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雲霧) 속의 여름 계룡(鷄龍)
1) 산행계획
암용추, 천왕봉, 머리봉, 숫용추! 계룡의 중심(中心)에 있으면서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곳! 그만큼 천연(天然)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그러므로 그들을 대면(對面)해보지 않고 계룡을 論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지난 번 부산에서 이시관 사장님을 만나 산행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인적미답(人跡未踏)의 절경(絶景)에 대하여 말씀드리니 몇몇 산우(山友)들과 한번 가 볼 수 없느냐고 말씀하셔서 요로(要路)의 경로(經路)를 통하여 산행허가(山行許可)를 득(得)할 수 있었다. 최초의 계획은 상봉에 오른 후 숫용추를 경유하여 계룡산 남부능선에 달라붙어 향적산(香積山, 574m))을 거쳐 황산성(黃山城)까지 20여km를 계획했으나 폭서(暴暑)의 여름에 너무 무리라는 이사장님의 의견에 따라 [암용추-천왕봉-머리봉-숫용추-용천령-신원사]로 변경하였다. 향적산에서 황산성까지 못 가는 아쉬움에 2주전 가까운 산우(山友)와 더불어 우중(雨中) 등정을 하여 보았는데 계룡의 영역(領域)에 대하여 그 드넓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단축한 길도 상봉(上峰)에 오른 후 완전 하산 후 해발 400여m를 다시 올라 용천령이라는 고개를 넘어가야하는 장장 10여 km의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더구나 나에게는 14명이란 적지 않은 인원을 안전하게 모셔야하는 책임이 있었다.
2) 구룡관사-암용추-상봉[09:00-10:50, 110분]
유성나들목에서 서울 손님들을 만나 09:00에 계룡대 구룡관사에 도착하니 한국통신 신장호씨가 지프차로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하산지점인 신원사로 향하게 하고 초병(哨兵)이 열어주는 철책문을 통과하여 용동저수지를 돌아가니 암용추로 올라가는 초입(初入)이다. 잘잘거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완만한 오솔길을 오르니 암용추다.(09:20)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암용추에 잠입(潛入)한 후 다시 하류로 하류로 흘러 마침내 용동지에서 노닐다가 종국에는 바다로, 하늘로 가리라.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아서 그런지 장마의 계곡수(溪谷水)가 지난 가을의 낙엽마저 쓸어버려 누군가 청소해 놓은 듯 깨끗하기만 하다. 신성하다는 암용추에서 10여분 머무른 후 계곡을 치고 오르니 간신히 형체만 유지한 오솔길 양옆으로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헤집으며 나아가야만 한다. 때로는 된비알에 물이 흘러 너럭바위에서 미끄러지기도 하여 서로 잡아주며 올랐다. 그렇게 30여분 오르니 마루금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거기서 내려다보는 안개 속의 드넓은 초록의 수해(樹海)는 한없는 흡입력(吸入力)으로 일행의 눈길을 빼앗고 발길을 떼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지저귀는 새소리에 놀란 일행은 다시금 앞으로 나아간다. 상봉에 가까워 올수록 길가엔 야생화가 절정(絶頂)이다. 바위를 노랗게 수놓은 바위채송화, 여름 들국화 같은 금꿩의 다리꽃, 은꿩의 다리꽃, 황금색 현란한 미역취, 마타리꽃, 새색시의 입술 같은 연분홍 물봉선, 패랭이꽃... 그렇게 운무(雲霧)를 헤집으며 오르니 갑자기 시야(視野)가 확 터지면서 헬기장이 나타났는데 지도상에 나와 있던 형제봉(764m)으로 짐작됐다. 형제봉에서 올려다보니 구름을 두른 통신탑을 보관(寶冠)처럼 쓰고 있는 천왕봉이 한걸음에 성큼 다가왔다. 상봉에 다가가자 이미 연락을 받은 한국통신 윤인섭씨가 대문(大門)을 열어 주었다.
