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420년 전의 애절한 편지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31. 14:17

 

 

 

 

420년 전의 애절한 편지

 

 

(1) 편지 전문(한글로 됨)

-이응태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1586년)-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달려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당신께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어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한글편지)-

 

<안동대학 사학과 임세권 교수 현대어로 옮김>

 

 

 

 


(2)420년만의 외출
1998년 4월 안동 정상동 택지조성을 위해 이곳에 있던 분묘를 이장하던 중 조선중후기를 살았던 고성 이씨(固城李氏) 15세 이명정(李命貞1504∼1565)의 처 일선 문씨(一善文氏)가 미이라 상태로 45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후 20여 일만에 다시 손자인 이응태(李應台1556∼1586)가 염습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두 사람의 목곽 내부가 조금도 상하지 않고 당시의 염습(殮襲)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발굴된 것은 한국 복식사(服飾史) 연구에서 커다란 수확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두 분묘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목곽 뚜껑을 열면서부터 최후 시신에 착용된 염습의를 포함한 염습구(殮襲具)를 단계마다 확인하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출토된 복식 자료들은 각 복식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또는 어떻게 착장되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임란 전 조선 전기의 남녀 염습의가 정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이응태의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원이 아버지에게'와 눈물과 함께 짰을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신발), 이응태의 형님의 애절한 만시(輓詩) 등의 발굴은 우리 모두에게 450년 전의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어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응태의 부인이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눈길을 끌었는데, "원이 아버지에게로"로 시작하는 "思夫曲"은 남편을 여윈 아내의 애절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아내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한글 편지체를 보면 궁녀들이 쓰던 궁체와 백성들, 특히 여인들이 자유롭게 쓰던 민체가 있다. 물론 남녀노소가 일상의 중국식 문자 생활 안에서 어렵게 계층적인 의식으로 이어 온 것이 한글 즉 언문(諺文)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일상의 민중 의식이 규식화된 문자 생활보다 더 값지고 애틋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수많은 한글 자료 중에서 위에 소개하는 이응태(1556~1586) 부인의 편지는 몇 년 전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 된 것으로 내간체의 백미로 꼽을 수 있기에 별도로 위에 소개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전인 1586년, 한 여인이 서른 살에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로 다정 다감함과 애절한 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여 마음이 애틋하다. 특히 죽은 남편의 시신 옆에는 부인이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 삼은 짚신이 놓여있었으니 그 절절한 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안동대학교 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중)

 

 

 

 

(3)출토 개요
- 일선문씨(一善文氏)
종8품 봉사(奉事)를 지낸 이명정(李命貞 : 1504∼1577)의 처이며, 군수(郡守) 문계창(文繼昌)의 딸이다. 이명정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굉의 손자이고 부친 이효칙(李孝則)은 전의감봉사(典醫監奉事)를 지냈으며, 이명정도 전의감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출토유물은 치마·바지·속바지·적삼·수의 등 40여점의 의류와 기타 부채·장신구 등 총 53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이응태(李應台)
일선문씨의 손자이다. 아버지 요신(堯臣 : 1523∼1611)은 군자감 참봉을 지냈고 수직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받았다. 응태는 요신의 2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31세에 요절하였다. 조선후기 간행된 족보에 묘 미상(墓 未詳)으로 되어 있어 이번에 수백 년 만에 분묘가 확인된 셈이다. 출토유물은 철릭·저고리·바지·수의 등 47점의 의류와 기타 부채 3점 등 총 5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이응태 묘에서 412년 만에 나온 한 여인의 사랑편지와 형이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한시가 있다.

■ 형(이몽태)이 동생(이응태)에게 보낸 시((輓詩)
泣訣舍弟 :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
共汝奉旨甘(아우와 함께 어버이를 모신 지가)
于今三十一(이제 삽십일년이 되었네)
奄然隔重泉(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니)
迎原何太疾(어찌 이렇게 급하단 말인가)
拍地之茫茫(땅을 친들 그저 망망하기만 하고)
呼天之默默(하늘에 호소한들 대답이 없구나)
孤然我獨留(외로이 나만 내버려두고)
汝歸誰與匹(죽어서 뉘와 더불어 함께 할는지)
汝留遺後兒(자네가 남기고 간 어린 자식)
我在猶可護(내 살았으니 그래도 보살필 수 있구려)
所望好上仙(바라는 바는 어서 하늘에 오르는 것)
三生何不遠(삼생은 어찌 빠르지 않을쏜가)
亦望勸有助(또 바라는 건 부지런히 도움을 내려주어)
親庭壽萬億(부모님이 만세토록 장수하시는 거라네)
舍兄神亂哭草(형이 정신 없이 곡하며 쓴다)
<한국국학 진흥원 학예연구사 임노직 번역>

■ 형(이몽태)이 동생(이응태)에게 보낸 시(부태에 쓴 한시)
汝直如竹(그대의 곧음은 대쪽같았고)
汝潔如紙(그대의 깨끗함은 백짓장 같았네)
將余手物(내가 손수 쓰던 이 부채를)
진汝永去(영원히 떠나는 자네에게 보내네)
舍兄哭(형이 곡을 하며)

 

 

 


 

 


(4) 이응태 아내에게 바치는 헌시

 

 

 

시간(時間)의 봉인(封印)

-이응태 아내 전상서-


오래 전


한숨을 훅훅 불어넣어 부풀린


풍선 하나가


암흑(暗黑) 속을 떠돌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내 머리 위에서 터졌다.

 



그러자 거기 봉인된 글자의 파편(破片)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와아이는누구의말을듣고어떻게살라고다버리고먼저가십니까?

