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일 2003/4/13(일) 파리 시내 관광
◆ 오랜 여독 지쳐 조깅 못함 ◆ 08:00-09:15 호텔조식 뷔페식, 호텔 앞에서 아내와 사진, 가로수의 수종은 플라타너스가 대부분, 개나리도 곳곳에 보임. ◆ 09:15-09:40 에펠탑 1889만국박람회 유치기념, 1789대혁명 100주년 기념, 100년 전쟁 쟌다크 기념, 276m, 80층 높이, 1,2,3전망대, 984피트 320m, 12,000개 강재조립, 250만개 리벳, 7년마다 페인팅(52톤/회, 2,200도장공), 관람2억 돌파, 무선통신 안테나, 파리시 소유콩코드광장 (화합, 루이16세 마리앙뜨와네뜨 단두대 처형), 마로니에(너도밤나무, 왕벚나무), 엘리제궁 오벨리스크(나폴레옹약탈) ◆ 09:40-10:30 몽마르뜨 언덕(마르뜨산), 앞에는 사창가, 화가들 집합처, 언덕위 튜립, 수선화 만개 성심성당(흰 대리석), 연인들 계단에 많이 앉아 있음. ◆ 10:30-11:00 샹젤리제거리(동쪽은 콩코드광장, 서쪽은 개선문) 개선문(샹그랭(1806-1836)작 나폴레옹승리 기념, 30년공사, 나폴레옹은 장례식 때 완공 못보고 지나감, 높이 50m ◆ 11:30-12:10 현지식당(달팽이요리) ◆ 12:10-13:00 면세점, 공항30분 ◆ 13:30-14:30 수속 ◆ 15:30-16:30 LH417B 파리공항-프랑크푸르트 ◆ 16:30-18:00 면세점 쇼핑 ◆ 19:20-12:32 프랑크푸르트-인천(03/4/14) ◆ 12:32-인천공항 ◆ 13:40-16:40 대전으로 귀환 ■ 리용 유적지 ( Historic site of Lyon ) 프랑스 남동부 론알프주(州) 론현(縣)의 주도(主都). 인구 약 153만(1992). 론강(江)과 손강(江)의 합류점에 있다. BC 43년 손강 우안의 푸르비에르 구릉에 건설된 로마의 식민도시 루그두눔에서 기원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갈리아 지방의 수도로서 번영하였으며, 민족 대이동기에 부르군트족의 침략을 받았다. 이미 2세기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었고 주교좌의 소재지로서 발전한 것은 클로비스왕이 로마가톨릭교로 개종한 후인 프랑크 왕국 이후이다. 15세기 이후 국제적인 대시장의 개최지로서 번영하였으며, 왕의 보호를 받으며 발달한 견직업을 중심으로 유명해졌다. 또 파리와 함께 출판․인쇄업의 중심지로 학예도 발달하여, F.라블레를 비롯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이 이곳에서 문학 활동을 폈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금융자본의 중심지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크레디리요네도 이곳에서 발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군에 대한 이 지방의 저항운동은 격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론강의 남북연안과 동안으로 뻗은 리옹은 교외에 여러 개의 위성도시를 거느린다. 전통적으로 상업도시이며, 현재도 상업도시로서 기능을 한다. 견직물의 대시장이고, 동․서아시아에서 수입되는 생사는 거의 이곳에서 거래된다. 1916년 이래 매년 4월에는 국제무역박람회가 열린다. 리옹은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파리와 마르세유를 연결하는 철도의 거의 중앙에 있어, 보르도․제네바를 잇는 간선과의 십자로에 해당한다. 남쪽의 샤스에는 큰 조차장이 있고 공항과 하항(河港)이 있다. 공업은 견직업이 중심인데 15세기 이래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17~18세기에 번영하였다. 현재는 견직물 외에 인조견․염색 등의 화학공업과 자동차․철도차량․기계․전기기계 등의 공업이 성하다. 리옹에는 또 대주교좌․고등법원․대학 등도 있어 문화면에서도 중심을 이룬다. 구시가는 푸르비에르 구릉과 손강 사이에 끼어 있는 생장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지구이며,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면 구릉 위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대소 2개의 로마 극장, 로마 수도의 유적이 보인다. 서쪽의 론강과 동쪽의 손강 사이에 끼어 있는 길다란 지구는, 북쪽은 견직업의 전통적 중심지인 크루아루스 구릉에 연속되고 남쪽의 합류점 부근은 화물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지대이며, 중간쯤이 되는 벨쿠르 광장 부근이 시의 중심지이다. 론강 동안에는 대학이 있다. 1730년 상업회의소에 의해 창립된 직물역사박물관, 69년 이곳에서 발명된 마리오네트(꼭두각시) 인형의 국제박물관, 원래 궁전인 미술관 등이 유명하다. 특히 푸르비에르 구릉의 동쪽 기슭 손강 연안 근처에 있는 생장 성당은 11세기에 건립된 고딕 양식(일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대주교구청이 있고, 1245년과 74년에는 리옹 공의회가, 1600년에는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다. 또한 푸르비에르 구릉의 정상 부근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전을 계기로 건축되었으며, 신비잔틴 양식의 건물이다. ■ 파리 관광 파리를 하루에 보기 위해서는 바쁘게 다녀야 한다. 하루 동안 파리를 다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보아야 할 곳만 정하고 지도와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루트를 정한다. 노트르담 대성당, 샹제리제 거리와 개선문, 몽마르뜨 언덕, 베르사이유 궁 정도는 보아야 한다. 