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여행과산행길

청계산(淸溪山)에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08/03/17 When You Told Me You Loved Me)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15. 15:35
 

 

 

청계산(淸溪山)에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1) 산행계획

이런 저런 일로 지난주엔 산행을 못했다.

금주 토요일에도 일이 있었다.

마침내 09/3/16(일)

아내와 인근 청계산을 종주하기로 했다.

[원터골-전망대-옥녀봉-매봉-망경대(석기봉)-이수봉-금토동능선-옛골]

 

(2) 원터골-전망대-옥녀봉(10:00-11:00, +60=60)

사실 이번 주에

청계산을 택한 것은 편안한 肉山길인

이 곳의 양지 녘에서

봄이 오는 소식을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30여분 만에 오른 전망대에 도달하기까지

계곡에는 얼음이 녹는 소리만이 요란하고

기대했던 복수초며, 제비꽃의 조짐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훈훈한 봄기운은 느껴졌지만

草木들은 아직 한겨울인 듯 움틀 준비도 안하고

더구나 黃砂도 있어 視界도 그저 그렇고

모처럼 부드러운 육산길을 걸으며 아내와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기대했던 봄이 아직 멀어 디카를 꺼내기도 싫었다.

아내와 오순도순 이야기나 하며 그저 즐기는 산행을 하고 싶었다.

 

(3) 옥녀봉-매봉(11:00-11:40, +40=100)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이내 포기하였다.

열 지어 오르내리는 사람,

강아지를 끌고 앞, 뒤의 발치에서 어른거려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들로 사색과 대화의 생각은

황사가루처럼 분해되었다. 그리고 날렸다.

안부에 다다라 이정목을 살피니

옥녀봉을 배알하자면 왕복하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아무 것도 뜻대로 되지 않을 산행이라면

“청계산 종주”라는 만족이라도 얻고자

10여분 걸리는 옥녀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육산길은

한밭의 향적산능선길을 생각나게 한다.

다만, 향적산 길은 토끼며, 멧돼지 똥이 즐비한

天然의 맛을 간직한 심심산골이요,

이곳은 시끌벅적한 亂廛인 점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그래도 대도회의 근거리에 이러한 산야가 있슴에 만족하자.

매봉에 오르기 전

끝없는 나무계단은 여전한데

돌문바위를 지키는 땡중은 오늘도 지난 가을의 모습 그대로이고

매바위 또한 그러하여 마치 시간이 정지하여 서 있는 듯하다.

매봉(鷹峯)에도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다.

 

(4) 매봉(鷹峯)-혈읍재-망경대-석기봉(11:40-12:40, +60=160)

매봉의 콩나물을 피하여 능선을 내려오니

몇 몇 산객들이 모이를 손에 들고 산새들을 유혹한다.

길들여진 직바구리 몇이 손바닥에 앉아 모이를 쪼으는 모습이 서글프다.

그러한 유희를 즐기는 人間들이 싫다.

지난겨울 오르다 말고 하산한 혈읍재이다.

혈읍재의 가파른 비알을 견디니 려말 선초 이성계가 흠모했다는

조견 선생이 올라와서 개경을 바라보았다는 망경대인데

오르지 않을 수 없어 올라 보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지만

여기서 몇 컷을 찍고 내려오니

석기봉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그럭저럭 갈만하다.

능선을 넘으니

상봉의 철책은 사라지고 기암이 봉우리를 이루는 석기봉이다.

아내와 함께 오른 석기봉은 一望無際.

역시 너무 장쾌하여 몇 컷을 찍다.

 

(5) 석기봉-절고개-이수봉(12:40-13:10, +30=190)

석기봉 아래 헬기장은 산악회에서 오신 분들로 난전.

우리도 잠시 숨을 돌리고 간단한 요기.

여기서 바라보는 草木들도 역시 새움 하나 보이지 않지만

가지 끝은 봄물을 잔뜩 머금은 모습.

그 싱싱한 숲이 싱그러웠다.

부드러운 능선을 고시랑 고시랑 오르내리니

몇 번 와 본 이수봉.

이 산에 은거하였다는 정여창 선생은 보이지 않고

닷새장이 열린 듯 시끌 난전.

이수봉을 신속히 통과하여 금토동능선으로 향하다.

 

(6) 이수봉-금토동능선-봉오재(13:10-14:00, +50=240)

금으로 된 흙이어서 金土洞인가 하여

내려오면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누러야 할 흙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금토동능선을 타면 어릴 적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반질반질한 숲 속의 부드러운 오솔길은

산 너머 국민학교를 다니던 그 길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드리우고

컴컴한 숲 속에서 꼭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러한 이미지로 인하여

이 금토동능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찾지 않을 수 없다.