신은나에게마음을어떻게가져왔고또나는당신에게어떻게마음을

나요?여보다른사람들도우리처럼서로어여삐여기고사랑할까요?남들

도정말우리같을까요?빨리당신께로가고싶어요나를데려가주세요내꿈

에와서모습을자세히보여주시고또말해주세요몰래와서보여주세요』

 


별똥별처럼 우수수 비산(飛散)하는


파편(破片)들은 흡사 석류알이다.

 


그 석류알을


껌 씹듯 곱씹어


시간(時間)을 풍선껌에 훅훅 불어넣어


입술을 오므려 봉인(封印)하여


머얼리 떠나보낸다.

 


어느 하늘 아래 타임캡슐인 듯

 

배달 9109/개천5900/단기4335/서기2002/9/30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앵커멘트] 조선중기인 1586년에 숨진 남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편지로 남겨 '원이 엄마'로 알려진 여인상이 안동에서 제막됐습니다. 이 동상은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는 부부애를 기려 '안동 아가페상'으로 이름지어졌습니다. 케이블 TV 영남방송 장석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알려진 '원이엄마'의 형상입니다. 31살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편지에 적어 남편의 관속에 넣어둔 '원이엄마'의 모습이 재현됐습니다.
[인터뷰:김종수,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부간의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사랑이 귀중하고 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높이 3미터의 이 '안동 아가페상'은 한복을 단아하게 입은 원이엄마 모습과 그리움과 사랑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산 능선 모양이 애절함이 묻어 납니다.
[인터뷰:이현우, 원이엄마상 조각가] "안동 원이엄마의 글을 보구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남편을 그리는 아내로서의 사랑을 한국여인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450여 년 전 고성 이씨 이응태의 무덤에 있던 이 편지는 지난 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작업중 발견됐습니다.
[기자] 안동아가페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아가페상을 안동지역 관광코스에 넣어 남녀간의 참사랑을 되새기게 할 계획입니다. YCN 뉴스 장석원입니다.


400년만에 살아난 애끓는 망부가
[세계일보 2005-11-24 00:57]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여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내 한 무덤에서 410여년만에 발견돼 화제를 모았던 ‘원이 아버지에게’라는 편지글이 국악 가요로 다시 태어난다. 안동국악단과 영남국악관현악단은 26일 오후 안동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제4회 안동국악제에서 이 편지글에 곡을 붙인 국악 가요 ‘원이 아버지에게’를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22일 밝혔다. 이 곡은 중국 옌볜대 박위철 교수가 안동국악단의 위촉을 받아 작곡했으며, 중모리(중간 빠르기)의 구슬픈 곡조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애절한 심정이 잘 표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원이 아버지에게’라는 제목으로 한글로 쓰여진 이 편지는 98년 당시 고성 이씨 문중의 무덤을 옮기던 중 이응태(1556∼1586)의 무덤에서 나왔다.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는 남편의 병환이 날로 나빠지자 자기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미투리(신발)을 삼는 등 정성을 다해 쾌유를 기원하던 중 끝내 남편이 어린 아들(원이)과 유복자를 남겨두고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숨지자 안타까운 마음과 사모하는 정을 편지에 적어 관 속에 넣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구=전주식 기자

 

 

▶ 원문 : http://www.klali.net/han/journal/%C1%A635%C1%FD/003.hwp

 

 

 

 

 

 

 Gaylen Morgan  Floating Worlds 中  Grey Seas

 ♬ David London  Memories Of You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미투리 한 켤레…'421년 전 사부곡' 세계가 감동

중앙일보|기사입력 2007-11-21 04:31 |최종수정2007-11-21 06:50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송의호]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된 미투리 한 켤레를 주목했다. 20일 안동대에 따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의 사진과 사연이 '사랑의 미투리'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호에 실렸다. 기사는 이렇게 정리돼 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가 애절한 편지와 함께 발굴돼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1586년 6월 1일 지금의 안동시 정상동 지역에서 살던 임신한 과부가 사별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그녀는 병든 남편의 쾌유를 빌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를 한데 삼은 미투리를 편지와 함께 남편의 무덤에 묻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유물들이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작업 중에 발굴됐다. 편지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그녀의 사랑이 담겨 있다. '꿈에 몰래 와서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소이다'.

이 편지를 소재로 한국에서는 소설 두 권과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제작되고 무덤 자리엔 여인의 동상이 세워졌다.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편지의 사본을 구입했다. 이들의 사랑을 주제로 오페라를 연출 중인 박창근 교수는 "편지의 내용이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고 말했다. 이 미투리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 고성이씨 무덤에서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함께 출토된 것으로 마()와 머리카락을 섞어 짠 짚신형 신발로 길이 23㎝, 볼 너비 9㎝가량이다. 출토 당시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18년 전통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잡지로 영어와 한국어.프랑스어.독일어.히브리어.중국어 등으로 발행되고 있다. 안동=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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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파눌라 마음이 뭉클해 지는 편지 내용이네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이런 사랑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2006/06/13 11:56:53  
풀뿌리 이조의 사람들도 아주 현대적인 애정관을 갖고 "사랑과 영혼"보다도 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6/13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2006/06/13 17:17:04  
캄파눌라 진한 열정이..죽을때 까지 끝까지 갈수만 있다면...
지금 현재의 삶이 힘들더라도..위안이 될텐데요... 2006/06/13 17:52:10  
풀뿌리 사실 현대 과학과 물질문명의 메커니즘이 옛 모랄과 삶에 비하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6/14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2006/06/14 09:5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