3) 상봉에서(10:50-11:30, +40=150분)
상봉(845.1m)을 복원(復元)했다고 하지만 철탑을 상봉 아래로 약간 끌어 내린 것에 불과한 반쪽 복원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윤인섭씨의 설명에 의하면 그것도 대단한 공사였다고 한다. 충청인의 정기(精氣)를 살리고자 인근 황산벌의 황토를 헬기로 퍼 날라 상봉을 메우고 주변의 식생(植生)을 채취하여 심구고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철책과 그리고 상봉의 혈맥(血脈)을 누르고 있는 수많은 통신탑과 구조물들을 볼 때 진정한 복원(復元)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윤인섭씨의 안내에 따라 용(龍)이 승천할 때 남긴 자국으로 보이는 비룡대(飛龍臺)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상봉을 막는 또 다른 철책이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 열쇠를 풀고 다시 비탈길을 오르니 "山祭壇"이란 표석(標石)이 보인다. 상봉에 천단(天壇)이란 표석이 세워지기 전에 상봉에 있던 것을 밑으로 내려 세웠다니 진정한 상봉의 표석은 이 산제단이 아닌가 한다. 이어 가파른 암릉을 오르니 주황색 황톳빛으로 복원한 몇 평 남짓한 상봉에 "天壇"이란 표석이 있는 정상이다. 드디어 계룡의 정상에 선 것이다. 천지사위(天地四圍)로 운무가 상서롭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윤인섭씨의 설명이 계속된다. 계룡산은 “장군능선-자연성능-쌀개능선-머리봉능선”을 축(軸)으로 하여 음(陰)과 양(陽)의 영역(領域)으로 구분되는데 음의 영역인 동측에 암용추와 동학사가 있고, 양의 영역인 서측에 숫용추와 신원사와 갑사가 있단다. 그래서 동학사는 비구니(比丘尼)의 도량(道場)이고 신원사와 갑사는 비구(比丘)의 도량이란다. 그 증거로 음의 영역인 동학사 부속암자인 심우정사에 한 비구가 살았는데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고 한다. 워낙 음기가 강해서 양의 기운을 빼앗긴 탓이란다. 그러한 설명을 들으며 일행은 천단에 제사를 올리고 내려와 상봉을 한 바퀴 돌았다. 상봉에서 내려다보는 서측의 연천봉과 문필봉 방향, 자연성능이 있는 북측의 쌀개봉 방향, 그리고 올 봄에 종주(縱走)한 동측의 황적봉 능선, 앞으로 가야 할 남측의 머리봉 방향의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운무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가 나타나곤 하여 한 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그러한 운무 속에 역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오솔길을 돌아 머리봉으로 향(向)하였다.
4) 상봉-정도령 바위-머리봉[11:30-12:20, +50=200분]
상봉에서 머리봉으로 가자면 닭벼슬 같다는 주능선을 타야하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만만치 않다. 통신탑 주위의 철책(鐵柵)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날카로운 바위를 딛고서 한발 한발 나아가니 윤인섭씨가 말한 음과 양의 경계선을 이루는 주능선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주능선은 발하나 겨우 디딜 정도의 날카로운 능선이다. 한 쪽은 상월면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한 쪽은 계룡대 쪽으로 급사면을 이루고 있어 자칫 헛디뎠다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야 말리라. 그렇게 고실고실한 오솔길을 산님들은 잘도 내려간다. 베테랑들인 것 같다. 드디어 정도령 바위에 도착했다. 정도령의 머리가 희어지는 날, 밝은 개벽의 세상이 온다고 설명 드리니 인형의 바위 사람에 산님들은 경탄을 보낸다. 이어 문다래미, 그리고 기이한 암릉 지대를 지나니 병풍 같은 직벽(直壁)이 앞을 막는다. 두 손과 두 발로 거미처럼 암벽에 붙어서 머리봉(733m)에 오르니 사방이 산안개로 막혀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은 대둔산이며 덕유산까지 가물가물 보일 테지만 안개에 막혀 천상(天上)에 올라 떠 있는 느낌이다. 커튼을 젖히듯 간간히 이동하는 안개 틈새로 보이는 황산벌이 인간(人間)들이 개간한 바둑판같은 조각들을 예쁘게 드러내곤 한다. 안개가 일어나고 스러지는 산록(山麓)을 보니 불경의 한 구절(句節)이 절로 읊어진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지는 것과 같을진저.
그러할 진데 저 아래 인간세계에서 어찌하여 조그마한 이권(利權) 하나에 목숨을 걸고 핏대를 세우며 살아가야 하는가? 구름처럼 절로 일어나고 절로 스러지고 어울렁 더울렁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러나 저 아래로 내려가면 만날 수 밖에 없는 조직(組織)의 틀과 삷과 애증이 그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금세 생존경쟁의 틈에서 날카롭게 살아가야겠지만 신령스런 이곳에 올라온 이 순간만큼은 저 발아래 인간세계를 가소롭게 굽어보며 가슴을 열고 넓은 마음을 가져보자. 이 순간만큼은...
