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2 : 君子國이란?]
◆ 군자국(君子國)이란?
논어에 이르길 子欲居九夷或日陋如之何子曰君子居之何陋之有(자욕거구이혹왈루여지하자왈군자거지하루지유)라 하였다. 공자가‘구이(九夷)의 땅에 가 살고 싶다’하였다.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그곳은 더러운 땅이라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살고 있는데 어찌 더럽다고 할 것인가.’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풀이가 있으나 동방 구이의 땅에 군자가 살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보는 게 마땅한 해석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구이의 땅이란 곧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의 동쪽 일대를 일컫는 것으로 공자가 우리의 선조인 동방인을 군자로 일컬은 이래 이와 유사한 기록은 중국 고대의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한의 허신이 지은《설문해자》에는 唯東夷從大大人也夷俗仁仁者壽有君子不死之國(유동이종대대인야이속인인자수유군자불사지국) 以孔子之乘 慾去(이공자지승부욕거)라 하였다. 오직 동이는 대를 쫓으니 대인이다. 이(夷)의 풍속이 어지니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하니 공자 같은 성인(聖人)조차도 뗏목을 타고 가고자 하였다. 라고 하였고,
《산해경》에는 다음 기록이 보인다. 君子國…衣冠帶劍…其人好讓不爭 (군자국 의관대검 기인호양부쟁 군자국 사람들은…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또,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산해경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東方氣仁國有君子…雅好禮讓禮委論理(동방기인국유군자 아호예양예위논리) 동방은 천성이 어질고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예양을 좋아하되 예(禮)는 이치에 맡긴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자기네 한족을 스스로 높여 중화라 자칭하고 그 이웃하는 겨레들을 미물 짐승에 비유하여 지칭하였다. 남쪽 땅의 사람들을 벌레〔南蠻(남만)〕,북쪽은 개[北狄(북적)〕, 서쪽은 싸움패〔西戎(서융), 戎=戈甲(과갑)〕라 하였으나 동쪽의 겨레인 우리 민족을 일컬어서는‘큰 활을 쓰는 사람〔夷(이)=大弓人(대궁인)〕’이라 하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를 동이(東夷)라 한 것부터가 중화를 곁한 남·북·서쪽에 위치한 여러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 차원 높여 미화시켜 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夷)’를‘큰 활을 쓰는 사람’으로 본 풀이는《예기》,《설문해자》,《후한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후한서》<동이전)〉서문에는 “동방 사람들을 이(夷)라 일컫는데 이(夷)는 뿌리를 의미하는 바, 즉 인성(人性)이 어질고 생육하기를 좋아함이 마치 만물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생육됨과 같다는 것을 뜻한다….동이는 모두 제 고장에 어울려 살면서 음주)와 가무를 즐기고, 때로는 고깔 모자를 쓰며 비단옷을 입고 도마와 접시를 사용한다. 이른바 중국이 예의를 잃을 때에는 가서 배워 올 만한 곳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왕제측기》에서는 東方曰夷…言仁而好生萬物抵地而出(동방왈이 언인이호생만물저지이출) 동방을 이(夷)라고 하는데, … 어질고 생물(生物)을 좋아하므로 만물이 땅을 밀고 나온다. 하였고,
《한서지리지》에는 “인민은 서로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 문을 닫지 않고 지내며, 혼인에는 매매하는 버릇이 없고 여인들은 정신(貞信)하여 음란하지 않아 예의가 분명하며, 음식은 나무 그릇으로 하는데, 중국인이 들어간 뒤에는 그를 본떠서 자못 나빠졌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동방삭이 지은《신이경》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東方有人焉男皆鎬帶玄冠女皆 衣恒恭坐而不相犯 (동방유인언남개호대현관여개변의항공좌이불상범) 相譽而不相毁見人有患投死救之如癡名曰善人(상예이불상훼견인유환투사구지여치명왈선인) 동방에 사람들이 있는데 남자들은 모두 명주 띠를 두르고 검은 갓을 쓰며 여자들은 모두 서로를 분별하여 입고 항상 공손히 앉는다. 서로 범하지 아니하며, 서로 기리고 서로 헐뜯지 아니하며, 남에게 환란이 있는 것을 보면 목숨을 내걸고 이를 구하여 주니 어리석어 보이나 이름하여 선인이라 하였다.
