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정인보> 유모강씨의상행을보내며 / 자모사(慈母詞)40수

이름없는풀뿌리 2024. 2. 8. 14:11
유모 강씨의 상행(喪行)을 보내면서 내 젖엄마는 그 시집이 교하(交河)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얼마 있다가 다시 교하로 가더니 내가 보고 싶어서 도로 뛰어나와 첫새벽에 경기감영(京畿監營) 앞을 지나 성문 열자 곧 회 동(會洞)으로 왔다. 내가 열한 살에 양근(楊根)으로 내려가 다시 진천(鎭川)으로 가니 엄마 는 서울 처져있었다. 우리 집이 서강(西江)으로 온 뒤는 흔히 와 있더니 도로 진천으로 가 니 진천은 멀어서 못 오고 목천(木川)으로 나오니 길이 좀 가까와 한동안이나 와 있었다. 얼마 아니하여 우리가 또 서울로 오니 엄마 점점 늙었으나 내 아들딸을 보면 업어주고 안아 주고 고달픈 줄을 몰랐다. 돈화문(敦化門)앞 서쪽 골목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나를 보러 다녔다. 내가 새문 밖 「초리우물」옆에 살 제 엄마는 농포 안서 세상을 떠 났다. 발인이 경기감영(京畿監營) 앞을 새벽에 지나는 것을 보고 나는 옛일을 생각하여 더 슬펐다. 이 길이 그 길이다. 그 때 이 앞을 지나오던 그 모양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정인보 /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 1` 칠십년 갖은 고생 다시 없을 외론 신세 숨질 때 날 찾다가 고만 감아 버린단말 단 하나 믿고 바라던 그 맘 느껴 하노라 2 못참아 왝왝*하기 잘하고도 유명지인 허위*는 고만이오 인정많아 병이랏다 두어라 다 밉다 해도 나는 구수하여라* * 왝왝 : 자기 성미대로 아무 말이나 막 한다는 말 * 허위 : 남 주기를 좋아한다는 말 * 구수하여라 : 소박(素樸)한 맛. 3 경툇절* 불공갈 제 나를 어이 속였든가 놀다가 엄마 생각 베정적이* 어제런듯 달래던 님 안 계시니 이제 운들 뉘 알리 * 경툇절 : 정토사(淨土寺)의 음와(音訛) * 베정적이 : 어린애가 떼부리는 것 4 집조차 못 지니고 다 늙기에 곁방 신세 박동서 저즘 보니 해진 치마 속알파라 그래도 뒬 바랐더니 빈 맘만이 님아라 * 저즘보니 : 접때보니, 저번에 보니 5 보고자 보고자던 공능(恭陵)장터 `양완실'*이 찾아다 몹시 일평생에 못이 박혀 저승을 뉘 믿으리만 모자 만나 보는가 * 공능(恭陵)장터 `양완실' : 유모의 아들 이름. 우리집에 들어온 뒤 그 아들이 보고 싶어서 국문(國 文)을 배우면서 쓴다는 것이 `공능장터 양완실이' 이 여덟 글자뿐이었다. 그 뒤에 데려다가 장가까지 들였다. 6 사내*라 술군이오 딸 아우라 범연하다 거적에 싸다시피 막 꾸리어 치어내니 내세던 젖먹인 아들 얼굴 없어 하노라 * 사내 : 남편 7 차디찬 단간방에 밤중 사경(四更) 누었을 제 목 몇 번 말랐던가 속쓰린 들 뉘 알았으리 마지막 하려든 말도 있었을 줄 아노라 8 사노라 내 얽매어 범연한 적 많았도다 한만한 늙은이냥 오면 오나 가면 가나 야속해 더 설웠을 일 가슴 뭉클 하여라 * 한만한 : 대수롭지 아니한 9 초종일 걱정하기 어이런줄 몰랐더니 저녁상 받고나니 눈물 돌자 목이 메어 가는 넋 섭섭다 마소 내 못 잊어 하노라 10 불공도 즐기드니 반 거의나 보살 할멈 승행(僧行)야 있으리만 말쎄로는 어여쁘다 죄없는 불쌍한 이 넋 존 데 가게 하소서 자모사(慈母詞) 40수 내 생양가(生養家) 어머니 두 분이 다 거룩한 어머니다. 한 분은 월성이씨(月城李氏)니 외 조(外祖)는 청백(淸白)하기로 유명하였다. 어머니 열네살에 시집와서 스물하나에 과거(寡 居)하였다. 그때 중부(仲父) 또한 궂기고 생가 선인이 겨우 열한살이오, 조부 삼년 안이라 한집에 궤연(几筵)이 셋이니, 큰집 작은집 사이에도 사위스럽다고 통하기를 꺼리었었다. 선 인이 말씀하기를, 거의 끊어진 집이 다시 붙어서 이만큼 되기는 큰아주머니 덕이라 하였다. 이만하여도 어머니 대강을 알 수가 있다. 한 분은 나를 낳은 어머니다. 대구서씨(大邱徐氏) 의 청덕(淸德)은 세상이 알거니와 완영(完營)서 들어오던 그 저녁부터 밥지을 나무가 없었 다는 그 어른이 어머니 조부다. 열여섯에 새깃씨 되고 선인 직품을 따라서 정부인(貞夫人) 까지 봉하였다. 두 분 동서 한집에 지내다가 큰동서님보다 여섯해 먼저 진천(鎭川)서 상사 났다. 예법 유난한 속에서 나고 크고 거기서 평생을 지내고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말하자 면 생어머니는 높고 어머니는 크다. 어머니는 대의를 잡아 구차하지 아니한 분이라, 작은 그릇이라도 비뚤게 놓인 것은 그냥 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어머니 일생에 참 아닌 말씀은 한마디도 없었다. 회동(會洞)살 때 대소가가 여러 집이 있었는데, 상하없이 둘쨋댁 큰마님 말씀이라면 누구나 다 따랐다. 