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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21 : 文字의 기원과 선사유적]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7. 13:20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21 : 文字의 기원과 선사유적]

 

문자의 기원은 구석기 중기인 BC50000년경 돌이나 뼈에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새긴 조각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그 후 점차 흔해져 BC10000년경에는 선사인류(先史人類) 문명인이 흔히 사용하던 그림문자가 된다. 초기의 그림문자는 단지 기억을 보조해 주는 수단에 불과했으며, 의사소통의 대상으로 사용된 것은 인류의 문명이 크게 발달한 중국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마야 등의 문자를 들 수 있다. 문자가 아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매듭이나 막대, 조가비띠 등을 들 수 있다.

 

옛날 중국의 고대기록에 의하면 “옛날에는 매듭을 매어서 다스렸는데, 뒤에 성인의 서계(書契)로 바뀌었다”고 하여, 일정한 약속 아래 매듭을 맴으로써 서로의 언약이나 중의(衆意)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보존해 두는 방법이었으리라 추측된다. 10세기경의 잉카문명에도 매듭제도가 존재했다. 한다. 막대가 기억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용건의 수대로 나뭇가지 ·막대 등을 가지고 있다가 이것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가능했으며, 조가비띠 또한 이와 유사한 기능으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것 모두를 글자라고 볼 수는 없으나 글자의 선도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쓰던 시대를 ‘기억돕기시대(memory stage)’라고 한다.

 

 

 

↑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나무 조각 위에 남긴 일종의 그림 문자

 

↑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원주민들이 나무 껍질에 남긴 그림 문자

 

 

(1) 문자의 발생

오늘날에는 문자가 인간 상호간에 의사전달 수단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문자가 언제부터 생겨나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은 음성이나 몸짓 등으로 의사를 소통시켜 왔다. 그리고 문명이 점차 발달됨에 따라 음성은 일정한 체제를 갖춘 언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어는 음성이 전달되는 범위 내에서만 소통이 가능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력 범위 내에서만 유지될 뿐이다. 따라서 사회가 점차 발달하고 복잡해지면서 서로 간에 전달하거나 소통시켜야 할 의사의 질과 양이 많아지자 전달성과 보존성이 보다 확실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것이 문자이지만, 문자는 짧은 시일 안에 쉽게 형성되지는 못했다.

문자가 사용되고 기록물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되는데, 인류는 이미 문자가 생겨나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의사의 전달과 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고안해 사용하였다. 그 중에서 오래 전부터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이 결승의 방법이었다. 천이나 양털로 만든 새끼로 적당한 간격마다 일정한 매듭을 지어 상호 간에 의사 표시를 했던 결승문자(結繩文字)는 고대 중국, 페르시아, 잉카제국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페루나 멕시코의 원주민들에게는 남아 있다. 새끼의 개수나 간격에 따라 수(數)를 나타내고 빛깔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나 추상적인 관념까지도 표현했는데, 소유 재산의 기록과 연대기 등을 보존할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전승성과 보존성을 지닌 문자 이전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승문자는 하나의 약속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뜻을 나타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교육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학자들이 인류 문자의 기원을 결승문자에서 찾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다 발달되어 그림문자가 생겨났다. 나무나 돌 등에 선이나 그림을 그려 좀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개발한 것이다. 그림문자는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다양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기록성이 있었다. 이러한 그림문자가 등장함으로서 인류 문화 발달단계에 있어 하나의 전환기가 되었다. 기원전 5천년 경 동굴에서 살았던 원시인들은 동굴 벽면 등에 원과 선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려 기록으로 남겼다. 그림문자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현재 암각화(岩刻畵)의 형태로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언어로만 전해지던 신화나 주변에서 본 것들을 사실적인 그림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림이 점차 진화하여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 되었고, 그림 또한 점차 간략화 되어 여러 가지 기호를 사용하는 단계로까지 진보하면서 그림문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림문자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하고 보편성을 갖게 하기 위해 고대 사람들은 상형문자(象形文字)를 고안해 냈다. 이 상형문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문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중국의 한자(漢字) 등은 모두 그림문자에서 진화된 상형문자들이다. 상형문자 중 가장 오랜 것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서 사용된 설형문자(楔形文字)이다. 이는 그림문자에서 발달한 것이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신성문자와는 다소 달랐다. 이들은 서사 재료로 점토판을 사용했는데, 그림문자를 정교하게 새기기 어렵자 이를 쐐기형[楔形]으로 간소화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기원전 1천년 경에 페니키아 사람들은 이러한 설형문자를 더욱 간소화시켜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만들어 냈다.

이집트인의 상형문자는 기원전 3천년 경에 생긴 것으로 처음에는 그것이 묘사하는 사실 이상의 것을 표현하지 못했으나 점차 넓은 의미나 개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들 문자를 초기에는 돌에 새겼지만 점차 파피루스에 기록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림문자는 점차 발전하여 설형문자나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인 표의문자로 진화되었고, 설형문자는 더욱 간소화되면서 발전되어 오늘날의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로 변천해 왔다.

문자의 발생은 이처럼 오랜 과정을 거쳐 형성되면서 세계 각지에서 필요에 따라 다양한 문자가 생겨났다. 문자가 생겨남으로서 인간은 비로소 거리나 장소에 관계없이 보다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하거나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2)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의 문자의 발달

모든 문자의 기원은 회화에서 비롯되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자는 BC6000∼BC5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회화문자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총체적으로 뭉뚱그려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회화문자는 언어와는 직접 관련을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단계를 지나면 추상화의 단계에 도달한 문자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hieroglyph)로 표의문자에 가까운 것이다. 신성문자의 경우, 도구 ·식물 ·동물 등 주변에 있는 것으로 수를 나타냈는데, 이를 보면 고대이집트인의 발상을 잘 엿볼 수 있다. 주로 고왕조의 분묘나 기념비에 나타나는 상형문자(象形文字)로 돌에 새겨져 있다. 해 ·산 ·물 등을 나타내는 그림을 각각 그렸으며, 추상적인 관념을 표시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가령 다리 둘을 그려서 ‘가다 ·걷다’를 표시하고, 두 팔과 방패, 창을 든 모양으로써 ‘전쟁’을, 말과 물의 그림을 합쳐서 ‘목마름’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악기의 일종인 류트(lute)의 그림은 ‘착함’을 나타내게 되었고, 또한 이것과 ‘∼까지, ∼하는 한(as far as)’이 이집트 말에서는 [nefer]로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악기 그림 하나로써 그 악기 및 ‘착함’과 전치사 ‘as far as’를 다 같이 표기하는 글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혼합적 적용법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소리로 표시하는 글자 위에 그 뜻을 설명하는 한정부를 붙이게 된다. 가령 보는 것이나 아는 것에 관한 말을 표기하는 데는 그 소리를 표기하는 글자에 ‘눈’의 그림을 덧붙임으로써 분명히 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점점 소리글자에 가깝게 발전한다. 예를 들어 ‘의자’를 표시하던 사각형 모양의 그림은 pi 외에 pa나 pu로도 읽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 모음이 떨어지게 되자 [p] 음만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사자 ·물결 ·입 ·뱀’이 [l] [n] [r] [z]로 대응하게 되어 자모를 형성하게 되었다.

 

수메르문자도 처음에는 그림글자였으며, 그림의 선이 차차 간단해지자 이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따라서 동일한 문자에서 몇 개의 다른 문자가 파생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문자들이 동화되기도 했다. ‘입’과 ‘빵’을 조합해서 ‘먹는다’의 뜻을 나타내었으며, 태양은 ‘날(日) ·빛(光) ·밝다(明) ·희다(白)’ 등에 두루 쓰이게 되었다. 이름은 [mu]라 하였는데, 이것을 [mu] 소리를 포함하는 다른 음절에도 적용하여 차차 뜻을 나타내는 의부(意符)와 소리를 나타내는 음부(音符)가 구별되어 병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물려받은 아카드인은 이것을 훈(訓)과 음(音)으로 이용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진흙이 많아서 그것으로 판을 만들어 글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이 쐐기 모양이 되었다. 이것을 설형문자(楔形文字:cuneiform letter:쐐기글자)라고 하는데, 후에 바빌로니아 ·아시리아로 전파되었다. 이들에게서도 또한 점차 소리글자로 발달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일례로 ‘하늘’을 표시하는 문자는 별 모양을 본뜬 것이었으며, 이것이 ‘신(神)’을 가리키게 되었고, 신을 표시하는 말이 [ana]이었으며, 뒤에 한 음절로 줄어들어 [an]이 되었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an]이란 소리가 들어 있는 음절에서 쓰이게 되었다.

