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트와 부여(夫餘)의 연관성에 대한 단상 (언어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 정 택 성)
1. 이 글은 왜 쓰는가?
국력 신장에 따라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이 땅에서 대륙으로 발을 내딛는 철의 실크로드를
원만히 추진하려면 주변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부랴트 및 그 인
근지역은 북경에서 가는 몽골횡단철도와 만주철도 및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소수민족을 다룸에 있어서 중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를 의식하는 것은 세계인으로 살아
가야 할 우리(민간인)로서는 버려야 할 정치적 타성이다. 본인은 명칭학의 실용화를 연구하
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소수민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부랴트는 그 중의 하나이며 우
리의 숨겨진 역사와도 관련이 있기에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언어 차원에서 그 짧은 생
각을 간단히 써 본다.
2. 부랴트란?
부랴트는 러시아어에 따른 격음식 표기로서 부랴트공화국의 약칭이다. 부랴트공화국은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연방 조약에 가입한 국가이다. 몽골 위쪽의 바이칼호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 100만 명에 부랴트인은 25%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헌법에는 주권 회
복의 열망을 담고 있다. 1990년 이후 언어와 무속 및 불교를 부활시켰다. 이들은 징기스칸
에게 완강히 저항하다가 정복당했으며 그 일부(주류는 튀르크어를 구사하는 남쪽 사람들)는
야쿠트 지역으로 떠났다. 몽골에서 분리된 부랴트몽골은 스탈린이 대숙청(지식인 만여 명
처형)과 함께 좌우로 3등분시켰다. 부랴트공화국은 그 지역의 중앙에 위치한다. 이들의 생김
새와 무속은 우리와 거의 같다.
3. 부랴트/부리야트는 어떤 것이 원음일까?
러시아어를 로마자로 전사하면 Buryat, 중국어로는 Buliyati, 몽골어로는 Buriyad가 되지만
부랴트어로는 Buryaad가 된다. 부랴트를 부랴트어 음절로 나누면 bu-ryaa-d의 3음절이 된
다. 여기에서 ryaa의 r(떨림소리) 뒤에 오는 yaa는 맞춤법에 따라 ‘야-’를 표현하기 위해
장모음으로 쓰여진 것이다. ya라고만 하면 ‘여’가 되기 때문이다. 부랴트전설 등에는
Bulyadae[불여때]와 같이 -ya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현재 -d는 어떻게 발음할까? 이것은
우리말의 된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뜨’로 발음된다. 따라서 부랴트 또는 부리야트는 부
랴트어로 [부랴-뜨]로 읽어야 정확한 것이다.
4. 호리라는 지명은 무엇을 뜻하는가?
본인은 부랴트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질 때 호리가 구리 또는 고리와 어떤 연관이 있
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고구려와 그 이전 시대로 올라가야 하
기 때문에 비역사학도인 본인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호리(Khori)는 울란-우데시 동쪽에 있
는 아이막의 이름이다. 원조비사에는 豁里禿馬?[호리토마트]로 기록된 말이다. 호리-토마트는
그 당시 몽골군에 저항한 바이칼 지방의 부락이름으로 호리인의 선조를 말하기도 한다. 호
리는 부랴트어로 20을 뜻한다고 한다(중국측 주장으로 기억됨). 그래서 호리-토마트(몽골어
식 표기)는 20개 성씨들의 토마트라는 말이 된다. 20개 성씨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에서 토마트는 그 이전의 시대로 올라가면 지금의 투바공화국과 이르쿠츠크주 일대(바
이칼호 서쪽)에 살던 부족을 일컫는다. 그 지역에는 정령, 흉노, 선비, 유연, 오르혼 돌궐, 회
흘, 詰알斯[제자스]=堅昆[졘쿤]=居勿[쥐우]=結骨[제구], 거란, 몽골 등의 민족들이 통치하거나
살았었다. 호리방언은 부랴트의 표준말인데 호리의 ' '는 ' '에 가까운 경구개 또는 깊은
연구개의 무성 마찰음이다. 파스파문자에서는 q음으로 존재한다. 부랴트몽골사를 쓴 에프.
아. 쿠더리 야브체프는 호리(Khori)가 아래에 언급한 구리(Kuri)와 서로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다.
5. 부랴트의 기원 민족은?
바이칼호는 부랴트어로 [배-걸 달래-]라고 한다. 사서에는 北海, 天海, 小海로 불렸다. 이 바
이칼호 주위에는 한족에게 단조 기술을 전수한 구리간(骨利幹)이 살았다. 그 지역에 살았던
흉노는 온돌을 사용했던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사서에는 구리간이 7세기부터 언급된다.
