는 나의 힘’은 아마도 기형도의 가장 유명한 시. 연극에선 관객이 가
장 크게 자주 웃는 에피소드다.
연극 '기형도 플레이', '질투는 나의 힘'의 한 장면. /맨시어터
무대 위 남자는 40대 초입 나이. 신춘문예에 떨어졌다고 사흘 밤낮 만취한 채 과방에서 통곡하는 짓
따위 애저녁에 졸업했어야 하지만, 여전히 젊은 치기의 동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신입생 시
절, 복학생이던 남자를 만나 잠시 사귀었던 여자가 남자를 위로할 때 읽어준 시도, 남자가 시작(詩
作) 강사로 일하며 어린 학생들을 꼬드길 때 써먹은 시도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난 여전히 벼
랑 끝, 칼날 위에 서 있다”고 짐짓 비장하게 말하는 남자를 향해 이미 등단 소설가인 여자는 피식
웃으며 받아친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작두 타?”
“너만은 나를 이해했잖아. (이마를 가리키며) 내 머릿속 이 자폭 버튼, 이걸 네가 지켜줘서 내가 살
고 있잖아!” 남자가 포기하지 않자,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이마를 지그시 누른다. “자, 눌렀
어, 자폭해.” 객석은 폭소의 도가니다. 어떤 시는 너무 유명해진 탓에 학대당한다.
스물아홉 살 생일을 엿새 앞둔 새벽, 서울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기형도의 사인은 뇌
졸중이었다.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1980~90년대 젊은이들에게 특별했다.
장윤현의 영화 ‘접속’, 서태지의 ‘난 알아요’,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과 은희경의 ‘새의 선
물’처럼, 기형도는 한 시대와 세대의 집단 기억을 사로잡은 문화 현상이었다.
침묵으로 강의하는 교수에 관한 시 ‘소리의 뼈’에 관한 에피소드는 상큼하다. 한 학기 내내 침묵의
강의를 들은 뒤 헤어진 남녀는, 오토바이 헬멧과 음소거 헤드폰을 쓰고 재회한다. 처음엔 엇갈리며
투닥대던 두 사람의 대화는, 둘 다 위층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부터 금붕어 헤엄치는 소리까지 주변
의 사소한 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다 들리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단 걸 알게 되면서 급진전된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쿵쿵 뛰는 심장 박동 소리를 숨기지 못한다. 멀어졌던 두 마음이 다
시 연결된다.
서점을 배경으로 두 여배우가 수많은 인물을 오가며 장르적 분위기를 바꿔 가는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죽음을 기억하는 엇갈리는 태도에 관해 말하는 ‘빈집’ 등도 흥미롭다.
‘흔해빠진 독서’ ‘바람의 집’ ‘기억할 만한 지나침’ ‘위험한 가계·1969′ ‘조치원’…. 기
형도의 아름다운 시가 그대로 짧은 이야기의 제목이 되고, 시의 일부가 극의 중요한 모티브로 녹아든
다. 시를 연기할 때, 대학로에서 잔뼈 굵은 배우 9명의 표정에도 시와 시인을 향한 애정이 가득하다.
이 단단한 서사와 창작진의 애정이, 꽉 찬 객석 뒤쪽 열에선 배우들 무릎 위밖에 안 보이는 비좁은
소극장에 매진 행렬을 이뤄낸 이 연극만의 힘이다.
빈 집
- 기형도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내 인생의 中世
- 기형도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
이제는 그대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지요
너무 오래되어 어슴프레한 이야기
미류나무 숲을 통과하면 새벽은
맑은 연못에 몇 방울 푸른 잉크를 떨어뜨리고
들판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나그네가 있었지요
생각이 많은 별들만 남아 있는 공중으로
올라가고 나무들은 얼마나 믿음직스럽던지
내 느린 걸음 때문에 몇번이나 앞서가다 되돌아 오던
착한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나그네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지요
엄마 걱정
- 기형도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奇亨度, 1960~1989)
1960. 2.16(음력)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 출생 3남 4녀중 막내로 당시 부친은 황해도에서 피난 온 후
교사를 거쳐 공무원으로 재직함.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한 부친이 유랑 후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 정착하여, 이사하게 됨.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 수해 이재민이 정착촌을 이
루었던 소하리는 아직까지 도시 배후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1985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안개"의 배경이 된다. 시흥국민학교,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
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1979)하여 정치외교학과를 졸업(1985)함.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함. 1989년 3월 7일 새벽(03:30경), 가을
시집출간을 위해 준비하던 중 종로 2가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 됨. 사인은 뇌졸중. 경기도 안
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
대학 입학 후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수업 시작한 이후 대학문학상인
박영준 문학상(소설부문)에 [영하의 바람]이 당선없는 가작으로 입선, [식목제]가 대학문학상인 윤동
주문학상 시부문에 당선됨. 안양 근교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하
고 동인지에 [사강리]등을 발표, 시작에 몰두 함. 대부분의 초기작이 이 시기에 씌어짐. 전역, 복학
후 [겨울판화] [포도밭묘지] [폭풍의 언덕]등 다수의 작품을 쓰며,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시작함.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됨. 이후 문예지에 [전문가][먼지투성이의 푸른 종
이][늙은 사람][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백야][밤눈][오래된 서적][어느 푸른 저녁] 등의 시를 발표.