 

(3) 상형문자의 해독

약 15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은 이집트의 신성문자에 대하여 흥미진지한 눈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그 문자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신성문자를 제일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기원전 4세기경의 이집트 신관들이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4천년동안의 오랜 전통에 종지부를 찍었고, 1500년 동안에 고대 이집트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집트언어는 로제타스톤의 발견과 샹폴리옹*1790~1832)의 노력에 의해서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광대한 그들의 문학작품에 의해서 우리는 대부분의 고대 이집트문화와 사회에 관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문자를 "히에로글로픽(Hieroglyphics)"이라는 부른다. 이 뜻은 고대가 끝나갈 무렵의 그리스인들이 "사제 -새김(Prist-Carving)"혹은 "신성문자(Sacred Writing)"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그 기호가 묘사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전부 알 수있는 것은 아니 고, 판독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의 표본들은 그림문자가 아니라, 음가를 지닌 실제로 사용된 문자로 쓰였다는 것을 보 여준다.

상형문자의 기원과 발전
상형문자(상형문자)란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를 비롯해서 마야, 아즈테카 문자, 지중해 고대문자를 그림에서 성립되었다고 보는 표의문자(표의문자) 등을 말한다. 상형문자가 최초로 사용된 예로 거론된 것은 기원전 3200년경 전쟁에서 승리한 왕, 즉 어둠의 세력을 물리친 파라오들을 기념하 는 내용의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 또는 "전갈왕의 곤봉"이다. 그러나 상형문자 체계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 던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그 등장 시기는 적어도 5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상형문자가 모두 750개 정도였다. 그 기본적인 체계는 처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어떠한 변형도 겪지 않았다. 마지막 신전이었던 필레사원이 폐쇄될때까지 상형문자들의 모양은 한결 같았다. 전무후무한일이다. 상형문자들은 그 기본원칙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했다. 고대 이집트어라 함은 고대왕국시대의 언어를 일컫는 말로서 [피라미드의 서(書)]도 고대 이집트어로 쓴 것이다. "중기이집트"또는 "고전기 이집트어"는 중왕국시대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법학자들이 주로 연구하 는 언어도, 이집트학의 계기가 된 상형문자도 이 시기에 속해 있다. 유명한 〔시누혜 이야기〕도 중 왕국 시대에 쓰여진 것이다. 문자의 양이 꽤 많이 늘어난 신 왕국(제18왕조∼제21왕조)시대의 상형문자도 중 왕국 시대의 원칙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 한참 뒤인 이른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사제들이 엄청난 양의 상형문자 기호들을 새로 만들어냈다. 이때 만들어진 상형문자들 중 에는 해독이 어려운 것도 꽤 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그 언어의 기능만은 여전히 전통에 충실했다. 그런데 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상형문자가 그렇게 늘어난 것일까? 사제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고립된채, 갈수록 사나워지는 점령자들의 적 대감에 시달리던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 암호와 암호 사용법, 그리고 복잡한 서채를 개발해 내야 했다. 상형문자가 맨 마지막으로 새겨진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394년 8월 24일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2세기도 지나지 않은 551년 '이집트의 경이'라 불리우는, 이집트 남단의 필레 신전마저 폐쇄되고 말았다. 토드 신이 이집트의 현자들에게 누설한이래 4천년 가까이 사용된 이 신성한 문자는, 1822년 샹폴리옹 덕분에 다시 부활하여 오 늘날 새로운 청춘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샹폴리옹이 상형문자의 실마리를 얻은 것은 그가 콥트어를 알고, 콥트어 중에는 상형문자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형문자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아 알파벳만을 써서 기록할 수 있게끔 변형된 것이 콥트어이다. 상형문자를 정보화 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진다면 상형문자는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천 연도 가뿐히 뛰어넘을 것이다.

 

이집트 문자의 기원과 발전

고대이집트 문자의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집트 제 1왕조 이전시대의 말기(BC1300직전)에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그 당 시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접촉이 있었고, 이집트인이 수메르인 한 테서 문자라는 개념을 빌려온 것으로 여겨져왔다. 고대이집트언어에 단계별로 다르게 변화되었다.대부분의 이집트역사에서는 히에글릭픽이나 필기문자, 성용문자 등 문어체가 실질적으로 쓰였고, 구어체는 중왕조(Ⅸ & ⅨⅠ왕조, 213-1786)시기부터사용되었다. 이것을 "중기이집트어"라고 부른다.그래서 히에글릭픽이나 성용문자는 초기어형식이나 중기어형식에 겹치는 경향이 보인다. 고대 이집트어는 아카드시대(Ⅰ&Ⅱ왕조, 3100-2680)와 고왕조(Ⅲ&Ⅳ왕조,2690-2159)시기에 사용되었다.

 

또한 중기 이집트어의 문자, 구어체, 문어체는 계속적으로 변화하였다. 신왕조 (ⅩⅧ &ⅩⅩ왕조, 1575-1087)로부터 보다 더후기의 왕조(ⅩⅨ &ⅩⅨⅤ왕조, 1087-715) 언어를 "후기이집트어"라고 부른다.후기이집트어의 구문은 Amarna있는 아케나톤과 AmenhotepⅢ의 정치적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고, 몇몇 후기이집트어의 문법 또한아케나톤지역에서 히에글로픽비명에서 드러난다. 중기이집트어의 구어체는 간단히 바뀌어갔다. 중기이집트어에서는 뚜렷한 관사 가없었으나, 후기 이집트에서는 p3가 있었고, 후에 콥트어에서 "pa"로 발음되었다.따라서 후기 이집트어의 구어체에서는 민용어(Demotic)(c.715 BC-470 AD)와 콥트어(Coptic)(c. 400 AD-c. 1600)의 두 단계가나타났다. 이것은 이집트단어들을 빌려서 초기 그리스에 민용어가 반영되었을것이다. 민용문자는 초서문서로 쓰여진것으로 그래서 이형식으로 쓰여진 언어를 "민용문자"라고 부른다. 마지막 히에글로픽비문은 Philan AD394년에 만들어졌으나 오래되 지않아 로마황제인 데오도시우스(379-395)황제가 이교도의 사원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마지막 민용문자는 470년에 있었다. 이집트인들이 기독교로 전환하면서 민용어를 쓰는 것이 사라지고 고대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대신 그들은 그리스알파벳을 쓰기시작했고, 그들은 그리스어에 존재하지않은 7가지 민용문자의 음가를 빌려서 사용하였다. 그리스어에는 모음들이 존재하였고 마지막단계의 이집트언어에서는 단어들을 완전히 모음화할수있었다. 이것이 "콥트어(Coptic)"라고 불리어지는것이다. 콥트어는 서서히 이집트인들이 이슬람어와 아랍어로 전환하면서 구어체가 되었다. 비 록17세기에 구어체 사용을 중지했지만, 콥트어는 이집트인의 10%에 속하는 콥트교회의 예배식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신성문자는 석기시대의 동굴에서 발견된것과 마찬가지로 선사시대에 그림문자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초기 이집트인은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려운 개념에 부딪쳐 필요한 말을 음으로 엮는 수수께끼 그림같은 것을 고안해냈으리라는 생각한다. 마치 영엉에서 벌(Bee)의 그림과 잎(Leaf)의 그림을 연결시켜 신앙(Belief)라는 개념을 표현하는식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집트문자는 우리들이 말하는 알파벳에까지는 진화하지 못했으나 말속에서 나타는 자음은 전부 그 기호가 정해져있었다. 이방법은 외국의 명칭을 음으로 표현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음기호를 만들지 않아도 충분했다. 즉 음을 나타내는 그림을 짝 맞추어 어떤말이라도 뼈대만을 만들어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집트인은 신성문자를 사용할 때 실용성과 함께 아름다움을 의식하고 장식적인 효과를 고려했다.문장을 쓸 때 단어의 흐름을 막는 공간도 마침표도 없고, 또 가로로 쓰기도 하고 세로로 쓰기도했다. 생물의 그림은 보통문장의 출발점에 놓여져 문자는 거기에서부터 읽혀졌다. 읽는 순서는 상부에있는 기호가 각 그룹은 어울리게 또는 대칭된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3)중국에서의 문자의 발달

또한 중국의 한자(漢字)도 원래 그림글자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뜻글자의 대표적인 글자가 되었다. 거북의 등에 나타나는 갑골문자(甲骨文字)와 그 이전의 구리 그릇 따위에 나타나는 문자는 완전한 그림글자이며, 지시대상을 거의 완전히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이 관습화되면 지시대상과 표시방법 사이의 완전한 일치는 필요 없게 된다. 따라서 표시방법도 점차 간략해지고 추상화하여 문자로서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림으로 표시한 것을 상형(象形)이라 한다.