밤에 에펠 탑을 올라 파리를 내려다보고 세느강의 유람선을 탄다면 좋을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도 보아야 할 것이다. 파리의 지하철은 역이 300여 개로 그야말로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어 어느 곳으로나 이동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단 호텔이나 Information Center에서 지도와 지하철 노선도를 반드시 챙겨두어야 한다. ♣ 노트르담 대성당 약 170년 동안에 걸쳐 지은 고딕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성당은 세느강의 조그만 섬인 시테섬의 동쪽에 있다. 왕들의 대관식과 귀족의 결혼식이 행해지기도 했으며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여기에서 행해졌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노트르담"이라고 이름 붙은 성당이 많이 있는데 웬 "노트르담"이 이렇게 많은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당연하다.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말이다. ♣ 샹제리제 거리[Champs-lyses]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로 센강(江)의 북안을 따라 전개된 콩코르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향해 뻗어 있다. 샹제리제 거리의 동쪽 끝이 콩코드 광장이고 서쪽 끝이 개선문이다. 개선문으로 유명한 드골 광장에 이르는 길은 1,880m의 직선도로로서, 도로의 양쪽에는 마로니에, 플라타너스 등의 가로수가 울창하다. 동쪽은 너비 300~400m, 길이 700m의 산책용 공원이 있으며, 서쪽은 제2제정시대에 개발된 부분으로 원래는 귀족의 저택이 많았으나, 현재는 파리풍(風)의호텔, 레스토랑, 카페, 극장, 영화관,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엘리제궁(宮)을 비롯하여 항공, 해운회사, 자동차 전시장, 고급 의상실 등의 건물이 많다. 예전에는 센강의 범람원이었으나 17세기 이후 정비되었다. 처음에는 루이 15세 광장, 프랑스 대혁명 후에는 대혁명 광장, 대혁명이 끝나고 화합의 광장으로 불리어진 이 콩코드 광장에서 그 유명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뜨가 단두대(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여기서부터 개선문까지 약 2Km의 거리가 바로 샹제리제 거리다. 거리 양쪽의 가로수들은 넓은 잎사귀를 자랑하는데 우리네처럼 해마다 싹뚝싹뚝 자르지 않아 자연의 수형(樹型)을 자랑한다. 거리의 1-2층 집들은 그리하여 넓은 숲속에 잠복해 있는 것 같다. 프랑스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도 가까이 있다. 거리를 걷다가 지치면 시원한 공기와 함께 길 옆 벤치에 앉아 쉬어가도 좋을 것이다. 마치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 콩코오드광장 오벨리스크는 그리스어로 '사냥창', '작은 쇠꼬치'를 뜻한다. 신전 입구 양쪽에 세워졌던 오벨리스크는 태양을 상징하게 된다. 콩코오드 오벨리스크는 람세스 2세가 세운 오벨리스크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메헤메트 알리 파샤'가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현 터키)가 지배하고 있었다.- 오벨리스크 한 쌍을 프랑스에 기증하였고, 프랑스는 이 중 하나만을 1836년 10월 22일 토요일에 콩코드 광장에 세운다. 이 오벨리스크는 모노리트(화강암 덩어리 한 개)로 만들어진 것이다. B.C.1550에 만들어진 22미터에 225톤짜리이다. 이걸 세우면서 프랑스에서는 굉장한 행사(일종의 정치 행사 형태)를 치뤘다고 한다. 참고로,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은 1798년에 있었다. 이후, 서구 제국주의 국가는 공공연하게, 거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의 이집트에서 각종 더럽고, 야비한 형태의 약탈을 수행한다. 대사관을 통해, 또 온갖 잡배와 상인, 부르조아들, 학자들의 말 그대로 엄청난 수탈은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위에서 '기증'이라고 했는데 식민 상태에서의 '기증'이라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약탈한 물건들은 현재 그들의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또 비싼 값에 개인 소유의 소장물로도 존재하고 있다. 이후 영국에서도 템즈강 근처에 1878년 오벨리스크를 가져다가 세웠다고 한다. ♣ 개선문 전쟁터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황제 또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개선문이란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국민이 이룩한 공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대문 형식의 건조물을 말한다. 기원은 기념군상(記念群像)의 대좌(臺座)가 발전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구조물의 주체를 이룬 아치는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의 도시문(都市門)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으나, 개선식장(凱旋式場)으로 향하여 가는 길에 만들어 꾸민 장식에서 점차 항구적인 독립 건축물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이러한 기념문은 고대 로마에 많이 세워졌는데, 아치형의 통로인 공랑(拱廊)에 원주(圓柱) 등을 배치하여 조각으로 장식한 본격적인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제정 로마의 초기로 추정된다. 