즉 구리간은 당나라 때 바이칼호 연안과 앙카라강 및 세나강 상류 일대의 구리간부(骨利幹
部)에 살았는데 현궐주(玄闕州)에 두었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동돌궐의 통치하에 있었다.
구리간에 관한 그 이전의 기록은 발견할 수 없다. 다만 부랴트인의 일부는 바이칼호 서쪽의
삼림에서 몽골어의 선조어를 사용했다는 말이 있다. 어쨌든 부랴트공화국은 이 구리간을 기
원 민족으로 삼고 있다. 구리간은 튀르크어(돌궐어)로 쓰여진 몽골의 오르혼 비문 기록 중에
서 ‘우치 구리간’(3姓 구리간=3개 부락연맹)에 해당하는 것으로, 구리간은 ‘구리(Kuri)’
또는 ‘후리(Furi)’라는 족속을 가리킨다고 12세기의 중앙아시아 작가 타히라 마르와키가
기록했다. 위에서 ’구리‘는 몽골어음(대체로 내몽골의 바르구 부랴트 방언 제외)으로 ’고
리‘이다. 구리간이라는 민족의 기원에 대하여는 설이 분분하다. 퉁구스와 하나였다는 몽골
학자의 학설도 있다. 중국과 몽골 및 러시아 서적들에 언급되고 있어서 그 설명을 생략한
다.
6. [부랴-뜨]라는 나라이름은 무엇을 뜻하는가?
1240년에 한자로 쓰여진 원조비사에는 부리야트(不里牙?)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여기에
서 부리야트는 바이칼 지방에 살던 부족(5部 중의 하나)의 이름이다. 북방(서북)에서 흑룡강
이남으로 내려왔다는 부여건국신화에 따라 이들을 그 후손 또는 유민으로 볼 수 있는 가능
성은 그들이 취한 나라이름에 있다. 이것은 고조선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리야트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랴트전설에 기인하다면 Bulyadae가 부여(夫餘)의 초기
표기인 불여(不黎: 만주어로는 부려)사람들을 일컫는 ‘불여떼’로 바로 읽혀져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지만 신화로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다. 따라서, 원조비사에 쓰인 Buriyat[부
리야트](중국의 소수민족어 번역 방법에 따름)와 현재 부랴트의 국명으로 쓰여지는
Buryaad[부랴-뜨]를 기준으로 풀이하면, 不黎(불여/부여)의 중국어식 표음인 부리(buri)에
‘자신의’,‘親-’의 소유어미를 나타내는 야-(-yaa)와 명사의 복수어미인 ‘들’을 나타
내는 뜨(-d)를 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부리야트는 buri+yaa+d의 고유명사로서 buri의 i
가 yaa와 결합되면서 탈락한 것이다. 직역하면 ‘부리들’ 또는 ‘부리자신들/친부리들’이
된다. 부여의 夫가 扶였다면 위에서 타히라 마르와키가 말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위
와 같이 부랴트의 국명이 부여와 직접 관련이 있다면 그들은 기록이 모호한 구리보다는 확
실하게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부여를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그들은 징기스칸의
성씨와 관계있는 파란 늑대 인간(부르테 치노)의 전설에서 나왔다고 선전하고 있다. 부랴트
인들은 자신들이 몽골과 러시아에 눌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그러는지도 모른다. 러
시아와 중국에서도 국명에 대한 어원을 찾는 시도들을 하지만 현재 울란-우데시 동북쪽에서
바이칼호와 접하고 있는 바르거젼 아이막(러시아어로 바르구진스키 라이온)의 옛 이름인
‘바예구’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어서 억측으로 보인다.
7. 부랴트어는 몽골어일 뿐인가?