 

이 밖에 문자를 다양화해 가는 방법으로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의 5가지가 있으며, 상형과 합쳐서 이를 6서(六書)라고 일컫는다. 한 낱말의 대상이 상형처럼 구체적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 ‘위 ·아래’와 같은 말은 평선(平線) 위아래에 점을 찍어 ‘?, 萸’와 같이 표시하였는데, 이를 지시사라 한다. 회의는 앞의 이집트문자 등에서 보았듯이 기존의 두 문자를 합쳐서 새로운 개념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풀 ·해 ·반달을 이용하여 해가 풀밭에서 올라오면서 아직 달이 남아 있는 ‘아침[朝]’을 표시한다. 가차의 방법은 어떤 단어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이미 문자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만(萬)은 본래 전갈을 상형한 것이나, 그와 동음이었던 수(數)의 만을 가리키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동음어의 동일문자화를 피하기 위해 그 한편에 표의적(表意的)인 변(邊)을 사용한 글자가 형성문자이며, 동일한 글자를 파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전주(轉注)라 하는데, ‘도(途)’가 길[道]을 나타내게 되는 것과 같은 예가 이에 속한다.

 

 

 

문자의 기원

문자(文字)가 없는 현대 생활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신문이나 서적 등은 물론, 텔레비전에서도 문자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자는 문명 사회의 기본(基本)으로서, 우리는 아득히 먼 조상 때부터 문자에 의한 문화 생활을 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언제부터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을까?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약 3000년경 또는 그보다 약간 앞선 시기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음성 언어만을 사용하던 고대인들은 음성 언어가 대화 당시에만 의사 소통이 가능하며,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 한해서 정보(情報)가 전달되는 등의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나 후세의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게 되었다. 또 무엇인가를 잊지 않기 위해 간단히 기록해 두는 메모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림이나 매듭을 이용하여 어떤 사실을 표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정한 약속이 되면서 문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림 문자

문자의 기원으로는 크게 '히에로클리프'라는 이집트의 문자, 중국의 '갑골 문자',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초기 형태의 문자들은 모두 다 그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인간(人間)은 손가락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그리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동굴 벽화라든지 돌이나 점토판 따위에 새긴 그림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그러나 그림은 결국 그림일 뿐 문자가 될 수는 없다.



그림 문자 : 그림이나 어떤 대상을 본뜬 도안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 체계.

갑골 문자(甲骨文字) : 고대 중국에서, 거북의 등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긴 상형 문자.

쐐기 문자 :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약 3,000년간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광범위하게 쓰인 문자.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새겨서 썼기 때문에 문자의 선이 쐐기 모양으로 보인다.=설형 문자(楔形文字)
 
 
그림 문자는 어떤 대상을 관찰한 뒤에 이를 묘사하거나 이와 관련되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약간의 추상화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부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이 문자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이를 하나의 약속으로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림 문자에서 표의 문자, 표음 문자로

그림 문자는 특히 동식물이나 의식주, 그리고 자연 현상에 관한 것에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림 문자를 점차 많이 쓰게 되면서 사람들은 사건의 경과나 명령의 기록 등 추상적인 생각이나 개념을 표시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하나의 그림 문자에 그와 연관되는 의미도 함께 나타내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발[足]'이라는 그림 문자는 본래 신체의 일부인 '발'만을 의미하였으나, 후에 '서다'의 의미도 함께 갖게 되었다. 하나의 그림 문자가 이처럼 연관되는 여러 의미를 나타내면서 그림 문자는 문자 하나하나가 일정한 의미를 나타내는 '표의 문자(表意文字)'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문자의 모양도 점차 간소화되었다.




표의 문자(表意文字) : 하나하나의 글자가 언어의 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문자. 고대의 그림 문자나 상형 문자가 발달한 것으로 한자가 대표적이다.
 
 
문자가 하나 이상의 의미를 지니면서 인간이 기록할 수 있는 의미는 점차 풍부해졌다. 그러나 인간은 점점 더 다양한 내용들을 보다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했으며, 그 때마다 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창안해 내었다. 그러나 문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편리한 점도 있지만, 각 문자와 그 의미를 외워야만 하는 불편함이 커졌다. 이러한 문제는 대표적인 표의 문자인 '한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삼천에서 오천 자 정도의 문자를 외워야만 한다고 한다.
 
 
형태가 분명한 대상들은 그림 문자로 표현하기가 쉬웠지만, 추상적인 대상이나 개념들은 그림 문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문자의 소리를 빌려서 쓰기도 하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문자에 점 등을 첨가하여 별개의 의미나 별개의 소리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진행되면서 상대방이 그 문자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래서 문자의 수를 한정하는 한편, 일부 그림 문자는 본래의 의미와 달리 발음의 전부나 일부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가 바로 '표음 문자(表音文字)'이다.

 

 

 





표음 문자(表音文字) : 말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낸 문자. 한글, 로마자, 아라비아 문자 따위가 있다.

 
 
그림 문자가 '의미'를 나타내는 것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는 과정은 이집트의 문자를 예로 살펴볼 수 있다. 초기의 이집트 문자는 앞의 표에서 살펴보았듯이 일정한 대상의 형태를 모방한 그림 문자였다. 그러나 이집트 문자는 점차 발전하면서, 의미가 아닌 소리의 기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위에 제시한 예는 '알렉산드르'와 '클레오파트라'에 해당하는 이집트 문자이다. 이 문자는 언뜻 보기에 그림과 기호를 뒤섞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글쓰기의 방향과 기호의 발음을 알고 나면 이 문자가 매우 과학적임을 알 수 있다. 위에 제시한 자료에는 사자와 새 그림이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사자나 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자와 새 모양의 형태는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소리의 기호일 뿐이다. 이집트 문자의 아래에 적어 놓은 알파벳과 비교해 보면, 사자 그림이 알파벳의 'L'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문자는 이렇게 의미를 나타내는 문자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로 발전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 현재 전세계 문자의 대부분이 이집트 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한자'가 표의 문자이고, 우리의 '한글'이나 영어의 '알파벳', 일본의 '가나'는 모두 표음 문자이다. 한자에서, '火'는 하나의 문자이며 '불'이라는 일정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표음 문자인 한글에서 'ㅂ'이나 'ㅜ', 'ㄹ'과 같은 각각의 문자는 어떠한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영어는 불과 26개의 알파벳을 문자로 가지고 있지만, 이를 조합하여 무한개의 단어를 만들 수 있다. 표의 문자가 수없이 많은 문자를 필요로 하는데 비해, 표음 문자는 불과 수십 개의 문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표음 문자가 발달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문자의 형태와 그 문자가 지니는 복잡한 의미를 외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문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다.

 

 


4세기의 돌조각.
요르단에서 발견되었다.

 
 

 

참고할 만한 책

* 문자의 역사(시공디스커버리 총서001), 조르쥬 쟝, 시공사.
* 세계의 문자, 세계의 문자 연구회 엮음, 김승일 옮김, 범우사.

-- 이 책은 교과서 본문의 원본 도서입니다. 교과서 뒷면의 '저자 및 출처'에는 6과 2단원의 출처가 "문자의 역사"로 되어 있는데 이 "세계의 문자"를 잘못 적은 것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개정판이 나올 모양입니다. 아무튼 현재로선 이 "세계의 문자"가 원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중에서 교과서 부분과 관련이 있는 처음 8쪽의 내용을 한글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world.hwp

 

 

 

문자는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이다.
물론, 아주 옛날에는 문자가 없이 그냥 말로만 서로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오래 기억되지도 않고, 먼곳에 전달하기도 힘들다. 이런저런 이유로 말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원시시대의 동굴 벽화 같은 그림을 보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그림은 여러 사람이 똑같은 의미로 이해하기도 힘들고 표기하는 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기호를 정했다. 주변의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방법을 써서 문자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그림문자이다.

그림에서 그림문자로, 그림문자에서 표의문자로,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원시인들은 동굴이나 바닷가 바위 등에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짐승을 그린 것들이 많다.
이런 그림은 문자로 볼 수는 없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 문자처럼 의사 전달의 역할을 한 것으로 매듭이 있었다.
매듭문자(=결승문자)라고 하는 것으로,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번성했던 잉카 제국에서 사용되었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런 형태의 의사 전달 수단이 있었다.
왼쪽은, 잉카 제국의 매듭문자로, '퀴푸'라고 부른다. 매듭의 방법에 따라 각각 다른 수를 나타낸다.