5) 머리봉-숫용추[12:20-13:10, +50=250분]
머리봉에서 내려가는 길에도 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아쉬운 점은 자욱한 운무 때문에 날개 펼친 매의 형상을 한 머리봉(매봉)을 산님들에게 보여드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원추리, 바위채송화, 패랭이, 꿩의 비름등 야생화가 즐비하여 멀리서 오신 그들이 흡족해하는 걸보니 다행이다. 문득 안개가 걷히며 발아래 계룡대가 드러난다. 예전엔 신도내라 불렸지만 지금은 종로터, 대궐평, 신털이봉, 동문다리, 서문다리등 지도상의 지명(地名)으로만 간신히 남아 있어 일국(一國)의 수도로써 간택되었었다는 흔적(痕迹)만 겨우 남기고 있다. 그 산자락 아래 거대한 골프장이 드러누워 있다. 천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계룡의 이 능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굳이 저렇게 능선을 뭉개어 놓고 공놀이를 해야지만 체력단련이 되고 이 나라가 유지되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푸른 잔디로 패어지고 할퀴어진 속살을 감추고 있긴 하지만 깊게 멀리서 내려다보니 깊게 패인 자국이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 사람들은 쓰레기장이나 해변을 매립하여 골프장을 만들고 자연을 절대 훼손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석재(石材)를 채취하기 위해 포천의 야산(野山)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땅 속까지 파고 들어가 화강석을 채굴한다. 또한 천연 골재(骨材)의 고갈로 골재를 조달하기 위해 백두대간과 13정맥의 허리가 잘려지고 파헤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시관 사장님을 따라 8/11-8/14까지 일본 북알프스를 가 볼 예정인데 일본 사람들은 자연을 어떻게 보존(保存)하는지 잘 살펴보아야겠다. 그런데 머리봉에서 내려오는데 일행 중 최용화씨가 “혹시 주공에 근무하지 않았느냐?, 의정부 현장에 있지 않았느냐?”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낯이 익다했더니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의정부현장 감독시절 시공사 소장님이셨던 분이셨다. 모래사장같이 드넓은 세상이라지만 그러나 손바닥 안처럼 좁기도 하다.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 속에 의정부 현장에서 있었던 기뻤던 일, 슬펐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니 어느덧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며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점점 요란해지더니 가느다란 오솔길이 마침내 급격히 아래로 추락하여 갔다. 그리고 박씨묘가 있는 너럭바위가 나타나며 너덜겅길이 이어지더니 숫용추로 떨어지는 하얀 폭포 줄기가 나타났다.
6) 숫용추[13:10-14:10, +60=310분]
너덜겅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니 폭포 상류이다. 폭포 위에서 내려다보는 숫용추가 장관이다. 잘생긴 용추는 남성의 심벌을 닮아있으니 과연 여기는 양(陽)의 영역(領域)이란 말인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용추는 검푸르기만 한데 굵은 폭포 줄기에 하이얀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포말(泡沫)이 흩어지면서 잠자는 용을 깨우려 한다. 그러한 용추의 벼랑을 살금살금 기어서 내려오니 맑은 소류지(小流地)가 펼쳐지며 정자가 나타난다.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아담한 정자였다. 그 정자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놀랄 일이 벌어졌다. 일행 중 정해길 부사장님은 바로 전 직징이었던 주공의 선배요, 더구나 고향이 서천이라니 겹선배이었던 것이다. 좁은 세상, 송사리처럼 서로 위로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그러다 저 용추의 포말처럼 부서져 흩어질 한세상,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며, 사랑하며, 위로하며 살아갈게라. 증오와 갈등을 저 부서지는 포말처럼 삭혀버리고 살자스라. 일행(一行)들과 오늘의 산행이야기, 세상이야기하면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여기서 오늘 산행을 종료(終了)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용추 계곡을 가로질러 신원사 까지 가기로 했다.