기본적인 형식은 큰 아치 하나로 된 단공식(單拱式)과 그 좌우에 작은 아치를 곁들인 삼공식(三拱式) 등이 있으며, 단공식은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과 같은 것이고, 삼공식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랑을 십자형으로 교차하여 4면에 아치를 설치한 형식도 있었다. 이러한 전례를 모방하여 후세에 와서, 특히 근대에 국가주의가 대두하자, 유럽 여러 곳에서 개선문을 세웠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과 카르셀 개선문, 도리스식 원주를 배열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파리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로마에서 그가 보고 온 티터스 개선문을 본떠 무려 30년이 걸려서 완성된 문으로 우리나라의 독립문은 이것을 본 따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폴레옹은 이 문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장례식 때 이 문을 지나갔고, 프랑스가 자랑하는 빅토르 위고의 유체도 이 문에서 하루를 묵어갔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의 역사의식을 읽을 수 있다. 개선문 위에 올라 가면 파리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 몽마르뜨 언덕 몽마르뜨란 "마르뜨 산"을 나타내는 듯한데 (프랑스어로 "Mont"은 산이다. 몽블랑은 "하얀 산")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다. 그 언덕 기슭에 있는 몽마르뜨 묘지에는 수 많은 화가, 문인,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다. 밀레, 드가, 하이네, 졸라, 베를리오즈 등등... 수많은 화가들이 아직도 언덕자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 예술의 색채가 느껴지는 곳, 그곳이 바로 몽마르뜨이다. 퐁네프에서 지하철을 타고 몽마르뜨 주변의 역에서 내려 잠시 걸어 올라가면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전시하고 있고,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도 있다. 이들은 유명한 화가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유명한 화가가 나올 지도 모르는 일.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부도 멋있는 언덕위의 사크레쾨르 성당의 그림 하나하나 둘러본다면 한층 재미를 느낄 것이다. 언덕위에는 성심성당(사크레쾨르성당, Basilique du Sacre-Coeur)이 하얀 몸통을 자랑하며 우아하게 서 있다. 그 하얀 성당을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주위는 온통 화사한 꽃들로 단장되어 있는데 이 언덕에 올라오는 길목은 빠리의 유명한 사창가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어 마치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이 언덕에 올라서면 빠리 시가지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성당 앞에는 관광객이 들끓고 그 관광객을 노리는 집시들의 소매치기가 극성을 떤다. 이 성당은 흰 대리석으로 지었는데 유럽의 모든 건물들이 오래되면 까만색으로 변하여 이를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돈을 들이고 있다. 청소를 위해 화학약품을 쓰고 있는데 이 약품으로 인해 오래되면 원형을 손상할 위험이 있어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장관으로 있을 때 약품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 후로 프랑스에서는 물로만 청소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성당만은 세월이 갈 수록 더욱 희게 빛이 나고 언제나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어 하나의 기적이라고들 하고 있다. 이 성당에서는 예수께서 운명하신 시간에 맞춰 매일 오후 3시면 미사가 봉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파리하면 예술의 도시다. 그렇다면 파리에서 예술의 느낌을 확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도시 곳곳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에서도 느낄 수 있고, 건물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몽마르뜨 언덕이다. ♣ 파리의 다리들 파리를 지나는 세느강에는 32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미라보, 퐁 네프 등등... 밤의 세느강을 구경하는 유람선 바토 무슈를 타다면 그 아름다운 다리들을 더욱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퐁 네프"라는 뜻이 "새로운 다리"라고 하는데 사실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것이다. 400년이 다 되어 가는 다리다. ♣ 베르사이유 궁 파리 서쪽 20Km 정도 거리에 있는 베르사이유 궁은 파리를 관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들르는 곳이다. 