 
 


이런 형태의 그림문자가 보다 발달하여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의 쐐기문자, 중국의 한자 등의 문자를 이룬다. 이들 문자에 대한 기록은 보통 기원전 3,000년경의 것이 남아 있으나 실제로 이 문자가 발생한 것은 더 이전으로 짐작된다.
또한, 예전에는 글자를 신이 만든 것이라고 여겨 매우 신성하게 생각하였다. 따라서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큰 권력이었고 이런 일을 담당한 사람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발굴된 진흙판. 수메르인의 유물로, 나무, 곡물포대, 농기구 등의 그림문자가 새겨져 있다.
(기원전 4,00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

진흙판에 새긴 쐐기문자(기원전 2360년경)
수메르인들이 남긴 유물이다. 갈대나 나무 조각을 짤라서 진흙판에 쓴 것으로 모양이 쐐기를 닮아서 쐐기문자라고 한다.
내용은 "농부, 대장장이 들에게 당나귀를 빌려 주었다"는 것이다.
 
 

수메르 이후에 세워진
바빌로니아 왕국의 쐐기문자.
위 내용은 함무라비 법전의 일부이다.




그림문자를 이용하여 사물뿐만 아니라
개념을 표시하기도 했다.
왼쪽은, 새와 새알로 '풍요로움'을,
오른쪽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선을 나타낸 것으로 '밤'을 말한다.

 
 

돌에 조각된 이집트 상형문자.
이집트의 문자는 새나 짐승, 사람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이 문자는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코끼리달력 (기원전 1450년경)
이 달력에는 신들에게 제사지낼 때 바칠
제물을 이집트 문자로 적어 놓았다.
또한 여름 세번째 달 28일에 시리우스
별이 뜬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야문자"
마야문명은 기원전 3세기무렵부터
기원후 1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마야문자는 해독이 안 된 것이 많은데,
주로 날짜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조각상
기원전 2600년경의 작품으로,
필경사(글을 쓰는 사람)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은 특별한 교육을 받은,
몇 명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림문자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복잡한 내용을 표시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의 그림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게 되는데, 발 모양의 그림이 '발(足)'의 의미로만 쓰이다가 '서다'라는 의미도 나타내게 되는 경우이다.
이런 식으로 그림문자는 그림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표의문자로 발전하고 그림도 그리기 편하게 간략해진다.
표의문자로는 중국의 한자가 대표적인데, 예를 들어 '人(인)'이라는 글자는 '사람'이라는 뜻을, '王(왕)'은 '임금'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중국의 상형문자

한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 쓰인 그림문자의 일부는 지금도 그 형태가 남아 있다. 왼쪽의 것은 3,000년 전에 쓰이던 것이고 오른쪽 것은 그에 대응하는 현대의 글자이다.
위에서부터 '해, 산, 나무, 가운에, 밭, 문'의 뜻이다.

 
 


이런 표의문자는 나타내려는 의미가 많을수록 글자 수도 많아진다. 따라서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고, 따라서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글자 수를 줄이고 문자가 발음을 표시하는 표음문자로 되었다.
표음문자로는, 기원전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로부터 그리스로 전파된 그리스 알파벳이 대표적이다. 알파벳의 'a,b,c,d,e,f,g…'라는 글자에는 아무런 뜻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school'은 의미를 갖는 말이 된다.
이런 표음문자는 음을 나타내는 문자 수가 적어서 배우기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어 전파가 빠르다.
현대 언어의 대부분이 표음문자로, 서양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과 일본어,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글이 있다.

 
 

그리스어가 새겨진 돌판
네로 황제가 그리스인의 자유에 대해 한 연설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적은 것이다.


현대 알파벳의 다양한 인쇄체 글꼴

 

 

현재 세계에는 3,000여 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문자가 있는 언어는 겨우 100여 개 정도이다.
이들 문자의 뿌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집트 문자, 메소포타미아 문자, 중국의 한자이다. 이들 문자의 처음 형태는 표의문자이며 문명이 발달할수록 표음문자로 발전하였다.
이들 세 가지의 뿌리가 되는 문자 중에서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문자인 쐐기문자는 아시아의 서부 지역에서 널리 쓰였으나 후에 알파벳에 밀려서 사라졌다. 따라서 모든 문자의 뿌리는 이집트 문자라고 할 수 있다. 단지 한자와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본문자만이 예외이다.
한글은 한자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한자의 원리와 알파벳의 원리를 기초로 한 특별한 형태이다.
또한 지구상의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우리가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몇 개의 언어를 들어보자.
 
     
 
한국어
사랑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발음듣기
 
 
영 어
I love you.
 
 
일본어
 
 
중국어
我 愛 ♠.
 
 
독일어
Ich Liebe Dich.
 
 
프랑스어
Je t'aime
 
 
이탈리아어
Ti amo.
 
       

 

 

 

우리말의 수수께끼 - 문자는 왜 출현했는가? 낙서장

2015.12.14. 14:0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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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랄바치 한시알 아리아리~ | 한시알
원문 http://gkstldkf.blog.me/220419792237

언어라는 수수께끼


인류의 역사는 몇 개의 막으로 이루어진 연극이 아닐까? 그 시작은 적어도 100만 년에서 많게는 5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연극은 1만 년 전쯤에 있었던 농경문화의 등장으로 절정을 맞는다. 수백만 년 동안 돌멩이를 깨뜨리기만 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것을 갈아서 쓰기 시작했고, 수백만 년 동안 음식물을 보관하는 데 애를 먹던 사람들이 그것을 담아둘 질그릇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인류가 컴퓨터를 만들 수 있기까지는 채 1만 년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이러한 놀라운 발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언어를 가졌을까? 인간의 최초 조상들은 과연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했을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의 기록은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사는 수메르 사람들이 점토판에 남긴 글자로 대부분 숫자 계산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렇게 보면 문자의 나이는 약 600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말보다 글이 훨씬 후대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문자 이전에 인류에게 존재했을 언어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베일에 싸인 언어의 기원은 언어를 신의 은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언어는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며, 언어는 이 세상이 시작될 때 함께 등장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성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창조주인 신은 이 세상의 모든 들짐승과 새들을 만든 다음 그가 창조한 첫 인간인 아담을 시켜서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한다. 그리고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언어가 지금처럼 여러 개의 말로 나누어지게 된 기원을 들려준다.


바벨탑

인간이 하늘을 향해 바벨탑을 쌓자, 이에 노한 신이 인간을 분열시키기 위해 서로 언어를 다르게 만들었다는 믿음도 전해진다.


16세기 바카누스(J.G.Bacanus)라는 독일인은 '전능하신 신은 완전한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고, 가장 완전한 언어인 독일어가 신의 언어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스웨덴인 캠케(Andre Kemke)는 신의 언어는 스웨덴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세 유럽인들은 조상들이 신의 선물인 언어로써 신과 대화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자국어만이 완벽한 언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를 전후하여 자연과학적인 사상과 방법이 학문의 대세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처럼 소박하고 신본주의적인 생각은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우선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 인간 자체를 보는 눈이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급선회하였다. 그리고 모든 학계의 관심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온갖 논쟁과 추측이 뒤섞인 인간 진화론의 중심에는 언어 발생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언어의 발생과 인간의 진화? 이 둘의 관련은 소리와 의미의 이원적 체계를 갖는 언어의 특성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의미의 습득을 가능케 하는 두뇌의 진화와, 소리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발성기관의 진화는 언어 발생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인간 진화의 행로에서 잉태된 언어의 탄생을 같이 지켜보자.

[네이버 지식백과] 언어라는 수수께끼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소리의 탄생


호모 에렉투스 시대까지 인류의 조상들은 간단한 의식주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손짓만으로 간단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지만, 점점 생활이 복잡해지자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생겼다. 따라서, 보다 쉽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가 바로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이용하면서 의미 있는 소리의 체계가 점점 더 다양해지면서 인두라는 호흡기관은 유연하고 길게 진화했다. 다른 포유동물의 인두는 작다. 인두가 길어지면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호흡기관으로 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두가 길어졌기 때문에 음식물과 공기가 서로 교차해서 통과하게 되어 자칫 음식물이 호흡기관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보통 '사레들렸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그러나 사람은 이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인두를 발달시킨 결과 언어 사용이라는 열매를 얻은 것이다. 반면, 다른 포유동물은 언어를 얻지 못한 대신 편안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어를 선택하고 동물은 음식을 선택했으니, 서로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주장대로라면 에렉투스도 네안데르탈인도 충분히 진화된 언어를 갖지는 못한 셈이다. 그들에게는 모음을 만들 수 있는 인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속사포같이 연달아 소리를 발음할 수 있는 신경회로도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적인 진화가 반드시 언어 탄생을 염두에 두고 진행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물고기의 부레가 허파의 전신이듯이, 이미 있는 기관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필요에 적응시켰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인류의 시작에 대한 설명이 이처럼 진화론 쪽으로 기울고 나면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신화나 사변적인 이야기에서 보다 과학적인 이야기로 바뀌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증거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인데, 언어의 기원에 대한 근거는 수메르나 이집트, 중국 옛 문자의 유적이 전부다. 그나마 이들 증거마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말과 글은 별개의 것이며, 또한 문자가 있기 훨씬 전에 이미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리의 탄생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지구여 아듀