이밖에《이아》는‘태평지인'이라 기술하고 있으며, 《동경잡기》권1〈풍속조〉에는 당태종이 김춘추에게 신라를 군자지국이라 지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 이후로도 현종이 신라 성덕왕에게 보낸 국서에 군자의 나라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文章禮樂闡君子之風三韓善隣時稱仁義之鄕(문장예악천군자지풍삼한선린시칭인의지향) 문장과 예악이 군자의 풍을 띠며 삼한이 선린함에 인의의 고을이라 일컫는다. 송나라 영종(英宗)이 고려 문종(文宗)에게 보낸 국서에서는 우리 나라를‘예의지국’이라 기록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기록을 보면 신라 때의 최치원은 낭혜화상비에‘군자국’이라 기록하고 있고, 증대사비에서는‘군자지향’이라 쓰고 있다.
근세 조선에 이르러는 《태종실록(太宗實錄)》에‘동방예의지국’, 《인조실록》에서는‘삼한예의지국’이라 하는 등으로 일반화되었다. 이 군자의 나라, 예의의 나라는 또한 중국의 고문헌에 무궁화의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 상고대의 지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데 여기에서 훈화초는 무궁화를 말하는 것이다. 君子國在其北…有薰華草 朝生夕死(군자국재기북 유훈화초 조생석사)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
또,《고금주》와《원중기》에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는데, 후술하기로 한다. 이러한 기록들로 미루어 우리 조상들이 군자의 나라, 인의·예의의 나라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용감하고도 겸허한 양면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나라의 곳곳에 아름다운 무궁화가 만발해 있어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우리 나라를‘무궁화 동산’으로 인식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무궁화가 군자(君子), 인자(仁者), 대인(大人)을 상징하는 나라꽃으로 비유됨은 이미 5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원(始原)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東夷列傳의 내용
'동이열전'이라는 책은 공자(孔子)의 7대손인 공빈(孔斌)이 단군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책이라고 합니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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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夷列傳 全文 》 東 夷 列 傳 (註 檀奇古史 附錄)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星分箕尾 地接鮮白,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병立,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 相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是故 殷太師箕子有 不臣於 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余亦欲居東夷之 意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相有友邦之義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吾先夫子 以東夷不以 爲陋者其意亦在乎此也,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字 子順)
----- 해석 ---
동이열전(東夷列傳)
서기전 268년 (中國 戰國時代 魏 安釐王 10年)에 中國 曲阜(곡부)의 공빈(孔斌, 孔子의 7代孫이라 전함)이 쓴 東夷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을 동이라 한다. 방위는 28수의 기성과 미성의 방향이고, 지역은 조선 백두산에 접해 있다. 훌륭한 사람 단군(檀君)이 나니까 9개 부족 구이가 그를 받들어 임금을 삼으니 요임금<어머니가(경도)는 동이족 이기땅 족장의 딸임. 어렸을 때부터 동이족땅에서 낳아 자라 중국으로 돌아가 임금이 됨. 중국역사의 왜곡된 사서 여러가지를 종합해 보면 이 사실이 입증됨>과 한때의 일이다. 우순(순임금)이 동이에서 나아 중국에 들어와 천자가 되어 훌륭하게 다스리니 뭇 임금 위에 우뚝했다. 자부선인(:우리민족 동이족의 선인)이 학문에 통달하고 다른 사람보다 지혜가 있으니 황제 헌원이 그에게서 공부하고 내황문(:자연과 사물과 사람의 이치, 그리고 한의학적 내용)을 받아와서 염제 신농씨 대신 임금이 되었다. 소련과 대련(동이족으로 공자선생등이 '효경'등 에서 언급이 자주 되는 인물)이 부모의 상을 잘 치뤄 3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3년을 근심하니 나의 할아버지께서 칭찬하셨다.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모임에 부루(扶婁, 2세단군)가 친히 와서 나라의 경계를 정했다. 유위자가 하늘이 낳은 성인으로 훌륭한 이름이 중국에도 넘쳐 흐르니 이윤이 그 제자로 공부해서 은나라(동이족왕조) 탕임금의 어진 재상이 되었다. 그 나라는 비록 크나 스스로 교만하지 않았고, 그 군대는 비록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해서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하고,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니 동쪽에 있는 예스러운 군자의 나라(동방예의지군자국=東方禮儀之君子國 원문에 << >>로 표시하였습니다)라 하겠다 …중간생략 … 이렇기 때문에 나의 할아버지(孔子)께서 동이에 살고 싶어하시면서 누추 하지 않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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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최초로 우리의 기록만이 아닌 중국의 기록에 나와있는 단군의 존재에 대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제 3자가 인정을 하였으니 단군이 결코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을 한 셈이죠. 그런데 윗 글에서 보면 '동방예의지국'이 아닌 '동방예의지군자국(東方禮儀之君子國)'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군자(君子)'라는 두 글자가 더 있는 거죠. 왜 '군자'라는 두글자가 빠진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느냐 하면 그 뜻이 갖는 중요성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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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란, 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 말. 유교에서는 성인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데, 여기서 성인이란 최고의 인격자,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달한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서 <성인은 내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군자만이라도 만나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유교에서는 누구나 노력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 표준의 인물이며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으로, 즉 <이래야만 되겠다>는 사람의 한 본보기로 군자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유덕(有德)한 사람 을 말하는 것이다.