생가 선인이 어느 공고(公故)때인가 밤들게야 나와 안방 웃 목에서 저녁상을 받을 때 우리 두 어머니, 숙모, 다 모여 앉았었다. 장지가 다 닫히지 아니 하여 아랫목에 자리 셋을 깐 것이 보였다. 『큰아주머니, 맨 아랫목 작은 요는 누구요?』 『그건 덕경(내 종형의 아명)이 자리요.』『그 다음은?』『그건 둘쨋댁 자리요. 방이 겨우 미지근하니 새로 데려온 조카를 뉘고, 둘쨋댁도 추위를 타니 내가 끝으로 누울밖에 있소.』 선인이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큰형수 앞에 절하고, 『아주머니, 참 갸륵하시다』고 하였 다. 생어머니는 큰동서 섬기기를 시어머니같이 하여, 선인 성천임소(成川任所)에 가서 면주 한 필을 사도 큰동서께 기별하고, 항아리 하나를 보아도 큰동서께 기별하고 따로 당신 것이 없었다. 만년(晩年)에 아들을 데리고 말씀하다가, 너의 아버지같이 재미없는 이가 없다고 하는 것을 선인이 지나다가 듣고 나를 불러 웃으며, 『애야, 내야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마 는, 젊었을 때 안에서 어려운 것이야 몰랐겠느냐. 언제인가 피륙필하고 돈 얼마를 내가 손 수 전하여 보았더니라. 너의 어머니가 받느냐? 사대부의 집은 이런 법이 없다. 위로 큰동서 가 계시니 드리어 나눠 주신 뒤에 쓰는 것이 옳지 아니하냐 하더라. 자기도 이러면서 나더 라만 재미 없다면 어찌하니.』하던 말씀이 지금도 엊그젯일 같다. 어머니 한 분을 먼저 여 읜 뒤는, 한 분마저 여의면 나는 부지하지 못할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목천서 어머니 상사 를 당했다. 그 전해 겨울, 내가 서울 있을 때 병환 기별을 듣고 황급하게 내려가니 어머니 방장(方將) 극중(極重)하여 집안이 둘러앉아 우는 중이다. 『어머니, 나왔어요.』『나 아시 겠소?』다 돌아간 어머니가 별안간 정신이돌아, 『암, 알고말고. 내 귀동이를 내가 몰라.』 내가 또 앞에 가 엎드리어 『어머니, 내가 어머니 잡술것 사가지고 왔소. 좀 잡수시려우?』 『어서, 해라. 우리 아들이 가져온 것 먹겠다.』『나를 좀 일으켜라.』내게 붙들리어 일어 앉아 다시 넉 달 동안을 끌었으나 어머니 자애가 이러하였다. 졸곡 지난 뒤, 그 가을에 서 울로 이사하여 오니 갈수록 서러워, 길 가다가도 가끔 혼자 울었다. 이 시조(時調)는 병인 년(丙寅年) 가을에 지었다. 옛날 어떤 효자는 서러우면 퉁소(洞簫)를 불어 퉁소 속에 피가 하나더라는데, 내 이 시조는 설움도 얼마 보이지 못하였거니 피 한 방울인들 묻었으리요마 는, 효도야 못하였을망정 설움은 설움이다. 어머니 일을 적고, 내 시조를 그 아래 쓰니 시 조는 오히려 의지가 있는 것 같다. - 정인보 / <新生> 2권 5호, 1925 5월호 /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품* 준 줄 아소서 * 잎드는데 : 떨어진다는 말(落) * 살뜰히 : 精誠이나 은애(恩愛)가 기육(飢肉) 속에 사무치도록 * 옷 품 : 胸背의 圍度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 쭉으렁 : 우리 속담에 쭈그렁 밤송이 3년 달링다는 말이 있다. 다병한 사람이 그대로 부지하는 것 을 이에 견주어 말하며 못생기고 오래 사는 것을 이에 t=견주어 말한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 저즘미리 : 접때미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밤 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 우굿이 무성(茂盛)한 모양 5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 글월 : 편지 * 줄줄이 : 매행마다 * 상기 : 여태껏 * 낯 : 얼굴 * 배이는 : 첨읍(沾浥), 젖어서 뱀 6 뮌*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서워라*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이 아니 못보심가 내 없어 네 미워진 줄 어이 네가 알것가 * 뮌 : 미운 * 고히 : 어여쁘게 * 되 : 도리어 * 서워라 : 한스러워라 * 배이는 : 첨읍(沾浥), 젖어서 뱀 * 양자(樣子) : 모양 7 눈 한번 감으시니 내 일생이 다 덮여라 절* 보아 가련하니 님의 속이 어떠시리 자던 닭* 나래쳐 울면 이때리니 하여라 * 절 : 저를 * 자던 닭 : 어머니 상사가 새벽이었다. 