봉오재에서 능선으로 하산하니 바로 경부고속국도 인접 날머리인 옛골.

다시 원터골로 이동, 당나귀를 회수하여 歸家.

08/3/17(월) 오후의 한가한 틈에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냉이꽃, 토끼풀, 개불알꽃의 잔치를 보다.


 

배달9205/개천5906/단기4341/서기2008/3/17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이제껏 어떤 것도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내게로 와서 완전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세요 어디에서 우리의 사랑이 잘못됐던 건가요 한 때 우리의 사랑은 너무도 열렿했는데 그런데 난 이제 어떻게 지내야 하나요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을때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꿈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실망감을 이겨내는 데는 남은 평생이 걸릴거라는 것을 당신 곁에 내가 없이는 당신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았다는것을 내게 믿게 했는데 설마 당신이 떠날거라는걸 내가 어떻게 알수 있었겠습니까 그대여, 당신은 내 사랑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난 왜 이리 그저 모든 미련을 저버리고 떠나지 못하나요 당신을 향한 나의 애정이 너무 강렬하여 난 눈이 멀었었던거예요 그후로 뭔가가 꿈속에서 한 말이 날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대여, 난 너무도 사랑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나 당신을 믿고 있다는걸 알고 있지요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을때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꿈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실망감을 이겨내는 데는 남은 평생이 걸릴거라는 것을 당신 곁에 내가 없이는 당신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았다는것을 내게 믿게 했는데 설마 당신이 떠날거라는걸 내가 어떻게 알수 있었겠습니까 그대여, 당신은 내 사랑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당신의 입술 당신의 얼굴 그 어떤 것도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지울 수 없는 것들이예요 나의 마음은 다시한번 상처를 입겠지요 ...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을때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꿈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실망감을 이겨내는 데는 남은 평생이 걸릴거라는 것을 당신 곁에 내가 없이는 당신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았다는것을 내게 믿게 했는데 설마 당신이 떠날거라는걸 내가 어떻게 알수 있었겠습니까 그대여, 당신은 내 사랑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이름없는풀뿌리 [청계동의 유래]
이 마을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친분이 두터웠던 박순의 큰 아들 박소의 묘를 이곳에 쓴후 그의 후손들이 묘하에 거주하면서부터 취락이 형성된 곳이다. 그 후 전주 이씨 익양군의 넷째 아들인 단천군의 묘를 상청계능마루에 쓴후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마을이 더욱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의곡면 상청계동과 하청계동이었다가 1914년 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원군 의왕면 청계리로 되었다. 그후 1949년 8월 15일 화성군 일왕면 청계리로, 다시 1963년 1월 1일 시흥군 의왕면 청계리로, 이어 1980년 12월 1일 의왕읍 청계리로 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의왕시 청계동으로 불렀다. 청계동은 독정·상적막·옥박골·원터·장자터·점말·청계골·토골·한직골 등의 자연취락이 있다. 원터(院址) 하우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성남시 운중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광주·인덕원·과천을 잇는 동양원(東陽院)이란 역이 청계동 188번지에 있었다 하여 처음에는 '역원터(驛院址)'라 했다가 일제 초부터 '원터(院址)'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은 1880년대에 하우현 성당이 생기면서 민가가 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의 주민 대다수가 천주교인이다. 경주김씨와 밀양박씨등이 오래전부터 세거해 왔다.  2008/03/17 19:04:00  
이름없는풀뿌리 망경대(望景臺)
청계산의 주봉으로 해발 618m에 이른다. 이곳에 석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망경대'라 부른다고 한다. 본래의 이름은 '만경(萬景)'이라 하여 이곳에 이르면 눈아래 만가지 경치가 전개된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었으나 고려말엽을 지나 이씨 왕조가 들어서자 거지같은 차림에 초라한 선비가 만경대에 오른 후로는 만경(萬景)이 '망경(望景)'으로 바뀌었으니 그가 바로 고려말엽의 충신 조견(본명은 趙胤)이었다. 조견은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趙浚)의 아우로 이색·길재·원천석등과 함께 고려를 빛낸 명유(名儒)이자, 충신이었다. 그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황급히 두류산(頭流山)으로 은거하였다. 태조가 호조전서의 교지와 개국공신 2등으로 평양군에 봉한다는 교서를 내렸으나 이를 거절하고 "송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는 것이 소원이요, 성인(임금)의 신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 하여 이름을 조윤에서 조견으로, 자를 종견(從犬)으로 고쳤다. 나라가 망하였는데 구차하게 목숨만 살아 있으니 개와 같다 하여 이름을 견으로 고치고 또한 개도 주인을 연모하고 의리를 쫓는다는 뜻에서 자를 종견(從犬)으로 고친 것이다. 그 후 그는 두류산에서 청계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은 증조부 조인규가 중창한 청계사가 있고 영정을 모신 영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청계산 산정에 올라 송경(松京)을 보고 통곡하므로 그 후부터 사람들이 만경대를 '망경대(望景臺)'라 불렀던 것이다. 조견이 청계산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성계는 친히 청계산을 찾아 그에게 조선왕조에 들어와 함께 일하도록 권유했으나 멀리 종경만 바라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자 조견의 마음이 금석(金石)같음을 간파한 이성계는 그가 울던 자리에 초막을 지어 주었으나 이를 마다한 조견은 곧 청계산을 떠났다고 하며, 바로 이 초막이 있었던 자리가 오늘의 '망경대'이다.  2008/03/17 19:04:15  
이름없는풀뿌리