시내에서 지하철과 연결되는 기차로 30분 정도 가면 되는 가까운 곳이다. 루이 14세부터 왕이 살던 곳이므로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들어가는 입구에 우뚝 솟은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지나 어디서부터 보아야 할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을 생각할 때 프랑스 사람들이 선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궁전은 2층으로 되어 있고 주로 볼거리들은 2층에 많은데 그랑 다파르뜨망(Grand Apartment), 거울의 방, 왕비의 방 등이 있고, 별궁, 정원, 호수 등 돌아 보는데 만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다. "Grand Apartment"라고 하니 우리 나라의 "아파트"가 떠 오르는데 사실 같은 말이다. 그랑 다파르뜨망은 6개의 방으로 된 왕의 정전이며, 거울의 방은 그랑 다파르뜨망과 왕비의 방을 연결하는 복도 (사실은 복도보다 훨씬 넓다)로 정원 쪽으로 난 창문으로 반대쪽의 거울로부터 반사되는 햇볕이 들도록 만들어서 그 모습이 아름답다. 안을 돌아보는 데는 휴대용 안내기가 있어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방방마다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한국말은 아직 서비스 되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도 유럽을 많이 찾는데 어느 곳이나 일본어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어 국력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왕비의 방은 루이 14세의 왕비로부터 마리 앙투와네뜨까지 3명의 왕비가 사용한 침실로 화려한 장식이 일품이다. 궁전을 돌아보고 나서 "코끼리 열차(?)"를 타고 별궁들과 호수(호수라기보다 운하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정원을 돌아 볼 수 있다. ♣ 에펠탑[Eiffel Tower] 너무나 유명한 곳이라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에펠탑. 그러나 나는 그 이름들의 유래가 궁금하다.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인데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구스타프 에펠(Eiffel, Alexandre Gustave, 1832.12.15 ~ 1923.12.28)은 프랑스의 토목기사로 부르고뉴주 디종 사람이다. 파리의 고등공예학교에서 수업하였으며 1858년 보르도 근교의 갈론강에 철교를, 1877년에는 도루강에 철도교를 가설하였다. 1880~1884년에 걸쳐 세운 프랑스 남부의 가라비 고가교를 설계하였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한 에펠탑은 철교 건설에서 연마한 기술을 최대한 응용, 발휘한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의 내부설계와 파나마 운하의 공사에도 참여하였으며, 만년에는 항공역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철강을 주체적인 재료로 삼는 근대 건축기술의 창시기에 있어서 이론과 실제의 두 방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높이는 984피트(약 300 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재료에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平爐鋼)이 사용되었다. 탑에는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가 있다. 파리의 경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그대로 남아 무전탑(無電塔)으로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의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비스듬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 2, 3전망대까지 갈아타면서 올라갈 수 있는데 각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요금이 다르다. 2전망대는 115m 지점으로 파리의 야경을 즐기기에 좋다. 에펠 탑의 야간 조명은 가히 환상적이다. ♣ 세느강의 바토 무슈 유람선 세느강의 유람선은 두 가지가 있다. 에펠탑 가까이 있는 선착장에서 바토 무슈가 건너편에서 바토 파리지엥이 운항한다. 선착장에는 간이 레스토랑이 있으므로 뷔페식으로 저녁을 해결할 수 있다. 이어 바토 무슈에 오르면 "파리", "세느 강", "밤", "유람선", "조명", "샹송" 등이 울려 퍼져 이국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 수 있다. 유람선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안내자가 각 나라 말로 환영 인사를 하면서 승객들을 기쁘게 해 준다. 비디오와 음악을 적절히 조화시켜 여름밤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잘 만들어 흥을 돋군다. 1. 호텔 앞에서
2. 샹젤리제 거리에서 2-1. 샹젤리제 거리
2-2. 개선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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