< 東夷民族 論說(동이민족 논설) > 길림성 연길시 개발구 송호상(0443-2856131)
고대 우리 민족에 대한 학술대회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는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동이민족 문화, 즉 우리 조선민족의 옛 문화와 역사에 관련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 조선민족은 옛날 동이민족으로 이름을 날리었고, 동이민족은 일만년의 빛나는 유구한 문화와 역사가 있으며, 환국 제1조(桓國 第1朝)인 환인으로부터 천부삼인, 천신·지신·인신(天賦三印, 天神·地神·人神)의 삼신일체, 천부경 81자(三神一體, 天符經 81자)와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철학적 경전으로 이어져온 훌륭한 민족이나, 동족상잔과 외래침략으로 아직도 정통적인 올바른 국사하나 없는 민족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 조선민족의 책임이며 민족의 수치이므로, 일제의 왜곡된 식민지사관에서 벗어나 올바른 우리의 국사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진정한 역사의 과거를 알고 장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 사학자들의 급선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세의 사학자들은 왜곡된 역사의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를 않으며, 재야학자들의 논설을 비판마저 하지 않으려고 하므로 오늘날까지 그릇된 역사의 전통관념이 만연하여,
각종 종교는 없는 조상을 무조건 믿고 숭상하면서도 실존한 조상은 신화, 전설로 인식하여
서울에서는 서로가 골이 터지도록 싸우고 있으며, 이는 올바른 국사가 없는 탓이며,
따라서 사학자들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한 민족의 문화와 역사란, 기록된 고대 문헌과 고고의 물증, 시간, 장소 등이 확인될 때 비로소 정확하게 성립될 수 있으며, 만인의 공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세의 사학자들은 문헌과 문헌의 이론적 연구만을 반복하여 현실 고증이 적은 史冊을 써왔기에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소생은 증거 있는 역사를 쓰고자 3년 반 동안 우리 동이민족 시조 역사의 발원지인 중국 땅 960만 ㎢의 넓은 광야 속에서 유적을 찾아 4만 2천km를 헤매면서 고고 관찰을 진행한 결과, 일만년(一萬年)의 동이역사가 어제의 일인 듯 허다한 새 발견과 문헌의 의문을 해결하였습니다.
① 배달환국 환웅시대의 제 14대 왕이었던 자오지 치우천황의 묘를 상고 문헌에 의하여 현재의 산동성 문상현 남왕진(山東省 汶上縣 南旺鎭)에서 발견하였으며, 그곳에 치우사당을 짓고 동상을 세우기로 1997년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금년 5월에는 이 문상현(汶上縣)에서 수리공사(水利工事) 중 석회암으로 된 길이 2.38m, 넓이 0.83m, 두께 0.31m의 '치우총(蚩尤塚)' 비석(사진1 : 입수즉시 게재예정)과 화강암에 석각된 된 길이 1.1m, 넓이 0.55m, 두께 0.15m의 '치우사' 표지석(사진2 : 입수즉시 게재예정)이 발견되었으며, 소생은 지난 8월 1일 제4차의 산동성 문상현 고찰과 함께 치우사와 동상을 수복하기로 협의서를 정식 작성하여 2002년부터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② 산동성 미산현(微山縣)에는 환웅시대 제5대 왕인 태호의(太 儀)의 아들인 복희(伏羲)씨 묘가 있고 '인론지시(人論之始)'라고 써여져 있으며, 지금은 신령을 모시고 있는 절당이 되었습니다.