청계산(618m)

맑고 깨끗해 옛 선비들이 찾아든 산. 수도권에 있는 청계산은 서울시 서초구와 경기도 성남시 과천시 의왕시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에는 개울이 맑고 좋아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는 산', 또는 '맑은 물이 흐르는 내' 라는 뜻의 청계산이나 청계천이란 이름이 40~50개 있다 한다. 수도권의 이 청계산은 한남정맥의 한 줄기로 높이가 618m이며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무성하며 그윽하다.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 서울 남쪽의 명산으로 손꼽혀 왔다. 청계산 남쪽 골짜기에 있는 청계사 안내판의 설명에 의하면 청계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산 곳곳에 상서로움과 정기가 배어 있는 하늘이 숨겨 놓은 영부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청계산이라 하지만, 이 산에는 상봉인 망경대(618m)를 가운데 두고 북쪽 줄기에는 옥녀봉(375m)과 매봉(583m)이, 남쪽 줄기에는 이수봉(545m)과 국사봉(540m)이, 서쪽 줄기에 또 다른 매봉(368m)이, 동쪽으로는 천림산(봉수대, 323m)이 있는 등 많은 봉우리를 거느린 큰 산이라 할 수 있다. 또 청계산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동쪽에서 보면 순한 모습의 토산으로 매우 부드러워 보인다. 그러나 서쪽 과천쪽에서 보면 우뚝 솟은 망경봉과 석기봉 일대 바위봉우리가 자못 헌걸차다. 특히 청계산의 남쪽 줄기 일대는 산세가 부드럽고 숲이 울창한 데다 찾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아 조용하고 호젓하다. 또 산길이 부드러우며 봉우리의 머리마다 운치있는 소나무와 괴이하게 생긴 소나무가 많다. 봄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청계산 산행은 더욱 좋아진다. 청계산 상봉인 망경대의 이름도 처음엔 하늘 아래 모든 경승을 감상할 만한 터라고 해서 만경대(萬景臺)라고 했다 한다. 청계산에서 서울시가를 조망하고 북한산 등 많은 산을 조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계사와 천주교 성지(성 루드비꼬 바위굴)가 있으며, 충절에 얽힌 이야기도 있고, 국사봉, 이수봉 등 그 이름에도 유래가 있어 산행하며 옛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뜻도 있다. 이래저래 청계산은 은발들에게 알맞은 산으로, 자칫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으로만 몰리기 쉬운 서울의 등산인구를 분산시키는 데도 한 몫하는 산이다. 2008/03/17 19:06:15  