우리가 만일 외계인을 만나면, 그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외계인도 고등동물이라면 인간처럼 의사소통의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구에서도 지구인들 간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외계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지구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동일하지 않다면, 의사소통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게 보낸 그림


위의 그림은 문학자이며 저술가인 칼 세이건이 제안하여 파이어니어 10호에 실린 것이다. 칼 세이건은 1997년에 개봉된 〈콘택트(contact)〉라는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림의 상단 왼쪽부터 '수소 기체의 표시/우주선의 모양/8을 2진법으로 표시한 것'을, 하단 왼쪽부터 '은하계 중심에서 태양계 표시/태양계의 행성과 2진법의 상대 거리'를 의미한다. 칼 세이건은 그림을 이용하여 지구에서 온 생명체란 것을 알리고, 지적 능력이 있음을 전달하려고 했다. 미지의 대상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림을 이용하였듯이 이와 유사한 상황을 선사 시대에서도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사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현실세계를 재현하고 의사소통을 했을까. 바로 대상의 시각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구여 아듀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그림 속에 소리를 담다


새로운 표현방식의 등장


인간이 말을 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종(種)이 지구상에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했다. 인간은 발성기관을 통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소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제 인간이라는 종은 의미 있는 소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냥이나 채집 등의 일을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런데 화자의 입을 통해서 생산된 소리는 청자의 귀를 통해서 해독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의사소통상의 여러 가지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말이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귀로 전해지려면 화자와 청자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를 청각화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시공간적 제약이 없는 경우에도, 어떤 사실이나 생각을 전달하려면 개개인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청각화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지금이 아닌 나중에 전달하는 데 한계성을 드러낸다. 또한, 개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기억 능력 차이로 인해서 정보 전달에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


청각화로 생기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은 언어를 시각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말할 수 있는 입'과 '들을 수 있는 귀'를 항상 갖추어야 하고, 한 번 생산된 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잘못 들은 사람에게는 다시 그 소리를 들려 주어야 한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어도'. '한번'이 아닌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선사인들의 해결책은 바로 언어의 '시각화'였다. 언어를 '손으로 그려서' '눈으로 보게 함'으로써 청각화의 문제점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려진 것은 소리처럼 허공으로 사라지지도 않고, 내일도 볼 수 있고, 그린 사람이 없어도 보는 사람만 있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선사인들은 구어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시각화(=그리기)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아냈다. 그들은 이제 직립으로 인해서 두 손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이로 인해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현실세계의 대상을 선이나 면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인류는 그림 속에 소리를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가 소리를 통해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 언어사에서 '제1대 사건'이라고 명명한다면, 이는 '제2대 사건'이라 할만하다. 이제 선사인들은 '고래'라는 대상을 소리쳐서 말하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말하지 않고도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니!(물론, 무언의 몸짓으로도 의사소통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이는 시공간의 제약을 갖는다.) 그것도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어떤 이에게!


시각화 방식은 처음에 대상의 윤곽을 1차원의 선으로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좀더 세련되면 2차원의 면으로 대상을 그리는 발달 과정을 거친다. 선사인들의 시각화 과정은 어린이가 대상을 표현하는 단계와 비교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림 속에 소리를 담다 - 새로운 표현방식의 등장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문자의 조상, 암각화


선사인들은 무엇을 그려서 동료나 후손에게 남기고 싶어했을까? 심미적 관점에서 대상을 재현시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을거리(사냥감, 사냥 방법), 생산성 증대(다산, 풍요)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등을 그려서 남기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 또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경상남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울주군 언양면 〈반구대암각화〉와 그에 인접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암각화〉, 영주 부근 〈칠포리 암각화〉 등이 있다. 여기에는 거북, 고래, 물개, 들소, 배, 호랑이, 멧돼지, 사슴, 개 및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과 사람들의 다양한 형상이 보인다. 대상을 사실 그대로 그리고 있어 아직 추상화의 과정까지 나아가지 못한 단계이다. 이 그림들은 수렵을 주로 한 선사인들이 풍요와 다산을 비는 주술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85호. 상단 중앙에 성기를 노출한 남자, 그 왼쪽 옆에 세 마리 거북이, 그 아래 새끼 밴 고래, 작살 맞은 고래, 울타리 등이 보인다.

앞 그림에서 상단 중앙에 성기를 노출한 남성은 반구대 마을의 샤먼이나 추장 등으로 추정되는데, 종족의 번창과 사냥할 때 보이는 남성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 왼쪽 옆에 세 마리의 거북이가 있다. 거북이는 성적 상징을 갖는데, 거북이 머리는 남성의 성기를, 움츠린 모습과 몸통은 여성의 성기와 자궁을 상징한다. 거북이 머리는 한자로 귀두(龜頭)인데, 이는 남자의 성기를 뜻한다. 또 새끼를 밴 어미 고래는 사냥감의 풍요함을, 작살에 찔린 고래의 그림은 사냥할 때 손쉽게 고래를 잡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술적 의미에서 그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적 의미가 담긴 그림들은 선사인들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기원전 15,000~기원전 10,000년경의 구석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북부 피레네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 벽화에도 동일한 해석이 가능하다.


프랑스 도르도뉴의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에는 구석기인들이 말, 들소, 순록, 사슴 등의 동물 그림을 바위 표면에 선각(線刻), 채색 등의 방법으로 그려놓았다.


동굴 벽화가 동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과 주거 공간과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그려진 점, 나아가 그림 위에 계속 중첩해서 동물을 그려놓은 점을 볼 때, 동굴을 장식하거나 본능적인 표현 욕구의 발로가 아니라 동물과의 투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마술적·주술적 맥락에서 그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던 원시인들이 들소, 순록, 사슴 등과 같은 야생동물을 벽과 천장에 가득 그려놓고 그것들을 잡을 수 있게 빌었다는 해석이다. 결국, 선사인들의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 그 자체(=현실 세계)이며, 소망의 표현(=이루고자 함)이자 소망의 성취(=이룸)로 볼 수 있다.


이제까지 대상을 구체화된 그림으로 표현된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천전리 암각화에서는 대상을 추상화한 단계로 나아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아래 그림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추상화된 그림은 오늘날 그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단정지을 수 없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생명과 풍요의 상징인 비와 물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전자로 해석하면 동심원이 태양신과 연결되고, 후자로 해석하면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가져다주는 물을 뜻하므로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천전리 암각화

국보 제147호. 세 겹 동심원의 추상적인 기호는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구체적인 대상 묘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 태양신이나 풍요의 기원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주술적 의미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자의 조상, 암각화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어떻게, 어디에 그릴까?


그리기는 대상을 시각화하는 일반적 방식이다.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 벽화는 이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반구대나 천전리의 암각화는 그린 것이 아니라 새긴 것이다. 상형 문자를 뜻하는 'hieroglyph'에서 'hiero'는 그리스어로 '신성', 'gluphien'은 '새기다'의 의미로 '신들의 글자'를 가리킨다. '새기기'는 선사인들이 즐겨 쓰던 표현 기법이다. 낙서를 뜻하는 'graffito'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sgraffito', 이탈리아어 'graffito'이다. 즉,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의미로 선사인의 동굴 벽화를 의미하는 말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말 '글'의 어원을 '긁다'나 '긋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 동서양이 서로 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바위 벽이나 큰바위에 선이나 윤곽을 쪼아 내거나 새긴 것을 암각화(岩刻畵)라고 한다. 새긴다는 면에서는 조각으로, 그 내용을 선이나 면으로 처리한 점에서는 그리기로 볼 수 있다.


선사인들은 정면성에 의한 표현 방식을 주로 이용했다. 정면성에 의한 표현이란, 그리기 쉽고 또 이미 알고 있는 부분만을 골라 그리는 방식이다. 어린이의 그림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집트의 벽화를 보면, 얼굴은 정면보다 옆면을, 눈은 옆면보다 정면을, 어깨를 중심으로 한 상체는 옆면보다 정면을, 다리는 정면보다 측면을, 곧 그리기 쉬운 부분만을 골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선사인들은 동굴 벽이나 돌, 바위 등에 그리거나 새기기 시작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간은 실로 다양한 곳에 정보를 기록하였다. 죽간(竹簡), 목독(木牘), 밀랍, 비단, 목면, 마,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거북등, 동물뼈, 사람뼈, 어패류의 껍질, 청동기, 철, 옥, 도자기, 아연판, 구리판, 파초잎, 자작나무 껍질, 사람가죽 등과 같은 곳에 인간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떻게, 어디에 그릴까?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가장 보편적·효율적 전달 방식, 그리기 문화


시각화를 통한 의사소통 방법은 비단 선사 시대뿐만 아니라 중세나 현대에서도 여전히 이용된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도 중세 사람들의 대부분은 읽고 쓸 수 없었다. 이들을 위해서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 널리 이용되기도 했다.