중앙일보에 근무하며 [위함한 가계 1969][조치원][집시의 시집][바람은 그대쪽으로][포도밭 묘지
1,2][숲으로 된 성벽]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문인 및 출판관련 인사들과 활발히 교유함.
<시운동>동인. 1989년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함)이 발간되었고 유
작으로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1990)], [기형도 전집(1999)]과 시 [입속의 검은 잎], [그날], [홀
린 사람]이 발표됨.
그의 작품은 주로 유년기에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우울한 기억이나 회상, 그리고 현대의 도시인들의
살아가는 생활을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개성이 묻어 나오는 시어와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에
는 죽음과 절망, 불안과 허무 그리고 불행의 이미지가 환상적이고 일면 초현실적이며 공격적인 시인
특유의 개성적 문체와 결합하여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평가받는 독특한 느낌의 시를 이루어 내
고 있다. 동일 이미지의 반복이 중첩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든지 돌연한 이미지와 갑작스런 이질적 문
장의 삽입, 도치, 콤마에 의한 분리, 감정의 고조(그는 감탄사를 연발한 드문 경우의 시인이었다)등
시어 구성과 문체가 일관되게 지속된 그의 암울한 세계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는데 효
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년시절 불우한 가족사와 경제적 궁핍,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험과 이에
대한 강렬한 심미적 각인이 시 전체에 가득한 삶에 대한 부정적 영상을 이끈 원인이자 그의 시적 모
티브를 유발하고 있는 동인이며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닫고 비관적 세계로 침잔케 한 주된 이
유로 이해되고 있다. 그의 시에는 현실에 대한 역사, 즉 역사적 전망이 없으며 따라서 그의 시는 퇴
폐적이라 말 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으나 초현실적 이미지를 추구하면서도 일상의 현실을 비판한 독
특한 시세계는 주목할 만 하다 하겠다.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고향은 황해도였으나 한국전쟁 중 연평도로 건너
왔다. 1964년 일가족이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했다. 당시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로 도시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 1967년 시흥초등학
교에 입학했다. 성실한 부친 덕분에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 1969년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
계가 기울어 모친이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1973년 신림중학교에 입학했고, 1975년 바로 위의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교내 중창단
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79년 연세대 정법대 정법계열에 입학했다.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
에 입회하여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박영
준문학상〉에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 입선되었다.
1980년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80년의 봄’을 맞아 철야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
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조사를 받았다. 1981년 병역 관계로 휴학하고 대
구·부산 등지를 여행했으며, 방위로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했다.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해서 동인지에 「사강리」등을 발표했다. 시작에 몰두하여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 때
쓰고 습작을 정리했다. 1982년 전역하여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창작과 독서에 몰두했다. 이 때
「겨울 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언덕」 등 다수의 시와 소설을 썼다. 1983년 3학년으로 복
학하고,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되
었다.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하고, 1985년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월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되었다. 1986년 문화부로 자리를
옮기고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문학과 출판을 담당하면서 관련 인사와 활발하게 교유했다.
1987년 여름에 유럽을 여행하고, 1988년 여름휴가 동안 대구·전남 등지로 여행했다. 문화부에서 편
집부로 자리를 옮겼다. 1989년 3월 7일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졸중
이었다. 3월 9일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5월에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1990년 1주기를 맞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을 살림출판
사에서 출간했다.
기형도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고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난한 집안 환경과 아픈
아버지, 장사하는 어머니, 직장을 다니는 누이 등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의 시의 원체험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시는 우울과 비관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개인적인 체험 외에 정치 사
회적인 억압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개」는 억압적 현실 속에 개체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고, 「전문가」, 「홀린 사람」 등은 기만적인 정치 현실과 무력하게 그것에 휘
둘리는 사람들을 풍자함으로써 간접적인 사회 비판적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
는 시선은 극히 비관적이며 어떠한 전망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박해현 외, 문학과지성사, 2009)
「부정성의 언어, 그 사회적 의미」 (성민엽, 『오늘의 시』, 오늘의 시, 1989)
「영원히 닫힌 빈 방의 체험」, (김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입 속의 검음 잎(기형도) / 이숲오 낭독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