부랴트어는 우리말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부랴트어는 모음조화와 구개음화가 있는 북몽골
어군의 교착어로 알려져 있다. 자음에는 된소리인 ‘끄’, ‘뜨’, ‘쁘’가 있으며 단어에
서 2번째 이상의 모음 ‘아’, ‘오’, ‘에’가 대부분 ‘어’에 가깝게 발음된다. 재귀대
명사를 동사의 어미에 붙이는 형식도 있다(예: 어떻게 지내는가?→ 어떻게 지내-자네?). 몽골
어 어휘를 기준으로 볼 때는 별 차이가 없지만 부랴트어를 기준으로 자세히 볼 때는 몽골어
(할하방언)와 많이 다르다. 러시아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씨족명과 짐승이름 및 지명을 비
교할 때 부랴트어는 이와 비슷한 돌궐어/몽골어/퉁구스-만주어보다는 에벵키어와 사모예(드)
어(바이칼 연안 지명의 약 60%―특히 바이칼호 서안)에 더 가깝다 라고. 그러나 그 누구도
한국어를 비교 대상에 넣지 않고 있다. 이 분야에는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야 맞
을 것이다. 부랴트어 어휘를 분석해 보면 동사와 형용사에서 우리말의 동사, 형용사, 감탄사
와 어감이 비슷한 어휘들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은 공용어와 문자의 채택 여부, 그
리고 문화의 교체와 고립 기간에 따라 같은 말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부랴트와는 그런 관계에 있다. 아래에서 부랴트어와 한국어의 유사 어휘들을
살펴본다(몽골어 일부 포함).
한국어 대 부랴트어의 유사 어휘들(퍼페의 부랴트어 독본에서 일부만 발췌함)
< ●는 현대 한국어로 추정되는 말과 설명>
[나거서]:외갓집 -----●나가 있는
[한얼]:사상
[자-헝]:작은
[골]:내, 계곡, 복판 -----●몽골어/튀르크(돌궐)어와 같음
[내것허허]:하나가 되다 -----●내 곁에 있다, 내 것으로 하다
[자허]:가장자리 -----●자장자리
[가자-하-]:바깥에서 -----●가장자리에서
[다히허]:다시 하다, 되풀이하다
[가리]:똥 -----●말똥가리(똥의 겹말로 추정됨)
[이거허]:이거다, 이렇다
[애-러더허]:알다 -----●알았다
[우일러허]:울다 -----●울렸다
[볼덕]:흙더미, 언덕
[잘너엇히허]:똑바로 해라 -----●잘났다
[말]:소(牛) -----●몽골어와 같음, 뜻의 반전
[나마-]:잎 -----●나무
[오러허]:찾아내다 -----●옳았다
[모덩]:나무 -----●모닥
[플뜨]:풍덩!
[우랑]:솜씨 좋은 -----●한자어 ‘優良’인 듯?
[후러더허]:흐릿해지다 -----●흐릿하다
[욀구울허]:설명하다 -----●외우고 읊다
[소-구-르]:속으로
[으렁]:굶주린 -----●으르렁거리다
[으즈을허]:보이다, 눈에 띄다 -----●어지르다
[나허 드-러허]:죽다 -----●나가 드러눕다
[셍그-]:기쁜 -----●생긋
[으허허]:죽다 -----●의성어
[웅쉬어허]:읽다 -----●웅성거리다
[주-르쉬얼허]:사이에 들다, 끼어들다 -----●줄을 세웠다
[오쉬어허]:가다, 가버리다 -----●오시었다(과거형)
[우르쉬-허]:찌프린 얼굴을 하다 -----●울었었다
[다리여]:떠들썩함 -----●떠드는 상태
[엘리버허]:매만지다, 어루만지다 -----●아유 예쁘다
[믈허]:얼음 -----●‘믈’은 물
[헤허]:하다, 만들다
[쉐메귀-]:얌전한, 조용한 -----●속어로 존재함, 새내기는 신조어
[흐벌겅]:밝은, 꾀바른 -----●허옇게 벌건
[뉘욱더허]:숨어 있다 -----●뉘엿뉘엿하다
[하여]:이제, 곧
●로 표시된 것들은 극히 일부만 검증된 것으로 대부분 필자의 자의적 해석임.
<주요참고문헌>
1. 에프.아. 쿠더리 야브체프, 부랴트몽골사(상하권), 중국 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 사회역사
실 번역
2. 루광톈 외 1인, 바이칼호 지역과 흑룡강 유역의 여러 민족과 중원의 관계사, 헤이룽장교
육출판사, 1998
3. 엔.엔. 시로보코바, 에.이. 우브랴토바가 세운 시베리아 튀르크계 언어의 역사, 러시아 과
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시베리아 분교: 노보시비르스크
4. 니콜라스 엔. 퍼페, 부랴트어 독본, 인디아나대학출판부, 1962
5. 니콜라스 엔. 퍼페, 부랴트어 문법, 인디아나대학출판부, 1960
6. 사만다바드라(필명), 30년대의 부랴트어-라틴문자화의 성쇠, 일본 웹에서 표기 방법 등에
관하여는 추후에 다국어 버전으로 발표 예정
■ 한국선돌과 알타이선돌
시베리아의 '발해 백성' 에벤족, 그들의 말은 한국어와 닮아있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16/20150416027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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