③ 호남성 형산시(湖南省 衡山市)에는 동이족인 소전지자 염제신농씨 묘(小典之子 炎帝神農씨 廟)가 있고,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문장에 그 역시 절당이 되어 있습니다.
④ 강소성 운운항(江蘇省 運雲港)에는 신라촌과 신라정(新羅村과 新羅井)이 있고, 천하제일서(天下第一書)라 하는 장군애암(將軍崖岩)에 있는 200여 평방미터의 암화(岩畵)에는 5000여년 전의 천문기상의 연구와 고대의 각종 석각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⑤ 광동성 광주시(廣東省 廣州市)에는 제3대 환검(단군)의 현손{桓儉(檀君)의 玄孫}인 번우(番 )씨가 세운 번우국(番 國)이 지금의 번우시(番 市)로 되어있고, 광주(廣州)에서 200km 나가 신흥현 육조당(新興縣 六朝堂)에는 동이조상의 영상(靈像)을 모시고 있는 신라촌과 양씨촌(新羅村과 楊氏村)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비록 한족화(漢族化) 되었으나 조상은 고려(高麗)라고 대답합니다.
⑥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옛 한글)}는 조선의 한글이 세종대왕의 발명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ㅅ ㅈ × ㅜ 등의 가림토문자는 C14 측정결과 거금 3850년 전의 것으로 확인하였으니, 환단고기의 '가림토 문자가 4000년 전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전 중국각지에는 동이민족의 역사적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음을 학자들이 공인하는 바이며,
하기에 동방의 역사는 동이선조 구환족(또는 구려족){九桓族(또는 九黎族)}의 문명사로서 만년(萬年)의 유구한 역사가 감숙성 돈황과 금악, 태백산 흑수, 요녕성 서납목론하(甘肅省 燉煌과 金岳, 太白山 黑水, 遼寧省 西拉沐 河)(또는 서요하西遼河, 서압록강西鴨綠江) 일대에서 발생·발전하였으며,
9000여 년 전 적봉시 오한기흥륭와(赤峰市 敖漢旗興隆 )에서 북경의 연산남북(燕山南北)을 중심으로 발전한 홍산문화(기저, 「홍산고국문화론」){紅山文化(己著, 「紅山古國文化論」)}가 있고, 산동성에는 후이, 북신(后李, 北辛) 문화 등 8000여 년 전의 동이족 역사를 증명하는 허다한 유물, 유적과 문헌이 있습니다.
동이민족의 연원을 말하자면 소련의 저명한 인류역사학자인 오과라기야부(奧科羅基耶夫)의 《인류의 발생과 이동》이란 논문에 의하면
"지금부터 만여 년 전에 파미르 고원에는 능가선무(能歌善舞)의 황색인종이 녹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민족이 햇빛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여 천산(天山)과 아이태(阿爾泰)산맥에 살았기에 아이태어계 족(阿爾泰語系 族)"이라 하며,
차츰 동으로 이동하여 바이칼(패가이 : 貝加爾)호, 몽고사막으로 분산(分散)한 그 일파가 9000여 년 전에 적봉시 오한기흥융와 보국토향(赤峰市 敖漢旗興隆 保國吐鄕)에서 살았고,
6000여 년 전에 적봉시 홍산(赤峰市 紅山)에서 홍산고국(紅山古國)(즉, 배달환국 桓國)을 세운 것이 환국 제2조(第2朝) 한웅시대로서 이 배달환국 문화가 홍산문화이며,
홍산문화 계열은 지금부터 8000여 년 전 흥륭와(興隆 )문화에서 - 홍산문화 - 하가점 문화까지 계속 발전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국가문물국이 고도로 중시하여 1993년 8월 14일∼24일간에 미, 영, 일, 대만 등 세계 11개국 100여명 학자들이 참가한 "중국북방 고대문화 국제학술연토회"를 적봉시(赤峰市)에서 개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이 문화가 동이족 토착인의 문화로서 동방고대 문화의 발원지이며 세계문명의 창시문화라고 학자들이 공인하였습니다.