이름없는풀뿌리

[청계산에 얽힌 충절과 은사들의 이야기]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 산천조에 청계산(淸溪山)이라 되어 있고, 관천현 산천조에는 청계산이라 쓰고 일명 청룡산(靑龍山)이라 한다고 써있다. 과천읍지에도 같은 냐용으로 써있다 한다. 풍수지리에서 일컫는 좌청룡 우백호의 예에 따라 과천에서는 오른편에 있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 부르고, 왼편에 있는 청계산을 청룡산이라 불렀던 것이다. 17세기에 세워진 청계사 사적비 등 여러 곳에 청룡산이라 되어 있고, 택리지 산경표 대동여지도 등에는 청계산(靑谿山)이라 되어 있다 한다. 맑을 청(淸)자가 아니라 푸를 청(靑)자를 썼고, 시내라는 뜻이 같기는 하지만 골 곡(谷)자가 붙은 계(谿)자를 쓴 것이다. 옛날 청룡이 이 산의 허리를 뚫고 나와 하늘로 올라가서 청룡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래 과천에 있는 막계동은 맑은 개울이 있다 해서 '맑은 개울', '맑은 계곡'이 '막개'가 되고 한자로 '청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또는 시내가 있는 산' 이라는 뜻의 청계산의 이름이 예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계산은 또 청제산(靑帝山), 청청산(靑靑山), 청한산(靑漢山)으로 쓰인 기록도 있다 한다. 맑고 깨끗한 곳을 선비들은 즐겨 찾는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 이색이 이 산에서 숨어 살았고, 조선조 연산군 때 일두 정여창도 이 산자락에 숨어 살며 무오사화의 고비 때만은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풀린 뒤 옥녀봉 아래에서 만년을 지냈다. 이수봉 남쪽에 있는 국사봉은 고려 말 이색(어떤 곳에서는 조윤)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던 봉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여기 국사봉의 이름이 별다른 점은 전국에 많은 국사봉이 선비 사(士) 자를 쓰는데, 여기의 국사봉은 생각 사(思) 자를 쓴 것이다. 국사봉에는 봉화대가 있었다거나, 어느 선비가 나라님을 그리워한 유래를 가졌다거나, 또는 나라를 위한 기도터나 도당굿터가 있었다는 등 대부분 나라와 관계와 있는 사연들이 많다. 만경대가 망경대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색 등 고려 유신들이 이 바위봉우리에서 망한 고려의 서울(개성)을 바라보며 그리워한 터라 해서 정여창이 고쳐 불렀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는 청계사를 제목으로 지은 이색의 시가 있다. 2008/03/17 19:07:51  

이름없는풀뿌리 청계산이 일두 정여창과 얽힌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더 있다. 이수봉에 그 이름의 유래에 관한 큼직한 비가 서 있다. 내용은 일두 정여창이 그의 스승 점필재 김종직과 벗 한훤당 김굉필 등이 연루된 무오사화를 예견하고 이 산에 은거하여 두 번에 걸쳐 목숨을 건졌다 해서 목숨 수(壽) 자를 쓴 '이수봉(貳壽峰)' 이라 한다는 것이다. 망경봉 서남쪽에 있는 천연동굴 마왕굴은 한때 고려 말의 조윤과 정여창이 은거했던 굴로 알려져 있고, 매봉과 망경봉 사이에 있는 혈읍(血泣)재는 피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뜻으로 정여창이 청계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무오사화를 겪고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한 데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석기봉 북서편에 있는 금정수는 언제나 금빛 색깔을 띠고 있다는 샘으로, 정여창이 종성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사약을 받아 죽고 시신까지 찢기는 극형을 받은 뒤에는 금정수의 물이 피빛으로 변했다가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복권된 때부터는 다시 황금빛으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수봉에서 등성이를 타고 오다 망경대와 절고개, 또는 청계사로 내려가는 삼거리 헬기장에 있는 안내판에 고려 말의 충신 조견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조 창건의 일등공신인 조준의 아우 조윤은 형의 변절과 망국과 동시에 죽한 못한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여 개와 같다는 뜻으로 개 견 부가 붙은 견(성급하다, 절의를 지켜 뜻을 굽히지 아니 하는 일)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를 개를 따른다는 뜻으로 종견이라 했다는 것이다. 또 여러 차례 불러도 끝내 조정으로 나오지 않는 조윤을 아껴서 태조 이성계가 청계산 일대를 봉지로 내렸으나 조견은 이 봉지마저 보기 싫다고 수락산 아래 송산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내용이 써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조윤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영화를 누렸다는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나타나 있다 해서 조윤의 고려에 대한 충절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출처]http://mapiaa.com.ne.kr/%C3%BB%B0%E8%BB%EA.htm 2008/03/17 19:08:45  
아파트 청계산은 집에서 가까와 자주 갔던 곳이었는데... 첫 사진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내시는 님의 힘을 느낍니다. 저는 전혀 ...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댓글에 그렇게 좋은 글을 남겨주시는 님의 마음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2008/03/17 21:54:25  
이름없는풀뿌리 저두 청계산은 그저 두터운 흙길이 있는 부드러운 능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망경대, 석기봉 근처를 가 보니 장난이 아니더군요. 다만 통신부대가 상봉을 점거하고 있어서 좀 흉물스럽더군요. 신록이 우거지면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달9205/개천5906/단기4341/서기2008/3/18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2008/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