8 체수*는 적으셔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이* 없어 옴으신* 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굽으신 마른 허리에 부지런히 뵈더니 * 체수 : 신체의 장단대소(長短大小) * 이 : 치아 * 옴으신 : 오므리신 9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없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10 미닫이 닫히었나 열고 내다보시는가 중문 턱 바삐 넘어 앞 안 보고 걸었더니 다친 팔 도진다마는* 님은 어대 가신고 * 도진다마는 : 나았다가 다시 앓는 일 11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 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즉 밟히실가 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내다* * 젖 잃은 어린 손녀 : 전 아내 성씨(成氏)가 일찍 궂기고 혈육으로 큰딸 정완은 할머니께 길러졌다. * 봉숭아가 님 따라 가버렸는지 손톱에 물이 잘 들지 않아 울어버리다.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 바릿밥 : 부인네의 밥그릇 * 솜치마 : 겹치마에 솜을 넣은 것 * 보공(補空) : 송종(送終) 때 의복으로 관중공처(棺中空處)를 채우는 것 13 썩이신 님의 속을 깊이 알 이 뉘 있스리 다만지 하루라도 웃음 한번 도읍과저 이저리* 쓰옵던 애가 한 꿈되고 말아라 * 이저리 : 이리저리 14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 닮을 이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남으니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녀 15 불현듯 나는 생각 내가 어이 이러한고 말 갈 데 소 갈 데로 잊은 듯이 열흘 달포 설움도 팔자 없으니 더욱 느껴 합내다 16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 하마 : 혹시나 17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 밤중만 : 밤중이면 * 어매 : 어머니 18 태양이 더웁다 해도 님께 대면 미지근타 구십춘광(九十春光)*이 한 웃음에 퍼지서라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 날이 언제뇨 * 구십춘광 : 봄 석달을 이르는 말 19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나 하시더니 황천(黃泉)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내다 20 연긴가 구름인가 옛일 벌써 희미(熹微)해라 눈감아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 낯이라 남없는 거룩한 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21 등불은 어이 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옷자락 날개 삼아 훨훨 중천 나르과저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 못 이뤄 하노라 22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움가 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 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 * 이저다 : 이것저것 모두 23 북단재 뾰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 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 님 눈에 비취던 무산* 그저 열둘이려니 * 북단재 뾰죽집 : 종현(鍾峴) 의 천주교당 * 경눗골 : 정릉동(貞陵洞) 외가 뒤에는 밤밭이어서 어머니의 추억이 있는 곳 * 무산 : 어머니 어릴적 어머니의 외가의 降仙樓에 올라가 巫山十二峰을 보았다고 한 말씀 24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우신 양 병중이라 손으로 머리 짚자 님을 따라 서울길로 나다려 말씀하실 젠 진천인 듯하여라 25 뵈온 바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이 날이 한 꿈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 하리라 * 하소 : 하소연 26 시식(時食)도 좋건마는 님께 드려 보올 것가 악마듸* 풋저림을 이 없을 때 잡숫더니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 악마듸 : 억센 것 27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온 듯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내다 28 님 분명 계실 것이 