동이족이 창립한 홍산(紅山)문화는 이집트나 바비론문화보다 근 2000년을 앞선 세계 태초의 문화였으나 그 발견이 늦어 세계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홍산(紅山)문화는 절대 신화나 전설이 아니며,
9500년 전 사람의 손으로 가공한 옥월(玉鉞)이 오한기 천근영자(敖漢旗 千斤營子)에서 발견된 이래,
8000년 전의 흥륭와(興隆 )문화로부터 시작한 유물과 유적은 전 중국 각지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상고의 문헌은 신화나 전설이 아니었다고 역력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이민족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므로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의 비준으로 '동이고국 전문(전업:專業)위원회'가 산동성 제령시(濟寧市)에 설치되었으며,
1998년 4월 28일∼31일간에 이 제령시에서 전국의 동이역사학자 30여명이 참가하여 창립 경축대회와 동이고국사연토회(東夷古國史硏討會)를 개최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동이민족은 9000년 전부터 중국 땅의 토착인으로서,
옛날에는 구환족(九桓族)(또는 구려족 : 九黎族)이라 하였고,
4700년 전 환웅시대 14대 왕 치우(蚩尤)의 전성시대 해양문화시기부터는 치우(蚩尤)족, 삼묘(三苗)족이라 불렀으며,
2700년 전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는 구이, 팔만, 칠융, 육적(九夷, 八蠻, 七戎, 六狄)의 민족으로 부르는 등 또다시 동서남북 이만융적(夷蠻戎狄)으로 갈라 수십 종의 민족명칭이 존재하였으나 전체적으로 구환족을 분해하여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종족명칭이었습니다.
동이민족을 말할 때 세계적으로 북극의 에스키모, 남미주의 인디안족이 다 동이족의 후칭이며,
중국의 조, 만, 묘, 려, 악륜춘, 악온극족(鄂倫春, 鄂溫克族) 역시 동이족의 후칭(後稱)입니다.
또한 중국의 삼황 - 천황·지황·인황 - (三皇 - 天皇·地皇·人皇 -) 이 동이족의 상고 시조이며, 환웅, 복희, 신농, 치우, 헌원, 고신, 환검과 요, 순, 우의 전체가 동이족의 선조였음을 고대문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이족의 습속(習俗) 특성을 말하자면,
옛날 어린아이의 베개를 돌, 모래로 베웠기에 뒷골이 납작하며,
소위 문신, 몸단장으로서 앞 이빨을 두대씩 뽑아버리기도 했고,
머리는 짧게 후에는 남녀 막론하고 외가닥으로 땋았습니다.
고고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수천 년 후에 남은 두골(頭骨)이 톱으로 베어버린 모양이라 거치형 두골(鋸齒形 頭骨)이라 하며, 이러한 두골(頭骨)은 요령성(遼寧省)과 산동성(山東省)에서 제일 많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상고 문헌에 동이민족은 쌍각지(雙脚趾)라 하여 새끼발톱이 두 조각으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근세에 남경(南京) 남쪽 남향 우수산(南鄕 牛首山)과 구용시, 광동(句容市, 廣東) 사람들의 대다수, 강소성 일대 등의 한족들이 쌍각지(雙脚趾)인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 각별히 조사한 결과 사실 흔히 볼 수 있었으니, 이들은 동이족이 동화된 한족으로 보여지며,
현재에도 역시 민족으로 말하면 100%라고는 못하나 조선족, 만족, 묘, 여, 악온극, 악륜춘족(朝鮮족, 滿족, 苗, 黎, 鄂溫克, 鄂倫春족) 등에 쌍각지( 雙脚趾)가 많았는데 역사의 기록대로 동이족 후예임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종족의 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이 서기전 근 8000년 동안 중국 땅을 휘몰아치던 동이민족은
제1차 치우(蚩尤)와 헌원(軒轅)의 영토 분쟁,
제2차 후국(候國)인 서주(西周)의 상(商) 침략,
제3차 이상(夷商)의 전쟁 등 민족의 내부 분열과 동족 상전(相戰)으로
중화족에게 멸망을 면치 못하였고 차츰 한족화(漢族化)되었으나, '조상이 누구냐?' 물으면 고려(高麗)라 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땅에는 없애버릴 수 없는 수천 년 전의 역사 유물과 유적이 중국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지금 땅속 4∼5m의 깊이에서 계속 발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이민족 역사의 발생지가 동방의 중국이며, 역사의 상고문헌이 중국에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찾으려면 그 발원지인 중국 땅에서 찾아야 설득력이 있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학자들은 국내에 있는 기존 사책(史冊)의 문헌만을 반복 연구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올바른 역사가 나올 수 없고, 심지어는 동이족이 조선족이 아니라는 일부학자들도 있으니 이런 성급한 결론은 삼가함이 좋을 듯 합니다.