지구상에는 현재 6,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인류의 절반이 문맹이다. 상이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잦은 문화적 접촉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시각화된 의사소통 방법이 폭넓게 이용된다.


시각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예로는 아이콘, 이모티콘, 아이소타입 등이 있다. 아이콘(icon)은 원래 히브리어 'eikon'으로 '그림'이라는 뜻인데, 예수나 성자 등의 그림으로 사용되고, 숭배 대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우상파괴론자(iconclast)는 'icon'과 'clast=파괴하다'로 만들어진 어휘이다. 아이콘은 오늘날 만국 공통언어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자동차의 등장이 아이콘의 부활을 가속화했다고 한다. 또 현대인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채팅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문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판의 기호를 이용한 이모티콘(emoticon=emotion+icon)을 만들어 감정 표현에 사용하고 있다.


유럽의 화장실 표지판

원은 여자화장실, 세모는 남자화장실을 뜻한다. 이는 암각화의 성적 표현 방식과 유사하다.


아이소타입(ISOTYPE=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은 오스트리아의 옷토 노일러가 어린이의 시각 교육을 목적으로 창안한 국제적 기호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한 그림언어이다. 1920년대에 2,000개 이상의 기호를 포함한 시각사전을 작성해 일종의 시각언어와 그 문법을 설명했다.


최근에는 그림책을 비롯 교과서나 백과사전 등에서 사실이나 지식의 이해를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아이소타입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픽토그램(pictogram)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장 보편적·효율적 전달 방식, 그리기 문화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그리기에서 쓰기로


역사 시대를 향하여


일반적으로 수학자들은 '두 마리의 고래'에 대한 인식이 대상인 고래로부터 벗어나 정수 '2'가 되는 지점에서 수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추상화 과정이다. 언어에서도 '고래'라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에서 벗어나 추상화된 형태로 표현할 때 비로소 효율적 문자 기능을 갖는다. 상형 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와 한자 상형 문자를 다음에 살펴보게 되는데, 왜 이집트 상형 문자는 오늘날 사용되지 못하고 한자 상형 문자만 사용되는 것일까? 이는 이집트 상형 문자가 단계적인 추상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상형 문자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단계에서 점차 추상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이제까지 본 동굴 벽화의 들소나 암각화의 고래, 동심원 등에 언어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원시 시대의 그림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점차 구체성에서 추상성을 띤다. 즉, 회화성이 없어지고 기호화, 부호화함으로써 문자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물건을 그림이나 추상적인 상징으로 표현하던 것이 발전하여 문자가 되었다는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동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기에서 쓰기로 - 역사 시대를 향하여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그림 속에서 문자를 끌어내다


암벽에 새겨진 수수께끼 형상들

제작 시기나 그 목적도 알 수 없지만, 같은 기호를 반복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대 사회의 약속된 의미 체계로서 의사 소통에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미술관에 걸린 추상화를 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놓여 있을까? 가슴속에는 어떤 감정이 출렁이고 있을까? 도대체 화가는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그린 것일까? 이런 그림들이 얼굴의 솜털까지도 그린 중세의 그림이나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까? 발전이라면 무엇을 뜻하는가?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은 동굴벽화에 그려진 알 수 없는 기호만큼이나 숱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원시동굴 벽화에는 현실 속에 보이는 대상들이 직접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점과 선과 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호들은 벽화 전체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간파한 사람들에게나 속뜻의 한자락을 살짝 비칠 뿐이다. 바위에 새겨진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순한 그림, 그리고 점과 선들은 우연히 새겨진 흔적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장구한 시간 동안 인류는 진정한 문자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기호의 발명은 현실 사물과 기호를 분리하는 계기가 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현실 사물과 기호의 분리란 무슨 의미일까?


세상의 사물은 무한정으로 널려 있고, 사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을 명실상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것을 상징적인 그림만으로 표현한다고? 표현량이 늘어나고 정교해지면 이미지와 사실을 표현한 상징적인 그림은 의사 소통의 주류 기호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게 된다. 현실 사물과 기호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하고, 문자는 자의적(恣意的)인 기호로서 의사 소통의 주류 기호가 된다. 현실 사물과 기호의 분리는 문자의 신비화를 부추기는 한편, 유한한 기호를 통한 무한한 표현 가능성은 의사 소통 과정에서 문자의 기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신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수단은 현실과 분리될수록 신비로움을 더해 가고, 추상화된 기호는 공동체의 의미 부여와 사회적 약속을 전제함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시켰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


이 과정에서 현실 사물을 묘사한 이전의 그림 문자는 상당 부분 그대로 문자 체계 속에 승계되었다. 기존의 그림 문자를 결합하여 더 큰 개념을 나타내거나, 그림 문자가 점점 단순화되면서 현실과 관련 없는 새로운 기호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하나의 개념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그림 문자가 개념의 확장 과정에서 그 수가 늘어나기도 하고 통일된 의사 소통을 위해 그 수가 제한되기도 하면서, 문자의 발전 과정에 합류한 것이다. 이때 문자 기호의 자의성은 문자 형태를 고정시키고, 문자의 수를 제한하며 이를 목록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통일된 의사 소통을 위한 기반이 갖추어진 것이다.


체계적인 기호로서 문자는 생각이나 느낌을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했으며, 모든 구성원들은 문자를 통해 그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했다. 보다 정교한 문자에 대한 공동체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문자는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추상화된 문자를 통한 사물의 형상화에는 그런대로 만족했지만, 사물들의 관계와 그 사물들이 빚어내는 수많은 사건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사건과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우리끼리야 말로 하면 되지만, 신께서는 우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셨을까?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의견을 후세에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 내뱉는 말을 문자와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항상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표현하며 살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고대인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려는 문자가 말을 형상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말의 형상화를 위한 조건은 대체로 만족할 만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추상화된 기호는 무한한 약속을 가능하게 하였고, 무한한 사물과 사건을 표현할 수 있는 유한한 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말의 내용과 관계없이 소리를 문자와 대응시킬 수 있게한 것도 추상화된 기호의 역할이었다.


말의 형상화와 기호의 목록화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진정한 의미의 문자라 부른다. 쐐기 문자와 상형 문자를 진정한 문자의 출발로 보는 것은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발음을 문자화하기 시작하면서 문자의 획기적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발음의 문자화는 음절 문자에서 시작했는데, 이는 모음이 단순한 수메르와 이집트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메르와 이집트인들은 자음만을 문자화하여 음절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림 속에서 문자를 끌어내다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문자의 발달


문자의 시작은 그림이었지만, 이미지와 사실 표현에서 말의 형상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문자는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문자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그 대강은 문자의 자의성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과정을 밟아 진행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문자가 현실 사물에서 독립하는 과정은 문자가 소리를 표현하는 단계에 이르러 완결된다.


문자의 음성화는 대략 기원전 3000년경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출발은 수메르 문자다. 수메르 문자는 그림 문자의 변형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과의 관련성은 없어지고 음절 문자화하면서, 문자 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 또한 그림과 문자가 병행하는 체제였으나 결국은 음절의 표현으로 귀착되었다는 점에서 그 발전의 흐름은 수메르의 쐐기 문자와 같다. 중국의 갑골 문자는 한자의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것인데, 중국에는 갑골 문자 이전부터 황하유역에 고문자의 원형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그림 문자와 깊이 관련하고 있으나 이 역시 복합적인 사고의 표현이나 고유명사의 표현 등에서는 대상과의 의미적 관련성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상형 문자 : 회화처럼 아름답지만 엄밀한 부호체계

이집트인들은 모든 자음들에 대한 부호를 발전시켰지만 모음에 대한 부호는 없었다. 이는 이집트어 맨 앞에 모음이 오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집트의 음절 문자는 약 24개의 비의미적 부호들을 갖고 있어서 이것들이 하나의 모음 앞에 오는 최초의 자음을 지시했으며, 자음들의 쌍과 임의의 모음의 쌍을 지시하기 위해 약 80개의 부호들을 갖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음절 문자를 단어 문자들과 함께 사용했다. 그러나 문자의 사용 양상은 엄밀한 약속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상형 문자는 문자라기보다는 회화라고 할 만큼 아름답지만, 각각의 문자가 어떤 색깔로 칠해질 것인가가 거의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이집트 상형 문자의 엄밀한 체계를 보여주는 한 예다.