7) 숫용추-용천령-신원사[14:10-16:00, +110=420분]
숫용추에서 계곡을 거슬러 가니 그 곳 또한 인적미답이어서 수풀은 자랄 대로 자라고 폭우에 가끔씩 길이 끊기기도 하여 길을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완만하여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계곡에서 쳐다보는 머리봉 능선이 병풍처럼 굽어보는 속에 치마바위를 지나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며 숲 그늘을 천천히 오르니 용천령(龍天嶺)에 다다랐다. 금남정맥의 주요지점이어서 흡사 어릴 적 보았던 성황당의 나뭇가지에 달려있던 색동천조각처럼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달려있다. 리본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가 용천령임이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길은 바로 2001년에 친구와 종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네 갈래길 중 어느 길로 가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한길을 택하여 소봉(小蜂)을 오르는데 고단한 일행은 잘못 접어든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한다. 길라잡이가 그대로 소봉을 넘어 능선길을 조금 내려가니 연천봉과 쌀개능선 아래로 멀리 신원사(新元寺) 부속암자가 보인다. 이 길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지 솔잎이 수북이 쌓여있어 발바닥의 충격을 완화해 준다. 계곡의 끝에 다다르니 신원사의 산신각인 중악단(中岳壇)이다. 국가에서 신령스런 계룡산 산신께 제사를 지낸 산제단이다. 지난겨울에 왔을 때는 산신각이 닫혀있었는데 오늘은 열려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인자한 산신(山神)의 영전 앞에 여승 한 분이 독송(讀訟)을 하고 있다. 대웅전, 산신각은 우리나라 절에만 있는 전각(殿閣)들이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인도에도 없는 이러한 명칭들은 토착신앙과 외래종교의 융합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한국인의 종교관중 하나가 부부가 종교가 달라도 부부로써 일생을 같이하고, 할아버지는 유교, 아들은 기독교, 아내는 불교를 믿어도 가정(家庭)이 유지되는 현상이라 한다. 그들은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상 외세(外勢)의 수많은 침탈로 일정종교에 귀의하지 못하는 불안 심리의 반영이라고 해석한다고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종교도 한국인만의 독특한 사상인 고유의 선도사상이란 용광로에 용해되고 마는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왜 배달민족의 국시(國是)가 홍익인간(弘益人間)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8) 후기(後記)
필자는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무리지어 산행하기보다는 혼자하거나, 아내와 같이 하거나, 벗과 같이하는 단출한 산행을 좋아한다. 이렇게 14명이라는 대부대와 함께하며, 더구나 길라잡이를 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워낙 느림보인지라 이시관 사장님이 안내를 부탁했을 때 망설여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계룡의 비경(秘境)을 탐닉한 산우(山友)들의 기쁨에 젖은 얼굴들을 서로 바라보며 호젓한 길을 7시간여 돌고난 후 맥주 한잔하며 덕담(德談)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보람 있는 산행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나 옛 지인(知人)을 만나고, 고매하신 겹선배님을 알게 되었으니 이는 계룡산 산신령님의 선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에 산행에 참가한 분들의 이름을 남기고자 한다. 길라잡이 라강하, 고문 정해길, 회장 이시관, 등반대장 이혜연, 장한수, 최용화, 이유진, 김희철, 성동섭, 이병우, 민정희, 최숙경, 최재영, 김선아(무순, 존칭생략)
배달 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7/23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1. 암용추에서
2. 암용추에서 내려다 본 계곡의 아름다움
3. 숲 사이로 보이는 푸른 옥빛의 암용추
4. 상봉에 오르는 도중 본 수해(樹海)의 바다
5. 상봉 근처의 바위채송화 군락
8. 쌀개능선도 운무에에 쌓여있고
9. 용이 승천한 흔적(비룡대라 명명)
10. 국가 돈으로 하였을 텐데 굳이 이름 석자를 남겨야하나?
11. 상봉의 진정한 주인
12. 상봉의 새로운 주인
13. 정상에 선 산우들
- 황산벌 방향인데 안 보이고 잠자리 한마리만 춤추고
- 자연 성릉 방향
- 칼릉 방향
- 황적봉은 운무에 보이지 않고 잠자리떼의 군무만이
- 헬기장은 형제봉, 뒷편 마안봉
쌀개능선-칼릉-마안봉-소천왕봉-미륵봉-황적봉
14. 상봉의 파노라마
- 머리봉 능선의 운무
- 머리봉 가는 도중 왼쪽에 신도내가 있엇다.
- 때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는개가 엄습하였다.
17. 정도령 바위(일명 범바위)
18. 문다래미
19. 머리봉 능선
20. 숫용추
21. 용추계곡에서 올려다 본 머리봉 능선
22. 신원사로 하산 중 향적산 능선을 바라보며
23. 연천봉과 신원사 부속암자
24. 신원사로 하산중(연천봉-쌀개능선)
25. 중악단
1930년대 신도내 모습
신 도 안 地 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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