중국의 허다한 고대 문헌에서 동이족은 조선족이라는 논설과 문장을 어렵잖게 볼 수 있으며, 내가 쓰고 있는 「동이민족사」에는 왜 동이족을 조선족이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학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일부의 학자들 중에는 왜곡된 역사를 조선어로 번역하여 자기의 저작인 것처럼 책을 출판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참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사학자들은 힘을 모아 올바른 민족사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불철주야로 쓰고 있는 동이사, 민족사, 고고사, 문화사 등은 내가 알든 모르든, 남이야 무엇이라 하건 말건 내 나름대로 쓰고 있으며, 우리 제2세가 없어지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니 여생의 숙원이라면 올바른 역사를 완성하여 후손에게 남기려는 것뿐입니다.
2001년 8월 20일
길림성 연길시 개발구 송호상(0443-2856131)
더욱 자세한 것은 우리역사의 비밀 비(秘)를 클릭 104번, 105번 참고바랍니다. 치우천자 실존증빙 (1), (2)
출처:우리역사의 비밀
한국 12연방과 배달민족의 영역
(1) 환단고기 문자적인 해석 그대로의 영토
아래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환국의 12연방인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지금의 러시아 캄차카 반도 일대),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납아국, 선비이국, 수밀이국(수메르) 전부를 환국(고조선의 초기국가)의 영토로 보면은 엄청나게 커집니다 그러나 각 영역에서 한국문화를 설명해줄 유물이나 유적이 없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습니다.
(2) 위의 것은 환국이 영토가 아니라 우랄 알타이 족의 이동경로일 뿐이다
지금의 이라크인 수메르지역이 고조선이며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여러민족들이 파생되어 나왔으며 특히 부족및 종족 분쟁에 패하여서 중앙아시아로 밀려난 세력들이 한민족을 비롯한 우랄알타이족 계열의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창세기10:21절에 등장하는 에벨이라는 지역이 바로 고조선 환국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랄알타이족의 이동경로(아래지도 참조)를 전부 환국의 영토로 착각하는것 같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남아시아 중동지방에서 시작된 우랄 알타이 족은 북쪽의 흑수(흑해)를 거처서 중앙아시아에 머믈다가 추위가 닥치자 부족한 식량에 종족내부 분쟁(약100일간 발생)이 일어나게 되고 그들중에 남부아시아로 밀려난 세력들이 호랑이 부족 소위말해서 타밀족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동쪽으로 이동해서 바이칼 호수에 이르게 되면서 여러 부류로 갈라지는데 북쪽으로 진출한 종족은 북극의 에스키모가 되거나 베링해협을 건너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되었고 그대로 머무른 사람들은 흉노, 돌궐, 투르크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쪽의 만주지방을 거쳐서 한반도 까지 내려온 부류가 오늘날의 한국인들 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이러한 학설을 뒷바침할 근거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3) 기존의 역사학에 의한 고조선 영토
아시다시피 국사책에 실리고 있는 고조선의 영역입니다
(4) 그 밖에 여러가지 학설
고조선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인 에게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이들은 북유럽 신화인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전투씬이 고조선의 치우천황과 화족의 황제 헌원이 대결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5) 중립적인 입장
고조선에 등장하는 삼각산, 태백산 평양은 지금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이들 지명은 고정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 걸맞는 지명을 알려주는 대명사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다른 나라의 지명이름인 (뉴)잉글랜드, 포츠머스, (뉴)요크셔등의 지명이 미국에도 버젓이 있듯이 말입니다
뿐만아니라 고조선은 영토 개념이 희박한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고조선의 영역보다는 고조선사람들이 활동한 지역이라는 표현이 현실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론=>고조선에 대한 정확한 영역은 고조선에 대한 정확한 문헌(당시에 기록된것)을 입수하지 못하는 이상 불가능하며 고조선에 대한 연구는 한반도및 만주지역만으로 국한하지 말고 유라시아나 그 지역에서 파생된 문화, 설화, 신화등을 전반적으로 연구 해야합니다
그리고 위에 글들을 볼 때에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국가는 한국만이 독점해서는 안되며 대한민국사람은 고조선에서 갈라져나온 일부 곁가지 민족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감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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