이때, 고유명사를 표현하는 과정은 음절 단위로 문자를 재창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수메르 문자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음절 문자로 추상화되는 과정이 그렇고, 중국의 한자가 음절 문자의 출현에 있어서 기원이 된 것 또한 이러한 과정의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메르의 가장 오래된 그림문자


앞으로 우리는 우리말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자 속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 속에서, 문자의 발전과 전파 과정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전 대륙을 관통하는 문자의 물줄기는 동과 서 혹은 남과 북으로 수많은 지류를 갈라 놓았으며, 그 지류에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 흐름은 결국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문자의 자의성을 강화시키면서, 그 속에 소리를 담아 내는 과정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 문자의 발달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 [인문사회]'세상을 바꾼 문자'…문명교류의 1등공신 알파벳 동아(2003/09/27)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386쪽 1만5000원 예지

<- [기원전 236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판에 전형적인 수메르 설형문자가 기록돼 있다.]

“알파벳은 단 한 차례 생겨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문화권으로 확산된 발명품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여기서 ‘알파벳’이란 로마문자와 그리스문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알파벳’은 슬라브어권에서 통용되는 키릴문자, 아랍문자 등 모든 종류의 음소문자(音素文字·각각의 기호가 발음을 지시하는 문자)를 일컫는다. 요컨대 음소문자를 사용하는 모든 문화권은 기존의 음소문자를 변형했거나 기존의 것에 덧붙여 새 문자를 만들었거나 심지어 기존의 음소문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이 책은 알파벳의 성립 과정을 따라가며 그 길 위에 있었던 문화들을 차례로 조명한다.
새롭게 알려진 바는 아니지만 알파벳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와 그리스의 상형문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음소문자로서의 알파벳의 개념들이 등장했다. 의미가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적은 수의 기호들로 기존의 수많은 기호들을 대치하게 된 것.


오늘날 알파벳의 원형은 이집트문자에서 영감을 얻은 시나이반도 부근의 유목민에 의해 창조됐다. 이 지역에서 1990년 발견된 비문에 A B R N 등의 원형이 드러나 있었다. 이 문자는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로 넘어갔고 이탈리아의 선주민인 에트루리아인들이 오늘날의 로마자로 만들었다. 로마인은 문자를 가장 미적으로 세련되게 만들었다. 세리프(글자 끝의 장식) 등을 창안한 로마인의 서체는 오늘날에도 거의 변함없이 사용된다.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은 키릴문자가 9세기경 세력을 뻗치며 로마자의 확산은 멈췄다. 중세에는 V에서 W와 U가, I에서 J가 파생됐다. 유럽 외의 알파벳(음소문자)은? 이집트문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람(Aram)문자는 이란을 거쳐 몽골과 만주에까지 전파됐다. 계통이 불분명한 음소문자들도 저자는 인접 문명권의 음소문자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결과로 본다.

그렇다면 한글의 경우는?
저자가 11개의 장(章) 중 한 장을 온통 한글의 설명에 할애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나아가 한글을 ‘알파벳의 꿈’, 즉 가장 이상적인 음소문자의 지위에 올려놓는다. ‘고도로 세련된 사회의 뛰어난 산물인 한글은 어느 알파벳보다도 완벽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 알파벳이고 단순하고 효율적이고 세련되었으며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으로 알파벳이 어느 정도까지 발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증이 정밀하지는 않지만 외국인의 글에서 이런 찬사를 듣는 일은 분명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흥미로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글의 흐름은 종종 줄기를 벗어나 한참 엉뚱한 곳으로 치달아 마치 자유로운 강연을 현장에서 기록한 듯한 느낌을 준다. 고대문자의 해독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우주선 ‘파이어니어’ 10호에 실어 외계로 보낸 메시지를 언급하는 식이다. 발랄한 서술이기는 하지만 집중하지 않다가는 논지(論旨)를 놓치기 쉽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독자 리뷰도 주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원제 ‘Alpha Beta’(2000)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 예지 중앙(03/09/27)

<-[이집트 룩소르 부근의 신전 유적. 기둥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신간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할 알파벳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딱딱하게 흐를 수 있을 언어학 지식을 재료로 했지만 그 바탕에 깔린 저자의 상상력이 큰 힘을 발휘하면서 문자의 재미에 빠져들게 한다. 상상력이 좀 많이 들어갔음을 의식했음인지 저자 스스로 `팩션(faction: 현대 출판용어, fact와 fiction의 합성어)`이라고 규정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을 버무려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소수의 문자 기호로 수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체계`는 모두 알파벳으로 본다. 고문자학의 최신 성과를 반영한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표의문자인 상형문자나 한자도 알파벳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글도 예외가 아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은 한글"이란 극찬까지 한다. 몽골의 언어와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다는 저자는 모두 11개 장 가운데 한 장을 아예 한글에 할애하는 정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저자의 알파벳 개념을 따라가다 보면 문자 자체의 발생으로까지 연결되면서, 저자가 펼쳐놓은 추론의 그물에 좀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컨대 알파벳을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는 저자는 알파벳이 처음 발상한 하나의 고향이 있으리란 상상을 한다. 상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실을 나열하면서 궁극적으로 그 고향이 이집트와 중동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론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한글의 먼 기원도 중동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통해 전해진 알파벳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인가? 실제로 저자는 세종대왕이 한글의 모델을 몽골 문자에서 착안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몽골 문자의 연원을 고대 히브리 문자로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결국 한글이 이스라엘의 모세가 썼던 문자와 연결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인데, 이것이 고대 문명 교류의 실상인지, 아니면 저자의 황당한 상상력일 뿐인지 관련 전문가들의 보다 깊이있는 논의가 필요한 대목으로 보인다. 영어를 중심으로 한 좁은 의미의 알파벳의 기원에 대한 역사 교과서의 공식 기록은, 고대에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던 페니키아 상인들이 장부 기재용으로 발전시킨 문자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알파벳 시대가 열렸다고 되어있다. 페니키아 상인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그 이전의 연원을 추론하는 상상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 [인문사회]'고대 도서관의 역사'…옛날에도 "도서관은 국력" 2003/10/17(금)

◇고대 도서관의 역사/라이오넬 카슨 지음 김양진 이희영 옮김/310쪽 1만3500원 르네상스
도서관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 그 옛날의 도서관에는 책이 몇 권이나 있었을까. 옛날의 사서들은 책을 어떻게 모으고 분류하고 관리했을까. 인터넷 검색창에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란 검색어를 쳐보니 바로 원하는 답이 나온다. ‘문명 발상의 고장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던 바빌로니아 수도 니폴의 사원 자리에서 설형문자를 새겨 넣은 점토판이 발견됨으로써 BC 21세기경의 옛 도서관 자리가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내용이다. 서문에 밝힌 대로 ‘고대의 도서관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펴본 최초의 연구서’인 이 책은 그런 갈증을 풀어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이야기로 시작되는 책을 얼마쯤 읽어나가자 조금 전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이 나온다. ‘니푸르’란 곳에서 발견된 점토판 중 기원전 20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판 두 개가 나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에는 니폴이라고 되어 있는데…. 웹사이트에 글을 올린 사람이 자판을 잘못 친 것일까. 이런 종류의 착오는 고대에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의 도서관 운영자들은 진본에 가장 가까운 책을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니 책을 여러 권 만들려면 필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고 필사를 거듭하다 보니 미필적 혹은 의도적인 오류가 계속해서 쌓여 갔던 것. 그래서 도서관 운영자들은 책이 처음 씌어진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제작된 필사본을 구하려고 애썼다. 그 와중에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위조된 그럴듯한 가짜 필사본까지 등장하게 됐다. 고대의 위정자들은 왜 도서관을 지었을까. 그리고 도서관에 그토록 많은 책, 그것도 정본을 모으려고 애를 썼을까.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관리들은 자기 도시에 배가 기항하면 그 배에 실린 모든 필사본을 일단 거두어서 또 다른 필사본을 만든 후 돌려주었다고 한다. 때로는 원본을 갖고 필사본을 돌려주는 ‘사기’도 서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훌륭한 도서관이야말로 뛰어난 학자와 기술자들을 유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과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결과는. 정본을 많이 갖춘 훌륭한 도서관이 있는 도시 혹은 국가의 융성이다.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로서 고대문화사의 권위자로도 꼽히는 저자는 점토판과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양피지 양장본 책에 이르기까지 책의 발전 과정은 물론 서적상, 저자, 도서애호가 등에 대해서도 사회 역사적 맥락과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이 점토판을 가져가는 자는 샤마시가 그의 눈을 뽑아 낼 것이다’란 경고문으로 책 도둑을 예방했다는 이야기, 책과 떨어지기 싫어 여행할 때마다 수많은 낙타에다 자기가 가진 책을 전부 싣고 다니곤 했다는 지독한 책 애호가 이야기, 알렉산드리아가 점령되었을 때 도서관에 있던 책으로 6개월 동안 무려 4000개의 목욕탕 화덕이 지펴졌다는 이야기처럼 다소 전문적인 서술을 읽어나가는 지루함을 달래주는 내용도 적지 않다.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도로스는 도서관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불렀다. 이 책을 기꺼이 펴들 독자들은 아마도 그 말에 동의할 것이다. 사족 하나. 저자는 이 책이 일반 독자와 학자 모두를 위한 것이며 학자들을 위해 책의 뒷부분에 전거를 빠짐없이 첨부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말로 옮겨진 책에는 그것이 빠져 있다.