여기 내가 있도소니 내 분명 같을 것이 님 가신지 네 해로다 두 분명 다 허사외라 뵈와 분명하온가 29 친구들 나를 일러 집안 일에 범연타고 아내는 서워라고 어린아이 맛없다고 여린 맘 설움에 찢겨 어대 간지 몰라라 30 집터야 물을 것가 어느 무엇 꿈아니리 한 깊은 저 남산이 님 보시던 옛 낯이라 게섰자 눈물이리만 외오*보니 설워라 * 외오 : 혼자 31 비 잠깐 산 씻더니 서릿김에 내 맑아라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 없다 맘 선뜻 반가워지니 님 뵈온 듯하여라 32 마흔의 외둥이를 응아하자 맏동서께 남없는 자애렸만 정 갈릴가 참으셨네 이 어찌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 줄 압내다 33 찬 서리 어린 칼을 의로 죽자 내 잡으면 분명코 우리 님이 나를 아니 붙드시리 가서도 계신 듯하니 한 걸음을 긔리까* * 긔리까 : 만과(瞞過), 속여 넘김 34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지질한* 그날 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 지질한 : 오죽잖은 35 백봉황(白鳳凰)* 깃을 부쳐 도솔천궁(兜率天宮)* 향하실 제 아득한 구름 한점 옛 강산이 저기로다 빗방울 오동에 드니 눈물 아니 지신가 * 백봉황 : 상서로운 새 * 도솔천궁 : 한량없는 天人과 미륵보살이 산다는 天界의 七寶 장엄한 寶宮 36 엽둔재* 높은 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가마 뒤 잦은 걸음 얘기 어이 그쳤으리 주막집 어둔 등잔이 맛본상*을 비춰라 * 엽둔재 : 진천서 성환역으로 나오려면 이 재를 넘어야 한다. * 맛본상 : 겸상으로 보아 놓은 밥상, 壬子年 어머니를 모시고 잔천서 성환으로 나오는데 엽둔재에 이르니 눈이오고 바람이 불었다. 어머니 가마채를 붙들고 겨우 걸어 올라가면서 母子間 이야기가 많 았다. 성환에 오니 어두웠다. 저녁을 겸상하여 들여왔는데 등잔이라고 켠지만지하였다. 그 하루가 지 금껏 잊히지 아니한다.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註 : 우리 생어머니야말로 저 명말의 고정림의 모부인에게지지 아니할 고절을 가졌다. 임자년 겨울 안동현으로 모시고 갈 제 기차가 압록강을 건너니 어머니 나를 부르며 「나라가 이 지경이 되어 내가 이 강을 건너는구나」그 말씀을 이어 눈물이 흘렀다. *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 ' 새삼 고국 생각이 나서 서럽다고 하시고 ’ 의 뜻으로 고국을 떠 나 유랑민이 된 설움이 새삼 복받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38 개울가 버들개지* 바람 따라 휘날린다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 마라 이 말씀 지켰다한들 누를 향해 사뢸고 * 버들개지 : 유서(柳絮) * 굴지 : 구르다(轉) 39 이만 사실 님을 뜻조차도 못받든가 한번 상해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 다시 오시랴 40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 어버이의 사랑이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 * 무덤 풀 욱은 오늘 이 '살'부터 있단 말가 : 풀이 우거진 어머니 무덤 앞에 선 오늘, 돌아가신 어 머니에 대해 진정으로 슬퍼한다면, 살이 빠져 '살점'이 붙어 있지 말아야 할 것을, (어머니는 이제 모두 살점이 떨어져 자연으로 돌아갔는데) 어찌하여 나는 살이 붙어 있다는 말인가? * 빈말로 설은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빈 말로 서러워 하는 것 이니 누구든 서럽다는 제 말을 믿지 마시오. * 자모사의 배경 : 작자에게는 생모(生母-대구 서씨)와 양모(養母-양자로 간 집, 월성 이씨)의 두 어 머니가 계셨는데 두 어머니가 다 숙덕(淑德)이 장하고 자애(慈愛)가 깊었다고 한다. 이 시조는 두 분 이 다 돌아가신 후에 쓴 작품이며, 이 시조에서 읊어지는 어머니는 그 중 어느 한 분만을 대상으로 하지않고 어느 분이나 생각나는 대로 한 수씩 지어 나간 것이다. 자모사에 붙인 그의 해제에서 『생어머니는 높고 양어머니는 크다 ··· 어머니 한 분을 먼저 여읜 뒤는, 한 분머저 여의면 나는 부지 하지 못할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목천서 어머니 상사(喪事)를 당했다. ··· 그 가을에 서울 로 이사하여 오니 갈수록 서러워 길 가다가도 가끔 혼자 울었다. 이 시조는 병인년 가을에 지었다.』 라고 자모사의 창작 배경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