 

 

■ 사람이 말하는 건 돌연변이 덕 (중앙/2003년 07월 03일)

몸길이 60~70㎝ 정도인 아프리카의 사바나 원숭이는 자신의 무리를 공격하는 것이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다른 사바나 원숭이들은 경고성의 종류에 맞춰 행동한다. 표범이 나타났다는 소리엔 나무 위로 도망치고, 독수리가 공습한다는 경보에는 덤불 속에 숨으며, 소리가 뜻하는 것이 동작이 느린 비단뱀인 경우엔 뒷발로 일어서서 주위를 살핀다. 경고성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가장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혹시 경고성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나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밝혀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버트 세이파스(심리학)교수는 사바나 원숭이가 외치는 경보를 녹음했다가 나중에 다시 틀어주고 반응을 관찰했다. 그랬더니 `독수리다`는 소리엔 덤불로 대피하는 등 늘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사바나 원숭이들도 나름대로 정확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말로 복잡한 뜻을 주고받지는 못한다. 과연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갖게 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점점 지능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언어가 생겼다는 설(부산물설)이 그 하나다. 또한 사바나 원숭이에게서 보듯 의사 표현을 정황에 맞춰 적절히 하는 집단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으므로, 이런 쪽으로 진화하면서 결국 언어가 나타났다는 설(진화설)도 있다. 부산물설을 내세우는 학자는 언어학의 거장인 미국 MIT 노엄 촘스키 교수 등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지능이 높아진 결과 언어가 자연히 생긴다면, 우선 지능이 왜 발달하게 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부산물파는 그 이유로 도구의 사용과 더불어 `남을 속이고, 또 남에게 속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든다. 무리지어 사는 새들도 동료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 때까치는 먹이를 발견했을 때 `매가 나타났다`는 경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동료들이 놀라 달아난 사이 먹이를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때까치의 경고성 중 15% 정도가 거짓말이었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게 집단의 동료를 속이는 행동은 인간에 가까운 영장류로 갈수록 많아진다. 침팬지는 집단에 서열이 있어 가끔씩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싸우는데, 싸우다가 화해의 제스처로 손을 내밀고는 화답하는 상대방을 느닷없이 공격하기도 한다. 부산물설을 내세우는 과학자들은 먼 옛날 인간의 조상들은 다른 영장류보다 속임수 행동을 훨씬 많이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서로 속이고, 또 속지 않는 전략을 개발하는 가운데 지능이 더욱 발달했고, 결국 언어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약점이 있다. 지능이 극히 낮은데도 언어 능력은 정상인 경우를 설명하지 못한다.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리면 바로 이렇게 지능이 몹시 떨어지는데도 말을 하고 알아듣는 것은 정상인과 다름 없다. 한편 진화설은 의사 표현이 발달할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앞에 예를 든 사바나 원숭이는 `표범이다`는 것만 알려줄 수 있을 뿐, "표범이 오른쪽 20m 지점에서 접근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표범`이라는 경고에 놀라 오른쪽에 있는 나무로 도망가려던 원숭이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만일 `표범이 어느 쪽에서 오고 있다`는 식으로 더 자세한 정보를 전하고 알아듣는 능력이 생겨났다면 더 잘 생존하게 된다. 이렇게 상세한 표현을 할 수 있어 살아남은 동물의 집단이 표현 능력을 더욱 발달시킨 결과 인류는 언어를 갖게 됐다는 것이 언어의 진화설이다. 진화설은 부산물설과는 반대로 언어 능력이 발달하는 가운데 지능이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연구진이 사람의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 `진화설`을 뒷받침했다. 영국에 대대로 다른 지능은 정상인데 유독 말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집안이 있었는데, 연구진은 이들의 `FOXP2`라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는 혀와 성대 등을 절묘하게 조절해 다양한 소리를 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당시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며 "계산 결과 약 20만년 전 돌연변이가 일어나 인류의 조상이 이 유전자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만년 전` 다른 유전자 연구를 통해 추론된, 현재 인류의 직계 조상이 나타난 시기와도 일치한다. 이 시기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생겼고, 유전자를 통해 이 능력을 대대로 물려주면서 생존 확률이 높은 이 무리가 네안데르탈인 등을 누르고 인류의 조상이 됐다는 것이다. 20만년 동안 인종이 다양해졌음을 생각하면 현재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것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다. 인종보다 언어의 종류가 더 많지만, 사투리에서도 전혀 생소한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면 같은 인종이라도 오래 떨어져 살면서 언어가 달라지는 현상은 얼마든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들로 인해 최근에는 진화설이 힘을 얻고 있다. 서울대 과학협동과정 장대익 연구원은 "언어가 태어나려면, 무리의 특정한 구성원이 만들기 시작한 기초적인 문법을 무리 전체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런 과정은 아직 언어의 진화설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 "현존언어 90% 금세기말 사라진다"

소수 민족들의 언어가 희귀 동식물의 멸종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대 빌 서덜랜드 교수는 과학주간지 네이처 최신호(15일자)에서 최근 500년간 소멸된 언어의 비율은 전체의 4.5%로 조유(1.3%)나 포유류(1.9%)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17세기 이래 소멸된 언어는 북미 지역 원주민 언어 176개 중 52개, 호주 원주민 언어 235개 중 31개 등이 포함돼 있다. 서덜랜드 교수는 언어의 다양성과 생물종의 다양성이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삼림지대나 열대우림, 산맥지대에 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듯 언어도 이런 지역에서 풍부하게 발달한다는 것이다. 전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이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인도, 멕시코, 카메룬, 호주, 브라질 등 8개국에 몰려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생물의 멸종과 달리 언어의 소멸에는 환경적 요인과 함께 정치·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언어 다양성의 위기는 이미 유네스코와 환경단체 등 여러기관에서 문제로 제기해 왔다. 유네스코는 특정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집단의 수가 10만명이 안되는 언어는 소멸위기에 처한 것으로 규정한다. 민간기구인 월드 워치는 2001년 이 기준에 따라 현존 6809개 언어 중 90%인 6000여개가 금세기 말이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전쟁과 대량학살, 자연재해, 특정 언어 사용 금지 정책, 중국어처럼 사용자가 압도적인 언어에 주변 언어가 동화되는 것 등이 언어 멸종의 원인으로 꼽힌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6809개 언어의 96% 사용자를 모두 합쳐도 세계 인구의 4%가 되지 않는다. 소수민족의 언어는 사용자가 갈수록 급감하고 있다. 남미 안데스산맥의 레코어는 사용자가 약 20명, 아프리카 카메룬의 캄바프어는 30명에 불과하다. 아마존 정글의 아리카푸어는 6명, 알래스카 에약어 등 46개 언어는 단 한사람만이 사용하고 있다. 357개 언어는 사용자가 50명 이하이다. (조선닷컴 internetnews@chosun.com )

 

 

 

선사시대 유적

 

 

카카두국립공원의 벽화,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주. 널랑지바위의 원주민벽화로 60,000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의 벽화이다. 생동감 있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네덜란드의 고인돌, 휴네베덴이라고 부르는 선사시대의 돌무덤으로 네덜란드의 엠멘에 소재한다.

 

 

캘런디시스톤, 영국 스코틀랜드의 루이스섬에 있는 직립해 있는 돌유적로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

 

 

선사시대 유적지, 영국 루이스섬.

 

 

브로거링유적지, 영국 스코틀랜드의 오크니제도에 있는 선사시대의 불가사의한 유적.

 

 

선사시대 주거지, 영국 스코틀랜드의 오크니제도.

 

 

인돌공원 황해도 로암리 고인돌, 전남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이 공원은 주암댐건설 수몰지역에 있던 선사유적을 한곳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계림리 선사유적, 계림리 선사유적

 

 

스톤헨지, 영국 윌트셔주 솔즈베리평원에 있는 고대 거석기념물.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반달돌칼, 간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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